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8)곤드레·냉이

곡식 대신 나물로 보릿고개를 넘기다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곤드레’라는 말을 처음 접한 시기는 20대 막판 무렵 JP(김종필 전 총리) 주도로 이루어진 술 자리에서였다.

잔을 채우자 느닷없이 JP께서 제안하신다.

당신이 ‘곤드레’를 선창할 터이니 ‘만드레’로 화답하라고.

[곤드레]

의아해하며 그를 따라하자 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당신이 제안한 건배사, ‘곤드레만드레’는 그야말로 허리띠 끌러놓고 정신은 물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흠뻑 취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리 해야 할 일로 그 좌석은 물론 이후 JP와 술자리를 가지게 되면 항상 ‘곤드레’와 ‘만드레’를 외치며 잔을 비우고 시쳇말로 ‘떡이 되어’ 귀가하고는 했다.

JP의 건배사인 곤드레만드레에 대해 우리 선조들은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 궁금하다.

하여 고문서를 살피자 醉如泥(취여니), 醉作泥(취작니), 醉似泥(취사니) 등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진창(泥)이 되도록 취한다는 의미로, 애주가인 필자로서 선조들의 호방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내친 김에 필자의 건배사 ‘애주가를 위하여’에 대해서도 소개해보자.

소설가로 변신한 어느 한날 이 사회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자 서로 제가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를 지켜보다 술잔을 들고는 대뜸 한마디 했다.

“이 땅에서 가장 끗발 좋은 자가 누군지 아냐”고.

그러자 이 친구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를 주시한다. 순간 곧바로 다음 말을 이어간다.

“‘가’자로 끝나는데 감이 오지 않냐”라고.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소설가’를 되뇐다.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답한다. 

“소설가 같은 소리하고 있네. 소설가가 아니라 애주가야, 이 자식들아!” 

그러자 좌석은 잠시 폭소판으로 변하고 이어 필자의 건배사 ‘애주가를’, ‘위하여’가 이어진다.

이제 나물 곤드레로 돌아가자.

곤드레라는 나물 이름에 대해 혹자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가 마치 술 취한 사람과 같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하고 또한 민들레나 둥글래처럼 곤드레의 원이름은 곤들레였다고도 한다.

그에 대한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으나 필자는 그 이름의 기원을 ‘곤’에서 찾고자한다.

곤은 물론 困(곤)으로 곤궁함을 의미한다.


곤궁한 시기에 들판 여기저기서 즉 ‘들에’서 자라나는 나물로 굶주림을 해결했다고 해서 ‘곤들에’로 또 ‘곤드레’로 변한 게 아닌지 추측해본다. 

이를 위해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 1호인 정선 아리랑 가사 중 일부 인용한다.

한 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정선 아리랑은 조선 건국 직후 정선 전씨의 중시조인 전오륜 등 고려 충신 7인이 정선 서운산으로 피신해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며 여생을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면서 자신들의 정한을 노래에 담아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그 과정에 등장하는 대표적 나물이 곤드레였으니 필자의 추측이 마냥 그르다 할 수 없다. 

곤궁함 의미 ‘곤들에’서 ‘곤드레’로? 
고량진미(膏粱珍味)’ 냉이에 대한 극찬


[냉이]

조선 초기 인물로, 용재총화로 널리 알려진 성현(成俔, 1439∼1504)의 작품 감상해보자. 

薺花(제화)

叢生盤地托芳根(총생반지탁방근) 
향기로운 뿌리로부터 무더기로 태어나니 
甘軟調羹自媚飧(감연조갱자미손)
달고 연해 국 끓이면 맛 일품인데
陌上雪殘靑葉長(맥상설잔청엽장) 
눈 남은 길 위에 푸른 잎 자라나고
墻陰春老素花繁(장음춘로소화번) 
늦 봄 그늘진 담장에 흰 꽃 무성하네 
五溪野外人誰採(오계야외인수채)  
오계의 들 밖에서 어느 사람이 캐는가 
萬落城中賣作斤(만락성중매작근) 
만호의 성 안에서 근으로 달아 파네
舊穀旣空新麥短(구곡기공신맥단)  
오래된 곡식 떨어지고 햇보리도 부족하면 
饞農辛苦度朝昏(탐농신고도조혼) 
주린 농부 고통스럽게 아침저녁 넘긴다네

성현이 냉이 꽃을 바라보며 냉이에 대해 읊은 시다.

그에 의하면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냉이가 그저 그렇고 그런 나물이 아니라 보릿고개에 직면해 먹을 음식이 모두 동났을 때 구황식품으로도 사용됐다고 하는 대목이다.

구황식품이란 말 그대로 식량이 부족할 때 곡식 대신 먹는 식품인데 냉이가 바로 그러하다는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이를 위해 중국 송대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의 문인 채원정(蔡元定)이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본다.

고전을 살피면 그는 스승인 주희를 만나기 전 서산 꼭대기에 올라 냉이 나물로 연명하며 글을 읽었다고 한다.

또 있다. 고려 말 대유학자인 이색(李穡, 1328∼1396)의 작품 스스로 읊다(自詠, 자영)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繞墻老薺望人肥(요장로제망인비) 
담장 주위에 피어난 냉이라도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허기를 면했으면

마지막으로 서거정 작품 감상해보자.

薺(제)
냉이

食肉元無相(식육원무상)
고기 먹을 일 원래 없는데
春廚薺菜香(춘주제채향)
봄날 부엌에 냉이 나물 향기롭네
和羹能悅口(화갱능열구)
국에 넣으면 기막히게 맛나
佐食足撑腸(좌식족탱장)
밥을 더하니 속이 든든하네
軟滑何須酪(연활하수락)
보드랍기는 어찌 우유뿐이랴
甛甘絶勝糖(첨감절승당)
달기는 사탕수수보다 훨씬 낫네
客來吾欲詫(객래오욕타)
손님 오면 자랑하고 싶네
第一是膏粱(제일시고량)
제일 가는 고량진미라고

냉이에 대한 극찬이 멈추지 않는다.

급기야 서거정은 냉이를 고량진미라 추켜세운다.

고량진미(膏粱珍味)는 기름진 고기와 밥으로 이루어진 대단히 귀한 음식인 바 냉이가 바로 그렇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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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