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유준상 대한요트협회 회장 ‘위기의 체육계를 말하다’

“대한체육회, 승부욕만 있고 스포츠맨십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한체육회가 안팎으로 위기다. 내부로는 고질적인 병폐가 또다시 드러났고 외부로는 정부와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40여년 동안 체육계에 몸담은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은 대한체육회의 변화와 혁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가 유 회장을 만나 대한체육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봤다.
 

▲ 일요시사와 특별대담 갖고 있는 유준상 대한요트협회 회장

1920년 조선체육회로 출범한 대한체육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대한체육회는 아마추어 스포츠를 육성하고 경기단체를 지도·감독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체육 사단법인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으며 17개 시·도 체육회와 78개 회원종목단체 등으로 구성돼있다.

대표 체육단체
창립 100주년

최근 대한체육회는 안팎으로 진통을 겪는 중이다. 트라이애슬론 유망주 고 최숙현 선수 사태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선수 인권침해 문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한체육회는 단호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지만 가맹단체의 관리기구인 만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체육정책과 예산의 전권을 쥐고 있는 문체부와의 갈등도 현재진행형이다. 내년 1월18일로 예정된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위한 정관 개정 승인 문제를 두고 문체부는 4개월 넘게 가타부타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분리해야 한다는 문체부의 주장에는 대한체육회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다.

40여년간 체육계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유준상 대한요트협회 회장은 “대한체육회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요트협회장 인준 문제로 대한체육회와 1년여간 법정 공방을 벌였던 유 회장은 체육계 원로로서 쓴 소리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7일 오전 서울의 한 호텔서 유 회장을 만났다.

변화와 혁신에 실패
정부와 관계도 삐그덕

대한요트협회장, 21세기 경제사회연구원 설립자,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고려대 특임교수, 방송통신대학교 운영위원, 방통대 중어중문학과 2학년 학생 등 유 회장이 갖고 있는 직함은 무려 10개가 넘는다. 유 회장이 여러 분야서 광범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그의 뿌리는 체육계서 찾을 수 있다.

1974년 대한레슬링협회 이사로 국가대표 전지훈련 단장을 맡아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유 회장은 국회 88서울올림픽특별위원회 위원, 대한인라인롤러연맹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롤러스포츠연맹 명예회장, 사단법인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 명예회장, 대한요트협회 회장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유 회장은 최근 대한체육회를 둘러싼 안팎의 논란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특히 2016년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이후 첫 회장을 맡은 ‘이기흥호(號)’의 지난 4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체육인들과의 소통, 정부로부터 자주성 확보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 협회기 흔드는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

유 회장은 “2016년 통합 이후 대한체육회는 선수 (성)폭력, 선수 선발 과정서의 불공정성 등 과거의 관습적인 적폐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문체부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도 눈앞에 있었지만 최근 들어 되레 상호충돌 양상이 심화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이어 “문체부와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대립구도를 벗어나 국민생활과 체육발전 중심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이기흥 회장의 대한체육회는 체육인들과의 소통을 통한 개선 논의와 대책 수립 과정서 부족함을 드러냈다. 또 통합적이고 자주적인 대한체육회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2016년 통합
그 후 4년…

유 회장은 대한요트협회장 인준을 두고 대한체육회와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을 벌였다. 1년여에 걸친 갈등 과정서 유 회장은 대한체육회 행정의 부끄러운 단면을 봤다고 주장했다. 회장 인준에 대한 전문가들의 충분한 자문을 얻어 법리적 판단을 제시했지만 끝내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세금뿐만 아니라 행정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는 비판이다.

2019년 9월2일 법정 공방 끝에 대한요트협회장으로 인준된 그는 직원 임금체불, 재정자립도 6.2%로 가맹단체 중 꼴찌라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유 회장은 대한체육회의 지원만으로는 대한요트협회를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본인의 경험과 인맥을 동원해 정상화에 나섰다. 그 결과 밀린 직원들의 임금과 퇴직금, 선수들의 포상금을 1년 만에 정리했다.
 

▲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 ⓒ고성준 기자

그는 “평생 살면서 처음으로 소송을 해봤다. 대한체육회는 공정을 기반으로 스포츠맨십을 발휘해야 할 조직이다. 그런데 그런 조직서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을 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소송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서 조직의 성패는 리더의 정무적 판단력과 보좌진의 유능한 행정력에 달렸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종목단체장을 해온 경험에 비춰봤을 때 매끈하게 진행되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스포츠과학센터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제안들이 어떤 특정한 벽에 막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좋은 아이디어와 정책이 대한체육회 차원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성폭력 등 적폐 여전…상호충돌 양상도 
“체육발전 중심의 근본적인 개혁 필요”

그러면서 대한체육회의 변화와 혁신은 시스템이나 행정체계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역설했다. 그는 “성적에만 목매면서 단기 계약에 휘둘리는 선수와 지도자의 상황이 최숙현 사태 같은 비극을 만들었다.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어야 좋은 성적이 나온다”며 “또 심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이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도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대한체육회는 물론 종목단체 직원들에 대한 교육과 복지가 열악한 점도 문제로 꼽았다. 젊고 유능한 인재를 육성해 공감성과 효율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글로벌 시대에 국제 감각이 뛰어난 인재가 유입될 수 있는 채용 절차를, 그리고 헌신적인 직원들을 위한 연금, 평생고용 등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유 회장은 인터뷰 내내 변화와 혁신에 대해 언급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체육계 또한 그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 문화의 중심이 동양으로 옮겨오는 상황서 우리나라가 그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체육계도 코로나19로 인한 뉴 노멀 시대에 발맞춰 지금의 체육환경을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으로 ‘한국 해커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했다. 비대면 훈련과 개인훈련, 경기력 향상을 위한 기술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기본 인프라 구축과 장비, 첨단 분야의 기술경쟁력과 디지털 생활체육을 위한 자립도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체육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드 코로나
언택트 시대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대한체육회가 체육청이나 체육부 등 문체부로부터 독립된 전문기관이 돼야 한다. 일부 문체부 직원들로 대한민국 체육 전체를 관리하고 있는 현행 시스템에선 갈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문체부 산하에 있기엔 대한체육회의 규모가 이미 방대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그는 문체부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NOC(국가올림픽위원회)를 분리하는 방안을 권고한 것에 대해 대한체육회가 대의원 총회를 거쳐 반대 의견을 의결한 것을 예로 들었다.
 

▲ ▲ⓒ고성준 기자

유 회장은 “IOC는 76개국 154명의 위원으로 구성돼있고, NOC는 20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중 IOC와 NOC의 기능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는 국가는 약 86%다. 문체부가 IOC와 NOC의 분리를 권고하는 근거”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IOC와 NOC의 기능이 분리된 나라들은 정부나 국가체육기관(NSC)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운영되고 있다는 속사정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로부터 IOC와 NOC가 정치나 재정으로 전혀 독립된 상태가 아니다. 분리 운영하는 나라가 많다는 이유로 우리도 분리해야 한다는 접근 방식은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각 국가는 그 나라의 정치·경제·사회, 또 지리적 여건에 따라 관습적인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제약 없이 스포츠와 국민체육진흥에 있어 동등한 혜택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바로 올림픽 정신이다. 이 정신을 이어가려면 국내체육과 국제체육 간 이원화에 따른 행정소모나 파열음 없이 유기적인 시너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내년 1월 차기 회장 선거
말많은 이기흥 재선 도전

대한체육회는 내년 1월 차기 회장 선거를 앞두고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서 재선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서도 이미 몇몇 후보군을 정해두고 차기 대한체육회장을 점쳐보고 있다. 유 회장은 대한체육회장 선거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지만 언론에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는 상태다.

그는 “조직의 수장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덕성이 우선시 돼야 한다. 수장이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하기 어렵지 않겠나”라며 “비리사건에 연루됐거나 선거 과정서 지적을 받았거나 성적 스캔들이 있는 경우 리더가 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또 “능력은 물론 봉사에 대한 헌신성, 애국심, 사명감도 수장의 덕목이라고 본다”며 “대한체육회는 문체부와 계속 논의해야 하는 만큼 정치권과의 소통 능력도 필수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 회장은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대한체육회가 적폐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현 상황이 체육인으로 매우 아쉽다. 대한체육회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사실에도 공감한다”면서도 “지금은 주변의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생각하는 수장의 모습은 능력 있고 도덕적으로 깨끗하면서 소통이 되는 인물이다. 내가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 대한체육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체육인으로서 대한체육회는 물론 우리나라 체육 발전을 위해 내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결단을 내리겠다.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듯하다”고 언급했다. 

유 회장은 평생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길 위를 걷고 뛰던 마라토너로서의 자신을 언급했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0회가량 완주했고 인천서 부산 하구둑까지 1000㎞에 달하는 거리를 걷고 뛴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17개 시도를 한 바퀴씩 뛰면서 체육인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도덕성 높은
수장 필요해

유 회장은 “대한체육회는 물론 국가 전체가 위기 상황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과 체육인들이 마음을 모으면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우리나라가 문화와 문명의 제일 선도국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나부터 노력하겠다. 죽을 때까지 걷고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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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