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잠룡 선두’ 이재명의 용트림

친문 잡아야 대권 열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이재명 경기지사의 ‘대권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최근 그는 다수의 여론조사서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이 지사는 여권의 주류 세력인 ‘친문’ 지지층과 오랫동안 척을 지면서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이 지사의 돌파구는 무엇이 될까.
 

▲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이 지사는 재판의 굴레서 벗어난 이후 각종 이슈를 재빠르게 선점하며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중이다. 그는 최근 각종 이슈에 대한 확고한 메세지로 사이다 행보를 이어가면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국민들은 미래에 대해 확실한 해법을 제공하는 지도자에 열광한다. 정치권서도 이 지사의 돌파력과 탁월한 정치적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원 메시지
사이다 행보

이 지사의 큰 강점은 그가 ‘스토리 있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이 지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공장서 일을 하다 장애를 입었다. 큰 형은 공사판을 떠돌다 한쪽 다리가 절단됐고, 여동생은 일하던 화장실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하지만 유년시절 지독했던 가난과의 전쟁은 그에게 ‘밑바닥이니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일념을 가지게 했다.

이는 이 지사를 한국서 가장 핫한 정치인으로 도약하게 한 큰 자산이다.

아울러 이 지사는 팬덤 정치에 능하다. 2030 세대, 서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줄 안다. 화끈한 언변은 물론이고, 추진력 역시 상당하다. 포퓰리즘의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정책으로 1300만명에 이르는 경기도민들의 공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확장성이 있다는 점도 큰 경쟁력이다. 이 지사의 정치 원천엔 중도층 핵심으로 불리는 40대 이하 지지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보수층서도 이 지사의 지지율은 이낙연 의원보다 높다. 아울러 ‘기본소득’과 같은 어젠다로 정의당 지지층까지 이 지사가 이낙연 의원을 앞섰다.

이 지사는 정치인이 아닌 ‘행정 관료’로서 인정 받은 인물이다. 그는 지난 7월14일 발표된 리얼미터 전국 15개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71.2%의 응답자들로부터 ‘긍정’ 평가를 받으며 시도지사 1위를 차지했다.

출범 2년을 맞은 민선 7기 경기도 도정 평가 여론조사서도 이 지사의 경기도정에 대해 ‘잘했다’고 응답한 도민이 79%를 기록했다. 특히 주요 정책 분야별 평가 중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도민의 90%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일 잘하는 행정가 이미지
여야 막론한 확장성 강점

하천·계곡 불법행위 근절 역시 이 지사의 유명한 치적이다. 정부 수립이래 아무도 손 못대던 계곡 불법시설도 모두 철거하고 청정계곡으로 부활시켰다. 현재 경기도 내 계곡서 불법 영업을 하던 1400곳의 시설들이 자진 또는 강제철거된 상태다.

이 지사가 지난해 8월 강제철거 당한 주민들과의 대화를 찍은 영상은 유튜브서 560만명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댓글만 해도 2만2000개가 넘는다. 이 지사의 사이다 행정에 대해 열광하는 댓글이 압도적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 지사는 중도층뿐만 아니라 보수층에서 확장성을 갖고 있지만 기본소득 주장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보층서도 확장성을 갖고 있다. 단순히 외부적인 요인으로 봤을 때 문재인정부의 후반기로 갈수록 이재명 지사가 유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당내에선 이 지사를 두고 다른 해석이 나온다. 당내 세력이 약한 그가 민주당 대권 후보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 악수 나누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의원을 제친 여론조사서도 이 지사는 문 대통령 지지층서 여전히 큰 격차로 이 의원에게 밀렸다. <조원씨앤아이> 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운영을 지지하는 응답자의 51.5%는 이낙연 의원을, 29.1%는 이 지사를 지지했다. 왜 그럴까.

이 지사는 변호사와 성남시장 출신으로 계파가 없다. 변호사가 되어 성남으로 돌아와 시장에 당선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서, 2008년 국회의원 선거서, 2017년 대통령 선거 경선서 모두 패했다. 중앙정치 무대서 밀려나면서 여의도를 통틀어서 ‘비주류’로 꼽힌다. 민주당 내 이재명계 의원도 많지 않다.

끌어안기?
홀로서기?

이 지사는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친문(친 문재인)’ 세력과는 각을 세우며 독자적으로 성장했다. 최근 그가 목소리를 낸 정책들 역시 문재인정부와 결을 달리하면서, 정부와는 독립됐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는 친문 세력, 친문 지지자들과도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이 지사와 친문 세력 간 대립의 시작은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사는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 때 경쟁자였던 문재인 대통령과의 각을 세웠고, 이는 친문 세력 비토의 계기가 됐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지사와 친문 세력의 대립은 정점을 찍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친문 세력 일부는 이 지사를 둘러싼 여러 스캔들을 앞세우며, 이 지시가 당의 유력 주자가 됐을 때 당이 짊어질 리스크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지사는 당시 민주당 경선서 친문 세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전해철 의원과 경쟁했다. 이 과정서 이 지사는 ‘혜경궁 김씨 의혹’ 논란에 휩싸였다. ‘혜경궁 김씨’라는 별명을 가진 트위터 계정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렸는데, 그 계정의 실제 주인이 이 지사의 부인인 김혜경씨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당시 혜경궁 김씨 의혹은 검찰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하면서 일단락 됐지만, 이 지사의 정치적 내상은 결정적이었다.

최근 이 지사의 대법원 결정이 나온 뒤에도 친문 세력은 이 지사의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 지사와 친문 세력 사이의 여전한 정치적 거리감을 방증한 셈이다.

뿌리 깊은 친문 세력의 비토는 계속됐다. 올해 상반기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방식을 두고 정부와 민주당 간 이견이 있었을 당시, SNS상에서 ‘이재명 지사 전 재산 기부’ 해시태그가 줄을 이었다. 정부가 소득 하위 70% 지급으로 방침을 정한 가운데, 보편적 지원을 촉구해오던 이 지사가 문 대통령의 뜻에 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책 소통
관계 개선


최근에는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친문 세력과의 갈등을 들추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지사는 민주당 내 선별적 지급 방안을 제기하는 목소리와 달리 전국민 보편적 지급을 촉구했다.

이 지사는 본인의 SNS에 “민주당 내에서 논쟁이 벌어지자 반기를 들었다거나 불협화음이라고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건전한 논쟁을 반기, 투쟁으로 갈라치기 하며 분란을 조장하지 말길 바란다. 정당은 조폭이나 군대도 아니고 특정인의 소유도 아니다”라며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이 지사가 자신을 비토해 온 강경 친문 지지자들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이 지사는 “언론이 일부러 곡해한 것”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관문을 넘기 위해서는 당내 세력과 조직이 필수다. 이 지사에게 친문 세력을 끌어안는 과제가 남은 것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지난 대선 경선서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빠졌던 것도 이 지사에 대한 친문세력의 비호감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서는 친문 세력의 비토 분위기를 전환시켜야 한다. 이 지사 역시 당내 분위기를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2017년 19대 대선 경선서도 스스로를 “싸가지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민주당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고 그래야 나도 활동할 공간이 생긴다”며 친문 세력에게 손을 내밀기도 했다.

이 지사는 친문 세력을 끌어오기 위해 당 밖에서 먼저 지지율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친문과의 관계 개선만을 위한 정치적 행보는 이 시점서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이재명다운’ 정책 업무능력으로 친문 세력을 포섭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친문 세력에게 진보진영의 승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 잘하는 이재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전략이다.


대선 후보 지지율 1위 우뚝
당 최대 계파 ‘친문’ 과제

이 지사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재명이 우리한테 필요한 존재다’라는 걸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나 내도 선거서 이길 수 있다면 다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에 이재명 아니면 이길 수 없다’ 이런 상황이면 친문 세력이 지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 내 의원들과의 꾸준한 스킨십 역시 중요하다. 이 지사는 최근 정책 소통을 통해 의원들과 관계를 쌓고 있다. 그가 원하는 정책에 대해 어필하면 관심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식이다. 정책 소통도 하고, 민주당 내 의원들과의 관계 개선도 가능하다.
 

실제로 경기도는 여의도 국회서 월 1∼2회 정도 개최하는 정책토론회로 의원들과 꾸준히 교류 중이다.

이 지사는 ‘이재명계’ 의원을 제외하고도 경기권 의원 전반으로 교류를 확장하는 중이다. 지난달 23일 정책토론회 이후에는 이 지사가 김병욱·홍기원·민병덕 의원 등과 여의도의 한 식당서 만찬을 가졌다. 또 지난 13일 정책토론회 직후에도 임종성·송옥주·임오경 의원 등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지사의 정치적 스타일의 한계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 지사의 정치는 역동적이고 강경하다. 기회 포착 능력이 탁월해 ‘준비된 선동가’라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안정감이 다소 부족하고, 행정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편이다. 그의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는 또다른 호소력을 가져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여의도 비주류
안정감 부족 지적

지지율이 가지는 속성 때문에 친문 지지자들도 대선 정국에선 이 지사를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대세 후보로 여길 공산이 높다. 친문 세력이 역시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국면에선 정권 연장이 첫 번째 목표일 것이다. 대표적인 이재명계 인물인 김병욱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 지사가 친문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지지율이 깡패다. 과거 좋지 않은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대선 본선서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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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