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소울아트스페이스 제제-최영욱

야자수를 든 어린아이와 달항아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미술계가 침체기에 빠졌다. 오프라인서 작품을 통해 관람객과 만났던 작가들은 전시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과 직면했다. 최근 한창 웅크리고 있던 미술계가 최근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있다. 
 

▲ 최영욱 | Karma 20199-3|2019|Mixed media on canvas|165x150cm

부산 해운대구 소재 갤러리 소울아트스페이스서 두 작가의 개인전을 준비했다. 제제 작가의 ‘INTO THE NATURE- 자연 속으로’와 최영욱 작가의 ‘Reflection- 성찰’. 두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관람객들과 만난다. 

자연 속으로

제제의 INTO THE NATURE- 자연 속으로 전시는 제1전시실서 감상할 수 있다. 제제는 2018년 신진작가 지원전 ‘Rest In Peace’에 이어 2019년 ‘물질주의 가치’ 등 소울아트스페이스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개인전은 그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화해왔고 발전했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자리다. 제제는 조각 외에도 평면 회화와 대형작품 등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한다.

Nature는 일반적으로 자연을 의미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본성 그대로를 간직한 아이의 특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an)>은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인류가 종말에 이르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작고 힘없는 대상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희망의 아이콘으로 존재해왔다. 

미술작품서 아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 흔치 않았다. 서양에선 성모상을 통해 모자 관계 속에서, 한국화에선 단원 김홍도의 ‘서당’이나 ‘씨름’서 볼 수 있듯 마을이나 가족공동체의 일부로 등장했다.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다.  


제제는 2017년 어린아이를 단독으로 형상화한 조각을 처음 발표했다. 이를 매개로 자신의 생각과 현대적 관점을 반영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어린 조카에게 영감을 얻었다. 

아이들은 희망의 아이콘
독립적인 주체로 조각해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를 동경하듯 시간이 흘러 무의식 깊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버린 순수한 세계를 접한 어른은 낯섦과 경이를 느낀다. 백지처럼 편견 없는 상태서 세상의 상황을 유연하게 흡수하고, 때론 예측불허의 반응을 보이는 어린아이를 통해 받는 감동은 여느 예술작품이 주는 것보다 클 수 있다. 

제제의 조각은 볼수록 다른 느낌을 준다. 첫 눈에는 귀여운 느낌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혈색 없이 굳게 다문 입술, 무표정한 얼굴에 어떤 특정 동작을 취하고 있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아이 캐릭터가 큰 눈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데 반해 그의 작품 속 아이는 눈이 크게 묘사돼있지도 않다. 또 아이들은 대부분 오드아이다. 

피부는 주로 블랙이나 화이트, 옷이나 머리카락은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데, 표면을 긁어낸 질감을 그대로 남겨뒀다. 단단한 표면 위에 그린 낙서와 드로잉은 시대와 환경에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내면에 부유하는 가치충돌을 즉흥적으로 나타낸 부분이다. 
 

▲ 제 제 _ eye in the sky _ 2020 _ Acrylic on F.R.P. _ 27x28x73cm

전시 제목과 걸맞게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인물들 곁에는 야자수와 같은 열대식물들이 함께 자리한다. 높은 온도서 자라 키가 크고 여러 진귀한 잎과 꽃모양을 이루는 열대식물처럼 제제의 나뭇잎은 초록을 기본으로 다채로운 색을 더하고 기형적 형태를 표현했다. 

순수한 아이의 형상에 텍스트나 드로잉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했듯, 신작서도 대립적 요소를 배치했다. 스틸로 나무를 표현해 산업화된 사회와 자연을 대비시키고, 숲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인식해 가까이 두면서도 두려운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의 모순적 모습을 형상화했다. 


제제는 이번 전시에 여성만 등장시켰다. 그는 “아이를 낳고 자식을 키우는 모성이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행하는 희생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이어 “지키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신비하고 위대한 존재지만 고도의 산업화와 경제개발에 밀려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잔혹함과 격렬함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입시학원 운영하다 훌쩍
뉴욕 미술관에서 매료돼

소울아트스페이스 관계자는 “거칠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가진 자연과 아이의 공통된 특성처럼 어른들의 무의식 속 잠재된 순수함을 새롭게 발견하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제2, 3 전시실에는 최영욱의 전시 Reflection- 성찰이 준비돼있다. 100호 이상 대작을 중심으로 15점 내외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한국은 서방과 아시아가 만나는 접점에 자리한 지리적 위치, 남북으로 갈려 있는 정치적 상황 등으로 인해 내재된 갈등이 많은 나라다. 강한 열방의 다툼 속에 살아온 우리 선조들은 달항아리처럼 소박하고 평화로운 삶을 끊임없이 염원했다. 

최영욱은 “사회적 역할을 고심하면서 강렬한 메시지를 담는 작품보다 달항아리가 주는 미감과 같이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하고 위로가 되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최영욱|Karma 20199-2 |2019|Mixed media on canvas |165x150cm

그는 유명 미대 합격생을 다수 배출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가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150개의 캔버스를 챙겨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그를 매료시킨 것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관에 전시된 달항아리. 표면의 작은 흠과 변형된 색, 비정형의 형태를 지닌 존재는 최영욱을 강하게 끌어 당겼다. 그는 “푸근하고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게 속으로 내공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고 전했다. 

성찰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대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인 부정형의 곡선이 여러 감식가와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박하면서도 당당한 기품은 작가가 추구하는 인생 철학과 닮아있다. 

소울아트스페이스 관계자는 “(최형욱이) 대학 때부터 좋아한 흰 색, 그의 아내와 함께 인사동서 구입한 작은 달항아리 한 점, 뉴욕서 새롭게 만난 달항아리, 한국서 아버지가 사온 달항아리를 보고 자란 빌 게이츠와의 만남 등 계산되지 않은 우연성, 새로운 인연이 그의 작품 카르마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삶의 위로와 성찰, 화해와 명상을 제안하는 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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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