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12·13) 더덕, 도라지

'해독에 좋고 천식에 도움'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더덕

신한국당 연수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일이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동료 직원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더덕으로 담근 술을 선물했다.

물론 은근슬쩍 한마디 덧붙였다. ‘거시기에 끝내준다’고.

더덕

거시기에 끝내준다는 말에 혹해서 그 친구가 돌아가자마자 뚜껑을 열고는 급하게 한잔 들이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독하기도 하지만 그 냄새가 마치 카바이트 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카바이트 향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오래전에 포장마차를 방문하면 종종 접하고는 했는데 상당히 불쾌하고 사람이 죽기 일보 직전 몸에서 풍겨나오는 그 냄새와 아주 흡사했다.

그런 연유로 거시기를 떠나 그 술을 하수구에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흐르자 그 친구 남의 속사정은 모르고 슬그머니 다가와 더덕 술 복용 효과에 대해 물어온다.

차마 하수구에 버렸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냥 눈을 찡긋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후일 지방 출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예의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한마디 한다.


“이 친구야, 그게 바로 더덕향이야. 그리고 그 정도 냄새 날 정도면 거의 산삼 수준으로 간주해도 무방한 거야.”

더덕 향기를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저 아쉬움에 씁쓸하게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 더덕이 향약집성방에는 가덕(加德)이라 표기돼있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더할 가’이니 ‘더’라 읽어야 하고 덕은 ‘덕’이라 읽어야 하니 더덕이 이두식 표기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그를 위해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에 실려 잇는 글 중 일부 인용한다.

山菜以爲沙參 山菜方言曰多德,【多音더】 蔓生根可茹

산채는 사삼인데 방언은 다덕(多德)으로 불린다.

多의 음은 ‘더’로 덩굴과 생뿌리는 식용할 수 있다. 

정약용의 변을 빌면 더덕의 한자명은 沙參(사삼)이다.

그 사삼의 우리 명칭이 바로 더덕이라는 의미다. 이로써 더덕이란 명칭에 대한 궁금증이 한 번에 해결된다. 

이제 중국 송나라 시대의 문신인 서긍의 ‘고려도경’에 실려 있는 기록을 살펴본다.

고려의 더덕은 관(館) 안에서 날마다 올리는 나물 가운데 있는데, 형체가 크고 살이 부드럽고 맛이 있다.


약용(藥用)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이 무엇을 의미할까.

더덕이 중국에서는 약으로 쓰이는데 고려에는 너무 흔해 평소 식품으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이후 조선조에서는 더덕이 식용뿐 아니라 약용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동의보감을 살피면 더덕에 대해 산정(疝疔)과 분돈(奔豚)에 그만이라 했다.

산정은 아랫배가 아파서 대소변을 못 보는 것을 이르고 분돈은 아랫배서 생긴 통증이 명치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마치 새끼돼지가 뛰어다니는 듯한 증상을 의미한다.


이는 더덕이 복통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복통에 탁월한 효능… 동의보감에도 실려
흰머리를 검게 하는 도라지, 사포닌 듬뿍

도라지

필자가 어린 시절 자주 접했던 ‘도라지 타령’ 소개해보자.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광우리에 철철 넘누나
(후렴)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짝 다 녹인다

상기 도라지 타령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경기) 지방에 유행했는데, 도라지 타령은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불리고 있다.

이는 도라지가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식물이었음을 입증하는데 상기 노래에서 결론 즉 후렴의 마지막 가사가 일품이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짝 다 녹인다

‘간장을 녹이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는 의미인데 도라지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 도라지 ⓒ신세계백화점

즉 하얗고 곧게 뻗은 도라지 뿌리는 사람의 하반신을 연상시킨 데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남자에게는 여자의 하반신으로 그리고 여자에게는 남자의 하반신으로 말이다.

여하튼 도라지는 한문으로 桔梗(길경)이라 기록하는데 그 사연을 풀어보자.

아니 桔梗서 나무 목(木)을 제외한 吉更만을 놓고 보자.

吉은 ‘상서롭다’라는 그리고 更은 ‘고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도라지는 상서롭고 무엇인가를 개선하는 식물이라는 이야기다.

정말 그런지 과거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자. 

오래전 설날에 마시던 술 중에 도소주(屠蘇酒)라고 있다.

이는 약주의 한 종류로 설날에 괴질(怪疾)과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장수하기 위해 마시던 술인데 이 술이 도라지로 빚었다.

그러니 상서롭다는 의미는 성립된다. 

그렇다면 ‘고치다’라는 의미도 성립될까.

이에 대한 답은 확고하게 '물론‘이다.

과거 여러 문헌서 약으로 사용된 흔적이 나타난다.

심지어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따르면 ‘대변이 막힌 데에는 도라지를 기름에 담갔다가 항문에 꽂으면 즉시 변을 볼 수 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을 정도니 고치는 데에 관한한 언급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송강 정철의 손자인 정호(鄭澔, 1648∼1736)의 작품 감상해본다.

州倅遺以白花桔梗數三莖云。啗之。能令白髮還黑云。戲吟。
사또가 백도라지 세 뿌리 보내주면서 말하기를, 먹으면 하얀 머리가 검게 변한다고 하기에, 재미 삼아 읊다.
 
使君遺我草三莖(사군견아초삼경) 
사또가 내게 도라지 세 뿌리 보내주었는데
却老神方不翅靈(각로신방불시령)   
정신은 물론 늙음 없애는 처방 지니고 있다네  
頭上素絲猶堪黑(두상소사유감흑) 
머리 위 하얀 실 오히려 검게 변하게 하고
難醫澤畔槁枯形(난의택반고고형) 
고치기 어려운 택반의 초췌함 고칠 수 있다네 

*澤畔槁枯(택반고고) : 굴원이 조정의 권세가들에게 미움을 받아 좌천당해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렸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했다고 한다.

정호에게 도라지를 보내준 인물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빌면 도라지가 흰머리를 검게 하는 등 시 내용처럼 실로 무궁무진하다.

물론 정호의 농이 다분히 섞여있지만 고치는 데에는 고래로부터 명성을 구가했던 모양이다.

이제 도라지 효능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도라지는 모습도 인삼과 흡사하지만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 역시 지니고 있다.

사포닌은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추고, 체내 혈당을 낮춰주고 콜레스테롤까지 저하시키며 환절기에 자주 걸리는 호흡기 질환의 증상인 가래를 삭이기도 하는데 도라지의 쓴 맛을 내는 사포닌 때문이다. 

또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함유돼있어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데에도 좋고 폐를 맑게 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줘 스트레스 완화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한다. 

이 도라지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소개해본다.

조선 제 9대 임금인 성종 시절 연산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공조참의였던 이계기가 그를 축하하며 바친 글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桔梗充飢美(길경충기미)
도라지는 주림을 채우는 아름다움이 있네

연산군에게 백성들이 굶주림에 처하지 않도록 농업에 특히 도라지 농사에 주력해달라는 의미다.

그런데 보위에 오른 연산군은 상서롭고 개선의 의미를 지닌 도라지의 본성을 역으로, 즉 파괴의 의미로 받아들인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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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