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9부 능선 넘은 유명희 산업 통상자원본부장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0.26 11:10:27
  • 호수 12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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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모두가 응원합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한국인 최초 세계무역기구(WTO) 수장이 나올 수 있을까.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사무총장 선거에서 결선에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과거 통상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쌓아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1967년 울산에서 태어난 유 본부장은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했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전부터 통상 분야에 관심을 두고 노력한 결과다. 

여성 1호
협상 전문가

그는 지난 1995년 통상산업부의 여성 통상 협상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선발한 ‘정부 공인’ 제1호 여성 통상 협상 전문가다. 1998년 통상 기능이 외교통상부로 이관되면서 통상산업부에서 외교통상부로 자리를 옮겼다. 외교통상부에서 자유무역협정(FTA)정책과장, FTA 서비스교섭과장, 주중국대사관 1등 서기관과 참사관 등을 거치며 여러 협상에서 중요한 실무자로 참여했다. 

통상 업무가 외교부에서 다시 산업부로 통합 이관된 이후엔 산업부에서 FTA 교섭관 겸 동아시아 FTA 추진기획단장, 통상정책국장, 통상교섭실장 등 통상 현안을 진두지휘했다.

1948년 상공부(현 산업부) 설립 이래 여성 공무원으로서는 역대 최초로 실장급(1급) 고위 공무원에 오르면서 공직 사회의 ‘유리 천장’을 넘어선 인물로 주목받았다. 2014년 박근혜정부 때는 청와대 홍보수석비서실에서 외신 대변인으로 일한 이력도 있다.


그는 2018년 11월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당시 그는 “더 승진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남편 리스크’도 제기했다. 그의 남편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정태옥 전 의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의 사표를 반려하고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시켰다. 전임 김현종 현 국가안보실 2차장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여권 핵심 인사는 “2017년 민유숙 대법관을 지명할 때도 남편이 안철수 전 대표의 최측근인 문병호 전 국민의당 의원이라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문 대통령은 민 대법관을 임명했다”고 전했다.

당시 청와대는 유 본부장에 대해 “공직생활 초기부터 통상 분야에서 활동해온 최고의 통상 전문가”라며 “굵직한 통상 업무를 담당하면서 쌓아온 업무 전문성과 실전 경험, 치밀하면서도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당면한 통상 분야 현안을 차질 없이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초의 여성 본부장이 된 유 본부장은 일본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금지 문제를 둘러싼 WTO 2심에서 승소했다.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뒤집으면서 그 능력을 입증해보였다.

여성 최초 실장급 고위공무원 이력
일본 농수산물 2심 승소…능력 입증

무역 분쟁의 최종심 격인 상소기구는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역 제한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에서 일본의 손을 들어줬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결정을 뒤집고 모두 한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상소기구는 세슘 검사만으로 적정 보호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수입금지와 기타 핵종 추가 검사를 요구한 조치는 무역 제한이라고 본 1심 패널 판정을 파기하면서 과도한 조치가 아니라고 봤다.

앞서 1심 패널은 한국의 수입 규제 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SPS) 협정에 불합치된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SPS 관련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것은 처음이다. 다만 상소기구는 한국 정부가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해 일본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절차적인 부분만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WTO 상소 기구가 우리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판정한 데 대해 시민단체들이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 ▲ 유명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 측은 “국민 안전이 승리했다. 1심 패소라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한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24일 당시 유 본부장은 WTO 차기 사무총장에 도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당일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유 본부장은 “WTO 사무총장이 되면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출마의 변을 밝혔다. 한국은 이번이 세 번째 WTO 사무총장 도전이다.

1994년 김철수 상공부 장관과 2012년 박태호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출마했으나 최종 선출에는 실패했다. 차기 사무총장 선출 레이스는 브라질 출신 호베르투 아제베두 현 사무총장이 임기 1년을 남기고 지난달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선거 초반 구도는 흥미진진하게 짜였다. 입후보자 8명 중 미국·유럽연합·중국·일본·인도 출신은 없다. 세계무역기구 총장 선출 규정에 지역 안배가 ‘고려사항’으로 돼있으나 특정 지역마다 순번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국익에
도움될 것”

외신과 세계무역기구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안팎에서는 사실상 여성 후보 간의 대결로 압축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은행에서 25년 근무한 이력을 발판으로 국제사회에서 ‘정치적 헤비급’으로 평가받는 오콘조이웨알라가 먼저 등록을 마쳤고, 이어 유 본부장이 도전장을 낸 뒤에 모하메드가 막판 가세했다. 유 본부장이 모하메드의 출마를 사전에 감지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모하메드는 2015년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의장을 맡는 등 막강한 ‘국제통상 헤비급’으로 불린다. 일각에서는 “모두 특유의 언변과 뛰어난 조직 장악력을 갖춰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 정부 선거캠프도 ‘여성 후보 3파전’을 선거판 형세로 판단하고 전략을 짜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는 유 본부장에 대해 명확한 찬반 의사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수출규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의 사무총장 후보를 향해 경계심을 갖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에 따라 WTO를 둘러싼 한-일 정부의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데 이어, 일본은 한국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도전을 적극적으로 저지할 태세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유 본부장이 도전하는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상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대응과 세계무역기구 개혁 등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인지가 중요하다”며 “그런 관점에서 일본도 선출 프로세스에 확실히 관여해 나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마감 전날 오후까지 유 본부장을 포함해 멕시코, 나이지리아, 이집트, 몰도바 등 5개국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가장 유력한 주자였던 필 호건 유럽연합(EU) 무역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한국인 첫 사무총장 배출’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가운데, 일본의 견제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전 세계 외교망을 총동원해 ‘중견국·중재자론’을 앞세워 회원국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은 164개 회원국별로 후보 선호도를 조사해 지지도가 낮은 후보부터 탈락시켜 한 명만 남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종 선출까지 통상 6개월이 걸리지만, 현재 사무총장이 8월 말에 사임한다고 밝힌 만큼 리더십 공백을 줄이기 위해 절차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높다.


일본 언론도 유 본부장의 출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눈치다.

정부도 
대통령도

<요미우리신문>은 유 본부장에 대해 “한국과 수출관리 강화를 놓고 대립하는 일본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거리”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지통신>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서 사무총장이 나와 국제적 발언력을 높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도 “한국 출신 사무총장이 탄생할 경우 일본의 통상정책에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WTO에 제소된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문제가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국과 일본의 기싸움도 치열하다. 세계무역기구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원국의 무역정책 전반을 논의하는 회의를 진행했고, 지난 6일 일본 차례가 됐다. 

40여개 국가·지역 대표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한국 대표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한 반도체 원자재 등 수출관리를 강화한 조치는 정당한 이유가 없어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고 일본 방송 NHK가 보도했다.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한 셈이다.

결국 유 본부장이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 최종 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 8일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유 본부장은 최종 결선에서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와 일대 일 대결을 펼친다.

최종 결선에서 오콘조이웨알라 후보와 유 본부장 여성 후보 두 명이 맞붙게 되면서 ‘새로운 여성 리더십’이라는 구호는 이제 무의미해졌다. 유 본부장이 결선 무대에 내세울 두 개의 칼날은 현직 통상 장관이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우위인 국력이다.

유 본부장은 처음부터 후보 8명 중 유일한 현직 장관이라는 점을 어필해왔다. 특히 WTO가 각종 갈등으로 위기에 봉착해 난관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이 무기는 그를 최종 관문으로 끌어올리는 데 빛을 발했다.

WTO는 세계 경제 1·2위 국가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짙어지는 보호무역 색채,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통상 차질과 경기 침체 등 난제에 직면했다. 여기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분쟁 해결 방식이 지나치게 중국에 친화적이라며 사실상 WTO를 보이콧하고 있다.

이에 유 본부장은 미국과 유럽을 잇달아 순방하며 “다양한 국가와 통상 협상을 타결시킨 경험을 갖고 있으며 현직 통상장관으로서 정치적 역량을 지닌 본인이 이 같은 WTO 개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적임자”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경쟁자인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는 비록 현직은 아니지만, 나이지리아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했으며 세계은행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인지도가 높다는 부분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인 세 번째 WTO 사무총장 도전
나이지리아 후보와 2파전…가능성은?

둘째는 국력이다. 전 세계에 뻗은 한국 인맥과 자원을 총동원해 ‘아프리카 대세론’을 무너뜨린다는 복안이다. 당초 이번 선거는 아프리카에서 아직 한 번도 사무총장이 나온 적이 없어 아프리카 두 후보 간 결선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다.

결선까지 가게 된 유 본부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7월부터 최근까지 스위스, 미국, 프랑스, 스웨덴 등을 방문해 각국 대사와 주요 인사를 만나 활발한 유세 활동을 벌였다. 
 

물론 아직은 낙관하기 어렵다. 최대 투표권을 보유한 아프리카 대륙이 결선 과정을 거치며 2명의 후보 중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로 자동 단일화가 이뤄져 표가 집중될 수도 있다. 또 한국과 무역분쟁이 얽혀 있는 타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선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이집트 정상과 잇따라 정상 통화를 하고 WTO 사무총장 선거 결선에 진출한 유 본부장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이날 오후 5시30분에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와 통화한 데 이어 오후 6시에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통화했다.

문 대통령은 통화에서 “지난 1∼2차 라운드에서 보여준 유 본부장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단합된 지지에 감사하다”며 “차기 사무총장은 WTO를 개혁해 자유무역 체제를 수호하고 다자무역 체제의 신뢰를 회복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든 대륙에 걸쳐 폭넓은 지지를 받는 유 본부장이야말로 WTO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최적임자”라며 지지를 당부했다.

이에 베텔 총리와 콘테 총리는 유 본부장의 결선 선거 진출을 축하하면서 뛰어난 역량과 WTO 개혁 비전, 통상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유 본부장의 선전을 기원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오후 10시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도 통화했다.

앞서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선출을 위해 총력 지원을 약속한 문 대통령은 지난 7월부터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호주, 러시아, 독일,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정상과 통화하고 지속해서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요청해왔다. 

일본 경계
지원 총력전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를 표하며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베텔 총리와 콘테 총리는 한국의 모범적인 코로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총리, 세사르 기예르모 카스티요 레예스 과테말라 부통령과 통화를 하고 유 본부장을 지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명희 남편 과거 막말 논란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남편 정태옥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의 과거 막말 논란이 재조명되고 있다. 

정태옥 전 의원은 제 20대 국회 초선 국회의원으로서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해 2014년 8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대구광역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6년 5월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체제가 출범하자 새누리당 원내부대표에 임명됐다.

같은 해 12월 정우택 원내대표 체제에서도 유임됐다.

그는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이혼하면 부천 가서 살고 망하면 인천 가서 산다”는 발언을 해 부천 및 인천 시민들에게 큰 질타를 받았다. 

자유한국당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곳에서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며 “지방에서 생활이 어려울 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 그런 일자리를 가지지 못하지만, 지방을 떠나야 할 사람들이 인천으로 오기 때문에 실업률, 가계부채, 자살률이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해당 발언은 ‘이부망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여야 모두에게 큰 비판을 받았으며 이후 정 전 의원은 사과와 함께 자유한국당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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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