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희건설·한양건설 지주택 브로커 정체

돈줄 알선하고 수수료, 건설사 돌며 똑같은 짓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산다. 지역주택조합은 조금이라도 싼 값에 집 한 칸을 마련해보려는 사람들의 꿈을 모은 집단이다. 문제는 누군가 이들의 꿈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주택조합(이하 지주택)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다. 지주택 조합원들은 돈을 모아 토지를 구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세운다. 일반분양서 시행사가 하는 역할을 지주택이 맡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주택은 업무대행사가 그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싼 값에
내 집 마련

지주택 사업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시공사 선정이다. 시공사의 브랜드 가치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조합원 모집, 홍보, 은행 PF대출과 관련해서도 시공사의 이름값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주택 조합원들이 시공사 선정에 민감한 이유다. 

양주백석 지주택은 지난 6월 말 조합 총회를 거쳐 한양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한양건설은 도급 순위가 124위(2020년 종합건설업자 시공능력평가액 공시)인 중소건설사로 ‘한양 립스’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곳이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오산리 660-4번지 일대(약 3만4000평)에 총 1572세대 규모의 아파트 공사를 맡게 됐다. 공사비는 2382억원에 이른다.

양주백석 지주택과 한양건설의 만남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시점은 올해 3월. 양주백석 지주택의 업무대행을 맡고 있는 정모 진성산업개발 회장의 소개로 윤모 한양건설 개발사업본부 팀장(상무)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문제는 윤 팀장의 과거다. 윤 팀장이 서희건설 이사로 재직할 무렵, 대구 지역 지주택서 문제를 일으켜 1심서 실형을 선고받았다는 의혹이 나온 것.

윤 팀장은 지난해 8월 대구 지역 지주택의 토지매입 자금 조성 과정서 자신들의 이권과 관계 있는 브릿지 대출 금융주관사를 조합 측에 소개하고 대가를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윤 팀장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서희건설의 임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거액을 수수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대체로 범행을 인정하며 수수한 돈을 수사기관에 모두 제출한 점, 피고인들이 받은 돈과 관련한 임무는 서희건설의 주된 임무가 아니라 조합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이었고, 대출 알선과 관련한 계약의 결정권한은 조합이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다. 

5개월 만에
급물살 타

서희건설에 따르면 윤 팀장은 지난해 10월 퇴사했다. 이후 5개월 만에 한양건설 소속으로 양주백석 지주택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에 따르면 윤 팀장은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들에게 대환대출을 시도했다. 대환대출은 금융기관서 대출을 받아 이전의 대출금이나 연체금을 갚는 제도를 말한다. 한 마디로 금융기관을 갈아타는 것이다. 이 과정서 금융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 

양주백석 지주택 정상화대책위원회(이하 정대위)는 대출만기 연장이 가능한데 금융수수료를 물어가면서까지 금융기관을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대환대출은 조합원들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일각에선 윤 팀장이 서희건설 이사로 있을 때 대구 지역 지주택서 하던 일을 양주백석 지주택서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여기에 한양건설로 시공사 선정이 이뤄진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3월경 양주백석 지주택은 한양건설과 MOU를 맺고 사업약정서를 작성했다. 한양건설이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들의 신용대출과 토지담보 대출 이자를 대여해주는 조건 등이 붙었다.

실제로 한양건설은 3월부터 매월 양주백석 지주택에 이자 금액을 대여하고 있다.

MOU 과정서 작성한 사업약정서에 대한 의혹도 불거졌다. 조합과 업무대행사, 시공사(당시 시공예정사) 사이에 맺은 사업약정서에는 간인(계약서 사이마다 찍는 인장)은 있지만 날짜 부분은 비어있다.

토지매입 자금 조성 과정
브릿지 대출 금융주관사 
조합에 소개하고 대가 챙겨

정대위 관계자는 “한양건설이 조합으로 이자를 빌려주기 시작한 게 3월부터인데, 사업약정서는 그 이후에야 조합 홈페이지에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또 한양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안건이 상정된 6월28일 조합 총회 자체가 불법이라는 말도 나왔다. 6월28일 조합 총회는 법원서 정대위의 ‘총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6월7일 총회가 한 차례 무산된 뒤에 열렸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시공예정사들과의 MOU 해지, 시공사 선정 등이었다. 

일반적으로 지주택서 시공사를 선정할 때는 복수의 건설사를 두고 조합원들의 표결을 거쳐 결정한다. 하지만 당시 조합 총회서 언급된 건설사는 한양건설 한 곳뿐이었다. 당시 조합원들 사이에선 시공사를 한양건설로 선정하는 것을 두고 불만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 매출 1569억원(2019년 기준)의 한양건설이 공사비만 2382억원에 달하는 지주택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일부 조합원들 사이서 돌았다.

하지만 표결 끝에 한양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이 과정서 허위조합원 문제가 불거졌다. 주택법에 따르면 지주택 조합은 무주택자이거나 전용면적 85㎡ 이하의 주택 소유자에게만 가입 자격이 주어진다.
 

▲ ⓒ문병희 기자

지자체로부터 지주택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조합원 모집률이 50% 이상 돼야 한다. 조합이나 업무대행사에서는 모집률 50%를 채우기 위해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명의대여자가 대표적이다. 명의대여자는 말 그대로 명의만 빌려주고 계약금 등 분담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지자체나 국토부는 전산조회를 통해 조합원의 자격 여부만 판단하기 때문에 명의대여자를 걸러내지 못한다. 

조합 절반이
허위 조합원?

양주백석 지주택의 경우 1572세대의 절반인 786명 이상의 조합원을 모아야 설립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양주백석 지주택서 양주시청에 조합 설립인가를 신청할 당시 조합원 수는 803명. 하지만 정대위는 803명 중에 382명이 허위 조합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에 이미 조합원의 절반가량이 가짜였다는 주장이다.


지주택 사업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조합을 운영하는 과정서 명의대여자를 조합원 수에 포함시키는 일은 자주 있는 편”이라면서도 “양주백석 지주택의 경우 그 숫자가 너무 많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정식 조합원이 받을 피해가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명의대여자가 조합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정대위에 따르면 명의대여자는 조합 집행부와 업무대행사서 데려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의결 과정서 집행부 쪽에 표를 던지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합법적인 방식을 통해 조합 집행부나 업무대행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지는 셈이다.

총회서 선출된 조합장조차 2019년까지 조합원으로 등재되지 않았다는 의혹도 나왔다. 현재 양주백석 지주택의 조합장을 맡고 있는 이 조합장은 2018년 5월12일 선출됐다. 하지만 양주시청의 ‘지역주택조합설립 변경인가 처리 알림’ 공문에 따르면 이 조합장의 조합원 등재 시기는 2019년 8월22일로 추정된다. 

이 조합장이 조합장으로 선출되고 1년3개월 만에야 양주시청에 조합장으로 등재하고, 동시에 조합원으로도 이름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주장이 맞는다면 2018년 5월 이 조합장이 조합장으로 선출될 당시에 그는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조차 아니었다는 뜻이다. 

정대위 소속 조합원 63명은 지난 6월 전 조합장 양모씨와 현 조합장 이모씨, 업무대행사 진성산업개발의 정모 회장과 정모 대표가 허위 조합원을 모집했다며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조합원을 모집하는 과정서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들까지 조합으로 끌어들이는 허수 모집을 했다는 주장이다. 정대위서 주장하는 허위조합원의 수는 382명으로, 양주시청에 등록된 양주백석 지주택 조합원 1042명(2020년 8월 기준)의 36.6%에 달한다.

현장 5곳 중 4곳은 망해
양주백석도 법적공방 중


정대위는 앞서 지난 5월 주택법 위반,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이들 4명을 고발했다. 조합장과 업무대행사 대표가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조합의 예산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정대위는 이들이 조합 돈을 이용해 사들인 땅의 명의를 업무대행사 대표로 해놓는 등 조합 돈을 임의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지주택 사업은 일반분양과 비교해 분양가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주택이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수단으로 이용되는 이유다. 하지만 지주택 사업의 성공률은 20% 남짓이다. 나머지 80%는 표류하는 사업에 매달려 돈은 돈대로 날리고 집은 집대로 못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 ⓒ양주백석지역 주택조합 홈페이지

지주택 사업이 망가지는 이유는 대부분 조합서 발생하는 비리 때문이다. 지주택에 대해 잘 아는 관계자들은 조합 집행부와 업무대행사가 정직하게만 조합을 운영하면 별 무리 없이 아파트를 세운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지주택 5곳 중 4곳은 법적 분쟁으로 얼룩지고 사업이 무기한 길어지는 사태에 다다른다. 

양주백석 지주택 사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한양건설은 지난 5월18일 양주시청에 사업승인 계획 서류를 접수했다. 하지만 사업승인이 떨어지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양주시청 주택과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서류가 많이 미비해 5월 중순경에 보완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진(8월3일) 다 보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주택 사업이 표류하면 분담금을 낸 조합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이미 계약금을 내고 조합에 참여한 이들은 추가분담금이 발생할 때마다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낼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돈을 조합에 넣었기 때문에 발을 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사업이 좌초되기라도 하면 조합원 손에는 빚을 빼곤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서민 피해
눈덩이 된다

정대위 측은 “양주백석 지주택은 2018년 7월 토지를 100% 매입한 이후 2년 넘게 일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주택 사업의 성공률이 낮다지만, 토지를 전부 사놓고 2년 동안 진전이 없기도 힘들 것”이라며 “조합 집행부나 업무대행사서 사업을 성공시키려는 의지가 없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업이 엎어지면 모든 피해는 조합원들에게 집중된다. 이제라도 제대로 가야 한다. 집행부를 다시 선출하고 업무대행사를 바꾼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고 본다”며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에 집을 갖는다는 지주택의 원래 취지대로 조합이 운영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양건설·업무대행사·조합장 해명
그 사람, 일은 잘한다”

한양건설 홍보팀 관계자는 윤모 개발사업본부 팀장이 “서희건설 출신의 이사가 맞다”면서도 “인사 관련 부분은 잘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윤 팀장을 고용한 이유 ▲양주백석 지주택에 이자를 대여하는 이유 등 추가 질의에 대해서는 회사의 입장을 검토해 답변을 주겠다고 했지만 현재(7일 오후)까지 연락은 없었다.

업무대행사인 진성산업개발의 정모 회장은 양주백석 지주택 정상화대책위원회(이하 정대위)의 소송 제기에 대해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딱히 할 말이 없다. 업무대행사는 토지 등기이전까지만 관여했고, 설립인가가 난 이후에는 조합이 사업을 주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지주택 사업 관련 일을 하다 보면 꼭 그 안에서 패가 갈려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며 “문제가 생겼을 때 조합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법적 송사로까지 번지는 이유는 이권을 잡기 위한 주도권 다툼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명의대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주택 사업이 불안하다 보니 사업승인이 난 뒤에 돈을 넣겠다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그때까지 돈을 내지 않으면 착공 들어갈 시점에 다 빼버린다”고 설명했다. 정대위는 업무대행사서 명부까지 만들어 명의대여자를 관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지주택 사업은 가다가 서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게 된다. 양주백석 지주택의 경우 올해 안에 착공하지 못하면 사업은 망가진다고 본다. 사업승인은 8∼9월 안에 날 것으로 보이지만 이미 너무 오래 끌었다. 다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한양건설 윤 팀장에 대해 “예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다.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은 잘한다. 양주백석 지주택 사업은 윤 팀장이 없으면 부도난다. 한양건설이 이자를 내주지 않았다면 이 사업은 경매에 넘어갔다. 그걸 성사시킨 게 윤 팀장”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업이 망가지고 난 뒤에 옳고 그름을 따져서 뭐하냐는 입장도 전했다. 

윤 팀장과 현 조합장인 이모씨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선>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