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현대차그룹 새 수장 정의선

지휘봉 잡고 새로운 시대 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정의선 체제가 본격 가동되면서 현대차그룹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20년 만에 총수가 교체된 만큼 관심이 집중된다. 기업문화 혁신에 앞장서며 주목을 받은 만큼, 정의선 시대의 현대차그룹에 대한 기대가 모이고 있다.
 

▲ 정의선 현대차 회장 ⓒ현대·기아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4일 현대차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기존 회장직을 수행했던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추대됐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은 이날 오전 임시 이사회를 개최하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신인 회장 선임 안건을 보고했다. 각 사 이사회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의견과 함께 지지 의사를 밝혔다.

20년 만에
총수 교체

정 회장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감안해 별도의 취임식은 열지 않았다. 대신 영상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취임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 회장은 이날 “현대차그룹의 모든 활동이 인류의 삶과 안전, 행복에 기여하고 다시 그룹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평소 지론인 ‘고객 존중과 행복’을 힘줘 말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모든 활동은 고객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고객이 본연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여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돼야 한다”며 “고객의 평화롭고 건강한 삶과 환경을 위해 모든 고객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이동수단을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고객의 가치를 인류로 확장, 이를 위한 새로운 도전과 준비를 주문했다.

정 회장은 “인류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위해 세상서 가장 혁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해 고객에게 새로운 이동 경험을 실현시키겠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수소연료전지를 자동차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인류의 미래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마트시티 같은 상상 속의 미래 모습을 더욱더 빠르게 현실화시켜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회장은 나눔을 통해 사랑받는 기업으로의 변화도 역설했다.

젊은 감성·파격행보
새 바람 불어 넣는다

그는 “현대차그룹은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나가고, 그 결실들을 전 세계 고객들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주주,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사회의 다양한 이웃과 소중한 결실을 나누고, 이웃과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열린 조직문화 구현에 앞장설 것도 다짐했다.


정 회장은 “전 세계 사업장의 임직원 모두가 개척자라는 마음가짐으로 그룹의 성장과 다음 세대의 발전을 위해 뜻을 모은다면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임직원의 귀중한 역량이 존중받고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소통과 자율성이 중시되는 조직문화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회장은 범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선대회장과 현대차그룹을 성장시킨 정몽구 명예회장의 업적, 경영철학 역시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기아차

정 회장은 “두 분의 숭고한 업적과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는 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고자 한다”며 “미래를 열어가는 여정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안 되면 되게 만드는’ 창의적인 그룹 정신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힘을 모아 노력하면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그룹을 총괄하는 부회장 역할을 맡게 되면서 3세 경영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당시 정 회장의 승진에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인사 배경을 글로벌 통상 문제 악화와 주요 시장의 경쟁구도 변화 등 경영환경이 급변에 통합적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몽구 회장이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창의적 정신
긍정 마인드

현대차그룹은 같은 해 12월 사장단을 전격 교체하며 정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주요 계열사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결과, 정몽구 명예회장을 보좌했던 핵심 인사들은 2선으로 물러나났다. 대신 정 회장 체제를 위한 세대교체형 인사들을 전진 배치했다. 특히 연구개발(R&D) 부문을 책임지는 자리에는 정 신임 회장이 직접 영입한 외국인 임원을 앉혀 주목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서 굵직한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기아차 사장 당시 디자인경영을 통해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킨 바 있다. 또 현대차 부회장 재임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이끌었다. 비슷한 시기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선보이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에 올라선 뒤로는 그룹의 미래 혁신 과제를 제시하고, 핵심 사업을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세계 최고 완전자율주행 기술 확보를 위해 합작 기업 ‘모셔널’을 설립하고, 다양한 글로벌 회사들과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어 미래 친환경 에너지인 수소의 가능성에 주목, 수소 생태계 확장에 앞장섰다.

정 회장의 첫 공식 일정은 ‘수소’였다. 정 회장은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 민간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정 회장은 이날 회의에 현대자동차 수소전기 차량인 ‘넥쏘’를 타고 와 눈길을 끌었다.


수소경제위원회는 대한민국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8개 관계부처와 산업계, 학계, 시민단체 등 분야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다.
 

▲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현대·기아차

정 회장은 이날 차세대 연료전지 시스템 기술이 적용된 수소 상용차 개발과 보급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로 현대차는 지난 7월 세계 최초 수소전기 대형트럭 양산체제를 구축하고, 스위스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소트럭 2종과 수소버스 1종을 수출한 바 있다. 이어 대형 수소 트랙터를 출시했고, 준중형 및 중형트럭 전 라인업에 수소전기차 모델을 마련하면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상태다.

현대차는 오는 2030년까지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 등에 수소 상용차를 누적 8만대 이상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 공식 일정 
‘수소 경제’

회의를 마치고 나온 정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회의가 잘됐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며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좀 더 경쟁력 있게 다른 국가들보다 빨리 움직여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날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회장은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약 2년 전 무산 된 지배구조 개편 재추진을 고려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 2018년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와 규제환경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주주들의 반대로 개편 계획을 취소했다.

정 회장 선임 이후 그룹 지배권 강화와 안정적 승계를 위해 복잡한 지배구조를 정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당장 개편 비용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으며 발생하는 증여세 등은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이날 정몽구 명예회장의 당부 사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항상 품질에 대해 강조했다”며 “성실하고 건강하게 일하라고 자주 말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당부 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의 경영 계획에 대해 정 회장은 “좀 더 일을 ‘오픈’해서 할 수 있는 문화로 바꾸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며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수렴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그룹 인사에 대해서는 “수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1970년생으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휘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 과장으로 입사했지만 곧 유학길에 올랐다. 정 회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대학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객 존중·행복 ‘사랑받는 기업’
파격 또 파격…앞으로 행보 주목

이후 일본 이토추상사 뉴욕지사서 근무했고 현대자동차 구매실장으로 재입사했다. 국내영업본부 부본부장과 현대기아차 기획총괄본부 부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기아차 대표이사와 현대차 부회장 자리에 오른 뒤, 최근 현대차그룹 회장으로 최종 선임됐다.

정 회장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바닥부터 시작했다. 실무부터 배워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으라는 지침이 있었다. 정 회장은 소박하고 겸손한 성격으로 현대차에 젊은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기업문화 혁신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부친을 대신해 그룹 총수 역할을 맡았던 지난 2년간 현대차 기업문화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3월부터 사내에 완전 자율복을 도입했다. 구두와 정장 차림서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하고, 반바지를 입고 업무를 보기도 했다. 파격적인 변화였다.

또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에 유연근무를 도입했다. 하루 8시간 근무 시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현대차 임원 시스템도 개편됐다. 연말에 시행되는 정기 임원인사는 연중 수시 인사 체제로 전환됐다. 기존 ‘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부사장·사장’ 6단계였던 임원 직급제는 ‘상무·전무·부사장·사장’ 4단계로 재편됐다.

기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5단계 일반직 직급 체계는 ‘매니저·책임매니저’ 2단계로 변경됐다. 주요 10대그룹 가운데 정기 공채를 처음 없애기도 했다. 대신 각 부문별로 필요한 인재를 수시 채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정 회장의 파격 행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은 직원들과의 ‘셀카’다.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양재동 사옥서 직원 1200명과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당시 정 회장은 “과거 5~10년간 그룹이 정체됐다. 트렌드를 바꾸기 위해 변화하는 것은 좀 부족했다. 좀 더 과감한 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내 반응이 좋았던 타운홀 미팅은 현재 현대차 임원들이 직원들과 소통하는 사내 미팅 상시 운영 체제로 이어졌다.

시스템 개편
연말 인사는?

현대차그룹은 최근 코로나19 이슈서도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룹은 지난 3월 연수원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경주인재개발연수원과 글로벌상생협력센터를 대구와 경북 지역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한 치료시설로 제공한 바 있다. 그 다음달인 4월에는 경기지역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오산교육센터를 지원했고, 해외 입국자 임시 생활시설 용도로 파주인재개발센터를 제공했다.

또 코로나19 피해 복구 등을 위해 전국재해구호협회에 50억원을 기탁했고, 코로나19 환자들이 제때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도록 전국 소방본부 구급차에 대한 정밀 점검 및 소모품 교환 등을 무상으로 시행한 바 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의선 회장 취임 후…국민 호감도 좋아졌다

현대자동차그룹 수장으로 취임한 정의선 회장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취임 전에 비해 크게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4일 이사회를 열고 정 회장의 취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다음날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소장 김다솜, GBR)는 뉴스·커뮤니티·카페·유튜브·블로그·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지식인·기업/조직·정부/공공 등 12개 채널 22만개 사이트를 대상으로 정 회장에 대한 긴급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했다.

분석 기간은 10월10일부터 15일 오전 9시 반까지다. 분석결과 정 회장이 그룹 수장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전 3일간 일별 정보량은 63~178건에 불과했으나 13일 처음 취임 뉴스가 뜨면서 1554건으로 늘었다.

취임 당일인 14일엔 5014건까지 급증했다. 15일엔 오전 9시 반까지 630건을 기록, 자정까진 무난하게 수천 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6일간 정 회장 호감도를 살펴본 결과 취임 소식이 알려지기 전 3일간 긍정률은 14.3∼30.2%에 그쳤으나, 취임 소식이 전해진 지난 13일부터 3일간 긍정률은 34.7~52.1%로 급등했다.

국민들은 정의선 회장의 취임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사회 직후 빅데이터 분석 결과
연관어 1·2위는 ‘고객’ ‘국민’

부정률의 경우에도 취임 소식이 알려지기 전 3일 동안 4.5∼10.0%였으나, 취임 소식이 알려진 13일부터 15일 오전까지엔 2.2∼5.2%로 절반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정 회장의 취임을 기점으로 두고 부정적인 눈길이 되레 줄어든 것이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는 새로 도입한 ‘TPOP' 4가지 분석기법(시간·공간·인물·사건/상황)’중 ‘인물’ 연관 데이터도 조사했다.

취임 전후 6일간 정 회장 포스팅 자료 중 어떤 인물들이 많이 언급됐는지 알아보는 분석기법이다.

분석 결과 최근 6일간 정 회장 포스팅 중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은 ‘고객’으로 2333건에 달했다.

정 회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인물 연관어 2위는 ‘국민’으로 984건을 기록했으며 3위는 ‘아들’(724건), 4위는 ‘창업자’(689건), 5위는 ‘아버지’(665건) 순이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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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