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KPGA 왕좌 오른 ‘테리우스’ 김태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16 11:59:15
  • 호수 1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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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날리고 정확하게 땡그랑∼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새로운 골프스타가 탄생했다. 시원한 장타, 훤칠한 외모, 부진 극복 스토리 등 이슈를 갖춘 김태훈이 KPGA 대상과 상금왕을 석권하며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 프로골퍼 김태훈

김태훈이 2020시즌 KPGA 코리안 투어에서 2관왕에 올랐다. 지난 8일,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 컨트리클럽(파72·7010야드)에서 열린 KPGA 코리안 투어 시즌 최종전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총상금 10억6원) 대회 4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를 2개씩 기록하며 이븐파 72타로 마쳤다.

아이스하키서 
골프로 전향

최종 합계 13언더파 275타의 성적을 낸 김태훈은 공동 9위로 시즌 최종전을 마쳤다.

대회 전까지 상금과 대상 포인트 1위를 달린 김태훈은 선두를 지켜 2개 부문 타이틀홀더(상금 4억9593만원·대상 포인트 3251.7점)가 됐다. 두 부문에서 2위로 따라붙던 김한별(상금 4억2270만원·대상 포인트 3039점)을 제쳤다. KPGA 코리안 투어에서 상금과 대상 포인트를 석권한 선수가 나온 것은 2016년 최진호 이후 4년 만이다.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대상 포인트를 차지한 김태훈은 보너스 상금 5000만원과 제네시스 차량 1대, 앞으로 5년간 KPGA 코리안 투어 시드, 2021-2022시즌 유러피언 투어 시드까지 받는다.


김태훈은 “(김한별, 이재경)두 선수가 대회에 못 나왔을 때 타이틀 부문 1위에 올랐다. 나는 연습을 안 하면 티가 많이 나는 유형이라 2주 격리를 했으면 이 정도 성적은 못 냈을 것이다. 아마 두 선수보다 순위가 아래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나이가 있지만 두 선수는 어리고 실력도 좋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더 많을 걸로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제네시스 대상 수상으로 코리안 투어 5년 시드뿐만 아니라 2021-2022년 유러피언 투어 시드마저 확보한 김태훈은 “제일 필요한 건 영어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동안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비거리 면에선 유럽 투어 선수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에 있는 경기장 잔디보다 유럽 투어 잔디가 훨씬 촘촘하다. 이 부분에 관해 공부해서 빨리 적응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데뷔 14년 만에 대상·상금왕 석권
“2020년 최고의 해…유럽무대 도전”

캐디인 아버지(김형돈)에게도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태훈은 “투어에 입성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버지가 계속 캐디를 해주셨다. 나한테는 정말 좋은 캐디이자 아버지다. 아버지가 캐디를 못 하시게 된다면 아마 갤러리로 경기를 보러 오실 것 같다. 캐디든 갤러리든 앞으로 남은 내 골프 인생에서 끝까지 함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훈은 초등학생 때 골프채보다 아이스하키채를 먼저 잡았다.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강타자였던 큰아버지 김준환씨는 김태훈에게 “골프로 전향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이 말을 듣고 김태훈은 전국체전 2관왕, 호심배 우승 등 아마추어 무대에서 일찍이 눈도장을 찍었다.

김태훈의 캐디백은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가 멨다. 

골프선수로 전향한 김태훈은 시즌 초까지만 해도 무명선수였다. 2004년 국가대표 시절이었던 20세에 찾아온 드라이버 입스(Yips·결과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스윙을 못 하는 상태)에 무려 8년이나 시달렸다. 그는 “20세 때 드라이버 입스가 왔고, 그렇게 8~9년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 김태훈 프로

“잘못 때린 드라이버 티샷은 두 개 홀을 건너가 있을 정도였다”고 회고한 김태훈은 정타에서 벗어난 드라이버 샷으로는 도무지 성적을 낼 수 없었다고도 했다. 

골퍼 12년차 베테랑인 김태훈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2007년 코리안 투어에 데뷔하고는 11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고, 솔모로 오픈에서는 11개 홀에서 12개의 OB(아웃오브바운즈)를 내기도 했다.

김태훈은 “그땐 드라이버로 공을 때리면 어디로 갈지 몰랐다. 얼마나 심했던지 한 번은 김경태와 경기를 하는데 ‘형은 똑바로 300야드, 오른쪽으로 100야드를 날린다’며 놀리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평균 비거리
300야드 넘어

골프가 무서웠던 그는 이듬해 일찌감치 군에 입대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김범식에서 김태훈으로 개명했다. 그래도 입스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입스가 왔을 때는 너무 힘들었고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매우 힘들었다”며 버텨낼 용기를 준 가족들에게 고마워했다. 

1부 투어 출전권을 상실한 2012년 2부 투어에서 뛰면서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자 드라이버 샷이 점차 안정됐다. 

그는 골프인생을 걸고 도전한 2013년 보성CC 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 데뷔 7년 만에 처음으로 맛본 우승이었다. 게다가 이승호가 2009년 삼성베네스트 오픈에서 KPGA 투어 72홀 최소타와 타이기록까지 세웠다.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

그해 10위권 안에 8차례 진입하는 등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동계 훈련 기간 페어웨이가 넓은 골프장에서 수없이 드라이버 샷을 날리며 자신감을 찾은 게 도움이 됐다. 

김태훈은 우승 인터뷰에서 “그동안 너무 많은 마음고생으로 감정이 무뎌졌는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승이 확정되던 순간, 김태훈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했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던 아들의 모습을 늘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했고 아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우승 후 스타로 발돋움한 김태훈을 보기 위해 대회장을 찾는 갤러리도 늘어났고 골프장 밖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심지어 어느 대회에서 만난 한 주니어 선수의 학부모는 “아들을 김태훈처럼 키우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입스 트라우마 
마침내 극복


김태훈은 “첫 우승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2012년에는 집까지 걸어가지 못할 정도로 매일 열심히 운동했다. 그 노력이 첫 우승으로 이어져 골프가 정말 재밌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태훈의 장기는 장타다. 매 대회 화끈한 장타 쇼를 선보인 김태훈의 시즌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는 301.067야드. 그해 출전 선수 중 유일하게 평균 드라이버 샷 비거리 300야드를 넘기며 KPGA 투어 장타상까지 챙겼다.

장타 비결에 대해 그는 “아이스하키가 골프 원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폴로(follow)와 임팩트 때 자세가 비슷하고 공에 힘을 싣는 원리도 비슷해 골프를 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 하체 힘을 키우기 위해 역도팀에 들어간 적도 있다”고 했다.

이어 “비거리에서 볼 스피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발사각”이라며 “발사각을 높이려고 하면 자연스레 인-아웃(in-out) 스윙을 하게 되고 드로 구질의 샷을 하게 돼 비거리가 늘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김태훈은 충남 태안의 현대더링스컨트리클럽(파72·7241야드)에서 열린 카이도골프 엘아이에스(LIS) 투어챔피언십(총상금 3억원)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2개를 묶어 최종합계 13언더파 203타로, 18개월 만에 우승을 노리던 박준원(29·하이트진로)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안았다.

2013년 8월 보성컨트리클럽 클래식 이후 다시 들어 올린 우승 트로피였다. 


우승 후 김태훈은 “첫 승을 하고 2승을 하기까지 27개월이 걸렸다. 오랜만에 우승해서 더 기쁜 것 같다. 항상 함께해준 팬분들과 부모님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고 소감을 대신했다.

장타왕서 골프왕으로
장점 살려 통산 4승 

김태훈의 장타상은 2013년에 끝났다. 그는 “2013년에는 멀리 똑바로 공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멀리는 가는 데 정확하게 가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잡아가고 있다”며 “이제 국내 무대는 모두 마감이 됐고 일본 Q스쿨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좋은 성적 거둬서 내년에는 일본과 한국 무대를 병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최고 인기선수상을 차지했다. 드라이버샷 입스를 극복하고 시즌 마지막 대회인 투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태훈은 스테이 트루(Stay True)상과 함께 인기상인 해피 투게더상을 받았다. 스테이 트루상은 한해 동안 진정성을 갖고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며 해피 투게더상은 온라인 팬 투표 1위에게 주는 상이다.
 

2018년 KPGA 투어 복귀하며 3승을 적립했다. 8월 양산의 통도 파인이스트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코리안 투어 동아회원권 부산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9언더파 63타를 몰아쳐 4라운드 합계 13언더파 275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LIS 투어 챔피언십 제패 이후 무려 1015일 만에 생애 통산 3승 고지에 오른 김태훈은 긴 침묵을 깨고 부활을 알렸다. 우승 상금은 1억원.

9언더파 63타는 이 대회 1라운드 때 권성열이 세운 코스레코드를 1타 경신한 새로운 기록이다. 지금까지 7언더파 65타만 두 차례 쳐봤다는 김태훈은 개인 18홀 최소타 기록도 다시 썼다.

김태훈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KPGA 코리안 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총상금 15억 원)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4개로 1타를 잃었지만 최종 합계 6언더파 282타로 이재경(21·CJ오쇼핑·4언더파)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한국 넘어 
유럽 정벌

KPGA의 꽃미남이자 소문난 장타자인 김태훈은 “필드에 나가면 외롭고 힘들어 심적으로 안정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형돈씨도 “캐디백을 메고 다니는 게 고되지만 성적이 좋고 나쁨을 떠나 아들과 함께하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골프 장타의 세계
250m 넘으면 영혼도 판다?

최근 골프계에서 장타가 화제다. 오죽하면 장타대회가 따로 있을 정도다. 한 타 한 타가 돈인 프로는 말할 것도 없고, 아마추어도 250m가 넘는 장타를 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사람도 분명 적지 않다.

미 PGA 투어에서 전통적인 공략법을 무시하고 장타에 이은 숏게임으로 US 오픈을 제패했던 괴짜 브라이슨 디샘보는 지난주 자신의 SNS에 ‘드라이브샷 400야드를 넘겼다’며 403.1야드가 기록된 트랙맨 화면을 게시했다.

PGA 선수 중 마음먹고 스윙하면 400야드를 넘길 수 있는 선수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최근 근육과 체중을 불리면서 장타자로 자리매김한 디샘보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모았다.

LPGA 투어에서도 새로운 장타자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Q스쿨을 통과해 올해 데뷔한 필리핀 출신 비앙카 파그단가난이 그 주인공으로 LPGA 투어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레이놀즈 레이크 오코니 대회에서 315야드의 티샷을 날려 주위를 놀라게 했다.

280야드만 쳐도 장타자로 불리는 LPGA에서 300야드를 넘기는 선수가 등장할 것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신장도 162㎝에 불과하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따낼 만큼 재능이 충분한 선수다.

디샘보나 더스틴 존슨,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처럼 장타력과 좋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선수도 있지만, 실제로 장타자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쉽지 않다.

멀리 치려다 보면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홈런타자가 타율이 높지 않고 삼진이 많은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PGA 투어의 평균 드라이버샷 비거리는 299.4야드다. 현재 1위 디샘보(344.4야드)와 2위 더스틴 존슨(333.8야드)는 각각 상금랭킹과 세계랭킹 1위에 올라있다.

장타력을 성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뛰어난 선수들이다.

데뷔초 기복 심했던 김태훈
정교함 보강하면서 전성기

이들은 장타 외에 스크램블, 아이언, 퍼트 등 다양한 부문에서 고루 뛰어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세계랭킹 2위 존 람은 장타 21위이고, 세계랭킹 23위인 임성재(305.3야드)는 장타 부문 78위로 중간 정도다.

300야드면 대단한 장타자로 불리던 게 오래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장비와 볼, 웨이트로 무장한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350야드는 쳐야 장타 1위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한국남자골프도 300야드 시대다.

마이카 로렌 신(미국)이 312야드로 1위, 고태완이 311야드로 2위다. 상금랭킹 1위인 김태훈도 304야드로 5위다.

데뷔 초 장타력에 비해 성적의 기복이 심했던 김태훈은 정교함을 보강하면서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상금랭킹 2위인 김한별도 291야드로 짧지 않은 드라이버샷을 갖고 있지만 27위다.

LPGA 투어는 파그단가난이 288야드로 1위, 마리아 파시가 282야드로 2위, 넬리 코르다가 272야드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김세영이 266.8야드로 한국선수 중 가장 높은 13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상금랭킹 1위인 박인비는 239야드로 139위, 거의 최하위권이다.

티샷, 어프로치, 퍼트에서 모두 투어 최상위권인 박인비에게 비거리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KLPGA에서는 김아림(257야드) 김지영2(252야드)가 각각 장타 1, 2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상금랭킹 1위 김효주는 236야드, 2위인 박현경도 234야드 정도에 그친다.

최혜진이 246야드로 장타 10위, 상금 9위 등 비교적 균형이 맞는 선수에 속한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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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