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기업 ‘F&F’ 오너 챙기기 꼼수

지주사 앞세운 진짜 이유는?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패션기업 ‘F&F’가 기업분할을 공표했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경쟁력 강화를 도모한다는 게 회사가 내세운 분할의 기본 취지. 다만 진짜 이유를 단순 효율성 제고 차원으로 해석하긴 애매하다. 분할의 최대 수혜자가 오너 일가 구성원들이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김창수 F&F 대표 ⓒF&F

의류 브랜드 MLB·디스커버리를 운영하는 F&F는 지난달 20일 패션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해 신설법인 ‘F&F’를 설립한다고 공시했다. 분할 기일은 2021년 5월1일이고, 존속법인은 코스피에 변경상장, 신설법인은 재상장할 예정이다.

F&F는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전문화된 사업영역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함”이라며 “지배구조 변경을 통해 경영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궁극적으로 기업 및 주주의 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분할의 이유를 설명했다.

분할 발표
지주사 출범

이번 결정은 F&F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됨을 뜻한다.

분할안에 따르면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될 존속법인 F&F홀딩스(가칭)는 투자업무에 힘을 쏟게 될 예정이다. 최근 F&F는 무신사, IMM사모펀드에 자금을 투입하는 등 타법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또 물류 사업을 영위하는 F&F로지스틱스도 맡는다.


신설법인은 해외사업(상해·홍콩 법인)을 포함한 패션 부문을 영위한다. 현재 회사 내부의 대부분 인력은 신설회사로 이동하게 된다. 

분할비율은 순자산 기준 존속법인 0.5025055, 신설법인 0.4974945로 산정됐다.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자산은 각각 2643억원(부채 15억원+자본 2628억원), 4101억원(부채 1457억원+자본 2644억원)이다.

패션 부문에서 파생된 실적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설법인의 분할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됐다고 볼 수 있다. 분할 공시 후 첫 거래일인 지난달 21일 F&F 주가가 전 거래일 대비 5.66%(5200원) 떨어진 8만6700원에 마쳤던 것도 사업 분할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달 23일 배송이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패션 부문 실적이 대부분이지만 분할 비율은 5대 5로 산정됐는데 존속하는 F&F홀딩스에 현금 등 자산을 많이 배분하고 부채는 적게 배분했기 때문”이라며 “투자자금 목적임을 고려해도 사업회사의 분할 비율이 낮다”고 평가했다.

감춰진
노림수

F&F는 경영효율화를 지주사 체제 도입 배경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번 분할의 진짜 목적은 경영권 안정화 차원쯤으로 비친다.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오너 일가가 가진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사 신주로 바꿔 지배력을 강화하리라는 해석이다.

F&F 오너 일가는 주주명부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최대주주는 지분 45.01%(693만311주)를 보유한 김창수 대표다. 김 대표의 부인 홍수정씨(3.57%, 54만9509주), 아들인 김승범 상무(2.79%, 43만1096주)와 태영씨(2.60%, 40만730주)도 3~5대 주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2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9.16%, 141만511주)이고, 특수관계인 지분율 총합은 58.82%(905만8461주)로 집계됐다.

분할 후 김 대표는 존속법인과 신설법인의 주식을 45.01%씩 보유하게 된다. 인적분할 덕분이다. 인적분할은 분할 전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분할 형태를 뜻한다. 당연히 주주구성도 변하지 않는다.
 

▲ MLB 매장 ⓒF&F

다만 F&F가 지주사 체제를 천명한 만큼 향후 김 대표의 신설법인 지분율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가 보유한 신설법인 주식이 궁극적으로 존속법인 주식 늘리기에 활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로 인정받으려면 상장 자회사의 지분을 2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존속법인 역시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신설법인 지분 20% 이상 보유가 필수인 셈이다.

그러나 F&F의 경우 존속법인이 분할 기일까지 확실하게 보유할 수 있는 신설법인 지분은 사실상 0.52%(7만9896주)에 그친다. 이는 존속법인이 분할 전 자기주식을 승계 받기로 한 분할 결정에 의한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분할 비율
승계 작업 ‘일석이조’ 효과

부족한 지분율을 채우고자 F&F가 꺼내 든 방법은 현물출자를 통한 공개매수였다. 현물출자는 회사 설립이나 신주 발행 시 토지, 특허권, 증권 등을 출자해 주식을 배정받는 것을 뜻한다. 

F&F는 분할을 결정하면서 신설법인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예고한 상황이다. 신설법인 주식을 보유한 모든 주주 중에서 공개매수에 응모한 주주로부터 주식을 현물출자 받고, 존속법인의 주식을 신주로 발행해 부여하는 방식이다. 

현 시점에서 현물출자 유상증자 규모 및 구체적인 일정 등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공개매수가 김 대표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건 확실하다. F&F 주식을 들고 있는 주주들의 경우 굳이 현물출자를 고민할 정도로 존속법인의 주식이 매력적이지 않은 탓이다.

기존 매출에서 패션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상회하는 데다, 현금 창출 능력도 신설법인이 월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내년 5월 분할 재상장하게 되면 F&F의 주가는 상승, F&F홀딩스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지만 김 대표의 입장은 일반 투자자들과 다르다. 경영권 강화 측면에서 보자면 사업회사 주식을 팔아 지주사 주식을 사들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김 대표가 신설법인 주식을 현물출자로 F&F홀딩스에 넘기면 F&F홀딩스는 단숨에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김 대표는 F&F 주식을 넘긴 대가로 F&F홀딩스 주식을 배정받게 된다. 이 경우 ‘오너 일가→F&F홀딩스→F&F’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굳건해진다.


틈새 노린
히든카드

분할 결정은 향후 승계 과정에서도 이점으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김 대표(1961년생)의 나이를 볼 때 현 시점에서 승계가 오너 일가의 당면 과제는 아니다. 다만 오너 2세인 김 상무의 지분율(분할 전 2.79%)이 미미한 상황이기 때문에 김 상무의 지주사 지분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를 감안하면 김 상무 역시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 김 상무가 F&F 지분 2.79%를 현물출자하고 F&F홀딩스 주식을 배정받으면, 김 상무의 지주사 지분은 유상증자 규모에 따라 큰 폭으로 확대될 수 있다. 향후 승계 과정을 염두에 두더라도 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이 오너 일가에 이득이다.

현재 김 상무는 디지털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본부는 전사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진행하고 있는 곳으로, 온라인 채널 역량 강화에도 힘을 싣고 있다. F&F홀딩스 휘하에 편입된 만큼 그룹의 온라인 사업 전략 중심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 뻔한
급한 결정

한편 분할 기일을 내년으로 잡은 건 세제혜택을 고려한 결정으로 읽힌다. 정부는 주주가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 할 때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특례를 2022년부터 중단할 예정이다. 인적분할 이후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통해 지주회사로 변신하려는 기업의 주주는 차익에 대한 세금을 4년 거치 후 3년간 분할 납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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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