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성인물 파문 조준기 ‘여행에 미치다’ 대표

6년 공들인 탑 6일 만에 ‘와르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국내 유명 여행 소개 채널 ‘여행에 미치다’가 도마에 올랐다. 게시물 사이에 성관계 영상이 포함됐기 때문. 사측은 이를 삭제하고 사과에 나섰지만 여론의 비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고, 조준기 대표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과 함께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 ⓒ조준기 대표 인스타그램

‘여행에 미치다’는 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곳이다. SNS 채널 구독자만 수백만명에 이른다.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처음부터 치밀하게 기획된 것은 아니다. 그저 재미와 취미로부터 비롯됐다.

수백만
구독자

지난 2014년 도서관서 취업 준비를 하던 한 청년은 문득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가 떠올린 건 여행이었다. 무작정 SNS에 페이지를 개설했다. 스스로 여행 공부라도 시작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여행 정보와 사례를 꾸준히 소개하자 조금씩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SNS에 여행 관련 페이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해외여행에 대한 심적 진입장벽을 낮춘 점이 결정적이었다. 평소 해외여행이 낯설고 두렵기만 했던 이들에게 ‘나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것이다.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서도 다양한 행사와 사업이 진행됐다. 운영에 한계가 오자 그는 회사를 설립했다. 그렇게 조준기 여행에 미치다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

여행에 미치다는 승승장구했다. 페이스북에만 기존 채널을 두지 않고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그 결과 페이스북 202만명, 인스타그램 125만명, 유튜브 40만명에 달하는 거대한 콘텐츠 회사로 성장했다.

정부와 기업 등에서는 협업을 하자는 러브콜을 보냈다. 조 대표는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거나 대학교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잘 나가던’ 여행에 미치다는 최근 위기에 빠졌다.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다. 코로나19 여파로 고사 직전에 놓인 여행사와 궤를 같이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름 아닌 음란물 게시 논란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여행에 미치다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행지 소개글이 올라왔다. 강원도 평창 양떼목장이었다. 그런데 해당 게시물 사이에 동성 간 성관계 영상이 포함돼있었다. 구독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해당 소식을 접한 일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해명 요구가 빗발쳤다. 여행에 미치다 측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측은 불쾌감을 드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여행에 미치다는 “관리자로서 신중히 신경 쓰지 못했다”며 “미숙한 운영과 조치로 많이 놀라시고 실망하셨을 분들께 다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철저한 관리를 통한 재발 방지를 언급했다.


조 대표도 사과글을 올렸다. 그는 게시물을 직접 업로드한 당사자가 자신이라며 경위를 설명했다.

여행 게시물 사이에 성관계 영상
구독자들 충격…잇단 비판·절독

조 대표는 “영상은 직접 촬영한 것이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 다운로드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적절한 처벌을 받겠다고 밝혔다. 또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비판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게다가 누리꾼들 사이에선 해당 영상이 불법촬영물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여행에 미치다는 이를 의식한 듯 1차 사과문을 삭제하고, 2차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측은 “해당 영상은 불법 촬영물이 아닌 웹서핑을 통해 다운로드 된 것으로 확인된다”면서도 “직접 촬영하지 않았더라도 단순 소지 자체만으로도 문제”라며 법적 처벌을 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여행에 미치다는 업로드를 진행한 담당자와 함께 사법기관에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진행 상황이나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

재발 방지책도 1차 사과문에 비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법정 의무교육 외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성윤리 관련 교육이었다. 여행에 미치다 측은 문제 해결이 완료될 때까지 전 채널 운영을 정지하겠다고 밝혔다.
 

▲ ⓒ ‘여행에 미치다’ 인스타그램

사측은 마지막으로 “관련 내용을 인지한 즉시 삭제 조치 후 1차 사과문을 올렸으나 관련 경위와 후속 대책 등 보다 명확한 사과문을 올려야 한다고 판단해 기존 사과문은 부득이하게 숨김 처리했다”며 1차 사과문 삭제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우선 2차 사과문에는 조 대표의 사퇴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앞서 조 대표는 “직을 내려놓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조 대표는 자신이 ‘문제의 영상을 업로드한 당사자’라고 직접 밝혔지만 2차 사과문에는 조 대표의 이름이 아니라 ‘업로드를 진행한 담당자’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구독자들의 실망감은 현실로 드러났다. 이들은 구독을 취소하며 등을 돌렸다.

경찰 내사도 시작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여행에 미치다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른 시일 내에 관계자들을 소환할 방침이다.


경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불법 성적 촬영물 소지 또는 유포 혐의다. 성폭력처벌법에 따르면 불법 촬영물 소지만으로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불법 촬영물 제작과 유포의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뜬금 영상
도대체 왜?

조 대표에게는 공든 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지난 1일 조 대표는 SNS 계정에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50분경 “모두에게 미안하다”며 “이제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내 갈 길로 떠나려고 한다. 끝까지 이기적일 테니 차라리 미워하고 원망해주길”이라고 전했다.

조 대표는 “사건은 그 자체만으로 과실을 따져 달라”며 “불필요한 인과로 불필요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 시국이니 장례식은 가족끼리만 해달라”며 부조는 남은 가족들과 직원들이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여행에 미치다 계좌로 보내달라며 계좌번호를 남겼다.

다행히도 조 대표는 이날 오전 11시경 서울 용산구 모처서 발견됐다. 당시 의식이 불명확한 상태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받으면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재 호흡과 맥박은 모두 돌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조 대표가 게시한 글은 이날 오후 1시경 삭제됐다. SNS는 비공개로 전환됐고, 현재 삭제된 상태다.


여행에 미치다는 ‘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였다. SNS 페이지로 시작한 채널은 회사로 성장했고, 평범한 학생이던 조 대표는 유명인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일련의 모든 과정과 함께 회사가 무너지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여행에 미치다는 지난 2014년 3월 자그마한 SNS 페이지로부터 시작됐다. 조 대표는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홍콩 야경 사진을 보고, 어떻게 하면 직접 보면서 살아볼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무역학과에 진학하라는 말을 듣게 됐다. 실제로 조 대표는 무작정 무역학과만 골라 대학에 진학했다.

무역학을 전공하던 그는 한 무역경진대회를 통해 21살 겨울 싱가포르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이후 대학교 프로그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대외활동 우수자로 꼽혀 캐나다 코트라 인턴십 과정을 3개월 받기도 했다.

여행에 관심이 더욱 기운 계기는 군대의 영향도 한몫 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대표는 카투사에서 복무했다. 주변에는 미군을 비롯해 외국에 거주하거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을 보면서 조 대표는 자신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 이후 복학한 그는 워킹홀리데이를 비롯한 해외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조 대표는 여느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취준생들처럼 스펙을 쌓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조 대표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은 여행이라며 무작정 SNS에 페이지를 만들었다.

여행 좋아
시작한 일

조 대표는 주로 잡지나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를 가다듬어 콘텐츠로 제작했다. 차츰 방문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페이지가 급성장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기는 2014년 11월 세계여행자 이야기를 소개하면서부터였다.

350만원으로 세계 일주를 떠나고 돌아온 21살 여성 여행자의 이야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해외여행을 간다는 건 오늘날과 같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조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나도 해외 여행을 갈 수 있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때가 바로 이때라고 회상한 바 있다.

SNS 페이지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0만명에 달하는 비공개 커뮤니티까지 활성화됐고, 전업으로 페이지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들어오기도 했다.

페이지가 점점 성장하면서 광고가 붙기 시작했다. 동시에 ‘돈 벌려고 페이지를 운영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동반됐다. 조 대표는 광고를 올리더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선별했다. 다른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는 ‘네이티브 애드’를 만든다는 방침이었다.

수익은 배지나 스티커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거나, 여행 관련 행사를 여는 데 사용됐다.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온라인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2016년 3월 조 대표는 ‘트래블홀릭’이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건물 지하 50평 전체를 보금자리로 택했다.

주 수입은 단연 여행 관련 광고였다. 광고 제작을 대행하기도 했다. 또 여행 시 필요한 물품 판매와 여행 상품 마케팅도 담당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여러 행사를 진행하면서 전문가를 초청,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유명인사가 된 조 대표는 여러 기관을 방문하며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항공사에서는 여행 콘텐츠 트랜드 분석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실시하기도 했다. 대학교 특강에 나서기도 했다.

사측 해명·사과에도 여론 부글부글
경찰 내사 착수, 채널 당분간 중지

지자체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조 대표는 토론 패널로 참석하거나, 정부 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여행과 SNS 활용 방안 등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올해에는 오히려 조 대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라는 콘텐츠가 위축됐지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그의 견해를 필요로 했다. 조 대표가 ‘여행’이라는 키워드와 맥을 같이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방증이었다.

조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조 대표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서 “당장 여행을 가기 힘든 분들이 우리 콘텐츠를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용기도 얻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서 가고 싶을 때 여행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게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지적도 있다. 중요한 건 많은 분들이 우리 콘텐츠를 보며 ‘이런 여행도 할 수 있구나’ ‘저렇게도 여행을 갈 수 있구나’ 하며 결국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여행에 미치다는 여러 채널서 게시물을 추가로 게재하고 있지 않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사과문이 마지막이다.

여행에 미치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만큼 이번 의혹을 접한 이들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는 분위기다. 게다가 조 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게재한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 이후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갑론을박
현재 진행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좋아했던 채널인데 충격적이다” “무책임한 것 아니냐” “계좌번호를 적는 것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안타깝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잘못된 선택은 남은 주변인들에게 큰 상처로 남을 텐데 안타깝다” “해결하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될 텐데 안쓰럽다” “결과가 나오고 비난해도 늦지 않다” “의식이 돌아와서 다행이다” 등이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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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