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영화 ‘내가 죽던 날’ 신예 박지완 감독의 뚝심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국내에는 상업영화 흥행공식처럼 따라다니는 것들이 있다. 먼저 이야기의 전개 속도가 빨라야 하며, 카체이싱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동반되면 더 좋다. 인물 간의 갈등은 자극적인 소재일 때 더욱 끌리고, 배우들이 연기할 때 감정선도 진폭이 클수록 관심을 받는다. 엔딩은 힐링이나 위로보다 복수로 마무리돼야 더 짜릿하다. 이런 부분에 충실했을 때 흥행 요소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신작 <내가 죽던 날>은 앞서 언급한 흥행 요소를 철저히 피해갔다. 느린 속도감에 화려한 장면은 거의 없다. 충분히 자극적인 요소를 앞세울만한 소재도 깔아놓았는데, 활용하지 않는다. 배우들의 감정선도 전반적으로 절제돼있다. 주인공의 눈을 따라 사건으로 들어가는데, 도착점은 인물들의 깊은 감정이다. 새로운 화법의 이 영화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위로다. 

흥행 요소를 비껴간 <내가 죽던 날>은 엄청난 여운을 남긴다. 사건 중심에서 인물 중심으로 변주하는 화법이나 인류애가 느껴지는 메시지, 배우들의 절제되고 차분한 연기, 존중과 배려가 담긴 연출자의 배려심이 영화에서 전달된다. 혹자는 지난해 국내 영화계를 강타한 <벌새>의 그것과 비슷하다고도 한다. 

박지완 감독의 뚝심이 없었더라면, <내가 죽던 날>은 색감이 분명한 좋은 영화로 탄생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걸출한 신인 감독의 출현이다. 다음은 박 감독과의 일문일답.

- <내가 죽던 날>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어떻게 출발하게 된 작품인가?

▲  2013년에 처음 시작해서, 컴퓨터에 넣어놓고 종종 꺼내서 붙이고 한 작품이다. 가끔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초고나 개봉작이나 엔딩은 비슷하다. 처음에 보여드렸을 때는 보신 분들의 욕망이 투영됐다. 


어떤 분들은 세진(노정의 분) 아빠 사건을 중심으로 범죄 스릴러를 만들자고 했다. 또는 현수의 아픔을 더 강하게 드러내서 극복기를 그려보자고 한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기다렸다. 

그러다 권남진 PD님을 2018년 말에 만났다. 별 기대 없이 나갔는데, 제가 하고 싶은 걸 잘 읽어주셨고, 그러면서 시나리오가 확장됐다. 이 작품은 임자를 만나지 않으면 오해가 많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배우들도 잘 이해해야 하는데, 김혜수 선배가 정확하게 읽어줬다. 당시에는 ‘이게 뭐지?’ 싶었다. 혜수 선배가 캐스팅되고 나서는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힘이 컸던 것 같다. 

- 놀라운 점은 작품의 뚝심이다. 기존의 흥행 공식을 벗어난 화법이다. 말 그대로 뚝심이 보인다.  

▲ 대단한 의지가 있었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얘기가 명확하게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사라진 소녀의 코드를 따라가는데, 기존 이런 미스터리 영화와 도착지가 다르다. 샛길로 셀 수 있는 길이 많아서 섬세하게 지도를 그려야 하는 게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었다. 

- 이 영화를 통해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 저는 사실 그 당시에 재밌는 것들을 넣은 것이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서로 영향을 준다. 방금 전까지도 몰랐던 사람인데, 그 사람들 때문에 다음날을 잘 살 수 있는 그런 경우들이 있다. 나쁜 경우도 있겠지만, 좋은 경우도 많다. 그 부분을 영화적으로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 섬세한 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했는데,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뭔가. 

▲ 현수(김혜수 분)는 직업이 남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감정이 들어갈 것도 없고, 냉정하게 사건 속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수사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이었건 결과만을 보는 직업인데, 본인이 어떤 사건을 경험하면서 상황을 접해보니 다른 게 보인다는 걸 표현해야 했다. 이걸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만들고 싶은 욕심은 강했다.

관객들이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요즘 영화들은 신이 시작하면 가져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현수는 사람을 만나는데 얻어가는 게 없다. 관객들에게 견디라고 하는 거다. 그것을 모두 견디고 나면 어떤 깊은 여운을 얻을 것인데, 견뎌줄지 궁금하다. 그래도 관객들이 워낙 똑똑하고 현명해졌기 때문에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제목이 강렬하다. 이 제목은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 너무 어둡다고 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죽던 날은 세진의 기준에서 죽던 날이다. 다시 말하면 다시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현수가 세진을 보니까 나도 죽었던 날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힘도 얻는다. 어떤 날을 기준으로 같이 겪은 것도 아니고, 시공간도 다른데, 만나는 지점이 있다. 이 아이러니를 읽어주길 바랬다. 

- 이 작품이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충분히 자극적인 요소를 깔아놨는데 하나도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세 수준으로 잘라낸다. 현수의 이혼 과정에서의 문제점, 세진과 남성의 하룻밤 등 여러 가지가 정황상 보이는데 장면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연출자의 배려심인가? 

▲ 현수의 사연 같은 경우는 이혼이 시작점이 됐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이혼으로 인해 질문이 시작된 것이다. ‘괜찮은 삶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내 인생은 맞는 건가?’ ‘내 잘못인가? 아닌가?’ 이런 류의 질문이다. 

어찌 됐든 그 질문들로 인해 잠도 잘 수 없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어떤 면에서 현수는 모욕을 겪은 사람이다. 일부 사람들을 보면 너무 심한 모욕은 언급도 하지 않는다. 해명할 힘도 없고, 해명을 하면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장면으로 보여주기보다 현수의 태도로 드러나길 바랐는데, 혜수 선배가 정말 잘해줬다고 생각한다. 

- 현수는 동료와 바람을 핀 건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 의도적으로 불분명하게 한 지점이다. 현수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 해도 후배인 경찰 파트너와 좋은 관계였고 한 번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 다정함과 배려가 있는 관계였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배의 아내와도 관계가 좋았을 테지만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 그런 소문을 맞닥뜨리게 되면 보통은 그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수 입장에서는 굉장한 모욕을 겪은 데다 친한 동료와 관계가 끊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현수의 캐릭터에서는 그 모욕과 관계된 그 어떤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수근거림에 대해 대놓고 해명을 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변호사가 남편의 주장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냐고 물었을 때 해명이 아니라 ‘그 어떤 부탁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죠. 아마 남편은 그런 현수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세진의 경우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2차 가해를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 세진이 주위에는 오빠를 제외하고는 각자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선과 악이 딱히 없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데, 희생까지는 하지 않는다. 형준(이상엽 분)도 좋은 의도였을 것이다. 세진이 아빠에 대해 알고 있으니 세진에게 뭔가 더 듣고 싶었을 것이고, 그러면 사건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싶었다. 만약 그게 형준의 잘못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이 모든 불행이 형준 탓이 되버리니까. 그걸 바라지는 않았다. 그러면 변질이 되니까.

- 이 영화는 김혜수의 역할이 크다. 우울감을 기저에 깔고 있는 인물을 정말 훌륭히 표현했다고 본다. 

▲ 현장에서는 찍는 데 바쁘다 보니까, 연기를 잘하시는구나 정도였는데 편집하면서 보니까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라서 스케줄이 정말 빡빡했다. 원룸은 뛰고 감정 잡고 등등 모든 장면을 하루에 해결했다. 그렇게 모든 걸 하루에 하는데 잘하는 분이 또 있을까 싶다. 척하면 척하고 알아 들으시고, 아이디어도 많이 주신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혜수라는 배우에서 슬픈 눈이 보였다. 섬세한 선이 마음에 들었다. 연약한 김혜수를 오래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2019년 김혜수의 현재를 잘 담아내고 싶었다. 현수를 얼마나 따라갔느냐에 따라 영화를 보고 느끼는 폭이 클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많이 느끼길 바람이 있고. 김혜수라는 배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따라오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 김혜수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나. 


▲ 선배님의 첫 인상은 매우 배려심 깊은 스타로 보였다. 제가 만난 선배님은 굉장히 작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감상을 얘기해주셨고 정말 꼼꼼히 읽고 얘기해주시는 정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다만 인물들의 상황에 매우 공감하고 그걸 표현하는 부분에서 아이디어도 주시고 해서 처음 만난 자리고 하시겠다고 답을 주는 자리는 아니라서 마음 속으로 거절 하시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뵙고 얘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 기대 이상으로 연기를 잘한 배우가 세진을 연기한 노정의다. 이번 작품으로 연기력이 완전히 증명됐다고 생각한다. 

▲ 10대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처음 정의를 만났을 때 가만히 있을 때는 표정이 서늘하다가 웃을 때는 활짝 핀다. 호기심이 가는 웃음이었다. 만나서 얘기해보니 어린 나이같지 않게 영민하고 똘똘하다. 경력도 많다. 아역 치고 학교도 열심히 다녔다. 친구들하고 잘 지내기도 하고, 특이한 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진이도 그럴 것 같았다. 주어진 조건에서 열심히 사는 친구. 

실제로 촬영할 때 정의는 좀 힘든 상태였다. 입시 때문에. 사실 연기만 하기도 벅찬 숙제인 정의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한테 ‘괜찮니?’라고 하면 눈으로는 ‘안 괜찮아요’라고 하는데, 다른 내색은 안 했다. 

정의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의 세계에 있다 보니 지나치게 똘똘하다. 스크립터가 말하길 정의는 연결을 맞출 게 없다. 자기가 알아서 왼손 오른손을 다 맞추고 있다. 솔직히 안쓰러웠다. 얼마나 이 현장에서 많은 요구를 받았으면, 그런 것까지 다 고민하고 익혔겠나. 아마 세세하게 아역을 배려하는 현장이 많지 않았을 텐데, 본인이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스스로 기술을 익힌 거다.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다. 태국 촬영 쯤에 학교에 합격했다고 해서 정말 기뻤다. 

- 이번에 입봉을 하게 됐는데, 이전의 이력은 어떻게 되나?

▲ 영화사 봄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쓰리 몬스터> <달콤한 인생> <너는 내 운명>을 담당했다. 영화 학교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스크립터 일을 2008년부터 했다. 언제 데뷔할지 모르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을 잘 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많았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했다. 

- 영화에 대한 설명, 스스로에 대한 판단, 타인에 대한 생각 등 전반적으로 냉철하다. 객관화가 매우 잘된 느낌이다. 

▲ 냉철하게 봐야만 한다. 주위에 조급하게 데뷔해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 스스로 감독이라 칭하기 부끄럽다. 몇 편을 찍어야 감독이라는 칭호가 어울릴지도 고민해 봤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야기를 계속 잘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럴려면 냉정해야만 한다. 나와 관객들과 이 세상이 원하는 이야기를 좋은 타이밍에 해야 한다. 

- 이번 영화를 하면서 힘들었던 게 있다면 혹시 무엇이었나. 

▲ 영화감독의 위치에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게 있지만 마음대로 되는 건 없다. 혜수 선배님이 아무리 잘해도 내가 실수하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내가 유지할 수 있는 건 내 태도 밖에 없었다. 왜 만들려고 하고, 왜 이 영화를 선택했고, 어떤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더이상 영화를 찍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뿐 아니라 대다수 배우가 이 영화의 의미를 읽고 들어와 줬다.

신인 감독에게 있어서는 과분한 이름이다. 근데 그 의미가 영화에 나오지 않으면, 저에게는 정말 악몽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게 마음을 많이 졸이게 했다. 제가 분명히 어설펐을 것이고, 참견하고 싶었을 텐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날 믿고 기다려줬다. 정말 판이 잘 깔렸고, 나에게는 투정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좋아야만 했다.

- 힘든 순간이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내가 잘 가고 있구나라고 느낀 장면이 있을까. 

▲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장면이기도 한데, 후반부에 현수와 순천댁(이정은 분)이 만나는 장면이다. 촬영을 준비 중인데, 정은 선배가 울려고 한다. 눈물이 나오면 안 된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는데 감정이 격해진 것이다. 배우들의 이해도가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고민은 누구부터 찍을 것이었냐였다. 연출자로서는 복이었다. 

또 촬영과 편집 기간을 거치는 내내 어떤 게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현수의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최대한 이해를 돕고자 편집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코로나19 때문에 편집할 시간이 넉넉했다. 그래서 고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똑똑해진 관객들이 이 감정선을 이해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 이제 첫 걸음을 뗐다. 워낙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부가 있다면?

▲ 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이야기의 단점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가 생각한 이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인 면이 없지 않은데 다행히 저와 생각이 같은 제작자들을 만나서 완성할 수 있었다. 만들고 보니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사실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게 될지 그래서 더 기대 되고 두렵기도 하다. 이미 세상에는 너무 많은 영화와 이야기가 존재하고 앞으로도 많을 테지만 그래도 제가 만들 영화를 위한 자리가 있다면 그래도 조금 다른, 좀 더 새로운 지점을 도전하는 영화였으면 한다. 또 그런 이야기를 기다리는 관객과 잘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야 영화 만드는 일이 비로소 제 직업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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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