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양정철 복귀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23 10:08:57
  • 호수 12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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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 몰린 정권 구원투수로 나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복심’이 잠행을 끝마친 걸까.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물론, 여권의 다른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은 이를 양 전 원장의 복귀 신호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 전 원장의 복귀에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선거 전략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오랜 잠행을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 전 원장은 최근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각각 만났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두 사람과 전략가인 양 전 원장의 만남은 그 자체로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았다.

군기반장
전략가로

양 전 원장은 두 사람 외에도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광재·김두관 의원 등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만났다. 양 전 원장은 이들과 정국 현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의 등장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년 4월에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민주당은 야권과 민심의 지탄을 무릅쓰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보궐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지지율뿐만 아니라 이낙연 대표의 대권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날 고개를 숙였다. 당시 그는 “당원의 뜻이 모였다고 해서 서울·부산 시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우리의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는 논리다. 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이번 보궐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이는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으로 번질 수 있다.

양 전 원장은 민주당에서 손꼽히는 선거 전략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대 대선 당시 그는 ‘광흥창팀’에서 문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13명으로 꾸려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뛸 때부터 활동한 핵심 참모 그룹이다.

양 전 원장은 광흥창팀의 수장이었다. 그는 광흥창팀에서 선거 전략 수립과 인재 영입, 메시지 작성 등 핵심 실무를 담당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광흥창팀 멤버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문재인정부 청와대 1기 참모진으로 활동했다.

‘잠행’ 끝내고 대선주자 회동
보궐선거 전 새판짜기 돌입?

양 전 원장은 청와대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에서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초에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통해 해외로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문)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정권의 ‘개국공신’이다. 또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전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원장이 기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금의 ‘공룡여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 오랜 잠행을 거듭하던 양 전 원장을 신임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해외로 떠난 지 2년 만이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선거 전략의 본거지다.

양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총선 준비를 총괄하는 총선기획단 1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획단은 민주당의 조직, 재정, 홍보, 정책, 전략 등 산하 단위를 구성해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이다. 

또 양 전 원장은 이해찬 당시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이 속한 비공식 ‘5인 협의체’에서 총선 전략을 이끌었다.

양 전 원장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민주당이 영입한 19명의 정치 신인 중 1호 영입인재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양 전 원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거리두기 
끝냈나?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광폭 행보를 보여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회동했다. 양 전 원장과 서 원장의 회동은 야당으로부터 “선거공작이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기 전까지 이들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이었다. 양 전 원장이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에는 그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던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알려지기도 했다.

윤 총장은 이낙연 대표, 이 지사와 함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양 전 원장은 동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양 전 원장은 다수의 여권 대선주자들을 만났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이낙연 대표와 이 지사 등 현 시점에서 유력한 여권 대선주자들과 회동했다. 정치권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양 전 원장의 등판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양 전 원장이 복귀한다면, 보궐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지난 21대 총선 때처럼 선거를 총괄하는 전략가의 역할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교통정리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진 양 전 원장은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임종석 ⓒ청와대

지난 2월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문 적통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김경수 지사의 항소심 실형 선고로 대선주자를 잃은 친문 세력이 제3의 대선주자를 추대할 가능성까지 대두됐다.

민주당 전해철·도종환 의원 등 60여명의 친문 현역 의원이 참여한 ‘민주주의 4.0 연구원’의 출범으로 이러한 우려는 당내에서 더욱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실세 재등장
정치권 긴장

양 전 원장은 최근 여권 대선주자들과의 회동에서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련의 선거 국면에서 친문 적통 경쟁을 피하고 ‘원팀’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이번 (21대)총선 성과는 당이 계파, 계보 없이 혼연일체가 됐기에 얻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이어가려면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주변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원팀 기조는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의 연승을 이끈 원동력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기조를 앞세워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대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내리 4연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양 전 원장은 대선주자들에게 ‘민주주의 4.0 연구원’ 출범에 대한 우려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 갈등이 불거져 자칫 보궐선거에서 패한다면, 그 타격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야권 광역자치단체장이 문 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그림이 그려진다. 양 전 원장의 원팀 강조는 문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종료를 위한 의지로 읽힌다.

양 전 원장은 공식 직함이 없는 상태다. 21대 총선 압승 직후 양 전 원장은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정치권을 떠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선주자를 비롯해 민주당 핵심 인사들과의 회동을 지속할 경우 비선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양 전 원장의 행보가 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올 연말 내지는 내년 초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가 예상된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노 실장은 앞서 사표를 제출했다가 반려된 바 있다. 당시 사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 측은 “최근 상황을 종합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대책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물음에는 “노 실장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는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의 전월세 등 부동산 대란을 공격 타깃으로 설정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물론,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일제히 공세에 나선 상태다.

‘원팀’ 강조 이유는…
사전 정지작업 관측도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회의에서 “부동산 시장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며 “재산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침해되면서 부동산 사회주의를 꿈꾸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주택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 차기 대선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역시 ‘임대차 3법 전면 수정’ 등 부동산 정책 대안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여론도 좋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18일 발표한 11월 2주차(13~16일) 문재인정부 정책수행 평가 결과에 따르면,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긍정평가가 71%로 가장 높은 반면, 주거·부동산 정책이 15%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6개월 평균에서도 보건·의료 정책(71%)이 가장 높았고, 주거·부동산 정책(19%)이 가장 낮았다(자세한 조사개요는 한국리서치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양 전 원장은 혼란한 청와대를 수습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문 대통령의 ‘순장조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청와대 참모들과 친문 인사들이 양 전 원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차기 비서실장직을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뒤를 이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양 전 원장은 이 같은 주변의 권유를 고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정치권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꾸준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여권에서는 양 전 원장과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양 전 원장은 이 중 최 수석을 노 실장 후임으로 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상황이 마땅치 않다. 최 수석은 정무수석으로 취임한 지 3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아 내년 초 인사이동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력하게 거론됐던 우 전 대사는 대형 로펌 고문인 데다 최근 대학 석좌교수로 취임해 그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재성 추천
그러나…

이 때문에 양 전 원장의 고사에도, 문 대통령이 권한다면 비서실장을 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여전하다. 과연 양 전 원장이 본인의 뜻을 접고, 문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정철 개인정보법 위반 무혐의 처분

검찰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개인정보법 위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양 전 원장은 지난 21대 총선 당시 이동통신사 가입자의 위치정보 자료를 활용한 혐의로 고발된 바 있다.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 당시 이동통신사 가입자들의 위치정보를 가공한 통계자료 등을 총선 유세 전략에 활용했다는 혐의(개인정보보호법 및 위치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지난 4월 고발당했다.

앞서 민주연구원은 총선을 앞두고 이동통신사에서 받은 빅데이터를 토대로 시간대별 인구 이동,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등을 파악해 선거에 활용했다.

수사를 진행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9월 양 전 원장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으로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송치했다.

양 전 원장이 활용한 자료가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서부지검은 양 전 원장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고발인은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하고 재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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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