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홍원찬 감독 “<다만악>은 배우의 영화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신세계>서 ‘부라더’로 유명한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가 뭉친 것만으로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는 기대감을 줬다. 일각에선 기시감이 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베일을 벗은 <다만악>은 완전히 새로운 하드보일드 장르물의 형태를 갖췄다. 빠른 속도감에 전에 없던 액션 타격감, 새로운 캐릭터의 창출 등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완성도를 갖춘 영화라는 게 <다만악>에 대한 평가다.
 

▲ ▲ 홍원찬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일요시사>는 선 굵은 <다만악>을 진두지휘한 홍원찬 감독을 만나,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계관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엄청난 화제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무너진 극장가를 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극장가를 구하소서’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실제로 주말에는 50만, 평일 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코로나 정국 이전의 티켓 파워를 보이고 있다. 굶주려 있던 극장가의 구원자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영화의 작품성은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월등한 완성도를 보인다. 하드보일드 장르적 특성을 연출의 묘로 정확히 살린다. 빠른 속도감과 서스펜스, 타격감 좋은 액션,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력, 텁텁하면서도 개운한 마무리까지 영화가 가진 장점이 상당하다. 일부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나 불친절한 대목, 일부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장점이 워낙 출중해 감싸주고 싶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메가폰을 잡은 홍원찬 감독을 최근 만났다. 하드보일드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연출 의도를 들어봤다. 

다음은 홍원찬 감독과의 일문일답. 

- 주위 반응은 어떤가. 호평의 늪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 대부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는 인물의 전사나 백 스토리가 빠진 게 너무 불친절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속도감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게 있다. 불친절해서 좋다는 분들도 있다. 조금 나뉘는 것 같다. 

- 실제로 레이나 인남이나 캐릭터 설명이 거의 없는 편에 해당한다. 일종의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 캐릭터의 경우는 설명을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명분보다는 기질에 집중했다. 보는 사람으로서 인물을 알고 이해가 되면 덜 공포스럽지 않을까. 한국 영화 자체에 설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설명하려면 신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이야기 템포가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됐다. 

- 레이뿐 아니라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도 설명이 부족한 편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꼭 납득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력을 어필하는 건 꼭 설명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화했다. 딱 영주와의 관계까지만. 

- 이 영화서 좋았던 점은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 가르치려는 혹은 알려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런 추격이 있었다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건가. 

▲ 말한 대로 메시지를 주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마다 각자의 지향점이 있는데 영화라고 해서 꼭 메시지를 줄 필요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예술적 성취나 철학적인 성찰을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에 치중한 작품이다. 그게 1차적인 목표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누아르,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악으로 상징되는 세계관 안에서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서 벌어지는 질이다.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작품도 아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세계를 좋게 보신 분들은 하드보일드 세계관에 잘 안착했다고 생각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 작업을 하면서 공부한 것 중 하나가 내러티브의 리듬감이었다. 과정을 세세하게 전달해야 하는 장면이 있고, 과감한 편집으로 리듬을 빨리 가야 하는 장면도 있다. 이런 안배를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했다. 
 

▲ ⓒCJ엔터테인먼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오피스> 이후 5년 만에 나왔다. 이 영화는 어떻게 출발하게 됐는가. 

▲ 10년 전일 듯하다. 처음에 하이브 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님이 외국서 아이를 찾다가 고군분투하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에 방콕을 배경으로 정하고, 방콕 답사도 갔다 왔다. 어느 정도 쓰는 중에 <아저씨>가 개봉했다. 재밌게 봤는데 아이템이 겹쳤다. 아류로 보일 것 같아 일단은 제쳐놨다. 

그러다 <오피스>로 데뷔하고 다른 작품을 쓰던 중 다시 김 대표님이 이 작품을 해보자고 하더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그래서 다시 봤는데, 재밌는 구석이 많더라. 그래서 몇 달 정도 각색하고 준비하게 됐다. 그 사이에 <존 윅>도 나오고 비슷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식으로 차별화를 가져가려고 했다. 

- 캐스팅이 사실 놀랍다. <신세계>라는 인기 영화의 두 배우를 그대로 섭외하긴 쉽지 않았을 부분인데, 그런 선택을 했다. 

▲ 인남과 레이는 서로 겨룰 수 있는 파워가 있는 인물이라, 인지도나 연기력만 보면 굉장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작정하고 두 분을 모신 것 같지만, 사실 우연이다. 빅 사이즈 영화의 캐스팅치고는 순조로웠다.

처음에 대표님께서 황정민 배우를 제안했는데, 의외로 금방 답을 줬다. 그리고서 이정재 배우를 말씀하시더라. 나야 ‘하면 좋죠’라는 생각이었는데, 할 줄 몰랐다. 지금이야 레이가 이렇게 화려한 인물이 됐지만, 시나리오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얼마 있다가 이정재 배우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라. 미팅하고 싶다는 건 호기심이 있다는 거 아니냐.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 이정재 말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캐릭터에 많이 녹아있다고 하던데. 

▲ 이 영화서 개인적으로 추구한 건 리얼 베이스다. 리얼리즘을 지켜 가려고 했다. 리얼리즘과 레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레이 캐릭터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배우의 공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전사나 대사가 많지 않아 인물이 모호해 보일 수 있는데 정재 선배가 무자비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외형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이 글을 내가 쓰긴 했지만, 구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파격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레이의 외형에 있어 백지나 다름없었다. 캐스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 다를 것으로 생각해서 고민이 깊지는 않았다. 

정재 선배가 비주얼적으로 과감하게 해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실제로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사실 걱정도 좀 있었다. 그 비주얼이 이 영화에 어울릴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모호한 이미지와 선배가 제시한 의상이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 부두서 박명훈 배우와 만나는 신을 찍고 편집한 것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정재 선배가 한국에 있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화한 기억이 난다. 

- <다만악에서 구하소서>는 정말 메시지가 없다. <오피스>는 왕따라는 사회문제를 절묘하게 담은 작품이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오피스>는 의도적으로 시대성을 담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그 작품은 각본을 받은 걸 각색한 것이다. 검토해 달라고 해서 대본을 읽었다가 내가 연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CJ의 인턴이었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턴마다 상황이 다 다르다. 누구는 한시적 인턴이고, 누구는 정직원이 보장된 인턴이다. 절박함의 차이가 있다. 월급을 많이 받지도 못한다. 당시의 그 절박함을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까지는 거창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반대로 이번 작품은 장르적 재미에만 충실히 하려고 했다. 저 스스로는 <오피스>나 이 작품이나 본질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푸는 과정, 그 안에서의 서스펜스, 영화적 표현 등 작품 특성에 맞게 고민한 건 비슷하다. 
 

▲ ⓒCJ엔터테인먼트

- 이 작품의 매력은 액션의 타격감이다. 기발하다. 

▲ 무술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기발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기시감이 들어도 안 된다. 당시 낸 아이디어가 어떤 레퍼런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스톱 모션이라고 우리는 지칭했는데, 고속으로 찍어놓고 편집 때 정속으로 돌리면 이런 효과가 난다고 하더라. 배우들에게 고마운데, 현장서 구현하는 건 다른 문제인데, ‘이게 맞아?’라고 하면서 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것이다. 

- 자세하게 언급하긴 그렇지만, 비밀병기는 박정민이다. 박정민 배우는 내면의 남성성이 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 역할을 시키게 된 건지 궁금하다. 

▲ 영화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그 흐름을 따라오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환기가 되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유이라는 역할이다. 여러 고민이 있었다. 소위 꽃미남도 생각했다. 여자는 안됐다. 수술을 위해 방콕에 간 사람이니까. 

<오피스>서 정민이랑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 남성성을 잘 안다. 외향적인 남자는 아니어도, 남성적인 이미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 남성성과 캐릭터의 여성성이 충돌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민이는 잘 해낼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도 있었다. 

- 일부 사람들이 이 역할을 두고 희화화했다고 할까봐 걱정도 된다. 

▲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희화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오버스럽지 않게 하려고 했다. 나름대로 의도는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의도한 건 유이가 마지막에 남는데, 그게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한 존재이길 원했다. 남자가 혹은 여자가 구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실 구원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지 않나. 

- 워낙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의 영화가 아닌 배우의 영화라는 말도 나온다. 

▲그 말에 정말 동감한다. 지금의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호평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 제목이 정말 좋다.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어떻게 이 문장이 나왔나.

▲ 세계관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악이라는 건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인남을 둘러싼 세계다. 거기서 희망을 찾는 내용이다. 이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구원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일차적으로는 장르적 재미를 느끼고, 두 번째로 제목과 유추해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나름의 시대성을 읽기를 바랐다. 사실 이 제목을 떠올리고 나서, 마케팅 과정서 바뀔 거라고 짐작했다. 문장형 제목이 익숙한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쭉 가더라. 

- 레이가 칼을 쓰다가 총으로 넘어간다. 그 넘어가는 과정이 인남이 가진 힘을 부각한다. 

▲ 이런 일을 하는 업자의 경우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대상이랑 밀접하게 다가간다. 인남이 고수라는 건 첫 시퀀스서 나온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 총격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적절한 설정이 필요했다. 총을 어디서 습득하는지 고민이 많았고, 인남은 레이가 턱밑까지 왔다는 걸 알고 얻게 된다. 레이는 인남과 맞붙고 나서 총을 구입한다. 

- 마지막 장면서 레이가 인남에게 모호한 말을 남긴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지 않았냐는 식. 그게 인남에게 말하는 것인지 본인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호한데. 

▲실제로 그 복합적인 의미를 갖길 바랐다. 표면적으로 너도 내가 쫓아온 이상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가 있고, 나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느낌도 있길 바랐다. 정재 선배가 그 모호함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표정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200% 만족한다. 
 

▲ ⓒCJ엔터테인먼트

- 하나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레이 같은 사람은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흘러서 저런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본질에 가깝다. 하지만 레이는 단 한 장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 아직도 생각한다. 레이에게 한 신을 더 넣고 싶은 욕구가 있다. 레이가 혼자 있을 때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혼자 있을 때 레이를 계속 상상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혼자 있을 때 레이는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넣지는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학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장면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영화를 보고 후반부에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 유이가 아이를 들쳐메고 가는 장면을 보는 인남의 눈빛이 그렇다. 

▲ 거기서 아이가 울거나 그랬으면, 신파가 되는 건데 비교적 건조하게 잘 매듭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연기를 정말 잘해준 것 같다. 이번에 홍보하면서 다시 만났는데, 영락없는 아이다. 내가 이 애를 데리고 어떻게 영화를 찍었는가 싶다. 몇몇 분들이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여자분들은 내 기대보다도 더 많이 반응했다. 훌쩍거리면서 우는 사람도 있더라. 내 노림수가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드보일드치고 혈흔이 없다. 묘사도 적극적이지 않다. 

▲피가 터지는 걸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 기획부터 15세 관람가로 잡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분위기로 표현하려고 했다. 

- 차기작은 어떤 방향이 되나.

▲배경은 사극인데, 액션 영화가 될 것 같다. 이번 작품보다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