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이상한 세무조사 막전막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8.11 12:50:54
  • 호수 12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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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 13명 붙어 1년 질질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대전지방국세청이 한 기업을 대상으로 1년 이상 세무조사를 했다. 해당 기업은 “조사관 10명 이상이 붙어 집중적으로 조사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억울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사 결과 이후에도 절차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대전지방국세청

대전에 있는 중소기업 A사는 1년여 동안의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불안함이 커졌다. 거래처가 점점 줄어들더니 예전보다 직원도 급격하게 줄어 회사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6월25일 대전지방국세청(이하 국세청)은 A사를 비롯해 관계사 3곳을 세무조사했다. 이후 8월8일 조세범칙조사위원회를 열고 A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했다. 기업의 탈세가 사기 및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이뤄졌다는 것.

세무조사서
범칙으로 전환

국세청은 A사에 대해 가공거래라고 판단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가공거래란 실물거래 없이 매출, 매입에 관한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발급하거나 이를 정부에 제출하는 경우를 말한다. 가공거래의 동기나 이유는 대부분 자금융통, 대출, 대출 연장 등 일정한 매입과 매출이 있다는 점을 증빙하기 위해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A사 측은 “범칙조사로 전환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전혀 모르겠다. 거래 없이 매출이나 매입을 기록하게 된다면 세금을 더 내야 해서 실질적으로 손해를 본다. 실익이 있어야 범죄를 저지르는데, 우리는 가능성이 적지 않느냐”라고 토로했다.

국세청 조사2국의 무리한 조사방법은 A사의 세무대리인을 교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당시 A사 세무대리인이었던 B씨는 조사관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고, 결국 중도에 사임했다.


B씨는 “소명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ㄱ에 대한 논점으로 소명하면 ㄱ에 대한 답변을 줘야 하는데, 조사관들은 이해를 못한 건지 전혀 다른 ㄴ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소명한 자료에 대해 모두 거짓말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 회의를 느껴 사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다른 법무법인이 A사의 세무대리 역할을 맡아 근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법무법인이었던 회사가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했다.

의견서에 따르면 ‘태양광 모듈의 매매는 일반적으로 공급처 > 도매사업자 > 소매사업자 > 소비처 순으로 이뤄지고, 세금계산서가 순차로 발급되지만, 태양광 모듈은 제조사나 도매사업자서 최종 소비처로 직송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부피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이동이나 상·하차 시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작성됐다.

납세자 권리보호 뒷전…절차 위반 의혹
논점 흐리는 조사관…규정도 지키지 않아

또 ‘대법원은 단축급부 사안이 문제된 판결서 발주가 중간업체를 거치지 않고 행해지는 것이 이례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해당 거래서 발급·수취한 세금계산서를 허위 세금계산서가 아닌 적법한 세금계산서라고 판단했다. 거래당사자들이 각각 고유한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한 후 그에 따라 단축급부 방식으로 물품을 인도했다면, 이들이 발급하고 수수한 세금계산서는 조세범 처벌법 제10조 제3항에 따른 허위 세금계산서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를 넘기고 지난 1월9일경 A사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대한 내용을 받지 못하자 국세청에 문의하고, 이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조사는 이미 다 끝난 상태며 국세청장 결재도 끝난 상황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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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사무처리 규정 제7절 세무조사의 종결과 관련해 제45조(조사의 종결) 3번 항문을 보면 ‘조사공무원은 납세자 또는 납세 관리인에게 조사 결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며, 조사 결과에 대한 이의가 있을 경우 납세자의 권리구제 방법을 상세히 알려줘야 한다’고 표기돼있다. 국세청은 이를 어긴 셈이다.


A사 관계자는 “결과를 물어보니 고발장을 이미 쓰고 있다고 했다. 과징금액도 맨 처음에 물어볼 땐 안 알려줘서 다른 조사관을 통해서 알아봤다. 700억∼800억원 정도 부인하는 세무 조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너무 놀라서 다음날 한 국세청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서 자체적으로 만든 달력을 가져가 사진을 보여줬다.(달력 속 사진)하나가 다 200억∼300억원 하는 건데 거래한 게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냐. 재조사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당시 ‘국세청장님에게 올리는 호소문’ 초안에 따르면 ‘A사는 거짓없는 운영을 위해 창업 첫 해부터 외부 회계감사를 받고 무지로 인한 위법이 없도록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아왔다. 다만 영업·현장·관리 등을 혼자서 처리하다 보니 시간의 부족함, 내부 관리와 업무처리의 미숙함은 너무나 후회스러운 부분이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결과 물으니
“고발장 작성”

이어 ‘매월 수천만원씩 전기를 생산하고 있고, 언제든지 현장 확인할 수 있는 설비를 구성하고 있는 자재를 가공거래로 본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각각의 자재는 고유번호를 가지고 그 번호는 전기안정공사와 한국에너지 공단서 관리되고 있다. 4만장이 넘는 태양광모듈을 도대체 어디서 조달해 300억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수 있었는지 그 사실관계만 조사기간 중 확인받을 수 있도록 호소한다. (중략) 조사의 편의나 무마가 아닌, 단지 기초적인 사실관계만을 확인 받아 회사와 직원들에게 피해가 발생하지도 않도록 귀기울여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결국 재조사 조치를 받게 돼 약 6개월 동안 조사가 다시 진행됐다. 하지만 문제는 조사가 끝난 뒤에 또 발생했다. 7월17일 조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으나, 하루 전인 7월16일 A사의 거래처가 C 세무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A사의 세무조사가 끝났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과세금액이 나올 테니 준비해놓으라는 말이었다.

A사 관계자는 “당시 전화를 받은 거래처는 태양광 모듈 패널을 만드는 공장이다. C 세무서가 거래처에 우리 회사(A사) 조사가 끝나니 거래처 조사가 시작될 거라고 통보한 것이다. 조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다른 곳에서 먼저 알게 된 것인데 이건 정보유출이 아니냐“며 분노했다.

A사 측은 조사관이 13명이나 붙어 집중 조사하는 데 대한 의혹을 가지기 시작했다. A사 관계자는 조사관으로부터 “내가 200억∼300억원 때리면 폐업하게 된다. 그러면 그것이 조사팀의 실적이 되는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세금을 납부하지 못해도 폐업이 되면 손실처리가 되기 때문에 조사팀의 실적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 “조사팀 팀장은 승진을 2번이나 한 분으로 알고 있고 사무관 승진을 앞둔 것으로 알고 있다. 폐업이란 말을 너무 쉽게 하길래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A사 측은 납세자 권리보호를 요청했다. 납세자 권리보호 요청 제도란 세무조사 등 국세행정의 집행 과정서 납세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침해가 예상되는 경우 신속하게 구제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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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6일 납세자 권리보호요청서에는 ‘조사기간이 만료됐지만 조사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서 거래처 관할인 C 세무서에 피조사 업체도 알지 못하는 조사 결과를 통보해 거래처에 즉시 과세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전달하도록 하는 등 절차가 무시된 채 진행됐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며, 적법한 절차가 준수돼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보호를 요청하며, 본 조사 사건이 조세범칙조사심의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도록 조치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A사 측과 관계사들은 같은 달 29일, 범칙심의위원회 심위의원들에게 추가 서류를 제출했다. 해당 서류의 내용에는 ‘피조사 법인들에 대해 각 법인은 기자재 유통, 토·전기공사, 구조물 제작을 각각 수행하는 이유로 문어발식 사업확장이 아니라 공정별로 전문성을 갖춰 시장경쟁력을 높이려는 의도다. 중복 매출을 발생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기업 하나에
조사관 10여명?

이어 ‘피조사 법인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전년도 시공실적을 사용해 회사 달력을 제작했다. 기자재가 설치·운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매출 600억∼700억원의 매출처를 가진 업체가 피조사 법인 같은 신생 유통사를 상대로 가공거래를 시도할 이유도 없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번호 검수하는 준공검사로 가공제품이 거래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영업 환경의 변동에 따라 납품지를 재배정하거나 반품 또는 교환할 수 있는 이는 유통업체의 일반적인 상식이며, 경영판단에 따른 자재 선수매가 가공거래라면, 국내 유수의 건설업체라도 모두 가공거래 혐의자가 될 것이다. 공사가 지연된다는 사실 하나로 미착수 현장으로 표현하면 실체가 없는 실제 현장과 관련해 자재의 조달이 모두 부인된다는 것은 너무나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이 외에도 ‘가공의 매출을 발생시킬 시에는 오히려 절세할 수가 없으며, 범칙에 의한 실익이 전혀 없다. 피조사 법인 중 대표하는 한 곳은 전기공사업 시공능력 기준 충청남도 5위에 올라가 있으며, 한국서부발전이 발주한 690억원 규모 수상태양광발전소를 수주했다. 충남도 내 중소기업 중 단일 3MW 규모 육상태양광발전소 시공실적과 5MW 규모 수상태양광발전소 시공실적을 가진 유일한 업체’라고 덧붙였다.

A사는 한 국세청장에게 납세자 권리보호를 위해 ▲피조사 법인도 법칙심의위원회에 참석해 의견 진술 기회의 요구 ▲피조사 법인의 범칙심의위원회 참석이 불가능할 경우 조사팀 참석도 불허토록 요구 ▲심의위원들의 공정한 판단을 받기 위해 피조사 법인이 제출한 의견서에 임의적인 편집이 없도록 해달라 등을 요구했다.


다음날 조세범칙심위의원회가 개최됐지만 A사는 또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조세범칙심의위원회 시간을 잘못 안내받은 것이다. 7월30일 오후 2시로 안내를 받았지만, 오전 10시부터 진행돼 10시45분에 끝났다.

소식 없어 조사결과 문의하니…
“다 끝나…청장 결재도 끝났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대화 녹취록을 확인한 결과, 조사관은 전날 바뀐 시간을 알았다며 필요 없으니 부르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다.

A사 관계자는 “오후 2시로 안내하는 전화통화만 받았다. 이 부분에 대해 확인해보니 조사1국서 심의하는데, 조사2국서 안내받았으니 의미가 없다. 내가 어떻게 국세청 조직도를 다 알겠느냐”며 억울해했다. 이 관계자는 “시간을 알려준 사람에게 물으니 시간이 바뀐 줄 몰랐다고 하더니 ‘참석했냐고 물으니 참석했다’고 답했다.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A사가 보기에는 조세범칙심의위원회 시간을 다르게 안내받았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인 데다가, 추가서류도 제출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 조사 대상은 따돌리고 조사팀만 참석하는 졸속행정이라며 A사 측은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당 의혹에 대해 국세청 관계자는(결과 통지 순서에 대해) “사안에 따라 다르다. 예산세액 등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중간에라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청장님께 보고 전이라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서면으로 결과 통지가 나가는 건 당연히 내부 결정이 끝난 후에 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무서가 먼저 인지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임하고 있는 세무서라면 알 수도 있다. 대리인이기 때문에 납세자의 해당 업무에 대해 알고 있을 확률이 있다. 조사 대상 업체보다 다른 곳이 먼저 알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된 게 맞다”고 답변했다.

납세자 조세범칙심의위원회 참석 여부에 대해서는 “심의 안건 종류에 따라 규정이 정해져 있다. 직접 참석해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심의안건이 있고, 서면으로만 자기 의사를 제출할 수 있는 안건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심의위원회에 대한 정보에 대해)그 부분을 굳이 비밀로 하지 않는다. (해당 업체가)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 부분은 아니라는 말씀은 드리고 싶다. 따로 할 말은 없다”고 덧붙였다.

“인사고과에
영향 없진 않다”

아울러 “조사 기간이 1년 이상 되는 곳은 드물지만 없지는 않다. 순수한 조사 기간일 수도 있고, 조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늦어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업무상 수사관에 대해 금전적인 대가는 없다. 예를 들어 형사가 특정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을 맡아 잘 처리했다면 인사고과에 영향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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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