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김용균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또 다른 용균이를 살려주세요”

“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가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아들 얼굴을 못 본 지 꼬박 2년째 되는 날. 엄마는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영하 17도의 강추위. 여의도의 칼바람에 살이 에일 듯했지만, 엄마는 “밥 먹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1일 단식 중인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을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김용균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지난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당시 24세)가 끔찍한 사고로 숨진 지 어느 덧 2년이 지났다. 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의 도급업체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났다. 몸이 두 동강 난 처참한 죽음.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한 여론이 들끓었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후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거리로

그럼에도 김용균법은 또 다른 ‘용균이들’을 막지 못했다. 개정안은 김용균씨 산재의 원인으로 꼽혔던 ‘위험의 외주화’에 해당하는 금지 대상을 협소하게 규정했다. 김용균씨가 일했던 발전소를 비롯해 철도, 조선업, 지하철 등이 위험 업무에 대한 도급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에 하한선이 없는 ‘솜방망이’ 규정에는 산재 예방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김 이사장은 개정안을 두고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며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 했다.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법안을 만들 때 용균이처럼 사고가 나면 책임자 모두 처벌할 수 있고, 용균이 같은 사람들을 모두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외주화 금지 대상에)다 빠져 있었다. 구의역 김군 같은 경우도 제외됐다. 이렇게 해서는 이 죽음들을 막을 수 없겠단 생각을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고 1년이 지났는데 산재 사망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 8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올렸다. 해당 법안은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안전관리의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청원은 한 달도 되지 않아 1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산업재해로 날마다 7명, 한 해에 2000명이 죽는 나라,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 ‘기업 살인’을 막아 달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였다.

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국회 역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듯했다. 정의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174석의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힘 역시 유사 법안을 내놓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었던 노동계의 ‘염원’이 이번 정기 국회에서 실현될 것이란 희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본회의 상정은커녕 소위원회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지난 22일을 시점을 기준으로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에서 단 15분 논의된 것이 전부였다.
 

▲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 도중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 이사장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성준 기자

김 이사장은 산재로 가족을 잃은 다른 유족들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단식에 나섰다. 정의당도 함께했다. 만약 강은미 원내대표가 단식으로 쓰러지면 김종철 대표가 릴레이 단식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위해 10만명이 입법 발의 운동을 했다. 산재 사고로 사망한 유족들, 시민사회들이 모두 모여 법 제정을 논의했다. 자살이든, 사회적 타살이든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논의했다. 이후 여야 할 것 없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발의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나서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안 보였다. 내년에는 재보궐선거도 있어 새로운 정치적 이슈가 터지면 이 사안이 묻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법이 제정된다고 보기가 어렵다. 연내에 꼭 통과시키기 위해 단식을 결심했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법 제정의 당위성은 이미 확보됐다. 하지만 법안마다 핵심 쟁점에 대한 괴리가 있어 조율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 4년 유예’를 두고 민주당과 정의당의 입장 차가 큰 상황이다. 김 이사장은 중대 재해의 85%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을 4년간 유예하면 사실상 실효성이 없어, 또 다른 용균이들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국회가 응답할 차례”

“지금 재계의 반대가 심하다. 사람의 가치가 기업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법으로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 법안은 기업을 망하게 하는 법안이 아니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막기 위해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산재로 인해 1년에 11만명이나 죽거나 다친다. 산재 사망은 기업들이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에 난 사고다.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 나가는데 새해만 되면 다들 경제성장률만 운운한다. 우린 허망하게 자식까지 잃었다.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인터뷰는 김 이사장의 단식농성이 11일째 되는 날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됐다. 긴 단식으로 김 이사장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인터뷰는 최대한 짧게 진행하기로 했다. 인터뷰 내내 김 이사장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고, 무척 수척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도중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본청을 지나가자 김 이사장은 말을 끊고 그를 붙잡았다.
 

▲ ▲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답변 도중 눈물 훔치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법안 통과에 힘써달라는 부탁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우리끼리만 할 수가 없다”며 야당이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 ‘공정경제 3법’을 밀어붙였던 민주당의 모습과 사뭇 다른 태도였다. 법사위 논의 날짜라도 정해 달라는 김 이사장의 말에 김 원내대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답만 남긴 채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지금 힘이 많이 빠진다. 용균이한테 항상 미안하다. 그때 그 사고가 나고 투쟁하면서 밥 먹고 살고 있다는 게 용군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살아 있을 때 못 지켜준 것에 대해 가슴에 한이 맺혔다. 하늘에서 엄마가 이러는 거 보고 있으면 많이 힘들겠지만….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국회가 달라질 수 있다. 제발 많이 도와달라.”

억울한 죽음

이번 임시국회 임기는 내년 8일까지로 조율할 부분에 비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후 거대양당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날 국회는 경기 평택시 한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 3명의 또 다른 용균이들을 추모했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취지 무색’ 공회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9일 처음으로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안심사 제1소위를 열고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심사했다.

하지만 각 부처의 의견을 모은 정부안이 오히려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과 책임 수준을 낮춰 법안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정부안을 봤는데 어처구니없고 억장이 무너져 잠을 설쳤다”며 “취지에 안 맞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취지를 무색케 하는 누더기 정부안도 문제인데, 심지어 단일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니 어이가 없다.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이미 상정된 5개 법안에 대한 밀도 있는 병합심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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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