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2020 지상파 3사 연예·연기대상

아무리 비벼도 ‘그 나물에 그 밥’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연말이 다가오면서 지상파 3사는 분주해지기 마련이다. 예능과 드라마 부문에서 활약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상식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한 2020년, 방송가의 축제인 지상파 3사 연예대상과 연기대상 유력 후보는 누구일까. SBS 연기대상을 제외하면 무게감이 확 빠져 있다는 게 절로 느껴진다.
 

▲ (사진 왼쪽부터)방송인 이경규·유재석·백종원 ⓒ코엔미디어, 히스토리 채널

지상파 내에서 예능 프로그램 중 장수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코로나19로 인해 신규 론칭 프로그램이 줄어들었다. 예능 트렌트를 이끄는 tvN과 JTBC, TV조선, OTT와 유튜브의 활성화로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지상파 3사의 시상식은 올해도 예년과 비슷하게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누굴 주나?

슬슬 이곳 저곳에서 올해 시상식이 향방을 예견하고 있는 가운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각 방송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손에 꼽힐 만큼 적기 때문이다. MBC는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 외에 대항마가 없으며, KBS는 <개는 훌륭하다> <편스토랑>의 이경규, SBS는 <골목식당> <맛남의 광장>의 백종원이 유력하게 꼽히긴 하나 흥미로운 경쟁이 보이지 않는다. 

국내 예능계의 플레이어이자 ‘촌철살인 평론가’로도 꼽히는 김구라는 “MBC는 유재석, KBS는 이경규, SBS는 백종원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중으로부터 공감대를 형성 중이다. 

MBC는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의 해다. 올해 초 트로트를 시작으로 그가 도전한 모든 영역에서 성공을 거뒀다. 이효리(린다G)와 비(비룡)와 함께 한 ‘싹쓰리’, 엄청화(만옥), 이효리(천옥), 제시(실비), 화사(은비)와 함께한 ‘환불원정대’가 대성공을 거뒀으며, 라면과 치킨, 김장 등 중간에 섞인 작은 프로젝트도 대부분 화제를 이끌었다.


올해 방송 3사를 통틀어 가장 화제를 많이 모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국내 예능을 이끈 <놀면 뭐하니?>의 버금가는 경쟁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유재석의 대상을 더욱 견고히 한다. 

MBC의 또 다른 대표 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는 여러 논란에 휘말렸으며, 초반 인기를 끌었던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 박나래·한혜진·화사)의 힘도 점점 떨어졌다. <라디오스타>는 윤종신 하차 후 긴 과도기에 놓여있는 듯 보이며, <구해줘 홈즈>가 안정적이기는 하나 <놀면 뭐하니?>에 비할 정도는 못 된다. 

KBS는 이경규가 대표적인 후보자로 거론된다. 이경규는 <개는 훌륭하다>와 <편스토랑>에서 메인 MC로 출연 중이다. 

<개는 훌륭하다>와 <편스토랑>은 시청률 5~6%를 안정감을 유지하지만, 화제성 면에서 아쉬운 감이 있어 MBC의 유재석처럼 무게감이 크진 않다. 하지만 방송사 시상식의 경우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맡고 있느냐에 대한 충성도도 수상의 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경규가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MBC-유재석 KBS-이경규 SBS-백종원 유력
쟁쟁한 대항마 전무…억지스러운 잔칫상

이경규의 경쟁자로 <1박2일> 팀이 거론된다. 10%가 넘는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1박2일>은 2018년 김종민이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올해 역시 김종민이 가장 큰 활약을 해 다른 멤버에게 단독상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다. 따라서 <1박2일>이 대상을 받는다면 팀 전체로 받을 가능성이 크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지난해 팀으로 수상한 바 있어 대상 후보에서 거론되지 않고 있다.


타 방송사와 달리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이경규와 <1박2일>이 올해 특별히 힘을 발휘한 건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긴 어렵다.
 

▲ ▲방송인 김구라 ⓒJTBC

SBS 예능은 예능인이 아닌 비예능인 백종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예년보다는 떨어졌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무용론

백종원은 <골목식당>이 방송된 2018년부터 꾸준히 대상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예능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상을 고사하는 소신을 보여왔다. 방송사는 애써 대상을 기권하는 백종원에게 상을 주긴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백종원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SBS에 백종원처럼 이름을 내걸고 프로그램을 론칭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2014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이후 백종원만큼 브랜드를 높인 방송인이 전무하다.

<미운 우리 새끼>와 <런닝맨>이 여전히 인기 프로그램이긴 하나 특정 누군가의 활약으로 구축된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란 점에서 백종원에게 힘이 쏠리고 있다. 

백종원의 대항마로 <미운 우리 새끼>의 신동엽이 거론되고는 있다. 하지만 2017년 출연하는 어머니들이 대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작품 내에서 신동엽의 역할이 크지 않아 백종원보다는 명분이 약한 편이다.

이외에도 <동상이몽2>의 서장훈과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 <런닝맨>의 유재석도 후보 중에 하나지만, 김병만은 시상식을 불참하기로 했고, 서장훈 역시 신동엽처럼 역할이 크지 않으며 1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상을 받은 <런닝맨>으로 유재석에게 상을 또 수여하는 것도 보기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지난해 김구라는 연예대상을 따로 하지 말고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대중은 물론 다른 예능인들 사이에서도 박수를 받았다. 어쭙잖게 후보에 올라 억지로 웃음을 짓고 손뼉을 치고 있는 게 지칠 뿐 아니라 긴장감도 감동도 없다는 게 주장의 근거였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과연 각 방송사의 연예대상이 꼭 필요한지, 억지스러운 잔칫상은 아닌지 깊은 방송사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웃는 SBS

연기대상은 연예대상에 비해 대중의 관심이 폭넓었다. ‘드라마를 사랑하는 민족’답게 매년 방송사마다 히트작이 배출한 덕분이다. 오후 10시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 외에도 주말극이나 일일극에서도 명품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얘기가 다르다. 방송사들이 재정난에 허덕이면서 드라마의 수를 대폭 감소하기도 했으며, tvN과 OCN, JTBC, OTT의 작품에 화제를 뺏겼다. MBC는 평일 미니시리즈, 주말극, 일일극 모든 부문에서 내놓을 만한 히트작이 없으며, KBS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 <오! 삼광빌라!> 뿐이다. 평일 미니시리즈는 전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2> <스토브리그> <하이에나> <아무도 모른다> <더 킹> <굿 캐스팅> <펜트하우스> 등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를 제작한 SBS만 웃고 있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한석규·남궁민·김소연·이민정

SBS 연기대상만이 올해 시상식을 통틀어 유일하게 대중의 눈길을 끈다. 20%를 넘긴 작품도 2편이나 있으며, 거론되는 배우들 면면이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배우로 손꼽히는 한석규와 김혜수, 이미 숱한 작품에서 연기력을 증명한 남궁민과 단독 주연으로 호평을 이끈 김서형, <킹덤> 시리즈를 통해 전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주지훈, 올해 막판 최고의 악역 연기를 선보이며 여론을 힘을 받고 있는 김소연까지, 누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라인업이다.

이들 중 한석규와 남궁민, 김소연이 대상을 받을 유력한 후보로 압축되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2>는 올해 방송3사 드라마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화제성도 강했다. 김사부를 그린 한석규의 연기는 명불허전이었다는 평가다. 2014년에 같은 작품으로 대상을 받은 이력이 유일한 감점 요소다.

우는 MBC


<스토브리그>는 국내 유일하게 스포츠 장르물로서 큰 인기를 거뒀다는 점과 ‘백승수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낸 남궁민의 연기가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아울러 다른 방송사에서 대상 수상 이력이 없다는 점도 플러스 요소다.

다만 <스토브리그> 시청률이 마의 20%를 넘기지 못하고 19%에 머무른 게 아쉬운 대목이다.

비록 막장 드라마라는 평가가 짙지만 <펜트하우스>는 현재 방영되는 작품 중 가장 뜨거운 드라마다. 23%가 넘는 시청률을 넘겼으며, 꾸준히 고공행진 중이다. 

김소연은 15회에서 그야말로 광기 어린 연기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에서 미묘하게 보이는 부분까지 완벽에 가깝게 표현하며 단숨에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올해 SBS 연기대상은 대상뿐 아니라 최우수상, 우수상, 인기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을 받을만한 배우들이 즐비해, 대미를 장식할 잔치로 충분해 보인다. 

반대로 MBC는 시상식을 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마땅한 명분을 가진 배우가 한 명도 없다. 1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도 하나 없다. <꼰대인턴>이 7%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남자의 기억법> <365:운명을 거스르는 1년>, 현재 방영 중인 <카이로스>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시청률이 평균 3~4%이며, 최고 시청률도 5% 수준이다. 대상을 주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꼰대인턴>의 김응수와 박해진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사람의 연기로 인해 공동 수상도 점쳐진다.

코믹 오피스 물로 호응을 얻기는 했으나, 최고 시청률 7.1%는 TV조선 <미스터트롯>의 영탁이 특별출연한 회차라는 점은 뼈아프다. 방송 내내 4~6%를 오가는 시청률을 보인 <꼰대인턴>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고 말하긴 어렵다. 

SBS 연기대상 유일무이 흥미로운 시상식 
MBC·KBS는 몰락한 드라마 왕국 ‘씁쓸’

이로 인해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이하 <365>)과 <그 남자의 기억법>, <카이로스>가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아 혹시나 받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나온다. <365>의 이준혁과 김지수, <카이로스>의 신성록이 뛰어난 연기로 후보에 대두된다. 

<그 남자의 기억법>을 주도한 김동욱은 지난해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으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어 올해는 힘들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하지만 누가 받아도 떳떳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점에서 올해 MBC 연기대상은 관심 밖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 (사진 왼쪽부터)배우 김응수·조여정·전인화 ⓒMBC

KBS도 MBC와 처지가 비슷하다. 지난해 <동백꽃 필 무렵>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것과 반대로 올해 평일 드라마는 전멸에 가깝다. <본 어게인> <포레스트> <어서와> <영혼수선공> <출사표> <좀비탐정> <그놈이 그놈이다>가 5%를 넘기지 못하며 쓴맛을 봤다. <어서와>는 0.9%로 지상파 최저 시청률이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현재 방영 중인 <바람피면 죽는다>도 4%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주말드라마가 선전한 게 위안이 되는 셈이다. 올해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이하 <한다다>) <99억의 여자> <오! 삼광빌라>의 각축전이 예상된다. 특히 <한다다>의 차화연과 이민정, <99억의 여자> 조여정, <오! 삼광빌라!>의 전인화가 거론되고 있다. <한다다>는 최고 시청률 37%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장옥분을 연기한 차화연에 대해 높은 관심이 쏟아졌으며, 메인 주인공인 이민정에 대해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이변이 없는 한 두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하다.

영화 <기생충>으로 브랜드를 높인 조여정은 <99억의 여자>와 <바람피면 죽는다>에 출연하며 KBS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두 작품의 시청률이 높진 않으나, 예상을 깨고 조여정이 받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32%를 기록 중인 <오! 삼광빌라!>의 전인화도 유력 후보다. 매회 뛰어난 연기는 물론 황신혜와의 모정이 작품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다. MBC보다는 형편이 낫긴 하지만, 평일 드라마가 최악의 성적표를 거뒀다는 점에서 2020 KBS 연기대상은 역사상 가장 쓸쓸한 시상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슬픈 KBS

6개의 연말 시상식 중 유의미한 시상식은 SBS 연기대상 뿐이라는 게 방송가의 중론이다. 1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방송사의 큰 잔치를 즐기고자 하는 손님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힘이 빠졌고,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국내 대중문화를 주도한 방송사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모양새다. 이번 연말 시상식은 국내 방송 3사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을까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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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