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9부 능선 넘은 유명희 산업 통상자원본부장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0.26 11:10:27
  • 호수 12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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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모두가 응원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한국인 최초 세계무역기구(WTO) 수장이 나올 수 있을까.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사무총장 선거에서 결선에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과거 통상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쌓아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1967년 울산에서 태어난 유 본부장은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전부터 통상 분야에 관심을 두고 노력한 결과다. 

여성 1호
협상 전문가

그는 지난 1995년 통상산업부의 여성 통상 협상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선발한 ‘정부 공인’ 제1호 여성 통상 협상 전문가다. 1998년 통상 기능이 외교통상부로 이관되면서 통상산업부에서 외교통상부로 자리를 옮겼다. 외교통상부에서 자유무역협정(FTA)정책과장, FTA 서비스교섭과장, 주중국대사관 1등 서기관과 참사관 등을 거치며 여러 협상에서 중요한 실무자로 참여했다. 

통상 업무가 외교부에서 다시 산업부로 통합 이관된 이후엔 산업부에서 FTA 교섭관 겸 동아시아 FTA 추진기획단장, 통상정책국장, 통상교섭실장 등 통상 현안을 진두지휘했다.

1948년 상공부(현 산업부) 설립 이래 여성 공무원으로서는 역대 최초로 실장급(1급) 고위 공무원에 오르면서 공직 사회의 ‘유리 천장’을 넘어선 인물로 주목받았다. 2014년 박근혜정부 때는 청와대 홍보수석비서실에서 외신 대변인으로 일한 이력도 있다.


그는 2018년 11월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당시 그는 “더 승진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남편 리스크’도 제기했다. 그의 남편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정태옥 전 의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의 사표를 반려하고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전임 김현종 현 국가안보실 2차장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여권 핵심 인사는 “2017년 민유숙 대법관을 지명할 때도 남편이 안철수 전 대표의 최측근인 문병호 전 국민의당 의원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문 대통령은 민 대법관을 임명했다”고 전했다.

당시 청와대는 유 본부장에 대해 “공직생활 초기부터 통상 분야에서 활동해온 최고의 통상 전문가”라며 “굵직한 통상 업무를 담당하면서 쌓아온 업무 전문성과 실전 경험, 치밀하면서도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당면한 통상 분야 현안을 차질 없이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초의 여성 본부장이 된 유 본부장은 일본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금지 문제를 둘러싼 WTO 2심에서 승소했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뒤집으면서 그 능력을 입증해보였다.

여성 최초 실장급 고위공무원 이력
일본 농수산물 2심 승소…능력 입증

무역 분쟁의 최종심 격인 상소기구는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역 제한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줬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결정을 뒤집고 모두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상소기구는 세슘 검사만으로 적정 보호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수입금지와 기타 핵종 추가 검사를 요구한 조치는 무역 제한이라고 본 1심 패널 판정을 파기하면서 과도한 조치가 아니라고 봤다.

앞서 1심 패널은 한국의 수입 규제 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SPS) 협정에 불합치된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SPS 관련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것은 처음이다. 다만 상소기구는 한국 정부가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해 일본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절차적인 부분만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WTO 상소 기구가 우리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판정한 데 대해 시민단체들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 ▲ 유명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 측은 “국민 안전이 승리했다. 1심 패소라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한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24일 당시 유 본부장은 WTO 차기 사무총장에 도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당일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유 본부장은 “WTO 사무총장이 되면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출마의 변을 밝혔다. 한국은 이번이 세 번째 WTO 사무총장 도전이다.

1994년 김철수 상공부 장관과 2012년 박태호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출마했으나 최종 선출에는 실패했다. 차기 사무총장 선출 레이스는 브라질 출신 호베르투 아제베두 현 사무총장이 임기 1년을 남기고 지난달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선거 초반 구도는 흥미진진하게 짜였다. 입후보자 8명 중 미국·유럽연합·중국·일본·인도 출신은 없다. 세계무역기구 총장 선출 규정에 지역 안배가 ‘고려사항’으로 돼있으나 특정 지역마다 순번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국익에
도움될 것”

외신과 세계무역기구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안팎에서는 사실상 여성 후보 간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은행에서 25년 근무한 이력을 발판으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헤비급’으로 평가받는 오콘조이웨알라가 먼저 등록을 마쳤고, 이어 유 본부장이 도전장을 낸 뒤에 모하메드가 막판 가세했다. 유 본부장이 모하메드의 출마를 사전에 감지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모하메드는 2015년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의장을 맡는 등 막강한 ‘국제통상 헤비급’으로 불린다. 일각에서는 “모두 특유의 언변과 뛰어난 조직 장악력을 갖춰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 정부 선거캠프도 ‘여성 후보 3파전’을 선거판 형세로 판단하고 전략을 짜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유 본부장에 대해 명확한 찬반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수출규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의 사무총장 후보를 향해 경계심을 갖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에 따라 WTO를 둘러싼 한-일 정부의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데 이어, 일본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도전을 적극적으로 저지할 태세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유 본부장이 도전하는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대응과 세계무역기구 개혁 등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인지가 중요하다”며 “그런 관점에서 일본도 선출 프로세스에 확실히 관여해 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마감 전날 오후까지 유 본부장을 포함해 멕시코, 나이지리아, 이집트, 몰도바 등 5개국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필 호건 유럽연합(EU)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한국인 첫 사무총장 배출’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가운데, 일본의 견제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전 세계 외교망을 총동원해 ‘중견국·중재자론’을 앞세워 회원국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은 164개 회원국별로 후보 선호도를 조사해 지지도가 낮은 후보부터 탈락시켜 한 명만 남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종 선출까지 통상 6개월이 걸리지만, 현재 사무총장이 8월 말에 사임한다고 밝힌 만큼 리더십 공백을 줄이기 위해 절차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높다.


일본 언론도 유 본부장의 출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정부도 
대통령도

<요미우리신문>은 유 본부장에 대해 “한국과 수출관리 강화를 놓고 대립하는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거리”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지통신>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사무총장이 나와 국제적 발언력을 높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도 “한국 출신 사무총장이 탄생할 경우 일본의 통상정책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WTO에 제소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가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국과 일본의 기싸움도 치열하다. 세계무역기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원국의 무역정책 전반을 논의하는 회의를 진행했고, 지난 6일 일본 차례가 됐다. 

40여개 국가·지역 대표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한국 대표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한 반도체 원자재 등 수출관리를 강화한 조치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고 일본 방송 NHK가 보도했다.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한 셈이다.

결국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최종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8일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최종 결선에서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와 일대 일 대결을 펼친다.

최종 결선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와 유 본부장 여성 후보 두 명이 맞붙게 되면서 ‘새로운 여성 리더십’이라는 구호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유 본부장이 결선 무대에 내세울 두 개의 칼날은 현직 통상 장관이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우위인 국력이다.

유 본부장은 처음부터 후보 8명 중 유일한 현직 장관이라는 점을 어필해왔다. 특히 WTO가 각종 갈등으로 위기에 봉착해 난관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이 무기는 그를 최종 관문으로 끌어올리는 데 빛을 발했다.

WTO는 세계 경제 1·2위 국가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짙어지는 보호무역 색채,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통상 차질과 경기 침체 등 난제에 직면했다. 여기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분쟁 해결 방식이 지나치게 중국에 친화적이라며 사실상 WTO를 보이콧하고 있다.

이에 유 본부장은 미국과 유럽을 잇달아 순방하며 “다양한 국가와 통상 협상을 타결시킨 경험을 갖고 있으며 현직 통상장관으로서 정치적 역량을 지닌 본인이 이 같은 WTO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경쟁자인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는 비록 현직은 아니지만, 나이지리아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세계은행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인지도가 높다는 부분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인 세 번째 WTO 사무총장 도전
나이지리아 후보와 2파전…가능성은?

둘째는 국력이다. 전 세계에 뻗은 한국 인맥과 자원을 총동원해 ‘아프리카 대세론’을 무너뜨린다는 복안이다. 당초 이번 선거는 아프리카에서 아직 한 번도 사무총장이 나온 적이 없어 아프리카 두 후보 간 결선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결선까지 가게 된 유 본부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7월부터 최근까지 스위스, 미국, 프랑스, 스웨덴 등을 방문해 각국 대사와 주요 인사를 만나 활발한 유세 활동을 벌였다. 
 

물론 아직은 낙관하기 어렵다. 최대 투표권을 보유한 아프리카 대륙이 결선 과정을 거치며 2명의 후보 중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로 자동 단일화가 이뤄져 표가 집중될 수도 있다. 또 한국과 무역분쟁이 얽혀 있는 타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선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이집트 정상과 잇따라 정상 통화를 하고 WTO 사무총장 선거 결선에 진출한 유 본부장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이날 오후 5시30분에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와 통화한 데 이어 오후 6시에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통화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지난 1∼2차 라운드에서 보여준 유 본부장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단합된 지지에 감사하다”며 “차기 사무총장은 WTO를 개혁해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하고 다자무역 체제의 신뢰를 회복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든 대륙에 걸쳐 폭넓은 지지를 받는 유 본부장이야말로 WTO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최적임자”라며 지지를 당부했다.

이에 베텔 총리와 콘테 총리는 유 본부장의 결선 선거 진출을 축하하면서 뛰어난 역량과 WTO 개혁 비전, 통상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유 본부장의 선전을 기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오후 10시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앞서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선출을 위해 총력 지원을 약속한 문 대통령은 지난 7월부터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호주, 러시아, 독일,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정상과 통화하고 지속해서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해왔다. 

일본 경계
지원 총력전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를 표하며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텔 총리와 콘테 총리는 한국의 모범적인 코로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총리, 세사르 기예르모 카스티요 레예스 과테말라 부통령과 통화를 하고 유 본부장을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명희 남편 과거 막말 논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남편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의 과거 막말 논란이 재조명되고 있다. 

정태옥 전 의원은 제 20대 국회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해 2014년 8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6년 5월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새누리당 원내부대표에 임명됐다.

같은 해 12월 정우택 원내대표 체제에서도 유임됐다.

그는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혼하면 부천 가서 살고 망하면 인천 가서 산다”는 발언을 해 부천 및 인천 시민들에게 큰 질타를 받았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곳에서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며 “지방에서 생활이 어려울 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 그런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지만, 지방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인천으로 오기 때문에 실업률, 가계부채, 자살률이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은 ‘이부망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여야 모두에게 큰 비판을 받았으며 이후 정 전 의원은 사과와 함께 자유한국당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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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