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트럼프 잡은 조 바이든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1.09 19:04:54
  • 호수 1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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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트럼프 시대가 막을 내렸다.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선거에 당선됐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역임했던 바이든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누르고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탄생했다. 바이든이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흑인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경선에서도 바이든은 흑인 유권자 덕분에 구사일생한 적이 있다.

바이든 승리의 일등공신은 ‘히든 바이든’ 지지들이다. 이들의 뒷심이 개표 종반에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히든 바이든이란 우편투표 또는 개표 시간 지연 등으로 막판까지 표심이 드러나지 않은 채 숨어있던 바이든 지지층을 말한다.

‘히든 바이든’
역전 드라마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장남이었다. 집안은 아일랜드 계통이며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아버지 조지프 바이든 시니어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증조부는 도시공학자로서 부를 쌓아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까지 지냈다.

이후에도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바이든 주니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가세가 기울었다. 1950년대에 불황이 오자 고향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델라웨어 주로 이주해 성장했다. 이후 델라웨어 클레이몬트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인 아키메어 아카데미로 진학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 미식축구를 즐겼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운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유리창 청소를 하고 풀을 뽑아야 했다. 말을 더듬는 습관으로 놀림을 받았지만, 혼자 거울을 보고 시를 암송하며 극복한 것으로 전해진다. 

1961년 델라웨어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미식축구팀인 델라웨어 파이팅 블루헨즈에서 뛰었다. 전공은 역사학과 정치학으로 성적은 좋지 않았다. 688명 중 506등으로 졸업했다. 학부 전공은 정치학으로, 졸업 후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재학 중에 논문 인용을 날림으로 하다가 표절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1966년 로스쿨 재학 중에 네일리어 헌터를 만나 결혼하고 2남1녀를 뒀다. 5차례 입영 연기를 한 후 1968년에 받은 선병검사에서 1-Y 등급을 받고 베트남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천식이었다.

1969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권력있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 국선변호인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1970년 11월 뉴캐슬 카운티의 카운티 의회 의원이 됐다. 2년 뒤 민주당원으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당시 해당 선거구의 상원의원은 정계 은퇴를 고려하던 보그스였다. 그러자 그의 후계를 두고 공화당에 분열이 생겼고 당시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은 한 번만 더 출마하라고 보그스를 설득했다.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으로
2008년 오바마와 한솥밥

당시 갓 서른에 가까웠던 바이든은 보그스를 이겼고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됐다. 그러나 그해 12월18일에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차를 끌고 나간 가족들이 교차로에서 트레일러에 추돌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 네일리어와 장녀인 나오미가 사망한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생활을 하며 1977년에 영어 교사 질 제이콥스와 결혼한다. 두 사람 다 재혼이었다. 계속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민주당에서 중진으로 경력을 쌓았는데 1988년에 목 통증이 심해져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뇌동맥류가 파열된 탓에 그는 사경을 헤맸지만 7개월 만에 재활해 복귀했다.

1988년에는 당시 역대 2번째로 어린 나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젊은 이미지로 베이비붐 세대의 지지를 받는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영국 노동당 당수인 닐 키녹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결국 경선을 중도 포기했다. 

이후 2008년까지 36년 동안 델라웨어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지냈다.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고 특히 코소보 문제에 많이 관여했다. 코소보 문제 당시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인 존 매케인과 결의서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에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2003년 조지 워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용인했고, 대신 사담 후세인의 제거에는 반대했다.
 

바이든은 2008년 민주당 공천에 출마했지만 중도 하차하고 오바마 대선 열차에 합류했다. 이후 부통령으로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8년 동안 일했다. 건강보험개혁법, 경기부양책, 금융산업 개혁 등 그가 내세우는 정책 상당 부분이 오바마 시절의 유산이기도 하다.

바이든이 ‘형제’라고 언급하는 오바마와의 친분은 흑인 유권자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원천이 됐다. 워싱턴 정가의 오랜 내부 인사인 바이든은 상대적으로 정치 경험이 적었던 오바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사경 헤매다
재활해 복귀

‘중산층 대표주자’로 불렸던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는 집단인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투입됐다. 부통령 시절이던 2012년 바이든은 “동성 결혼에 대해 개인적으로 편안하다”고 언급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완전히 동성 결혼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며칠 후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연임을 거친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며 부통령직을 맡았던 시간은 40년 정치 인생의 정점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 시절 미 상원 외교위원장을 거쳐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활동하는 등 워싱턴 정가의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명박정부 및 박근혜정부 시절 활동했던 정·관계 인사들과 깊은 교류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1차장을 했던 미래통합당 조태용 의원, 이명박정부에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맡았던 같은 당 박진 의원 등이 그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권 인사로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조 의원은 1차장 직을 역임하던 시절 현재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분야 선임자문을 맡고 있는 토니 블링컨 당시 오바마 행정부 국무부 부장관의 업무 카운터파트였다. 또 북한 핵 위협이 고조되던 2016~2017년 블링컨 선임자문과 총 5차례 한미 고위급 전략협의를 가지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조 의원은 “블링컨 선임자문과는 문자를 주고받던 사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통역비서관으로 근무하며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바이든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오바마 행정부에서 바이든이 외교위원장으로 활동할 때 박 의원도 한나라당 국제위원회 위원장,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등을 맡아 수차례 의견을 교환했다.

18대 국회에서 한미 의원 외교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도 바이든과 수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정몽준 이사장은 민간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아산정책연구원을 이끌며 워싱턴 정·관계 인사들과 꾸준히 교류해 인맥이 탄탄하다.

한국인
인맥은?

현 정부·여당 관계자는 보수 정부 10년을 거치며 바이든 측 인사들과 특별한 교류를 한 이력은 없다. 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외통위에서 오래 활약하며 미국 민주당 측 인사들과 잘 아는 편으로 평가된다.

송 의원은 과거 미국 민주당 연찬회에서 바이든을 직접 만나 인사를 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외교·안보 브레인으로 꼽히는 문정인 특보도 미국을 활발히 오가며 민주당 측 인사들과 꾸준히 교분을 쌓았다.


바이든은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해 좀 더 관대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경찰 개혁과 총기 규제,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조치는 강력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하한 개인과 법인에 대한 세금을 다시 올리고, 최저임금을 인상해 중산층을 육성하며, 건강보험 확대 등 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하려 한다. 바이든은 유색인종과 진보층, 도시 지역과 젊은 층, 이민자, 대졸 이상의 고학력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았다.

바이든은 중도·진보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두를 위한 건강보험, 대학학자금 면제 등 급진적 진보 공약을 앞세운 샌더스를 제치고 오바마 케어 지지 등 익숙한 정책으로 중도층의 지지를 결집했다.

일방적 주장과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트럼프에 비해 바이든은 슬픈 가족사를 언급하는 등의 공감능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선 슬로건에서 보듯 바이든은 ‘미국의 정신을 위한 투쟁’을 통해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화합을 강조했다.

바이든 홈페이지 첫 화면은 유색인종, 장애인, 성수소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일러스트가 배치하는 등 포용과 화합의 이미지 앞세운다. 경제회복과 실행력, 성과 등을 강조한 트럼프와는 비교된다.

유색인종·장애인 등 화합 강조
2015년 부적절한 스킨십 논란도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 8년 동안 부통령을 역임하면서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6월 바이든은 경찰의 무력 사용 과잉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을 찾아 위로했다. 유색인종 여성을 처음으로 부통령 후보로 지명, 인종 격차를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유색인종 지지층을 견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큰 약점도 세 가지가 꼽힌다. 건강, 아들 스캔들, 성추행 등이다. 1946년생인 트럼프보다 4세 많은 바이든(만 77세)은 1988년 두차례 뇌동맥류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로 인해 잦은 말실수와 기억력 둔화 증세를 보인다는 우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을 ‘졸린 조’라고 칭하며 인지력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지난 6월 인터뷰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7월 인터뷰에서는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바이든의 둘째 아들 헌터는 기업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바이든의 정치적 후광으로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관련,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정책을 담당하던 당시 바이든의 아들 헌터는 2014년부터 5년간 우크라이나 에너지 회사 부리스마 홀딩스 사외이사를 맡았다.

당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10억달러(1조1265억원) 규모의 미국 대출 보증을 보류하겠다”며 검찰청장 사임을 요구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우크라이나 검찰이 부리스마 홀딩스의 횡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자, 바이든이 “수사를 막기 위해 정부를 압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은 아들과 관계없이 부패 청산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아들이 우크라이나 동업자와 골프를 친 사진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헌터는 2013년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중국 방문 시 BHR(Bohai Harvesr Rst)사모펀드를 세워 중국 국영은행에서 투자를 받았다. 헌터 바이든은 2019년까지 BHR 이사로 재직하면서 중국 기술기업에 투자했으며 특히 중국 신장웨이우얼 지역 무슬림을 감시하는 모바일 앱에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바이든을 ‘친중 인사’라고 비난했다.

부적절한 접촉
망신 당하기도

바이든은 다수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 사례로 ‘소름 끼치는 바이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가지고 있다. 2015년 에슈턴 카터 국방부 장관 취임식에서 장관 부인에게 과도한 신체접촉을 해서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같은 해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의 10대 딸에게 부적절한 스킨십을 하다가 저지당한 적도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뜬금없는 바이든 치매설?

바이든 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화상 대담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조지’로 일컫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내가 출마해서가 아니라 내가 맞서고 있는 인물 때문에, 이번 선거는 가장 중대한 선거”라며 “조지가 4년 더, 조지, 어, 그는(Four more years of George, uh, George, uh, he…)”이라고 말을 더듬었다.

공화당의 스티브 게스트 신속대응국장은 트위터에 해당 부분을 담은 영상을 올리면서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과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을 혼동했다”며 맹공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서 “조 바이든이 어제 나를 조지라고 불렀다”며 “내 이름을 기억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가 말실수할 때마다 ‘치매설’을 점화하려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공격해왔다.

바이든 캠프 측은 바이든 후보가 말실수 한 게 아니라며 방어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이날 질문자로 나선 코미디언 조지 로페스의 이름을 두 차례 부른 것이라는 반박이다.

공화당 측이 교묘하게 영상을 편집해 악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다만 바이든 후보가 그간 말실수로 자주 구설에 올랐던 건 사실이다.

코로나19 미국 사망자 수치를 2억명이라고 잘못 말하거나, 자신이 대통령 선거가 아닌 상원선거에 출마했다고 말하는 식이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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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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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