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여의도 이슈메이커 류호정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8.11 11:22:36
  • 호수 12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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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개성파 새내기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정치인들은 본인 부고만 제외하고 이름이 뉴스에 나오는 게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최근 ‘옷차림’ 하나만으로 이슈를 몰고 다니는 정치인이 한 명 있다. 바로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다. 그는 게임동아리, 스트리머 등 특이한 이력을 바탕으로, 국회에 입성하면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 최근 본회의장 옷차림 논란의 중심에 섰던 류호정 정의당 의원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서 20대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나온 류호정 의원은 한국 사회서 소외된 청년과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출마했다. 게임을 좋아하던 류 의원은 스마일게이트에 취업해 마케팅 등의 업무를 맡았다.

게임 덕후서
정치 입문까지

그는 이후 노동조합을 만들려다가 권고사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도 김병관(더불어민주당)·이동섭(국민의당) 의원 등이 게임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는 했다. 하지만 류 의원은 20대 여성에다가 게임 스트리머 출신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렸다.

비례후보 명단 발표 이후 ‘대리 게임’ 논란이 불거졌지만 즉각적인 사과와 정의당의 지지에 힘입어 당의 지향인 여성·청년 활동으로 비례대표 1번을 꿰찼다. 결국 21대 총선서 무난하게 당선돼 21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 유일한 20대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게 됐다.

류 의원은 “청년 정치의 앞줄에 서게 된 저는 낯선 정치인이 되겠다. 기득권과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며 “제2의 누군가가 되기보다 온전히 류호정으로 청년 정치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21대 국회 평균 연령은 54.9세, 남성 의원은 81%인 243명으로 집계됐다. 28세 여성인 류 의원은 그 존재감을 나타기에 충분했다. 초선 의원답게 톡톡 튀는 언행으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고인물 같은 정치판서 감각적인 유튜브 활동은 신선한 바람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류 의원의 옷차림을 두고 한창 논란이 일었다. 국회 본회의장에 붉은색 원피스 차림의 옷을 입고 출석했기 때문이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국회의원 복장으로 적절하느냐”는 문제 제기와 함께 성희롱성 비난까지 쏟아졌다.

이날 류 의원의 분홍 원피스는 ‘2040청년다방’ 포럼에 참석할 때 입었던 옷으로, 류 의원은 당시에 “이 복장을 본회의에도 입고 가겠다”고 청년들과 약속했다고 한다.

본회 붉은색 원피스 차림 등장 화제
평소 입던대로 청바지·운동화 출근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은 “국회의원 제복을 정해서 그것만 입고 다니라 하던가. 조선시대서 왔느냐” “옷 가지고 이러지 마라. 뭘 입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라며 논란 자체를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이 분명 있다”며 원피스 복장을 지적했고, “원피스를 입더라도 좀 점잖은 색깔을 입어야지”라며 원피스 색에 대한 의견을 남긴 누리꾼도 있었다.

류 의원은 “저의 원피스로 인해 공론장이 열렸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게 진보 정치인이 해야 할 일 아닐까”라며 오히려 자신감을 드러냈다.

논란이 일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지난 6일, 자신의 SNS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터넷과 자가격리했던 어제, 우리당 류호정 의원이 고된 하루를 보냈다”며 “원피스는 수많은 직장인 여성들이 사랑하는 출근룩으로, 국회는 국회의원들의 직장”이라고 옹호했다. 심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개성 있는 모습으로 의정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달라”며 “다양한 시민의 모습을 닮은 국회가 더 많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고 적었다.


류 의원의 이색 복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류 의원은 자신의 공식 계정 유튜브서 “청바지나 반바지를 입고 국회에 출입을 계속 했다. 청바지는 3번, 반바지는 2번 정도 입었을 때 들켰다고 해야 하나, (미디어의)눈에 들어온 것 같다”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당시)의원님들이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평범하게 인사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류 의원의 원피스 논란은 정의당 입장서 호재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의당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당의 인지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국회의원들의 복장으로 인해 논란이 됐던 적이 있었다.

지난 2003년 4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른바 ‘백바지 등원’으로 동료 의원들의 지적을 받았다. 당시 유시민 국민개혁정당 의원은 흰색 바지에 회색 티셔츠와 남색 재킷을 입고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이때에도 “여기 탁구 치러 왔나”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등의 항의가 빗발쳤다. 또 한나라당 의원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집단퇴장해 의원 선서가 미뤄지기도 했다.

복장 논란
당에 호재?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도 “모양이 좋지 않다”며 “내일 다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했고 결국 유 의원은 다음날 정장 차림으로 등원해 의원 선서를 했다. 통합진보당 강기갑 전 대표는 한복을 입고 등원하기도 했다. 강 전 대표는 수염을 기른 채 두루마기와 고무신을 착용했다. 특히 그는 한복 및 고무신 차림으로 광화문 촛불집회를 누벼 <반지의 제왕>의 주연급 캐릭터 ‘간달프’를 빗댄 ‘강달프’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류 의원은 소신 있는 행동 만큼이나 의정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6월1일부터 의정활동을 시작한 그는 총 49건의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발의했다. 이 외에도 류 의원은 다양한 의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류 의원은 지난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는 국민 안전과 관련된 핵 폐기물 관련 의제, 쿠팡 노동자들의 어떤 착취 문제, 차등 의결권, 비동의 강간죄 등에 대해 많은 업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맥스터'라는 말이 어렵다. 이게 핵 폐기물과 관련된 문제인데, 경주와 울산서 쟁점 사안이 되고 있다. 사실 원전 핵 폐기물 내용은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사고가 나면 전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련된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게 지역 공론화, 그리고 전국 공론화를 하는 과정서 현재 정부가 소통을 하기로 했었는데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이미 여론조사에 대한 조작 의혹까지 나와 있는 상태여서 검증해야 되는 단계고,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모두의 안전이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류 의원은 어릴 때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운 건 아니었다. 부친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쌍둥이인 남동생 둘과 함께 어려운 환경서 자랐다.

류 의원의 블로그에 따르면 아버지의 폭력은 집을 벗어나는 목표를 갖게 했고 삼남매는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삼남매 모두 같은 시기에 대학생활을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셋째의 재수, 둘째의 휴학, 첫째의 취업준비 등 일종의 로테이션으로써 한 삼남매는 똘똘 뭉쳤다.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건 게임회사 스마일게이트였다.

그는 모바일 IO 스튜디오 기획팀˙마케팅 팀원, 게임 모델 등으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재직 중엔 게임 스트리밍 업무도 도왔다.


스마일게이트서 사내 성폭력 피해를 당한 후배를 도와 징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후배 사건 보고
젠더 이슈 관심

당시 류 의원은 “만약 내가 작년에 문제제기를 했다면, 이 친구가 같은 피해를 안 겪었을 거라는 후회와 미안함이 컸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피해 사원들과 류 의원의 증언에도 스마일게이트의 가해자에 대한 내부 징계는 감봉 3개월에 그쳤으며, 가해자로부터 분리하겠다는 명목으로 피해자를 인사이동시켰고, 부서도 가해자의 바로 옆 부서였다고 한다.

결국 해당 피해 사원은 입사 1년도 되지 않아 퇴사했다. 더불어 프로젝트가 중단될 때마다 직원들이 전환배치나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한다.

류 의원은 후배의 사건을 겪은 뒤 SNS 젠더 이슈와 관련한 기사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과거 유 의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용기가 없었는데, 후배의 퇴사를 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권고사직 뒤에도 전 직장 동료들의 노조 설립을 도왔던 류 의원은 2018년 12월 화섬식품 노조로부터 ‘선전홍보부장’을 제안 받아 민주노총 상근자로 이직하게 됐다. 판교테크노밸리를 거점으로 한 IT 노조들이 소속된 화섬식품 노조서 류 의원은 전 직장서 SNS 콘텐츠를 만들었던 전공을 살려 ‘민주노총 아재’와 노동과 진보 이슈에 관심이 있는 20∼30대 청년들을 연결할 수 있는 홍보를 시도했다.

화섬식품 노조의 애칭 ‘섬식이’, 화섬식품 노조 인스타그램 계정 ‘노조스타그램’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는 민주노총이 갖고 있는 40대 남성의 이미지를 깨려고 노력했으며 SNS 홍보를 통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시도했다. 10∼20대가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2018년 12월에 40여명에 불과했던 화섬식품 노조 페이스북 팔로어는 류 의원이 ‘페북지기’를 맡은 뒤 2019년 7월 2700여명으로 늘어났다.

과거 ‘서울퀴어퍼레이드’ 때는 ‘무지개 화섬식품 노조 깃발’을 제작해 노조 홍보를 하기도 했다.

2017년 정의당에 입당한 그는 근무 중인 회사에 노조를 만드는 작업을 민주노총·정의당, 이미 노조가 있던 네이버 노조와 논의했다. 이후 회사서 퇴직당하고 민주노총의 (IT업체 노조가 가입돼있는) 화섬식품 노조 선전홍보부장으로 옮겼고, 처음에 당비라도 보태고 싶어 입당했다가 성남지역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성남시위원회 부위원장과 경기도당 여성위원장을 맡은 적도 있다. 그 후로 청년 할당의 혜택을 받아 지금까지 이어졌다.

92년생 역대 최연소 비례대표
게임 등 특이한 이력으로 주목

류 의원의 공약 중에는 ‘학력·학벌 차별금지’가 있다. 류 의원의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 된 것들이다.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나중에 그 배경에 대해 인사담당자로부터 ‘학력이 작용했다’는 말을 들었다. 신입사원 교육서 조별 활동할 때도 ‘서울대 나온 남자’에게 반장을 하라고도 했다. 류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서 “누가 저를 키웠는가 물으면 사회가 저를 키웠다고 답해야 한다. 그래서 학력·학벌 차별금지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류 의원에게도 크고 작은 논란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대리게임 논란이다. 지난 2014년 류 의원은 이화여대 게임동아리 활동을 하던 당시 남자친구에게 아이디를 빌려준 적이 있다. 당시 티어(레벨)가 골드1이었는데 다이아5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게임동아리 회장직을 내려놓고 사과문을 올린 적이 있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커뮤니티엔 동아리 내에서의 류 의원에 대한 비난이 줄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다른 방송 및 언론 인터뷰에 출연하고, 대리 사건에 대해 자기들끼리 간간히 개그 소재로 쓰였다는 점이었다.

게이머들 사이서 대리 게임은 승부조작만큼이나 금기시되고 있다. 지금 20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대리 게임 논란에 대해 “게임 생태계를 저해한 잘못된 행동”이라며 “게임 등급을 의도적으로 올리기 위해 계정을 공유한 행동은 아니다. 저도 당시 등급이 너무 많이 오른 것을 보고, 잘못되었음을 인지해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고 사과했다. 이어 “얼마 후 매체의 인터뷰가 있었고, 그때 바로 잡을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새로 만든 계정의 등급은 대회 참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았기 때문”이라며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반성했다.
 

블로그를 통해서도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여성 유저의 능력을 불신하는 게임계의 편견을 키운 일이니,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 셈”이라며 “당시에 썼던 반성문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시 꺼내 읽었다. 저의 부주의함과 경솔함을 철저히 반성한다. 조금이라도 실망하셨을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리 게임 및 허위 등급을 이용한 게임사 비리 취업 의혹까지 제기됐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입사 지원서에 게임 등급을 기재한 데 대해 류 의원 관계자는 “롤 게임은 해마다 게임 등급이 리셋된다. 2014년 2∼3월 대리 게임을 통해 티어 상승이 이뤄졌고, 5월 달에 논란이 돼 사과했다. 사과 후 다른 부계정을 통해 1년 동안 연습했다. 2015년 등급이 리셋된 후 다시 원래 아이디로 돌아가 게임을 했다. 결국 당시 입사서류에 기재된 롤 등급은 류 위원장 본인 실력이 대부분 반영된 것으로 취업에 영향을 미친 부분은 사실상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소신있는 행동
총 49건 발의

지난달 10일에는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 사망 후 피해자 우선주의에 입각하여 미투 피해자에 연대한다고 조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일각에선 류 의원의 언행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같은 달 13일 언론과의 인터뷰서 “자신의 소신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또, 피해자가 어떤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티나는 ‘류호정 원피스’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에도 관심이 쏠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는 ‘쥬시쥬디’라는 브랜드의 원피스로 8만원 대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쥬시쥬디는 캐주얼 업체 더베이직하우스가 2014년 선보인 브랜드다. 류 의원이 입은 원피스가 어떤 상품인지 알려지자, 원피스는 불과 몇 시간만에 품절됐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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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