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홍원찬 감독 “<다만악>은 배우의 영화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신세계>서 ‘부라더’로 유명한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가 뭉친 것만으로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는 기대감을 줬다. 일각에선 기시감이 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베일을 벗은 <다만악>은 완전히 새로운 하드보일드 장르물의 형태를 갖췄다. 빠른 속도감에 전에 없던 액션 타격감, 새로운 캐릭터의 창출 등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완성도를 갖춘 영화라는 게 <다만악>에 대한 평가다.
 

▲ ▲ 홍원찬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일요시사>는 선 굵은 <다만악>을 진두지휘한 홍원찬 감독을 만나,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계관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엄청난 화제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무너진 극장가를 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극장가를 구하소서’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실제로 주말에는 50만, 평일 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코로나 정국 이전의 티켓 파워를 보이고 있다. 굶주려 있던 극장가의 구원자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영화의 작품성은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월등한 완성도를 보인다. 하드보일드 장르적 특성을 연출의 묘로 정확히 살린다. 빠른 속도감과 서스펜스, 타격감 좋은 액션,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력, 텁텁하면서도 개운한 마무리까지 영화가 가진 장점이 상당하다. 일부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나 불친절한 대목, 일부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장점이 워낙 출중해 감싸주고 싶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메가폰을 잡은 홍원찬 감독을 최근 만났다. 하드보일드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연출 의도를 들어봤다. 

다음은 홍원찬 감독과의 일문일답. 


- 주위 반응은 어떤가. 호평의 늪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 대부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는 인물의 전사나 백 스토리가 빠진 게 너무 불친절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속도감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게 있다. 불친절해서 좋다는 분들도 있다. 조금 나뉘는 것 같다. 

- 실제로 레이나 인남이나 캐릭터 설명이 거의 없는 편에 해당한다. 일종의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 캐릭터의 경우는 설명을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명분보다는 기질에 집중했다. 보는 사람으로서 인물을 알고 이해가 되면 덜 공포스럽지 않을까. 한국 영화 자체에 설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설명하려면 신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이야기 템포가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됐다. 

- 레이뿐 아니라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도 설명이 부족한 편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꼭 납득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력을 어필하는 건 꼭 설명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화했다. 딱 영주와의 관계까지만. 

- 이 영화서 좋았던 점은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 가르치려는 혹은 알려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런 추격이 있었다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건가. 


▲ 말한 대로 메시지를 주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마다 각자의 지향점이 있는데 영화라고 해서 꼭 메시지를 줄 필요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예술적 성취나 철학적인 성찰을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에 치중한 작품이다. 그게 1차적인 목표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누아르,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악으로 상징되는 세계관 안에서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서 벌어지는 질이다.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작품도 아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세계를 좋게 보신 분들은 하드보일드 세계관에 잘 안착했다고 생각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 작업을 하면서 공부한 것 중 하나가 내러티브의 리듬감이었다. 과정을 세세하게 전달해야 하는 장면이 있고, 과감한 편집으로 리듬을 빨리 가야 하는 장면도 있다. 이런 안배를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했다. 
 

▲ ⓒCJ엔터테인먼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오피스> 이후 5년 만에 나왔다. 이 영화는 어떻게 출발하게 됐는가. 

▲ 10년 전일 듯하다. 처음에 하이브 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님이 외국서 아이를 찾다가 고군분투하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에 방콕을 배경으로 정하고, 방콕 답사도 갔다 왔다. 어느 정도 쓰는 중에 <아저씨>가 개봉했다. 재밌게 봤는데 아이템이 겹쳤다. 아류로 보일 것 같아 일단은 제쳐놨다. 

그러다 <오피스>로 데뷔하고 다른 작품을 쓰던 중 다시 김 대표님이 이 작품을 해보자고 하더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그래서 다시 봤는데, 재밌는 구석이 많더라. 그래서 몇 달 정도 각색하고 준비하게 됐다. 그 사이에 <존 윅>도 나오고 비슷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식으로 차별화를 가져가려고 했다. 

- 캐스팅이 사실 놀랍다. <신세계>라는 인기 영화의 두 배우를 그대로 섭외하긴 쉽지 않았을 부분인데, 그런 선택을 했다. 

▲ 인남과 레이는 서로 겨룰 수 있는 파워가 있는 인물이라, 인지도나 연기력만 보면 굉장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작정하고 두 분을 모신 것 같지만, 사실 우연이다. 빅 사이즈 영화의 캐스팅치고는 순조로웠다.

처음에 대표님께서 황정민 배우를 제안했는데, 의외로 금방 답을 줬다. 그리고서 이정재 배우를 말씀하시더라. 나야 ‘하면 좋죠’라는 생각이었는데, 할 줄 몰랐다. 지금이야 레이가 이렇게 화려한 인물이 됐지만, 시나리오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얼마 있다가 이정재 배우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라. 미팅하고 싶다는 건 호기심이 있다는 거 아니냐.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 이정재 말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캐릭터에 많이 녹아있다고 하던데. 

▲ 이 영화서 개인적으로 추구한 건 리얼 베이스다. 리얼리즘을 지켜 가려고 했다. 리얼리즘과 레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레이 캐릭터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배우의 공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전사나 대사가 많지 않아 인물이 모호해 보일 수 있는데 정재 선배가 무자비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외형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이 글을 내가 쓰긴 했지만, 구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파격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레이의 외형에 있어 백지나 다름없었다. 캐스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 다를 것으로 생각해서 고민이 깊지는 않았다. 


정재 선배가 비주얼적으로 과감하게 해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실제로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사실 걱정도 좀 있었다. 그 비주얼이 이 영화에 어울릴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모호한 이미지와 선배가 제시한 의상이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 부두서 박명훈 배우와 만나는 신을 찍고 편집한 것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정재 선배가 한국에 있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화한 기억이 난다. 

- <다만악에서 구하소서>는 정말 메시지가 없다. <오피스>는 왕따라는 사회문제를 절묘하게 담은 작품이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오피스>는 의도적으로 시대성을 담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그 작품은 각본을 받은 걸 각색한 것이다. 검토해 달라고 해서 대본을 읽었다가 내가 연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CJ의 인턴이었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턴마다 상황이 다 다르다. 누구는 한시적 인턴이고, 누구는 정직원이 보장된 인턴이다. 절박함의 차이가 있다. 월급을 많이 받지도 못한다. 당시의 그 절박함을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까지는 거창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반대로 이번 작품은 장르적 재미에만 충실히 하려고 했다. 저 스스로는 <오피스>나 이 작품이나 본질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푸는 과정, 그 안에서의 서스펜스, 영화적 표현 등 작품 특성에 맞게 고민한 건 비슷하다. 
 

▲ ⓒCJ엔터테인먼트

- 이 작품의 매력은 액션의 타격감이다. 기발하다. 

▲ 무술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기발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기시감이 들어도 안 된다. 당시 낸 아이디어가 어떤 레퍼런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스톱 모션이라고 우리는 지칭했는데, 고속으로 찍어놓고 편집 때 정속으로 돌리면 이런 효과가 난다고 하더라. 배우들에게 고마운데, 현장서 구현하는 건 다른 문제인데, ‘이게 맞아?’라고 하면서 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것이다. 

- 자세하게 언급하긴 그렇지만, 비밀병기는 박정민이다. 박정민 배우는 내면의 남성성이 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 역할을 시키게 된 건지 궁금하다. 

▲ 영화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그 흐름을 따라오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환기가 되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유이라는 역할이다. 여러 고민이 있었다. 소위 꽃미남도 생각했다. 여자는 안됐다. 수술을 위해 방콕에 간 사람이니까. 

<오피스>서 정민이랑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 남성성을 잘 안다. 외향적인 남자는 아니어도, 남성적인 이미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 남성성과 캐릭터의 여성성이 충돌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민이는 잘 해낼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도 있었다. 

- 일부 사람들이 이 역할을 두고 희화화했다고 할까봐 걱정도 된다. 

▲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희화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오버스럽지 않게 하려고 했다. 나름대로 의도는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의도한 건 유이가 마지막에 남는데, 그게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한 존재이길 원했다. 남자가 혹은 여자가 구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실 구원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지 않나. 

- 워낙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의 영화가 아닌 배우의 영화라는 말도 나온다. 

▲그 말에 정말 동감한다. 지금의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호평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 제목이 정말 좋다.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어떻게 이 문장이 나왔나.

▲ 세계관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악이라는 건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인남을 둘러싼 세계다. 거기서 희망을 찾는 내용이다. 이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구원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일차적으로는 장르적 재미를 느끼고, 두 번째로 제목과 유추해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나름의 시대성을 읽기를 바랐다. 사실 이 제목을 떠올리고 나서, 마케팅 과정서 바뀔 거라고 짐작했다. 문장형 제목이 익숙한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쭉 가더라. 

- 레이가 칼을 쓰다가 총으로 넘어간다. 그 넘어가는 과정이 인남이 가진 힘을 부각한다. 

▲ 이런 일을 하는 업자의 경우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대상이랑 밀접하게 다가간다. 인남이 고수라는 건 첫 시퀀스서 나온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 총격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적절한 설정이 필요했다. 총을 어디서 습득하는지 고민이 많았고, 인남은 레이가 턱밑까지 왔다는 걸 알고 얻게 된다. 레이는 인남과 맞붙고 나서 총을 구입한다. 

- 마지막 장면서 레이가 인남에게 모호한 말을 남긴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지 않았냐는 식. 그게 인남에게 말하는 것인지 본인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호한데. 

▲실제로 그 복합적인 의미를 갖길 바랐다. 표면적으로 너도 내가 쫓아온 이상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가 있고, 나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느낌도 있길 바랐다. 정재 선배가 그 모호함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표정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200% 만족한다. 
 

▲ ⓒCJ엔터테인먼트

- 하나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레이 같은 사람은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흘러서 저런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본질에 가깝다. 하지만 레이는 단 한 장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 아직도 생각한다. 레이에게 한 신을 더 넣고 싶은 욕구가 있다. 레이가 혼자 있을 때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혼자 있을 때 레이를 계속 상상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혼자 있을 때 레이는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넣지는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학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장면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영화를 보고 후반부에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 유이가 아이를 들쳐메고 가는 장면을 보는 인남의 눈빛이 그렇다. 

▲ 거기서 아이가 울거나 그랬으면, 신파가 되는 건데 비교적 건조하게 잘 매듭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연기를 정말 잘해준 것 같다. 이번에 홍보하면서 다시 만났는데, 영락없는 아이다. 내가 이 애를 데리고 어떻게 영화를 찍었는가 싶다. 몇몇 분들이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여자분들은 내 기대보다도 더 많이 반응했다. 훌쩍거리면서 우는 사람도 있더라. 내 노림수가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드보일드치고 혈흔이 없다. 묘사도 적극적이지 않다. 

▲피가 터지는 걸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 기획부터 15세 관람가로 잡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분위기로 표현하려고 했다. 

- 차기작은 어떤 방향이 되나.

▲배경은 사극인데, 액션 영화가 될 것 같다. 이번 작품보다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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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