‘서울시장 삼수’ 나선 안철수의 배수진

이대로 빅텐트 치나?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로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핵심은 야권 내 단일후보를 내는 방식인데, 이를 두고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서는 잇따라 ‘잠룡’급 후보들의 출마가 점쳐지는 데 긴장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야권 연대 추진 동력에 불이 붙었다. 안 대표는 지난 20일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권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만은 제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겠다”며 시장직 출마 의사를 밝혔다. 야권의 ‘잠룡’으로 분류돼 온 안 대표가 최근까지 시장직 불출마를 공공연히 밝혀 왔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반향의 컸다.

레이스 시작
복잡해진 야

안 대표는 시장직 출마 선언 전날 당직자들에게 ‘결자해지’의 각오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2011년 안 대표가 박원순 전 시장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뒤 벌어진 상황들에 대한 책임을 직접 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안 대표가 서울시장으로 진로를 선회한 것을 두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 대표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녹색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전국 단위 선거에서 내리 저조한 성적을 받으면서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

21대 총선 이후에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안 대표가 소속돼있는 국민의당은 21대 국회에서 원내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법안 발의는커녕 주요 현안에서 목소리를 내도 크게 조명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이미 과반 의석수를 확보해 당의 ‘캐스팅보트’ 역할도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 대표가 당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마지막 ‘배수진을 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후퇴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서울시장 출마로 체급을 낮춤으로써, 안 대표의 ‘몸값’을 다시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안 대표의 전략으로 국민의당은 선거 주도권을 선점했다. 내년 출마 선언 이후 발표된 첫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는 두각을 보였다. 한길리서치에 <쿠키뉴스>가 의뢰해 19~20일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안 대표의 지지율은 17.4%. 범야권 후보 1위였다.

출마 선언 후 야 지지도 1위
단일화 두고 야권 내 기싸움

만약 안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야권의 바람대로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반문(반 문재인)연대 결집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직은 대한민국 수도의 시정을 총괄하며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국정 과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1년짜리 임기에 불과하지만, 반문 진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부각시킬 수 있다. 여론전을 잘 이용하면 문 대통령과의 대결 구도를 형성해 야권의 ‘다크호스’로 부상할 개연성도 있다.

국민의힘은 안 대표의 시장 출마로 속내가 복잡해졌다. 안 대표의 결단이 반문 빅텐트의 기폭제가 될지, 야권 분열의 씨앗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원내대책회의 갖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고성준 기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당장은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야권에서 입지가 높아진 안 대표를 견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일단 단일화에 대한 큰 이견은 야권 내에 없다. 분열은 ‘필패’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변수는 야권후보 단일화 방법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방식은 크게 3가지다. ▲2011년 민주당 모델식 통합경선 ▲안 대표의 국민의힘 입당 후 경선 ▲당적 불문으로 야권 인사들의 원샷 경선 등이다.

통합이냐
분열이냐

안 대표는 국민의힘 경선 참여에 관해선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공정 경쟁만 된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며 “열린 마음으로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안 대표가 민주당 모델식 통합경선을 희망한다는 평가가 많다. 2011년 민주당 경선을 뚫고 올라온 박영선 당시 의원은 단일화 경선을 거쳤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경선을 벌였다. 안 대표 역시 국민의힘 후보와 순차 경선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안 대표가 입당 후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103석(국민의힘) 대 3석(국민의당)이라는 의석 수 격차에 비춰 민주당 모델식 통합 경선은 적절하지 않고, 당내 후보들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그 동안 안 대표를 향해 “야권 후보가 되고 싶으면 입당부터 하라”고 밝혀왔다. 이날 출마 소식에도 “여러 출마자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당에 들어와 같은 조건으로 경선을 치르라는 것이다.
 

▲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사진 왼쪽)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현재 국민의힘은 예비경선에서 ▲100% 국민여론조사 ▲시민검증위원회 검증 ▲1대1 토론회 3회-합동토론회 2회 진행, 본 경선에서 ▲국민여론조사 80%-책임당원 20% ▲시민평가단 구성 ▲정치 신인 가산점 등을 결론내렸다.

일각에서는 100% 완전국민경선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당 차원에서는 당원의 의사를 원천 배제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내 경선 입장은 고수하면서도 당원 참여를 20%로 제한함으로써 당내 기반이 없는 외부 인사들에게도 기회를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중도 성향의 후보자들을 포섭해 경선을 흥행으로 끌고 갈 수 있다.

필승론
필패론

경선 방식을 두고는 여전히 여러 의견들이 제기된다. 특히 당원투표 20% 등을 그대로 적용할지가 문제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지금 룰대로는 안 대표더러 지라는 이야기 밖에 안 된다”며 경선을 위해 새로운 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원활한 단일화 논의를 위해 입당이나 기존 규정 같은 조건은 내려놔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시장 물망에 오른 국민의힘 후보들 사이에서는 견제구가 나오고 있다.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국민의힘에서 열심히 경선을 거쳐 승리한 후보가 당 밖의 안 대표와 한 번 더 단일화 경선을 치르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만약 안 대표가 이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과적으로 시장 출마는 본인 단일화의 고집밖에 되지 않는다. 야권 분열의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반면 당 내부에서 100% 시민 경선으로 당외 인사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로서 당외 인사를 압도하는 당내 인물이 없다는 현실론에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안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 등 당 밖의 인사들도 참여할 수 있는 100% 시민경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 의원은 본인의 SNS에 올린 글에서 100% 시민경선으로 치러야 한다며 “문재인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세력이 돼 달라는 국민의 뜻에 화답하려면 중도인사들과 폭넓게 연대하는 개방과 확장 전략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행몰이 선거 ‘미니 대선급’ 경선판
긴장하는 여, 고개 드는 정권 심판론

안 대표의 출마 선언으로 야권 잠룡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안 대표의 추후 행보에 따라 경선판의 규모가 ‘대선 전초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대권 잠룡급과 인지도 높은 주자들이 등판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서울시장 선거 흥행을 위해 이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량감 있는 후보가 나설 경우 당 밖 주자를 견제하면서도 경선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엔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같은 대선주자급이 물망에 오른다. 유승민 전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에 명확하게 선을 그었으며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시장은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각에서는 안 대표가 서울시장으로서 입지를 다져 존재감을 높인 뒤 다음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만약 안 대표가 주장해온 대권행을 선택하면, 국민의힘의 당 내홍은 불가피해진다. 당 지도부엔 비대위 출범 후 자당에서 후보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 안 대표가 제3지대를 유지한다면, 대선 후보가 2명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안 대표의 출마 선언을 폄훼하면서도, 활력이 도는 야권의 보선판을 은근히 신경쓰는 모양새다. 여당에선 안 대표의 서울시장 보선 출마를 대권을 향한 정치적 꼼수로 깎아내리는 한편 ‘후보 경쟁력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이어갔다. 민주당 후보군들 역시 물밑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 외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나 박주민 의원은 고심을 이어가면서도 외부 인사들과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품어? 말아?
경선 딜레마

내년 서울시장 선거는 정권 심판의 성격이 짙다. 다음 대선을 1년 남긴 시점에 민심의 향방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 인사의 성추문 의혹으로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야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우세한 상황이다. 지난 11월 넷 째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여당 당선보다 야당 당선이 앞설 것이라는 여론 조사가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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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