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4위’ LG그룹 계열분리 로드맵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LG그룹에 뿌리를 둔 또 하나의 대기업이 탄생을 앞두고 있다. 그룹의 장자승계 원칙을 고려하면 예상된 수순이나 마찬가지다. 그룹 울타리를 벗어날 계열사의 윤곽도 나온 상태. 총수의 작은아버지가 보유한 지주사 주식이 밑천이다.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구본준 고문을 주축으로 하는 계열분리 방안을 그룹 내부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이달 말 이사회를 통해 계열분리 안건을 확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LG의 이사회는 이달 26일로 예정돼있다. 

오래 전
예고된 수순

구본준 고문이 계열분리에 나설 가능성은 고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2018년 5월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약 한 달 후 ㈜LG 이사회를 거쳐 구광모 회장(당시 상무)이 총수로 낙점됐고, 구본준 고문이 부회장직을 내려놓자 계열분리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계열분리 가능성이 계속 언급된 이유는 LG그룹의 장자승계 원칙 때문이다. LG그룹은 총수가 세상을 떠나면 장자가 경영권을 넘겨받고, 총수의 다른 형제들은 경영에서 물러난 뒤 몇몇 계열사와 함께 독립하는 원칙을 고수해왔다. 

덕분에 LG그룹은 ‘구인회→구자경→구본무→구광모’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동시에 ‘범LG’로 묶이는 기업집단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여섯 형제 가운데 넷째 구태회, 다섯째 구평회, 막내 구두회 형제는 2003년 계열분리를 통해 LS그룹을 설립했다. 이 과정에서 LG전선, LG산전 LG니꼬동제련 등 기존 LG그룹 계열사는 LS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또 구인회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의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킨 뒤 LIG그룹을 만들었다.

고 구본무 회장이 부친인 고 구자경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후에는 고 구본무 회장의 4형제 중 둘째(구본능 회장)와 넷째(구본식 부회장)가 LCD 모듈 등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희성그룹을 설립해 독립했다.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취임 3년째를 맞이한 것도 LG그룹이 계열분리를 결심한 이유로 해석하고 있다. 구본준 고문의 도움 없이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 고 구본무 회장 ⓒLG그룹

구본준 고문은 2010년부터 6년간 LG전자 대표이사, 2016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LG 부회장을 지냈다. ㈜LG 부회장 시절에는 형인 고 구본무 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LG그룹을 총괄했다. 고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고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자, 고문 자리로 빠지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최근 호실적을 거뒀다는 점도 계열분리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LG는 올해 3분기에 매출액 1조9560억과 영업이익 767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 116% 증가한 수치다.

원칙에 따라
새 출발 예고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계열분리 시나리오는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 등을 그룹에서 떼어내는 방식이다.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LG그룹의 주력사업인 전자와 화학을 보존하면서 지배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다. 구본준 고문 입장에서도 LG그룹과 중첩되지 않는 사업영역 확보가 가능해진다.

더욱이 LG상사와 판토스는 구광모 회장 체제에서 계열분리와 연관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난해 3월 LG상사는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소유 지분을 ㈜LG에 매각했다. 2018년 10월에는 구광모 회장 등이 판토스 보유 지분 전량인 19.9%(39만8000주)를 미래에셋대우에 매각키로 결정했다.

계열분리가 표면화될 경우 구본준 고문이 보유한 ㈜LG 주식이 밑천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3분기 기준 ㈜LG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린 오너 일가 구성원은 총 30명. 이들은 ㈜LG의 총 주식 가운데 43.60%(7524만3179주)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지분 15.95%(2753만771주)를 보유한 구광모 회장이다. 2003년까지만 해도 지분율 0.14%에 그쳤던 구광모 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한 이후 지분율을 꾸준히 높였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지분 상속을 통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구본준 고문은 지분율 7.72%(1331만7448주)로 2대 주주에 등재돼있다. ㈜LG 주식이 지난 18일 종가 기준 1주당 7만5200원임을 감안하면, 구본준 고문이 보유한 ㈜LG 지분의 가치는 1조원 안팎이다.
 

▲ 구광모 LG그룹 회장 ⓒLG그룹

재계에서는 구본준 고문이 1조원에 달하는 본인 소유의 ㈜LG 주식을 ㈜LG가 보유한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 경영권과 맞바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시가총액을 놓고 보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올해 3분기 기준 ㈜LG는 LG상사와 LG하우시스 지분을 각각 24.69%(957만1336주), 30.07%(300만6673주)씩 보유 중이다. 지난 18일 종가 기준 1주당 주가는 LG상사 1만8400원, LG하우시스 7만5000원이다. 

이들 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토대로 계산하면 ㈜LG가 보유한 LG상사와 LG하우시스 주식은 각각 1760억원, 2250억원의 가치를 지닌다. LG상사는 판도스 지분 5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LG상사를 얻게 될 경우 판토스까지 수중에 넣을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도체 설계 회사인 실리콘웍스와 화학 소재 제조사 LG MMA의 추가 분리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구본준 고문이 보유한 ㈜LG 지분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LG가 보유한 LG상사와 LG하우시스 지분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스왑딜
본격 시동

구본준 고문이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를 주축으로 계열분리에 나설 경우 신생 그룹은 공시대상 기업집단(준 대기업집단)으로 분류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3분기 개별기준 LG상사와 LG하우시스의 자산총액은 각각 2조8347억원, 2조2363억원 수준이다. 비상장사인 판토스는 지난해 말 개별기준 자산총액이 1조4171억원이었다. 3곳의 자산총액을 합산하면 약 6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를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시대상 기업집단 현황에 대입해 보면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를 주축으로 설립될 그룹의 재계 순위는 54위에 해당한다. 올해 신규 지정된 HMM(자산총액 6조5000억원), 장금상선(자산총액 6조5000억원)과 엇비슷한 규모다.


공정위는 매년 자산 5조원 이상 10조원 미만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10조원 이상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관리하고 있다.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가 계열분리를 통해 그룹을 형성하게 되면 기업집단 현황, 대규모 내부 거래, 주식 소유 현황 등을 공시해야 한다. 출범과 함께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게 되는 셈이다.

반면 LG그룹은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가 이탈할 경우 재계 순위 4위를 안심할 수 없다. 롯데그룹과의 자산총액 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LG그룹과 롯데그룹의 재계 순위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롯데그룹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외형을 불렸고, 어느 새 재계 4위 자리를 굳건히 수성해 온 LG그룹을 턱 밑까지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
 

▲ 구본준 LG그룹 고문 ⓒLG그룹

실제로 2016년 롯데그룹은 자산총액을 103조2840억원을 기록하면서 LG그룹과 자산총액 간극을 2조6000억원대로 좁혔다. 격차는 이듬해 더 줄어들었다. 2017년에는 LG그룹 자산총액은 112조3000억원, 롯데그룹은 110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두 그룹 간 자산총액 격차는 1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이렇게 되자 2018년을 기점으로 양 그룹 간 순위 역전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LG그룹은 순순히 4위 자리를 넘겨주지 않았다.

2018년 LG그룹의 자산총액은 123억1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0조원 이상 증가했다. 반면 롯데그룹은 1년 전보다 자산총액이 6조원가량 늘어난 116조2000억원에 그치면서 두 그룹 간 격차는 6조9000억원으로 벌어졌다.


올해 5월 기준 LG그룹과 롯데그룹의 자산총액은 각각 137조원, 121조5000억원이다. LG그룹은 계열분리에도 불구하고 재계 순위 4위 수성이 유력하다. LG상사, LG하우시스와 이들 기업에 딸린 자회사만 계열분리하더라도 60개 계열사, 약 130조원의 자산이 남아 있다.

굳건한 순위
잡음 없는 수순

재계 관계자는 “구본준 고문을 중심으로 계열분리가 이뤄지면 재계에서는 드물게 잡음 없이 LG가의 승계가 마무리된다”며 “지분을 보유한 친척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계열분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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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