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김용균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또 다른 용균이를 살려주세요”

“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가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아들 얼굴을 못 본 지 꼬박 2년째 되는 날. 엄마는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통과를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했다. 영하 17도의 강추위. 여의도의 칼바람에 살이 에일 듯했지만, 엄마는 “밥 먹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1일 단식 중인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을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만났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는 김용균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지난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당시 24세)가 끔찍한 사고로 숨진 지 어느 덧 2년이 지났다. 김용균씨는 한국서부발전의 도급업체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세상을 떠났다. 몸이 두 동강 난 처참한 죽음.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한 여론이 들끓었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후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거리로

그럼에도 김용균법은 또 다른 ‘용균이들’을 막지 못했다. 개정안은 김용균씨 산재의 원인으로 꼽혔던 ‘위험의 외주화’에 해당하는 금지 대상을 협소하게 규정했다. 김용균씨가 일했던 발전소를 비롯해 철도, 조선업, 지하철 등이 위험 업무에 대한 도급 금지 대상에서 빠졌다.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에 하한선이 없는 ‘솜방망이’ 규정에는 산재 예방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일었다. 김 이사장은 개정안을 두고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며 “아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 했다. 

“달라진 게 전혀 없다. 법안을 만들 때 용균이처럼 사고가 나면 책임자 모두 처벌할 수 있고, 용균이 같은 사람들을 모두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외주화 금지 대상에)다 빠져 있었다. 구의역 김군 같은 경우도 제외됐다. 이렇게 해서는 이 죽음들을 막을 수 없겠단 생각을 했다. 개정안이 시행되고 1년이 지났는데 산재 사망자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 8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을 올렸다. 해당 법안은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안전관리의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청원은 한 달도 되지 않아 10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산업재해로 날마다 7명, 한 해에 2000명이 죽는 나라,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 ‘기업 살인’을 막아 달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였다.

2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국회 역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듯했다. 정의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의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174석의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힘 역시 유사 법안을 내놓으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었던 노동계의 ‘염원’이 이번 정기 국회에서 실현될 것이란 희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본회의 상정은커녕 소위원회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지난 22일을 시점을 기준으로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에서 단 15분 논의된 것이 전부였다.
 

▲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 도중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김 이사장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성준 기자

김 이사장은 산재로 가족을 잃은 다른 유족들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단식에 나섰다. 정의당도 함께했다. 만약 강은미 원내대표가 단식으로 쓰러지면 김종철 대표가 릴레이 단식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위해 10만명이 입법 발의 운동을 했다. 산재 사고로 사망한 유족들, 시민사회들이 모두 모여 법 제정을 논의했다. 자살이든, 사회적 타살이든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논의했다. 이후 여야 할 것 없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발의했다. 그런데 누구 하나 나서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안 보였다. 내년에는 재보궐선거도 있어 새로운 정치적 이슈가 터지면 이 사안이 묻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법이 제정된다고 보기가 어렵다. 연내에 꼭 통과시키기 위해 단식을 결심했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법 제정의 당위성은 이미 확보됐다. 하지만 법안마다 핵심 쟁점에 대한 괴리가 있어 조율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 4년 유예’를 두고 민주당과 정의당의 입장 차가 큰 상황이다. 김 이사장은 중대 재해의 85%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 처벌을 4년간 유예하면 사실상 실효성이 없어, 또 다른 용균이들을 막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
“국회가 응답할 차례”

“지금 재계의 반대가 심하다. 사람의 가치가 기업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법으로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 법안은 기업을 망하게 하는 법안이 아니다. 억울하게 죽는 사람을 막기 위해 안전한 현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산재로 인해 1년에 11만명이나 죽거나 다친다. 산재 사망은 기업들이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에 난 사고다. 노동자들은 계속 죽어 나가는데 새해만 되면 다들 경제성장률만 운운한다. 우린 허망하게 자식까지 잃었다.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

인터뷰는 김 이사장의 단식농성이 11일째 되는 날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됐다. 긴 단식으로 김 이사장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인터뷰는 최대한 짧게 진행하기로 했다. 인터뷰 내내 김 이사장의 목소리는 작게 떨렸고, 무척 수척한 모습이었다. 인터뷰 도중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본청을 지나가자 김 이사장은 말을 끊고 그를 붙잡았다.
 

▲ ▲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답변 도중 눈물 훔치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성준 기자

법안 통과에 힘써달라는 부탁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우리끼리만 할 수가 없다”며 야당이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 ‘공정경제 3법’을 밀어붙였던 민주당의 모습과 사뭇 다른 태도였다. 법사위 논의 날짜라도 정해 달라는 김 이사장의 말에 김 원내대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답만 남긴 채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지금 힘이 많이 빠진다. 용균이한테 항상 미안하다. 그때 그 사고가 나고 투쟁하면서 밥 먹고 살고 있다는 게 용군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살아 있을 때 못 지켜준 것에 대해 가슴에 한이 맺혔다. 하늘에서 엄마가 이러는 거 보고 있으면 많이 힘들겠지만….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국회가 달라질 수 있다. 제발 많이 도와달라.”

억울한 죽음

이번 임시국회 임기는 내년 8일까지로 조율할 부분에 비해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마지막 본회의가 끝난 후 거대양당의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노동자의 산재 사망은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날 국회는 경기 평택시 한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난 3명의 또 다른 용균이들을 추모했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취지 무색’ 공회전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9일 처음으로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안심사 제1소위를 열고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심사했다.

하지만 각 부처의 의견을 모은 정부안이 오히려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과 책임 수준을 낮춰 법안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정부안을 봤는데 어처구니없고 억장이 무너져 잠을 설쳤다”며 “취지에 안 맞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취지를 무색케 하는 누더기 정부안도 문제인데, 심지어 단일안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니 어이가 없다.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이미 상정된 5개 법안에 대한 밀도 있는 병합심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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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