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속칭 ‘몸캠피싱’으로 온라인이 떠들썩하다. ‘몸캠’은 알몸으로 하는 화상채팅을 일컫는 말. 최근에는 이 몸캠을 악용해 남성에게 음란행위를 요구한 뒤 동영상을 저장해 돈을 요구하는 신종 공갈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로운 보이스피싱 방식으로 진화한 몸캠피싱 사기.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낚는 그 실체를 추적해봤다.
대학생 A씨는 어느 날 연락이 뜸한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받기 위해 인터넷 메신저에 접속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낯선 남성과 여성이 A씨에게 친구 신청을 해왔다. 이 여성은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랜덤으로 친구를 추가했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A씨에게 접근했다. 마침 외로웠던 A씨는 이 여성과 하루정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눴다.
다음 날까지 대화가 이어지자 여성은 “A씨의 얼굴이 보고 싶다”며 화상채팅을 제안했고, A씨는 여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PC에 달린 화상카메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채팅을 나누다 여성은 “몸캠을 해보고 싶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낯선 여성과 채팅
잘못했다간
A씨는 “채팅 사기에 대해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긴 하지만 손은 어느덧 화상카메라를 내리고 몸을 비추고 있었다”라며 “금전적인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여성이 외로워서 이러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외모도 예쁜 여성이 먼저 제안한 몸캠은 호기심과 성적욕망을 자극하기 충분했다”고 털어놨다.
둘은 서로의 몸을 보면서 성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결국 호기심에 시작한 화상채팅은 각자 옷을 벗는 수위까지 갔다. 이 여성은 자신의 옷을 벗으며 “내가 먼저 벗을 테니까 너도 벗어봐”라며 A씨를 유혹했다. 여성이 옷을 벗는 순서에 따라 하나둘씩 벗다보니 A씨는 어느새 나체상태가 됐다. 급기야 이 여성은 야한 행동을 보여 달라고 졸랐고 A씨는 음란한 행위까지 여성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은 A씨도 모르는 사이 여성의 PC에서 녹화되고 있었다. A씨가 이것이 ‘사기’임을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초반에 이 여성과 같이 친구 등록을 했던 낯선 남성의 협박이 이어졌다. A씨의 알몸 장면을 녹화했다며 돈을 요구한 것이다.
이 남성은 A씨에게 메일을 보내 “싸이월드, 메일, 네이트온 아이디 등을 모두 알고 있고, 다 캡처했으니 이것을 공개하겠다”며 300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한 사이트의 주소를 문자로 보내왔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하자 A씨의 알몸사진 캡처장면과 가족사진, 그리고 신상과 관련된 고향, 집주소, 전화번호, 메신저 친구목록 이름과 전화번호가 쭉 나열돼 있었다.
A씨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경찰에 갔는데 손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며 “하루가 지나자 협박이 더욱 거세졌고, 가족들에게 전화가 오는 등 심각해지더라. 주변사람들에게 무시해달라고 부탁한 뒤 메신저, 싸이월드 등을 모두 해지했는데도 신경이 쓰여서 일상생활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미모의 여성 “알몸채팅하자” 접근해 음란행위 유도
동영상 저장 후 협박…“인터넷 유포하겠다” 돈 뜯어
이런 사례는 의외로 많다. 경찰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의 방식이 나날이 진화하면서 화상채팅을 통한 몸캠피싱 피해사례가 빈번히 접수되고 있다. A씨와 비슷한 수법으로 협박을 당하다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뜯긴 것은 물론, 지난달에는 한 남자대학생이 협박을 받고도 돈을 주지 않겠다고 버티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동영상이 올려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몸캠피싱 수법은 젊은 여성이 불특정 남성에게 메신저 채팅으로 말을 걸어 “화상채팅을 하면서 서로 몸캠을 하자”고 제안한다. 남성이 이에 응하면 음란행위를 하도록 유도한 뒤 이를 녹화하고, 녹화영상을 빌미로 돋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경찰은 이같은 몸캠피싱 사기가 중국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의 PC를 통해 파악한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추적해 보니 소재지가 중국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중국에 근거를 둔 일당이 중국동포나 탈북여성을 고용, 채팅으로 남성을 유인케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이 같은 수법으로 남성 수십명한테서 돈을 뜯어낸 중국동포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자매, 모자, 친구관계인 이들은 중국에서 고용한 K(31?여)씨를 인터넷 VPN(가상 IP생성 프로그램)을 통해 모 사이트 화상채팅에 접속, 나체쇼와 낯 뜨거운 성행위를 유도한 장면을 녹화한 후 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 현금을 입금 받아 내는 등 1인당 50만~100만원씩 모두 45명에게 2400만원을 챙긴 혐의다. 이들은 또 입금사실을 확인한 뒤 약속한 동영상 파일을 삭제하는 대신 추가로 돈을 더 요구하기도 했다.
“알몸 보여줘”
찍었으니 돈 내놔!
이들의 범행은 한국에서 취업비자로 일하면서 입금된 돈을 인출해 중국에 있는 아들에게 보냈다가 해당 계좌를 추적한 경찰에 덜미를 붙잡혔다.
일선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 메신저피싱 사기가 과거와 다르게 특정인을 대상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그 방법도 단순히 돈을 빌려달라는 과거의 방법과 다르게 상대방의 약점 등을 이용한 협박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런 범죄의 경우 IP주소가 중국 등 외국일 확률이 높고, 메신저 아이디를 추적해 봐도 대부분 해킹된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어 범인을 검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후에도 유사 피해를 봤다며 경찰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꼬집었다.
돈 뜯기고
신고도 못하고
피해자들이 자신이 저질렀던 몸캠 행위가 떳떳지 못하다고 여겨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하거나 조사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경우 언제, 어떤 식으로 피해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어 경찰이 범인을 추적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과거에 몸캠피싱 사기를 당했다는 한 남성은 “너무 억울해서 항의라도 했다간 ‘가족이나 직장에 알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정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부적절한 행동이 외부로 알려지면 사회적 위신이 깎이는 데다 떳떳하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망신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피해자 역시 “사기인걸 알고 제2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도 혹시 나한테는 어떤 처벌이 있는 건지, 그냥 내가 바보였다고 잊어버려야 하는 건지 갈등의 기로에 선다”며 “결국 똥 밟았다는 셈 치고 돈 보내준 뒤 조용히 끝내는 게 나를 위해서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십만원을 털린 한 남성이 전화상담만 받고 직접 조사를 받지는 않더라”며 “남자형사가 조사할 테니 오라고 해도 안 왔다”고 전했다.
서울시내 또 다른 경찰서 관계자는 “상대방과 합의를 했다면 채팅에서 음란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다만 인터넷상의 이런 행위가 범죄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돈 안 주고 버티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동영상 올려 지기도
중국 근거지 조직적 범행…일탈 꿈꾸는 당신의 지갑 노린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채팅창 속 몸캠녀에게 잘 넘어가는 것일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정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뭐에 홀린 것 같다”고 말한다. 몸캠녀에 걸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일당들은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고, 경계심을 늦추는 나름대로 완벽한 상황을 조성하기 때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몸캠녀에게 걸려드는 큰 요인은 피해자 스스로 원인 인자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한다. 성욕과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호기심 등이다.
평범하고 순진한 남성이라도 누구나 이성에 대한 환상이 있고 이런 유혹이 왔을 경우 정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어진다. 여성보다 성욕이 강해 범죄에 쉽게 속는 남자들이 어떤 관점에서는 ‘약자’로 간주되는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남성은 자신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상대의 유혹을 자신의 매력에 반해서 그러는 것으로 착각한다. 특히 낯설고 예쁜 여성과의 채팅은 남성의 강한 본능을 자극해 이성을 마비시키고 쉽게 ‘이브의 유혹’에 넘어가게 한다”고 지적했다.
왜 몸캠녀의
유혹에 걸려들까?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낚는 채팅사기는 과거부터 사회문제화 되어 왔다. 비교적 간단한 수법이지만 여전히 당하는 남성들이 많다. 이 경우 스스로 타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낯선 여성이 채팅으로 접근하면 아예 응하지 않고, 솔깃한 제안을 하더라도 ‘의심’부터 하고보는 것이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
오늘도 교묘하게 진화한 보이스피싱의 몸캠녀들은 은밀한 일탈을 꿈꾸는 남성들을 향해 유혹의 날갯짓을 하며, 인터넷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