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25·26) 시래기, 아욱

서민들의 희망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시래기 ⓒpixabay

시래기

조선 후기 박제가·유득공·이서구와 함께 사가(四家)로 명성을 날렸던 이덕무의 작품, 농촌 집에서 씀(題田舍, 제전사) 중 일부로 이야기 시작해보자.

菁葉禦冬懸敗壁(정엽어동현패벽)
겨울 넘기려 시래기 누추한 벽에 매달고
楓枝賽鬼挿寒廚(풍지새귀삽한주)
액 막음하려 단풍가지 차가운 부엌에 꽂네

상기 글에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집안에 액을 막기 위해 즉 나쁜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단풍나무 가지를 부엌에 꽂았다는 대목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집안에 액운을 쫓아내기 위해 행했던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단풍나무 가지로 액을 쫓는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런데 그 구절에 함정이 숨어있다.

楓(풍)이란 글자 단독으로 쓰이면 단풍나무를 의미하지만 구절 전체 내용을 살피면 단풍나무가 아닌 신나무를 지칭한다. 신나무는 단풍나무 과의 한 종으로 과거 액운을 쫓는다는 기록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 글에 등장하는 楓枝는 단풍나무 가지가 아니라 신나무 가지로 해석해야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풍나무 가지로 해석한 이유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뜻을 한 번 더 새겨보라는 의미에서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물론 상기 글에 등장하는 菁葉(정엽) 즉 시래기에 대해서다.

菁葉에서 菁은 ‘순무’를, 葉은 물론 ‘입’을 의미하며 시래기는 푸른 무청을 겨우내 말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눈여겨봐야 할 단어가 등장하는데 바로 무청이란 단어다.

무청은 한자로 蕪菁으로 ‘순무’를 의미하는 蕪와 ‘우거지다’라는 의미의 菁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해당 단어에 등장하는 菁은 ‘정’이 아닌 ‘청’의 음가를 지닌다.

여하튼 시래기 하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집이 가난해서 시래기죽도 못 먹을 형편’이란 말이다.

이 말은 시래기가 지난 시절 구황식품으로 서민들로부터 각광받았었음을 의미한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필자 역시 어린 시절부터 시래기와 상당히 친숙했었다.

초가 처마 여기저기에 볏짚을 꼬아 엮은 새끼줄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와 노르스름한 흙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다.

당시에는 시래기로 주로 된장국을 끓여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혹 시래기와 선지를 함께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을 먹기도 했다.

시래기 된장국도 고소했지만 선지를 넣고 끓인 시래기 선짓국은 참으로 별미였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선지에 대해 이야기하자.


지금이야 선지를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주변에 도살장이나 정육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자주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동네를 드나들던 장사들 중에 지게에 혹은 짐자전거에 커다란 깡통에 가득 담은 선지를 가지고 와서 팔고는 했었다.

어린 시절 동네 어귀에서 선지 장사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고는 했다.

저만치에서 선지 장사가 모습을 드러내면 급하게 어머니를 찾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선지를 구입하여 ‘시래기 선짓국’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먹을 음식이 다양해지자 시래기는 우리네 실생활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저 소수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전락했고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가난했던 시절에 추억의 단편으로 물러섰다.


그랬던 시래기가 현대에 들어 별미 식품 또 건강식품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시래기에 함유돼있는 영양 성분 때문임은 불문가지다.

이 대목에서 시래기란 명칭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자.

그 어원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과거에는 거친 채소 즉 식용하기에 변변하지 않은 채소들을 모두 시래기라 칭한 바 있다.

그를 염두에 둔다면 왜 시래기란 이름이 생긴 지 알 듯하다. 

구황식품으로 각광, 가난했던 시절 추억의 단편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솟구치는 느낌

아욱

필자가 정치판에, 한나라당 중앙사무처 축구부 감독으로 있을 당시에 일이다.

토요일이면 새벽같이 국회 운동장으로 달려가 축구시합을 벌이고는 사우나에 들러 땀을 씻어내고 어김없이 찾아가는 집이 있었다.

바로 아욱국 전문 집이었다.

된장에 아욱을 넣고 끓인 국인데 먹고 나면 전날 숙취가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은근하게 솟구치는 느낌이 일어나 언제나 아욱국을 찾았었다.

그런데 필자만 그런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응희 역시 다음과 같은 작품을 남긴다.

葵(규)
아욱

綠葵盈樊圃(녹규영번포)
녹색 아욱 채마밭에 가득하니田家屬暮春(전가속모춘)
농가는 늦은 봄이로세沃葉津多滑(옥엽진다활)
기름진 잎에 진액 많고柔莖味更新(유경미갱신)
부드러운 줄기 맛 더욱 산뜻해氣踰蘇子筍(기유소자순)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香過季鷹蓴(향과계응순)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네王公知此物(왕공지차물) 
왕공이 이 물건 알았다면 安得入吾脣(안득입오순)
내 입에 어찌 들어올 수 있겠나

이응희에 의하면 규 즉 아욱의 기운은 소자의 죽순보다 낫고 향기는 계응의 순채보다 낫다.

소자는 중국 송(宋)나라의 소동파 즉 소식(蘇軾)을 가리키는데 그의 시 ‘녹균헌(綠筠軒)’에 ‘밥에 고기가 없는 것은 괜찮으나,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안 되네.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파리하게 할 뿐이나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지. 사람의 파리함은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의 속됨을 고칠 수가 없다네.’ 한데서 온 말로 아욱이 그 죽순보다 뛰어다는 의미다.

또 계응(季鷹)은 진(晉)나라 장한(張翰)으로 그는 혼란한 세상에 벼슬살이를 나갔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별미인 농어회와 순채국을 그리워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인물이다.

즉 아욱 향기가 계응이 그리워했던 순채보다 월등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葵(규)를 아욱이라 칭했을까.

그 답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타난다.

‘俗名아옥’이라는 즉 葵의 속명은 ‘아옥’이라 기록되어 있는 점을 살피면 왜 이름이 아욱인지 능히 짐작되리라 본다.

중국에서는 아욱이 채소의 왕으로도 불린다고 하는데 그 이유 충분히 알 듯하다.

이를 위해  내친김에 이규보 작품 아욱(葵, 규) 감상해보자. 

公儀捘去嫌爭利(공의준거혐쟁리)
공의휴가 밀쳐버린 건 이익 다투기 싫어서고
董子休窺爲讀書(동자휴규위독서)
동자가 돌보지 않음은 책 읽기 위해서네
罷相閑居無事客(파상한거무사객)
재상 그만두고 일없이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
何妨養得葉舒舒(하방양득엽서서)
잎이 무성해진들 무슨 관계 있겠는가

公儀(공의)는 중국 춘추 시대 노(魯) 나라의 재상인 공의휴(公儀休)로 재상으로 있으면서, 국록을 먹는 자들이 백성들과 이익을 다투는 것을 꺼렸다.

한번은 자기 집 밭에 난 아욱을 삶아서 먹어 보고 맛이 있음을 알자 남김없이 뽑아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농민들이 재배한 채소를 사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지의 발로라 한다.

동자(董子)는 중국 전한시대의 대학자인 동중서(董仲舒)로 한때 학문에 열중해 3년 동안이나 자기 집 아욱 밭을 들여다보지 않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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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