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떠도는 ‘이해찬 상왕 정치설’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9.21 11:10:13
  • 호수 12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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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뒤에 아른거리는 그림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돌격명령’을 내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추미애 방어’에 나섰다. 이낙연 대표가 ‘언동조심’을 경고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전 대표가 ‘상왕정치’를 하고 있으며, 이 대표는 ‘허수아비’일 뿐이라는 말까지 정치권서 나돈다. <일요시사>는 퇴임 전 의심이, 퇴임 후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는 ‘이해찬 상왕정치설’을 추적했다.
 

▲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인터뷰서 이 전 대표는 “검찰의 여러 개혁안이나 인사는 안 다루고(추 장관) 자녀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니 이게 뭐하자는 것인지”라며 “본질을 갖고 얘기하면 좋은데 카투사를 한참 얘기하다가 잘 안되나 보니, 따님 얘기를 들고 나와 억지 부리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본격적 방어
설화 잇따라

이를 기점으로 민주당 의원들의 추 장관 방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등 야권서 제기하는 의혹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같은 날 설훈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이 참 억울하기 짝이 없게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대변인은 지난 16일 “추 장관의 아들이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했다”는 논평을 냈다가 논란만 일으켰다.

추 장관의 아들이 무릎 수술을 받은 것은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함이었으며, 이는 안 의사의 유훈인 ‘위국헌신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을 실천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국민의힘 윤주경 의원은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이런 모습을 보려고, 이런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셨을까. 어떻게 감히 안 의사 말로 비유하는지 너무 참담하다”며 한탄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민주당은 안 의사 부분을 삭제한 뒤 수정 논평을 냈다. 박 원내대변인은 언론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적절하지 않은 인용으로 물의를 일으켜 깊이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좀 더 신중한 모습으로 논평하겠다”고 사과했다.

황희 의원은 지난 12일 “(제보자인 당직사병의)언행을 보면 도저히 단독범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당직사병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공범 세력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도 전했다.

황 의원은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며, 당직사병의 실명을 공개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당직사병의 얼굴과 실명은 종편 채널 TV조선이 먼저 공개했다고 방어했지만, 비판은 폭주했다.

돌격명령? 일제히 음모론
‘언동조심’ 경고 무색해

같은 당 동료였던 금태섭 전 의원도 20대 청년에게 ‘단독범’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거론하며 “제정신인가”라고 쏘아붙였다. 결국 황 의원은 실명을 공개한 부분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공범 세력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보수단체인 자유법치센터는 지난 14일, 황 의원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부정청탁금지법은 공익신고자의 인적사항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거나 공개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도 황 의원을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누구든지 공익신고자라는 사정을 알면서 그의 인적사항이나 그가 공익신고자 등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또는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할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홍영표 의원은 황 의원의 공범 세력설을 확대, 정치 공작설까지 제기했다.
 

▲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지난 16일 서욱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서 홍 의원은 “과거에 군을 사유화하고 군에서 정치에 개입하고 그랬던 세력들이, 옛날에 민간인 사찰 공작하고 쿠데타도 일으켰던 이들이 이제 그게 안 되니, 그 세력이 국회에 와서 공작을 하고 있다”며 “사실을 조작하고 왜곡한다.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말이다”라고 소리쳤다.

국민의힘이 추 장관 아들 논란을 공작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초 민주당 내부에서는 추 장관 아들 논란에 함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자칫 무리한 방어로 국민들에게 비쳐진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였다. 더군다나 추 장관 아들 논란이 ‘국민의 역린’인 고위공직자 아들의 병역 문제이기에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 반하는 도의적 문제로 번질 경우 당의 이미지는 심대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6일 추 장관 아들 논란에 대해 도의적 차원서 사과한 이유다. 

고발까지
이어져…

박 의원은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청년들에게 그들이 갖는 허탈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교육과 병역은 온 국민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국민의 역린”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신중론’이 민주당 내부서 꾸준히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기류에도 불구하고 이 전 대표의 발언 이후 순식간에 바뀌었다. ‘설화’(말을 잘못해 받게 되는 해)라는 지적은 신경 쓰지 않고 추 장관 엄호에 나선 모습니다. 이 전 대표의 발언은 돌격 명령의 역할을 한 셈이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자당 의원들에게 한 ‘경고’가 무색하다.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있기 이틀 전 최고위원회의서 “몇몇 의원들께서 국민들께 걱정을 드리는 언동을 한 게 사실”이라며 “저를 포함해 모든 의원들이 국민께 오해를 사거나 걱정을 끼치는 언동을 안 하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 전 대표의 발언, 잇단 민주당 의원들의 추 장관 엄호 발언은 이 대표의 ‘언동 조심’과 궤를 달리한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취임 2주 만에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 전 대표 때와 사뭇 대비된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이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 소속 의원들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입단속’을 시키며 당의 중심을 잡았다.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의혹과 금태섭 전 의원의 징계,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당내 자유로운 의견 제시를 막는 비민주적 처사라는 일각의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친노(친 노무현) 좌장’의 경고 효과는 확실했다.

‘이해찬 상왕정치설’이 정가를 뒤덮었다. 현 지도부가 이 전 대표의 ‘수렴청정 체제’가 아니냐는 논란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대표는 허수아비고 이분(이 전 대표)이 실제 민주당의 대표”라며 “이 대표는 의원들에게 말조심하라 그랬다. 반면 이 전 대표는 의원들에게 나서서 적극적으로 추 장관을 방어하라고 오더를 내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이 전 대표의 퇴임을 앞두고 상왕정치설이 불거진 바 있다. 이 전 대표의 당내 위상과 입김을 감안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당에 정치적 영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 전 대표가 퇴임 후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점도 이러한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수렴청정
예견된 수순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교류 및 상호협력관계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민간단체다.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다. 언제든지 당의 주요 인사를 만날 수 있는 요건이다.

마침 이 전 대표와 가까운 김태년 원내대표가 당 지도부에 있다. 이 대표는 앞서 ‘언동 조심’을 경고하며 “김 원내대표께서 이에 관한 고민을 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한 바 있다. 김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자당 의원들의 언동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수렴청정 논란은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15일 “상왕정치나 수렴청정으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면서도 “비문(비 문재인)이 사라진 당내 역학구도를 보면,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여전히 의원들에게 크게 들릴 수 있다. 이 대표는 6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것 아닌가. 상대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가 정권 창출과 176석 거대여당을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한 점도 이 대표보다 당내 영향력이 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빅브라더’다. 친노, 친문의 좌장이자 7선 국회의원 출신인 이 전 대표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경력을 가진 이는 여야를 통틀어도 많지 않다. 
 

▲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참여정부 시절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이 후보는 국무총리였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의 상왕은 이해찬, 안철수의 상왕은 박지원, 태상왕은 김종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이 전 대표가 당 대표던 시절 당청관계가 민주당 쪽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7월 이 전 대표는 청와대와 정부가 6·17 부동산 대책 등을 결정하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까지 배포한 뒤 당정협의에 나선 점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이런 식으로 하면 각 상임위서 당정협의를 받아주지 말라”고 지시했다.

청와대를 향한 강한 경고성 발언이었다.

7개월 대표의 한계
‘원보이스’ 흔들려

청와대는 이 전 대표의 노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당의 입장은 생각을 통보하듯(당정협의를) 운영하지 말고, 충분히 대화하고 협의하자는 것 아니냐”며 “대화하는 상황서 한쪽이 대화가 부족하다고 하니, 우리는 앞으로 충분히 대화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우회적으로 사과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접 국회를 찾아 이 전 대표에게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보고했다. 계획 발표 이전에 이뤄진 보고였다. 홍 부총리는 이 전 대표를 만난 뒤 기자들 앞에서 “한국판 뉴딜과 관련해 관계 부처 간 협의는 마무리된 상황”이라며 “보완을 위해 이 (전)대표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국회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이 대표는 전남도지사,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 등을 거쳐 6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했다. 대중적인 인기는 높지만, 이 전 대표처럼 자당 의원들에게 ‘강한 그립’을 행사하기 힘들다.

당내 자기 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이 대표를 괴롭히는 꼬리표 중에 하나다. 지난 2014년 7월 전남도지사로 당선된 이후 이 대표는 여의도서 멀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20대 국회서 속칭 ‘이낙연계’로 통하는 의원은 극소수였다.
 

▲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21대 총선서 이 대표가 후원회장을 맡은 후보들이 대거 여의도에 입성했지만, 그들을 이낙연계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한부 당 대표’라는 점도 이 대표의 발언이 이 전 대표의 그것보다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대권’이 최종 목표인 이 대표는 2022년 3월9일 열리는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내년 3월9일 전까지 당권을 내려놔야 한다.

대권 1년 전 대권에 도전하는 당 대표는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하는 민주당 당헌·당규에 의해서다. 현실적으로 7개월 후 떠나는 이 대표의 발언력은 2년의 임기를 다 채운 이 전 대표의 그것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

대권까지
흔들리나?

‘원팀·원보이스’는 민주당의 힘이었다. 단일대오를 이룬 민주당은 지난 21대 총선과 6·13지방선거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낙연 체제서 이 같은 원보이스는 위기를 맞았다. 통일되지 않은 개별 목소리가 난무한다. 이 대표가 이 같은 난관을 뚫고 민주당의 차기 대권 후보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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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