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PGA 왕좌 오른 ‘테리우스’ 김태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16 11:59:15
  • 호수 1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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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날리고 정확하게 땡그랑∼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새로운 골프스타가 탄생했다. 시원한 장타, 훤칠한 외모, 부진 극복 스토리 등 이슈를 갖춘 김태훈이 KPGA 대상과 상금왕을 석권하며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 프로골퍼 김태훈

김태훈이 2020시즌 KPGA 코리안 투어에서 2관왕에 올랐다. 지난 8일,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 컨트리클럽(파72·7010야드)에서 열린 KPGA 코리안 투어 시즌 최종전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총상금 10억6원)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를 2개씩 기록하며 이븐파 72타로 마쳤다.

아이스하키서 
골프로 전향

최종 합계 13언더파 275타의 성적을 낸 김태훈은 공동 9위로 시즌 최종전을 마쳤다.

대회 전까지 상금과 대상 포인트 1위를 달린 김태훈은 선두를 지켜 2개 부문 타이틀홀더(상금 4억9593만원·대상 포인트 3251.7점)가 됐다. 두 부문에서 2위로 따라붙던 김한별(상금 4억2270만원·대상 포인트 3039점)을 제쳤다. KPGA 코리안 투어에서 상금과 대상 포인트를 석권한 선수가 나온 것은 2016년 최진호 이후 4년 만이다.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대상 포인트를 차지한 김태훈은 보너스 상금 5000만원과 제네시스 차량 1대, 앞으로 5년간 KPGA 코리안 투어 시드, 2021-2022시즌 유러피언 투어 시드까지 받는다.


김태훈은 “(김한별, 이재경)두 선수가 대회에 못 나왔을 때 타이틀 부문 1위에 올랐다. 나는 연습을 안 하면 티가 많이 나는 유형이라 2주 격리를 했으면 이 정도 성적은 못 냈을 것이다. 아마 두 선수보다 순위가 아래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나이가 있지만 두 선수는 어리고 실력도 좋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더 많을 걸로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제네시스 대상 수상으로 코리안 투어 5년 시드뿐만 아니라 2021-2022년 유러피언 투어 시드마저 확보한 김태훈은 “제일 필요한 건 영어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비거리 면에선 유럽 투어 선수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 있는 경기장 잔디보다 유럽 투어 잔디가 훨씬 촘촘하다. 이 부분에 관해 공부해서 빨리 적응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데뷔 14년 만에 대상·상금왕 석권
“2020년 최고의 해…유럽무대 도전”

캐디인 아버지(김형돈)에게도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태훈은 “투어에 입성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버지가 계속 캐디를 해주셨다. 나한테는 정말 좋은 캐디이자 아버지다. 아버지가 캐디를 못 하시게 된다면 아마 갤러리로 경기를 보러 오실 것 같다. 캐디든 갤러리든 앞으로 남은 내 골프 인생에서 끝까지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훈은 초등학생 때 골프채보다 아이스하키채를 먼저 잡았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강타자였던 큰아버지 김준환씨는 김태훈에게 “골프로 전향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이 말을 듣고 김태훈은 전국체전 2관왕, 호심배 우승 등 아마추어 무대에서 일찍이 눈도장을 찍었다.

김태훈의 캐디백은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가 멨다. 

골프선수로 전향한 김태훈은 시즌 초까지만 해도 무명선수였다. 2004년 국가대표 시절이었던 20세에 찾아온 드라이버 입스(Yips·결과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스윙을 못 하는 상태)에 무려 8년이나 시달렸다. 그는 “20세 때 드라이버 입스가 왔고, 그렇게 8~9년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 김태훈 프로

“잘못 때린 드라이버 티샷은 두 개 홀을 건너가 있을 정도였다”고 회고한 김태훈은 정타에서 벗어난 드라이버 샷으로는 도무지 성적을 낼 수 없었다고도 했다. 

골퍼 12년차 베테랑인 김태훈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7년 코리안 투어에 데뷔하고는 11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고, 솔모로 오픈에서는 11개 홀에서 12개의 OB(아웃오브바운즈)를 내기도 했다.

김태훈은 “그땐 드라이버로 공을 때리면 어디로 갈지 몰랐다. 얼마나 심했던지 한 번은 김경태와 경기를 하는데 ‘형은 똑바로 300야드, 오른쪽으로 100야드를 날린다’며 놀리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평균 비거리
300야드 넘어

골프가 무서웠던 그는 이듬해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김범식에서 김태훈으로 개명했다. 그래도 입스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입스가 왔을 때는 너무 힘들었고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매우 힘들었다”며 버텨낼 용기를 준 가족들에게 고마워했다. 

1부 투어 출전권을 상실한 2012년 2부 투어에서 뛰면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자 드라이버 샷이 점차 안정됐다. 

그는 골프인생을 걸고 도전한 2013년 보성CC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데뷔 7년 만에 처음으로 맛본 우승이었다. 게다가 이승호가 2009년 삼성베네스트 오픈에서 KPGA 투어 72홀 최소타와 타이기록까지 세웠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

그해 10위권 안에 8차례 진입하는 등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동계 훈련 기간 페어웨이가 넓은 골프장에서 수없이 드라이버 샷을 날리며 자신감을 찾은 게 도움이 됐다. 

김태훈은 우승 인터뷰에서 “그동안 너무 많은 마음고생으로 감정이 무뎌졌는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승이 확정되던 순간, 김태훈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던 아들의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했고 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우승 후 스타로 발돋움한 김태훈을 보기 위해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도 늘어났고 골프장 밖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심지어 어느 대회에서 만난 한 주니어 선수의 학부모는 “아들을 김태훈처럼 키우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입스 트라우마 
마침내 극복


김태훈은 “첫 우승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2012년에는 집까지 걸어가지 못할 정도로 매일 열심히 운동했다. 그 노력이 첫 우승으로 이어져 골프가 정말 재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태훈의 장기는 장타다. 매 대회 화끈한 장타 쇼를 선보인 김태훈의 시즌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는 301.067야드. 그해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 300야드를 넘기며 KPGA 투어 장타상까지 챙겼다.

장타 비결에 대해 그는 “아이스하키가 골프 원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폴로(follow)와 임팩트 때 자세가 비슷하고 공에 힘을 싣는 원리도 비슷해 골프를 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역도팀에 들어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이어 “비거리에서 볼 스피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발사각”이라며 “발사각을 높이려고 하면 자연스레 인-아웃(in-out) 스윙을 하게 되고 드로 구질의 샷을 하게 돼 비거리가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김태훈은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컨트리클럽(파72·7241야드)에서 열린 카이도골프 엘아이에스(LIS) 투어챔피언십(총상금 3억원)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를 묶어 최종합계 13언더파 203타로, 18개월 만에 우승을 노리던 박준원(29·하이트진로)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2013년 8월 보성컨트리클럽 클래식 이후 다시 들어 올린 우승 트로피였다. 


우승 후 김태훈은 “첫 승을 하고 2승을 하기까지 27개월이 걸렸다. 오랜만에 우승해서 더 기쁜 것 같다. 항상 함께해준 팬분들과 부모님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고 소감을 대신했다.

장타왕서 골프왕으로
장점 살려 통산 4승 

김태훈의 장타상은 2013년에 끝났다. 그는 “2013년에는 멀리 똑바로 공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멀리는 가는 데 정확하게 가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잡아가고 있다”며 “이제 국내 무대는 모두 마감이 됐고 일본 Q스쿨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좋은 성적 거둬서 내년에는 일본과 한국 무대를 병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최고 인기선수상을 차지했다. 드라이버샷 입스를 극복하고 시즌 마지막 대회인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태훈은 스테이 트루(Stay True)상과 함께 인기상인 해피 투게더상을 받았다. 스테이 트루상은 한해 동안 진정성을 갖고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며 해피 투게더상은 온라인 팬 투표 1위에게 주는 상이다.
 

2018년 KPGA 투어 복귀하며 3승을 적립했다. 8월 양산의 통도 파인이스트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코리안 투어 동아회원권 부산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9언더파 63타를 몰아쳐 4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LIS 투어 챔피언십 제패 이후 무려 1015일 만에 생애 통산 3승 고지에 오른 김태훈은 긴 침묵을 깨고 부활을 알렸다. 우승 상금은 1억원.

9언더파 63타는 이 대회 1라운드 때 권성열이 세운 코스레코드를 1타 경신한 새로운 기록이다. 지금까지 7언더파 65타만 두 차례 쳐봤다는 김태훈은 개인 18홀 최소타 기록도 다시 썼다.

김태훈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KPGA 코리안 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총상금 15억 원)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4개로 1타를 잃었지만 최종 합계 6언더파 282타로 이재경(21·CJ오쇼핑·4언더파)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한국 넘어 
유럽 정벌

KPGA의 꽃미남이자 소문난 장타자인 김태훈은 “필드에 나가면 외롭고 힘들어 심적으로 안정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형돈씨도 “캐디백을 메고 다니는 게 고되지만 성적이 좋고 나쁨을 떠나 아들과 함께하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골프 장타의 세계
250m 넘으면 영혼도 판다?

최근 골프계에서 장타가 화제다. 오죽하면 장타대회가 따로 있을 정도다. 한 타 한 타가 돈인 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도 250m가 넘는 장타를 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사람도 분명 적지 않다.

미 PGA 투어에서 전통적인 공략법을 무시하고 장타에 이은 숏게임으로 US 오픈을 제패했던 괴짜 브라이슨 디샘보는 지난주 자신의 SNS에 ‘드라이브샷 400야드를 넘겼다’며 403.1야드가 기록된 트랙맨 화면을 게시했다.

PGA 선수 중 마음먹고 스윙하면 400야드를 넘길 수 있는 선수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최근 근육과 체중을 불리면서 장타자로 자리매김한 디샘보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모았다.

LPGA 투어에서도 새로운 장타자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Q스쿨을 통과해 올해 데뷔한 필리핀 출신 비앙카 파그단가난이 그 주인공으로 LPGA 투어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레이놀즈 레이크 오코니 대회에서 315야드의 티샷을 날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280야드만 쳐도 장타자로 불리는 LPGA에서 300야드를 넘기는 선수가 등장할 것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신장도 162㎝에 불과하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따낼 만큼 재능이 충분한 선수다.

디샘보나 더스틴 존슨,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처럼 장타력과 좋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선수도 있지만, 실제로 장타자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멀리 치려다 보면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홈런타자가 타율이 높지 않고 삼진이 많은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PGA 투어의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99.4야드다. 현재 1위 디샘보(344.4야드)와 2위 더스틴 존슨(333.8야드)는 각각 상금랭킹과 세계랭킹 1위에 올라있다.

장타력을 성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뛰어난 선수들이다.

데뷔초 기복 심했던 김태훈
정교함 보강하면서 전성기

이들은 장타 외에 스크램블, 아이언, 퍼트 등 다양한 부문에서 고루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세계랭킹 2위 존 람은 장타 21위이고, 세계랭킹 23위인 임성재(305.3야드)는 장타 부문 78위로 중간 정도다.

300야드면 대단한 장타자로 불리던 게 오래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장비와 볼, 웨이트로 무장한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350야드는 쳐야 장타 1위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국남자골프도 300야드 시대다.

마이카 로렌 신(미국)이 312야드로 1위, 고태완이 311야드로 2위다. 상금랭킹 1위인 김태훈도 304야드로 5위다.

데뷔 초 장타력에 비해 성적의 기복이 심했던 김태훈은 정교함을 보강하면서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상금랭킹 2위인 김한별도 291야드로 짧지 않은 드라이버샷을 갖고 있지만 27위다.

LPGA 투어는 파그단가난이 288야드로 1위, 마리아 파시가 282야드로 2위, 넬리 코르다가 272야드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세영이 266.8야드로 한국선수 중 가장 높은 13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상금랭킹 1위인 박인비는 239야드로 139위, 거의 최하위권이다.

티샷, 어프로치, 퍼트에서 모두 투어 최상위권인 박인비에게 비거리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KLPGA에서는 김아림(257야드) 김지영2(252야드)가 각각 장타 1, 2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상금랭킹 1위 김효주는 236야드, 2위인 박현경도 234야드 정도에 그친다.

최혜진이 246야드로 장타 10위, 상금 9위 등 비교적 균형이 맞는 선수에 속한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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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