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박지원 국정원장 역할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16 10:21:52
  • 호수 12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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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히고설킨 남북미일 키맨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바이든의 인맥을 찾아라! 최근 문재인정부에 내려진 특명이다. 북핵 문제 해결뿐 아니라 굳건한 한미 동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대화 채널을 다수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일요시사>는 바이든 당선인과 인연이 많은 DJ정부 인사, 그 중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게 제기되는 역할론을 집중 취재했다. 
 

▲ 박지원 국정원장 ⓒ고성준 기자

바이든의 시대가 열렸다. 비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불복 의사를 내비쳤지만, 정권 인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바이든 당선인과 첫 통화를 가졌다. 

인연

문재인정부는 바이든 ‘인맥 찾기’로 분주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 대통령에 확정된 직후 미국을 방문했다. 외교부는 미국 대선 전부터 공화당과 민주당 양측에 다양한 대화채널 마련을 모색해왔다. 강 장관의 방미는 이의 연장선이다. 

문정부가 바이든 인맥 찾기에 분주한 이유는 여권에서 바이든 인맥이라고 꼽을만한 인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부에 중국통이라고 할 만한 인사는 다수 꼽히지만, 미국과 긴밀히 접촉해온 인사는 드물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초청 세미나에서 “바이든 당선인과의 인적 네트워크는 주로 국민의힘 쪽에 많이 있는데 (정부·여당 관계자들이)이 자리에라도 와서 한 수 배워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을 지냈던 때는 이명박·박근혜정부 집권 시기였다. 

사실 국내 인사들 중 바이든 당선인과 만났던 인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마저도 국민의힘 등 야권에 집중돼있다.

박진 의원이 대표적이다. 박 의원은 지난 2008년 8월 한미의원외교협의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해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었던 바이든 당선인과 1시간가량 독대해 차담을 나눈 바 있다.

여권에도 바이든 당선인과의 연결고리는 존재한다. 바로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구심점으로 한 인맥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DJ와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넥타이 일화’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1년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했을 당시 DJ가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 선물한 일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2일 바이든 당선인과의 첫 통화 당시 바이든 당선인과 DJ의 각별한 인연을 언급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바이든 당선인과 DJ는)각별한 인연이 있다”며 “문 대통령께서 DJ와의 관계를 인용하셨는데,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바이든 당선인이 상원의원 시절에 노력한 점을 우리 국민이 잘 알고 있다는 취지의 말씀이었다”고 전했다.
 

▲ 김한정 국민의힘 의원

민주당은 DJ 재임 기간(1998~2003년) 인사들을 점검 중이다. 문 대통령은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1월20일 이후 최대한 빠른 시점에 미국을 직접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북핵 문제 외에도 방위비 분담금, 한미연합훈련과 전시작전권 전환 등 한미 양국 간 해결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측이 가진 카드 중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박 원장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며 바이든 당선인과 인연을 맺어 약 50년간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바이든과 50년 지기 여권 주목
‘DJ-오부치 선언’ 산파, 이번엔?

이는 바이든 당선인이 정계에 진출한 시기와 유사하다. 바이든 당선인은 1970년대부터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 원장을 연결 고리로 한 네트워크 전략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박지원 역할론’을 말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DJ의 비서실장이었던 박 원장을 중심으로 물밑 외교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는 한미정상회담을 기대하는 목소리와 맞물려 민주당 내부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DJ정부의 ‘햇볕정책’을 높게 평가하는 점도 박 원장의 역할론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비단 한미 관계뿐만이 아니다. 한일 관계에서도 박 원장 역할론이 주목받고 있다. 한일 관계는 한미 관계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박 원장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인 정상급 선언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박 원장은 ‘DJ-오부치 선언’의 산파 역할을 한 바 있다. 박 원장의 방일을 계기로 ‘문재인-스가 선언’의 분위기가 조성된 셈이다. 박 원장은 스가 총리의 최측근 인사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박 원장은 스가 총리와의 면담 후 현지 취재진을 만나 “총리께 문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와 한일 관계 정상화 의지를 전달하고 대북 문제 등 좋은 의견을 들었다”며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충분히 말씀드렸다. 두 정상이 해결 필요성에 공감하기 때문에 계속 대화하면 잘 되리라고 본다”고 전했다.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역시 한미 대화채널의 또 다른 구심점으로 거론된다. 송 위원장은 지난 2007년 미국 상원 개원식 참석차 방문했을 때 당시 부통령 당선인이었던 바이든과 만난 인연이 있다. 더군다나 바이든 당선인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밀접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송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한반도태스크포스(TF)를 꾸려 방미를 계획 중이다. 방미단에는 김한정·김병기·윤건영 의원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김한정 의원은 DJ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자격으로 바이든 당선인과의 면담에 배석한 바 있다. 

마중물

문 대통령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갈 예정이다. 문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의 재임 기간이 겹치는 기간은 불과 1년4개월여다.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이라는 국제적 이벤트가 예정된 가운데 한미, 한일 관계에서 박 원장이 ‘키맨’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남북미일 회담’ 문재인 구상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0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만나 내년 7월에 열리는 도쿄올림픽 때 남북 및 미일 정상이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도쿄로 초청해 남북미일 정상이 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한일 간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와 북핵 및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 동북아 안보 현안을 일괄 타결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을 남북 및 한일, 미북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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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