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12·13) 더덕, 도라지

'해독에 좋고 천식에 도움'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더덕

신한국당 연수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일이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동료 직원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더덕으로 담근 술을 선물했다.

물론 은근슬쩍 한마디 덧붙였다. ‘거시기에 끝내준다’고.

더덕

거시기에 끝내준다는 말에 혹해서 그 친구가 돌아가자마자 뚜껑을 열고는 급하게 한잔 들이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독하기도 하지만 그 냄새가 마치 카바이트 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이 대목에서 잠시 카바이트 향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오래전에 포장마차를 방문하면 종종 접하고는 했는데 상당히 불쾌하고 사람이 죽기 일보 직전 몸에서 풍겨나오는 그 냄새와 아주 흡사했다.

그런 연유로 거시기를 떠나 그 술을 하수구에 버렸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흐르자 그 친구 남의 속사정은 모르고 슬그머니 다가와 더덕 술 복용 효과에 대해 물어온다.

차마 하수구에 버렸다고는 말할 수 없어 그냥 눈을 찡긋거리고 말았다. 

그리고 후일 지방 출신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면서 예의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한마디 한다.


“이 친구야, 그게 바로 더덕향이야. 그리고 그 정도 냄새 날 정도면 거의 산삼 수준으로 간주해도 무방한 거야.”

더덕 향기를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저 아쉬움에 씁쓸하게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 더덕이 향약집성방에는 가덕(加德)이라 표기돼있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더할 가’이니 ‘더’라 읽어야 하고 덕은 ‘덕’이라 읽어야 하니 더덕이 이두식 표기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그를 위해 정약용의 ‘여유당 전서’에 실려 잇는 글 중 일부 인용한다.

山菜以爲沙參 山菜方言曰多德,【多音더】 蔓生根可茹

산채는 사삼인데 방언은 다덕(多德)으로 불린다.

多의 음은 ‘더’로 덩굴과 생뿌리는 식용할 수 있다. 

정약용의 변을 빌면 더덕의 한자명은 沙參(사삼)이다.

그 사삼의 우리 명칭이 바로 더덕이라는 의미다. 이로써 더덕이란 명칭에 대한 궁금증이 한 번에 해결된다. 

이제 중국 송나라 시대의 문신인 서긍의 ‘고려도경’에 실려 있는 기록을 살펴본다.

고려의 더덕은 관(館) 안에서 날마다 올리는 나물 가운데 있는데, 형체가 크고 살이 부드럽고 맛이 있다.


약용(藥用)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이 무엇을 의미할까.

더덕이 중국에서는 약으로 쓰이는데 고려에는 너무 흔해 평소 식품으로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이후 조선조에서는 더덕이 식용뿐 아니라 약용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밝힌다. 

특히 동의보감을 살피면 더덕에 대해 산정(疝疔)과 분돈(奔豚)에 그만이라 했다.

산정은 아랫배가 아파서 대소변을 못 보는 것을 이르고 분돈은 아랫배서 생긴 통증이 명치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이 마치 새끼돼지가 뛰어다니는 듯한 증상을 의미한다.


이는 더덕이 복통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복통에 탁월한 효능… 동의보감에도 실려
흰머리를 검게 하는 도라지, 사포닌 듬뿍

도라지

필자가 어린 시절 자주 접했던 ‘도라지 타령’ 소개해보자.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대광우리에 철철 넘누나
(후렴)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어여라 난다 지화자자 좋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짝 다 녹인다

상기 도라지 타령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경기) 지방에 유행했는데, 도라지 타령은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불리고 있다.

이는 도라지가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식물이었음을 입증하는데 상기 노래에서 결론 즉 후렴의 마지막 가사가 일품이다. 

네가 내 간장 스리살짝 다 녹인다

‘간장을 녹이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애타게 한다는 의미인데 도라지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 도라지 ⓒ신세계백화점

즉 하얗고 곧게 뻗은 도라지 뿌리는 사람의 하반신을 연상시킨 데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남자에게는 여자의 하반신으로 그리고 여자에게는 남자의 하반신으로 말이다.

여하튼 도라지는 한문으로 桔梗(길경)이라 기록하는데 그 사연을 풀어보자.

아니 桔梗서 나무 목(木)을 제외한 吉更만을 놓고 보자.

吉은 ‘상서롭다’라는 그리고 更은 ‘고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도라지는 상서롭고 무엇인가를 개선하는 식물이라는 이야기다.

정말 그런지 과거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자. 

오래전 설날에 마시던 술 중에 도소주(屠蘇酒)라고 있다.

이는 약주의 한 종류로 설날에 괴질(怪疾)과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장수하기 위해 마시던 술인데 이 술이 도라지로 빚었다.

그러니 상서롭다는 의미는 성립된다. 

그렇다면 ‘고치다’라는 의미도 성립될까.

이에 대한 답은 확고하게 '물론‘이다.

과거 여러 문헌서 약으로 사용된 흔적이 나타난다.

심지어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따르면 ‘대변이 막힌 데에는 도라지를 기름에 담갔다가 항문에 꽂으면 즉시 변을 볼 수 있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을 정도니 고치는 데에 관한한 언급이 필요치 않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송강 정철의 손자인 정호(鄭澔, 1648∼1736)의 작품 감상해본다.

州倅遺以白花桔梗數三莖云。啗之。能令白髮還黑云。戲吟。
사또가 백도라지 세 뿌리 보내주면서 말하기를, 먹으면 하얀 머리가 검게 변한다고 하기에, 재미 삼아 읊다.
 
使君遺我草三莖(사군견아초삼경) 
사또가 내게 도라지 세 뿌리 보내주었는데
却老神方不翅靈(각로신방불시령)   
정신은 물론 늙음 없애는 처방 지니고 있다네  
頭上素絲猶堪黑(두상소사유감흑) 
머리 위 하얀 실 오히려 검게 변하게 하고
難醫澤畔槁枯形(난의택반고고형) 
고치기 어려운 택반의 초췌함 고칠 수 있다네 

*澤畔槁枯(택반고고) : 굴원이 조정의 권세가들에게 미움을 받아 좌천당해 못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렸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했다고 한다.

정호에게 도라지를 보내준 인물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빌면 도라지가 흰머리를 검게 하는 등 시 내용처럼 실로 무궁무진하다.

물론 정호의 농이 다분히 섞여있지만 고치는 데에는 고래로부터 명성을 구가했던 모양이다.

이제 도라지 효능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도라지는 모습도 인삼과 흡사하지만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 역시 지니고 있다.

사포닌은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낮추고, 체내 혈당을 낮춰주고 콜레스테롤까지 저하시키며 환절기에 자주 걸리는 호흡기 질환의 증상인 가래를 삭이기도 하는데 도라지의 쓴 맛을 내는 사포닌 때문이다. 

또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함유돼있어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데에도 좋고 폐를 맑게 해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줘 스트레스 완화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한다. 

이 도라지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록이 있어 소개해본다.

조선 제 9대 임금인 성종 시절 연산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공조참의였던 이계기가 그를 축하하며 바친 글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桔梗充飢美(길경충기미)
도라지는 주림을 채우는 아름다움이 있네

연산군에게 백성들이 굶주림에 처하지 않도록 농업에 특히 도라지 농사에 주력해달라는 의미다.

그런데 보위에 오른 연산군은 상서롭고 개선의 의미를 지닌 도라지의 본성을 역으로, 즉 파괴의 의미로 받아들인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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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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