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10·11) 다래순, 당근

"시력 좋아지려 배터지게"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pixabay

다래순

이민구 작품이다. 

喫林果俗名獮猴桃(끽임과속명미후도)
속명 미후도를 먹다 

喬木深垂蔓(교목심수만)
높은 나무에 무성하게 드리운 덩굴
秋條正飽霜(추조정포상)
가을 줄기 서리 흠뻑 맞았네
游人頻渴肺(유인빈갈폐)
나그네는 자주 폐가 마르니
摘子必連房(적자필연방)
따는 열매 반드시 연방이네
滑憶西施乳(활억서시유)
부드러움은 서시유 떠오르고
淸知玉女漿(청지옥녀장)
맑기는 옥녀장 알만하네
鄕山後搖落(향산후요락)
고향 산에는 늦게 떨어지니
歸及晩林嘗(귀급만림상)
돌아가 숲속에서 감상해야겠네

상기 시 제목에 등장하는 獼猴桃(미후도)는 다래나무의 열매인 다래를 지칭한다.


아울러 다래나무는 獼猴木(미후목)이라 한다. 獼猴(미후)는 원숭이를 의미하는데 왜 이름이 이렇게 정해졌을까. 

그 사연이 흥미롭다.

다래나무 즉 다래나무 덩굴이 원숭이처럼 다른 나무를 잘 타기에 혹은 원숭이가 다래를 즐겨 먹기 때문에 미후목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어느 설이 정설인지는 몰라도 두 설 모두 말이 된다 싶다. 

여하튼 상기 글에 등장하는 연방(連房)은 식물의 두 씨방이 합해져서 하나의 꽃이나 이삭이 나는 것이나, 혹은 하나의 씨방에서 두 개의 꽃이나 이삭이 나는 것을 가리키는데 옛날에는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겼다. 

또 서시유(西施乳)는 복어 배 속의 살지고 흰 기름덩이를 가리킨다.

맛이 너무 좋아 월(越)나라의 미녀 서시의 가슴에 비유한 것이고 옥녀장(玉女漿)은 신선이 마시는 음료를 의미한다.


이제 다래란 명칭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자.

혹자는 맛이 달다 할 때의 ‘달’에 명사화 접미사 ‘애’가 붙어 이루어진 말로 달~애 에서 ㄹ받침이 내려 읽히면서 다래가 되었다고 한다.

꿀처럼 단 다래 열매를 살피면 한편 그럴싸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익의 성호사설을 살피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髙麗史獼猴桃謂之炟艾로 ‘고려사에 미후도를 달애(怛艾)라 지칭했다’이다.

이를 살피면 다래란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능히 짐작하리라 간주하고 넘어가자.

그런 다래나무의 실체를 알려면 창덕궁 방문을 권장한다.

창덕궁 안에는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251호로 지정된 다래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600년에 이르며 길이는 30m 내외로 뻗어갔을 정도로 웅장하다.

원숭이처럼 나무를 잘 타서 ‘獼猴木(미후목)’
시력회복에 탁월한 베타카로틴의 보고 당근

여하튼 다래순은 다래나무에서 나는 연한 순으로 맛이 달면서 향긋하여 어린순을 채취해 나물로 먹는데 이 대목에서 한마디 덧붙여야겠다.

앞서 고사리에 대해 언급할 때 반전의 나물이라 지칭한 바 있다.


고사리가 지니고 있는 독성 때문으로 다래순 역시 미미하지만 독성이 있다. 그런 이유로 반드시 끓는 물에 데쳐 먹어야 함을 주지시킨다. 아울러 조선 조 한문사대가 중 한사람인 장유(張維, 1587∼1638)가 ‘장주(황해도 장연)의 숙부께서 미후도를 보내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그 시에 차운하다(奉謝長洲叔餉獼猴桃次韻)’라는 작품에서 다래의 진수를 더하고 있다.

한 번 감상해보자. 

蒼藤成架幾多年(창등성가기다년)
푸른 덩굴 가자 이룬지 몇 년 되지 않아翠實驚看纍纍懸(취실경간유유현)
놀랍게도 벌써 푸른 다래 주렁주렁 달렸네嚼罷甘寒蘇病肺(작파감한소병폐)
씹을 때 차고 달콤함 병든 폐 소생하니蟠桃何必問群仙(반도하필문군선)
신선에게 반도 구할 필요 있겠는가

상기 글에 등장하는 架(가)는 가자(架子)의 줄인 말로 초목(草木)의 가지가 늘어지지 않도록 밑에서 받치기 위해 시렁처럼 만든 물건을, 반도(蟠桃)는 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는 선도(仙桃, 신선 나라에 존재하는 복숭아)다.

당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살피면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영어로 표기하면 ‘the carrot and stick’으로 이 대목에서 모든 사람들이 carrot을 채소의 한 종류인 당근 즉 홍당무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그도 맞다.

그러나 그 원 의미는 ‘보상’ 혹은 ‘미끼’임을 밝히며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당근은 원산지가 중동 지역으로 13세기 말에 중국으로 이어 16세기 경부터 조선서 재배됐다고 전해진다.

마치 그를 입증하듯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처음으로 당근이 등장한다.

그를 인용해본다.

호나복(胡蘿葍)

마땅히 삼복(三伏) 안에 땅을 갈아서 둑을 짓고 하나씩 손으로 쥐고 심어야 하는데, 땅이 비옥하면 뿌려서 심으며 물을 자주 줘야 한다. 

상기 기록서 살피듯 당근의 원 명칭은 호나복(胡蘿葍, 오랑캐의 무)이다.

그런데 혹자는 당나라서 들어와 당근(唐根)이라는 이름이 불었다고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나 당근은 호나복의 속명 즉 세속에서 이르던 이름이다. 

이와 관련 김창업의 ‘연행일기’에 실려 있는 글 인용한다.

胡蘿葍。卽我國所謂唐根。而色正紅。與紅蘿葍無別
호나복은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당근이라 부르는 것인데, 빛깔이 붉어서 홍나복과 구별이 없었다.

여하튼 이 대목서 아연한 생각 일어난다.

물론 내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이다. 어린 시절 깻잎을 식용했던 기억이 없었음을 술회했듯 역시 당근(그 시절에는 홍당무라 불렀음)을 식용했던 기억은 없다.

다만 토끼 먹이 정도로만 기억에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에 당근은 색깔도 선명하고 맛도 달콤하지만 그 당시 접했던 홍당무는 생김새도 볼 품 없고 색깔 역시 흐릿하고 맛 역시 씁쓰레해서 그저 집 뒤꼍에 심어져 있던 홍당무를 캐면 토끼 먹이로만 활용하고는 했기 때문이다. 

이제 당근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 소개하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다.

막강한 지상군을 자랑하던 독일군이 공군력에서는 영국에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여 독일군이 그 원인을 조사하던 중 기막힌 첩보를 접하게 된다.

영국 조종사들이 당근을 많이 먹기 때문에 시력이 좋아 그렇다고 말이다.

이로 인해 독일군 조종사들은 그야말로 배가 터지도록 당근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세는 역전되지 않고 영국 공군만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던 독일은 종전 후 그 진실을 알게 된다.

영국서 당시 개발한 레이더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퍼트린 소문이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영국서 흘린 정보가 터무니없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독일이 쉽사리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터다.

당근이 시력 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 독일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력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당근은 베타카로틴의 보고다.

베타카로틴은 비타민 A의 공급원으로 시력회복은 물론 암, 동맥경화증, 관절염, 백내장 등과 같은 성인병 예방에 탁월하다고 조사됐다.

이 대목서 불현듯 씁쓰레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홍당무에 감추어진 진실을 진즉에 알았다면 토끼에게 먹이로 줄 게 아니라 내가 먹었어야 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 토끼 고기를 내가 먹었으니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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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