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때린’ 남편 살인사건 전말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0.19 10:41:34
  • 호수 12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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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끝내려 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가정폭력의 결말은 살해였다. 40년 동안 구타당한 아내가 남편을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아들 A씨가 살해에 가담한 것도 숨기려고 한 사실이 드러났다. 
 

▲ ⓒpixabay

지난 5월12일 경찰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A씨의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출동해보니 둔기로 수차례 맞은 아버지 김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집 바닥엔 염산 등도 쏟아져 있었다. 범인은 어머니 송씨였다. 그는 경찰에 출석해 “가정폭력을 참지 못하고 남편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단독 범행?

하지만 열흘 뒤 경찰은 A씨를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이 두 사람을 공범으로 봤기 때문이다. 경찰은 A씨가 범행 당시 같이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어머니 송씨를 추궁했고, 수차례 단독범행을 주장했던 송씨는 결국 A씨와 함께한 범행의 전말을 털어놨다.

사건 당일 오후 5시43분. 울산의 자택에서 김씨는 송씨에게 요금제 2만5000원에 스마트폰을 구매한 일에 대해 따졌다. 김씨는 “야, 이 돌대가리 같은 X아! 니가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아나. 와, 간 크게 요금을 2만5000원짜리로 했노”라며 송씨의 목을 졸랐다.

당시 집에는 A씨가 이혼한 뒤 송씨가 맡아 키우던 손자가 있었다. 손자가 곧바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B씨에게 전화했고, 그는 112에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고 있다”고 신고했다. 경찰들이 출동했으나 송씨가 남편에 대한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3시간쯤 뒤 집에 들어온 아들 A씨와 김씨가 낮에 있었던 일을 두고 다툼을 벌였다.

송씨가 김씨에게 “우리 둘이 죽어야 끝난다”며 베란다에 있던 염산 1통을 건넸지만 그는 마시지 않았다. 이때 김씨가 송씨를 또 다시 주먹으로 폭행했고 A씨는 주먹으로 김씨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후 A씨는 집에 있던 둔기를 가지고 나와 김씨를 내리쳤다. A씨는 경찰에 “오랜 기간 지속된 가정폭력을 끝내려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김씨가 쓰러지자 이를 본 송씨는 A씨의 범행을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쓰러진 남편의 입 안에 염산을 부으려 했다. 하지만 의식이 있던 김씨가 입을 열지 않았다.

이후 송씨는 A씨가 사용한 둔기를 들어 남편을 수차례 내리쳤고 결국 김씨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이 같은 사실은 6번의 경찰 조사 중 마지막 조사에서야 밝혀졌다.

아들에 이어 부인이 둔기로 때려
부인하다 마지막 조사서 내막 밝혀

A씨는 어머니의 진술과 각종 증거가 제시된 후에서야 자신도 범행에 가담한 것을 시인했다. 검찰이 뒤늦게 범행을 시인한 이유를 추궁하자 그는 “둔기로 아버지를 내려친 사실이 기억나질 않아 진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살해에 가담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머니를 지켜드리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송씨가 “제 잘못이니 아들만은 살려달라”고 재판장에 애원하자 A씨는 “가정을 못 지킨 자신이 원망스럽고 아버지, 누나에게도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검찰은 송씨가 가정폭력을 피하려고 2019년 3월 별거에 들어갔으나 아들 A씨가 아버지 김씨와 재결합을 권유한 점을 추궁했다. 별거 당시 아들은 전세금 6000만원을 들여 송씨의 새 거처를 마련해줬는데, 이후 지난 4월에 재결합하자 전세금을 돌려받아 재개발 아파트를 사들였다.
 

▲ 울산지방법원

검찰 조사에 따르면 송씨는 재결합을 원치 않았다.

이에 대해 A씨는 “아버지가 별거 후 아파트 3층에서 추락해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병 간호가 필요했고,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돈 때문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A씨가 둔기로 김씨 머리를 때려 송씨 범행을 유발한 점, 범행 후 송씨게 둔기를 발로 민 점, 범행 1시간 후에야 경찰에 신고한 점, 수사 내내 아버지에게 미안해 하지 않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었던 점도 지적했다.

변호인들은 40년간 지속된 가정폭력이 살인의 원인이라며 감형을 주장했다. 근거로 김씨가 송씨를 둔기로 때려 머리와 팔 등을 수차례 부상하게 한 점, 아들도 재떨이 등으로 아버지에게 맞았고, 딸 역시 지속된 폭력으로 자살 시도까지 하고 서울로 거처를 옮긴 점 등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75년 지인 소개로 만나
결혼생활 내내 가정폭력

송씨는 어려운 집안환경으로 인해 10대부터 생계를 책임지다 1975년 지인의 소개로 김씨를 만났다. 이후 결혼 생활 내내 가정폭력에 시달렸으나 자녀들에게 불우한 가정환경을 대물림할 수 없다는 생각에 40년가량을 참고 살았다. 송씨는 사건 후 경찰 조사를 받으며 “자신의 범행”이라며 아들을 감싸기도 했다.

검찰은 송씨에게 징역 12년, 아들 A씨에게는 징역 22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배심원 9명 중 7명은 송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나머지 2명은 징역 5년의 의견을 냈다. 아들 김씨에 대해서는 4명이 징역 7년으로 다수 의견을 차지했다.

울산지법 형사11부는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죄질이 좋지 못하다”면서도 “송씨가 40년 동안 심각한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순종했고, 자녀와 손자 양육에 헌신한 점, 이웃들이 한결같이 불행한 가정사를 듣고 선처를 탄원하는 점, 피고인이 재판 과정 내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참회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송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잘못 참회

A씨에 대해서는 “아버지를 살해한 것은 패륜적인 범죄다.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를 둔기로 때린 것이 이 사건을 일으킨 점, 어머니가 범행하도록 조력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불리한 정황”이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으로 고통을 겪어온 것으로 보이는 점, 우발적인 범죄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모친 살해 형량은?

흉기로 어머니를 수차례 찌르고 목을 졸라 살해한 40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는 지난 14일 존속살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41)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치료감호를 받을 것과 형 집행 종료 후 보호관찰 5년, 정신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다만 검찰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청구는 A씨가 형 집행 후 재범할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꾸준히 망상장애와 이에 따른 심신상실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A씨의 정신 상태가 잠자던 모친을 갑작스레 살해할 만큼 불안정하지 않았고, 의사결정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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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