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꿈이 현실로’ 야구광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30 13:08:14
  • 호수 1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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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분 째지는 ‘택진이형’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게임과 야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인물이 있다. 바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다. 김 대표는 게임계에 한 획을 그었지만 마음속엔 항상 야구에 대한 갈망이 컸다. 드디어 김 대표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마저 장식하는 인물이 됐다. 
 

▲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2020년 한국 시리즈 중계를 본 사람이라면 엔씨소프트 대표 게임 중 하나인 ‘리니지2M’의 광고도 한 번 이상 봤을 것이다. 이 광고는 실제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특수분장을 하고 나서면서 장안의 화제가 됐다. 

NC 다이노스
통합 우승 축포

엔씨소프트의 야구단 NC 다이노스가 지난 2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0시즌 KBO리그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에 4대 2로 승리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 4승2패로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1승2패에서 내리 3연승을 잇더니 정규 시즌에 이어 통합 우승의 축포도 터뜨렸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NC 다이노스 선수들은 마운드 위에서 ‘형’을 기다렸다. 선수들에게 소년처럼 달려 나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이는 ‘택진이 형’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익숙한 이들의 구단주,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수장 김 대표였다.

그는 우승의 순간 엔씨소프트의 히트 게임 리니지의 주요 아이템 ‘집행검’ 모형을 만들어 마운드 위에 올렸다. 집행검은 강함과 승리를 상징한다.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눈물을 글썽거리던 주장 양의지는 대표로 집행검을 뽑은 뒤 선수들과 함께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1967년 3월14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어린 시절 무척 가난했다. 그의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서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었기 때문이다. 빚쟁이들에게 얼마나 빚 독촉을 당했던지 아버지는 그 괴로움에 집을 떠난다. 어머니는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기 위해 갓난아기였던 김 대표를 업고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녔다. 

김 대표의 어머니는 지인으로부터 지방의 한 낚시터에서 김 대표의 아버지를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의 좌절과 고통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고 낚시터에 갔던 것.

하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물에 뛰어들기 바로 직전에 낚시터를 찾아 나섰던 김 대표의 어머니와 마주치게 됐다. 순간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들과 눈이 마주치자 아버지는 차마 물속으로 뛰어들 수가 없었다. 

김 대표는 초등학생 때 육상선수였던 만큼 운동신경이 남달랐다. 학교에서 달리기 대회를 하면 항상 1등을 했고 학교 대표로 지역대회에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대개 사람들은 스포츠를 통해서 경쟁심과 승부욕 등을 배우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김 대표는 겸손을 배웠다. 

지역구 대회에서는 선전했으나 정작 서울시 전체에서 개최하는 큰 대회에 나가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때나마 자신이 대단한 육상선수라고 생각했던 본인이 세상 물정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점을 깨달았다.

글러브 대신 컴퓨터 잡아 성공
대학 시절 ‘한컴’ 만들어 주목

그는 이때부터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세상의 수없이 많은 고수들과 경쟁해서 최고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더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이후 야구에 매료된다.

만화 <거인의 꿈>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시절에는 빠른 볼을 던지기 위해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으며 커브볼 책을 구해 본 뒤 몇 달간 밤새 담벼락에서 혼자 피칭 연습을 하곤 했다. 학창시절에는 변화구 전문 구원투수 노릇도 했다. 변화구를 잘 던지는 롯데 최동원 투수가 어릴 적 영웅이었다. 그러나 공부에 비해 야구 재능은 별로 없었다. 

김 대표의의 관심사는 과학 분야로 옮겨졌고 ‘과학의 기본은 수학’이라는 말에 수학도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이미 중학교 시절에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김 대표는 세상의 원리에 집착했다.

그는 라디오키트를 사서 조립하기보다는 기판을 보면서 기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고심했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던 김 대표지만 그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남들이 보기에 근사한 직업을 갖고자 했다.
 

▲ 인사말하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의 방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선택하게 됐다. 동생 방에 개인용 컴퓨터(PC)의 효시인 애플2가 있었다. 그는 애플2를 보자마자 그야말로 한 눈에 반해 버렸고 컴퓨터의 세계에 빠져 버렸다.

오늘날 게임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크리에이터들이라고 할 수 있는 빌 로퍼(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존 카멕(둠, 퀘이크), 사카구치 히로노부(파이널 판타지)도 애플2를 통해서 개발자의 꿈을 꿨었다. 

그런데 김 대표는 다른 게임 크리에이터와 다르게 애플2를 통해서 무언가를 새롭게 개발하는기보단 컴퓨터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를 알고 싶어했다. 이에 따라 컴퓨터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연구하기 위해 김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재학 당시 대학생 동아리에서 한글과컴퓨터를 만들었으며 이후 한메소프트를 창업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 시절 현대전자 보스턴 연구개발센터에서 파견 근무를 하다가 1996년 국내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 ‘아미넷(지금의 신비로)’을 개발했다. 이후 동료 16명과 함께 이듬해 3월 자본금 1억원으로 엔씨소프트를 세웠다. 설립 초기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한국 공인지역 대표를 역임하는 등 개발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집행검
뽑았다

그는 1년 뒤 세상에 ‘리니지’를 내놓았다. 리니지의 대성공으로 넥슨과 함께 그는 PC온라인게임 시장을 개척하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한국의 억만장자들은 상속받는 경우가 대다수라서 김 대표의 억만장자 입성은 IT 성공 신화로 한때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로만 볼 때 그는 온라인을 엔터테인먼트의 장으로 해석했다.


리니지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2000년대 초반의 정부 사업이었던 PC방의 확장세였다. 리니지는 PC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었기 때문에 PC방 사업 확장은 리니지에 날개를 달아줬고 지금의 리니지를 만들어내는 데 가장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전에도 리니지는 이미 성공할 준비가 돼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게임도 쉽게 배울 수 없다면 그건 하나의 벽이 돼 플레이어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리니지는 마우스 클릭만 할 줄 알아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단순하다. 시작부터 마우스와 키보드를 동시 조작하며 복잡하게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 여타 게임들과는 달랐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게임은 누구나 한 번쯤은 건드려 볼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다.

또 만화의 세계관과 배경을 다중역할수행목적게임(MMORPG)으로 만들었다. 리니지의 배경인 ‘아덴 왕국’은 가상의 10세기 유럽이다. 왕과 영주, 기사가 영토로 계약을 맺는 봉건 시스템을 게임 무대의 사회적·경제적 근간으로 하고 있다. 게임 유저들은 더 강한 ‘신분 상승’을 노리게 되고 결국 자연스럽게 리니지 내에 ‘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리니지에 빠졌던 청소년들은 나이를 먹어서도 게임을 계속하게 됐고 이른바 ‘린저씨’(리니지 하는 아저씨)가 되면서 씀씀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된 린저씨들은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데 거금을 썼고, 리니지 게임에 생명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이후 리니지는 두 번째 시리즈인 리니지2를 출시해 큰 인기를 얻었고 PC게임에서 모바일게임으로 넘어가자 리니지2레볼루션, 리니지M, 리니지2M 등을 출시하며 인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엔씨소프트의 주가도 더불어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엔씨소프트는 넥슨, 넷마블과 함께 게임업계를 선도하는 빅3 게임사로 자리매김했다.


컴퓨터가
인생을 바꾸다

그러던 2011년 스포츠계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다. IT기업인 엔씨소프트에서 야구단을 창단한 것이다. 김 대표가 프로야구팀 NC 다이노스를 창단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훨씬 컸다.

1군 참가를 결정했을 때는 주변 구단들의 공공연한 반대에 시달렸다. 대기업만 있을 것 같던 프로야구 판에 중소기업이 끼어들었다가 자칫 전체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2013년 3월 창단 승인식 당시 김 대표는 “온라인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청소년들에게 야구 서비스를 제공해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일부 지기 위해 창단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행동으로 약속을 지켰다.
 

대표적으로 다이노스 홈구장인 창원 NC파크는 장애인 친화구장으로 첫손에 꼽힌다. 계단 턱이 없는 것을 시작으로 휠체어 전용 창구,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바비큐 좌석까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김 대표의 의중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는 “산업보국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고 했다. 야구단을 창단해 게임기업도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때 꼴찌로 내려앉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나 급반등할 수 있었던 것은 창단 때부터 김 대표의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이 덕분이다. 

실제로 야구단 창단 이후에도 매년 창원에 내려와 직관을 하고 적극적으로 구단 운영을 지원하는 등 창단 당시 나왔던 우려들을 지워내고 있다. 또 구단에 대한 관심에 비례해 선수단과의 소통도 활발한 편이다.

2018시즌 종료 후 선수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모창민이 김택진 구단주에게 “양의지는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며 양의지의 영입을 요청하자 본격적으로 영입 검토를 지시했고, 결국 4년 총액 125억에 양의지를 영입했다.

회사 자체는 다른 구단에 비해서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구단주의 의지에 힘입어 통 큰 투자를 보여줬다. 양의지의 NC 다이노스 행에 팬들도 격하게 환영했다. 특히 팬들은 양의지의 영입이 확정되자 리니지와 양의지를 합쳐 ‘린의지’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신임 감독도 구단과 철학을 공유하는 인물로 정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혹은 유명한 지도자 대신, 구단 창단 때부터 코치로 함께한 이동욱 감독을 임명했다. ‘파격적 선택’이란 시선도 있었지만, 구단 내부 평가는 전혀 달랐다. 이 감독은 창단 멤버로, NC 다이노스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물론 구단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였다.

‘리니지 대박’ PC방 열풍 주역 
넥슨·넷마블과 게임업계 선도

무엇보다 수비 코치 시절부터 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인 지도자라 NC가 추구하는 야구를 누구보다 잘 구현할 인물로 꼽혔다. 적어도 구단에서 사다준 짜장면 재료를 갖고 짬뽕을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김종문 단장과의 개인적인 친분도 두터워 서로 궁합이 잘 맞았다.

원래부터 NC 다이노스의 강점이었던 데이터 분석·활용 능력은 데이터 친화적인 이 감독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외국인 선수 영입과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에만 활용하던 데이터를 시즌 준비 단계부터 전 선수단에 활용했다. 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에게도 태블릿PC를 지급해 언제든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감독·코치·선수가 데이터 팀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그 꿈과 목표의 첫 단추가 채워졌다. 9번째 구단의 첫 우승이 완성된 순간, 집행검 세리머니는 게임의 유니버스와 야구의 유니버스가 한 곳에서 만나 상징적인 의미를 더했다. 구단주가 아닌 양의지가 검을 뽑아들었다. 게임과 야구는 현실을 잊고 도망가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는 곳, 기회가 열리는 곳이 됐다.

한편 꾸준히 정치 입문설이 돌았던 김 대표가 이 같은 소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김 대표는 지난달 27일 경기 성남 판교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미래산업일자리 특별위원회 현장 방문 및 정책간담회’ 이후 정치에는 관심이 없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없다. 나는(정치인이 아닌) 그냥 사업가”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엔씨소프트를 직접 찾으면서 일각에선 국민의힘 차원에서 김 대표에 대한 영입 등 ‘러브콜’을 보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김 대표는 과거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던 미래한국당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당 차원에서 접촉을 시도했지만 김 대표가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로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이날 김 대표가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면서 이 같은 정치 입문설 등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국회로?
정치 입문설

국민의힘 쪽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기업과 관련해 특별히 물어볼 게 있으면(김 대표와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그 외에 꼭 만날 사항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날 공개발언에서도 특별히 정치 관련 얘기는 없었고, 이어진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주로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과 관련된 논의가 주를 이뤘던 것으로 전해졌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택진-윤송이 러브스토리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윤송이 엔씨소프트 신임 사장의 러브스토리는 비범하다.

김 대표와 윤 사장의 교제설은 지난 2007년 불거졌다.

같은 해 6월 모 일간지에 두 사람이 결혼식을 앞두고 제주도에 식장까지 예약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교제설은 설득력을 얻었다. 

김 대표와 윤 사장은 당시 결혼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했지만, 교제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3월.

당시 SK텔레콤 상무였던 윤 사장은 엔씨소프트 사외이사직을 겸하게 됐고 그때부터 김택진 대표와 연을 이어갔다.

이듬해 가을 무렵부터 두 사람이 이사회 자리가 아닌 곳에서 만나는 장면이 사람들에게 목격되기도 했다.

연인이 된 김 대표와 윤 사장은 결국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1년여가 지나서야 두 사람은 결혼 사실을 공식화했다.

엔씨소프트는 2008년 보도자료를 통해 김 대표와 윤 사장의 출산 소식까지 알렸다.

서울대 출신인 김 대표는 31세에 엔씨소프트를 창업했고 ‘리니지’를 출시하며 우리나라 대표 온라인게임으로 성공시킨 인물이다.

윤 사장의 스펙도 이에 못지 않은데 29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 상무직에 올랐다.

윤 사장은 카이스트를 2년 만에 졸업하고 미 MIT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소녀’로도 유명하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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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