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회 VS 광흥창팀 간 청와대 신 권력지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18 10:20:27
  • 호수 12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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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 멜 군기반장이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3기 청와대 개편의 막이 올랐다. 그 정점은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다. 통상 권력 크기는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에 반비례한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정치권의 통설은 현재도 유효하다. <일요시사>는 청와대의 ‘신 권력지도’를 예상했다.
 

▲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문병희 기자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2기 청와대의 중심이었다. 노 실장이 지난해 1월 취임하자 여권 안팎에서는 ‘군기반장의 귀환’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청와대 기강 잡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떨어지는
카리스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당시 “무엇보다 지금의 난관을 돌파하는 데 공직기강을 잡는 것이 급선무인데, 노 실장이 군기반장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10년 넘게 그와 함께 국회의원 생활을 했으니 그에 대해 알만큼 안다. 한 마디로 평가하면 카리스마를 갖춘 제갈공명 같은 인물이다. 또 시인으로서 부드러움도 겸비했으니 외롭고 힘든 국민들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국민들에게는 힘껏 응원을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기 초에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노 실장은 취임 일성서 ‘춘풍추상’을 거론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청와대 공직자들에게 날린 경고장이었다. 추가로 노 실장은 비서진·비서들에게 업무 내용이 외부로 새지 않도록 입단속도 시켰다. SNS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1기 청와대와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실장이 취임한 지 3주차에 접어들었을 지난해 1월29일 ‘50·60세대 무시 발언 논란’을 야기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논란이 있고 하루 만에 단행된 문책성 인사였다. 이 같은 ‘속전속결’의 배경에는 노 실장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노 실장의 청와대 장악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져만 갔다. 결국 다주택을 소유한 청와대 참모들에게 매각을 권고하는 과정서 약해진 장악력의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12월 첫 번째 권고가 있고난 후 지난 7월 두 번째 권고가 이어졌지만, 청와대 고위 참모 중 8명이 여전히 다주택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노 실장의 경고는 다주택 참모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노 실장의 ‘똘똘한 한 채’ 논란은 그의 장악력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솔선수범
실책 귀결

노 실장 교체론은 야권은 물론 여권서도 불거졌다. 청와대 참모들부터 다주택을 처분하겠다는 ‘솔선수범’ 방침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청와대 비서진을 총괄하는 노 실장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노 실장을 비롯해 비서실 소속 수석비서관(차관급) 인사들은 지난 7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이 유임을 결정했지만, 재신임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언제든 비서실장이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1명의 실장과 5명의 수석, 1명의 차장을 교체했다. 서훈 국가안보실장,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 최재성 정무수석, 김종호 민정수석, 정만호 국민소통수석, 김제남 시민사회수석, 윤창렬 사회수석 등이다. 
 

▲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이를 두고 공식적으로 3기 청와대가 출범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3기 청와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실장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기 비서실장에 대한 하마평도 쏟아지고 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유은혜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중 양 전 원장의 이름이 여권 안팎은 물론 청와대서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문 대통령 임기 후반기는 실세형 비서실장이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위 강한 그립감(정국 장악력)을 가진 사람이 비서실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 3철(양정철·전해철·이호철) 중 양 전 원장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통한다. 

‘벼랑 끝’ 노영민 BH 장악력↓
양정철 설득? 여 핵심 나섰나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전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양 전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과 함께 일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전 원장이 기획했다.

양 전 원장의 장악력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은 여권 내에서 많지 않다. 21대 총선 과정서 그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당의 21대 총선 승리를 이끈 한 축이다. 

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양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지며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임 전 실장은 1기 청와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는 21대 총선서 호남을 넘어 전국 각지를 다니며 지원 유세를 펼쳤다. 
 

▲ 발언하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앞서 정치권 일각에선 21대 총선이 끝난 후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문 대통령 임기 후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른바 ‘순장조’(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 할 참모)다. 

문 대통령의 복심인 양 전 원장이 순장조의 적임자로 거론되는 일은 상식선이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쪽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 후 정치권에선 다시 한 번 양 전 원장의 비서실장행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권력 이동
어디로?

만약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후임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면, 이는 광흥창 팀→재수회→광흥창 팀으로의 권력 재편을 의미한다. 


‘광흥창 팀’은 지난 2016년 두 번째 대선 도전을 준비하던 문 대통령이 꾸린 대선 준비 실무 팀이다.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내 ‘광흥창 팀’으로 불린다. 1기 청와대 비서실장인 임 전 실장을 비롯해 양 전 원장, 민주당 윤건영·한병도 의원,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오종식 기획비서관 등이 핵심이다. 

광흥창 팀은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중심이다. 문 대통령 당선 후 당시 사무실서 근무했던 광흥창 팀 13명 중 12명(비서관급 이상 8명)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끝내 청와대에 입성하지 않은 유일한 1명은 양 전 원장 뿐이다. 

‘재수회’는 정권 실세들의 모임으로 문 대통령의 최측근들로 구성됐다. ‘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회)’이라는 속뜻대로 지금의 문 대통령을 있게 만든 공신들이다. 지난 2012년 대선서 낙선한 문 대통령이 정치권으로 복귀하기 전 그의 야인 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지원한 그룹으로 꼽힌다.

노 전 실장을 비롯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조윤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민주당 박광온 의원 등이 재수회의 중심이다. 신현수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과 탁현민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도 수시로 모임에 참여하는 멤버로 분류된다.

대선 직후 정치권에는 문 대통령 초대 비서실장직을 두고 광흥창 팀과 재수회가 힘겨루기를 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노 실장을 미는 원조 친문과 임 전 실장을 미는 광흥창 팀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 

‘관리형’ 비서실장으로 가나
스코어 1대1, 최종 결과는?


임 전 실장이 초대 비서실장에 오르면서 광흥창 팀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2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노 실장이 임명되면서 두 세력 간 대결은 1대1의 상황이다. 3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최종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두 세력의 대결을 원조 ‘친문’ 대 ‘신친문’의 대결로 봤다. 노 실장은 대표적인 ‘김근태(GT)계’ 출신의 원조 친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서 “정치적 고민이 있을 때 누구와 상의하나. 한 사람만 꼽아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노영민 의원(현 비서실장)과 의논한다. 친노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노 실장은 지난 두 번의 대선 모두 문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 비서실장을 수행했으며, 지난 2017년 대선 당시에는 조직본부장을 맡아 문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웠다.
 

▲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병희 기자

전임인 임 전 실장은 신친문으로 통한다. 앞서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등 임 전 실장은 친문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지난 2017년 대선 과정서 문재인 캠프에 영입돼 비서실장까지 올랐다.

바통을 이어받을 차기 비서실장이 누가 될지는 문 대통령의 청사진에 달렸다. 임기 후반부 국정운영을 ‘관리형’으로 할 것인지, ‘전환형’으로 할 것인지 등에 따라 비서실장 적임자가 달라진다. 

관리형 비서실장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에 갑자기 브레이크를 걸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양 전 원장은 관리형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강력한 장악력으로 청와대와 정부기관을 장악,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일 적임자다.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 등은 21대 총선 이후 양 전 원장에게 노 실장 후임으로 차기 비서실장직을 맡아달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정책 등으로 인해 조기 레임덕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과정으로 읽힌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조사하고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전주 대비 0.6%포인트 내린 43.3%로 집계됐다. 2주 연속 하락이다. 

레임덕 신호
바짝 긴장해

정당 지지도로 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1.7% 포인트 내린 33.4%, 미래통합당은 1.9% 포인트 오른 36.5%로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보수 계열 정당이 민주당 지지도를 최초로 앞질렀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시간이 지날수록 양 전 원장이 외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9월 개각 청사진

청와대 개편이 일정 부분 이루어지면서, 개각 시점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9월 정기국회 개원에 맞춰 개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9월 개각론’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개각 대상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야권서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물어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교체가 유력하다.

또 ‘탈북민 월북’ 등 군 경계 실패의 책임이 있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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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