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통 큰 여장부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8.03 11:00:20
  • 호수 12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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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나온 김에…노벨상 가즈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천사가 나타났다. 과학 인재들을 위해 ‘통 큰’ 기부를 한 그 주인공은 바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다. 이 회장은 “과학이 미래”라고 강조하며 과학 인재들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이수영 광원전자 회장 ⓒKAIST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이 지난달 23일 한국과학기술원(이하 KAIST)에 676억원을 기부했다. 지난 2012년(80억여원)과 2016년(10억여원) 미국 부동산을 유언으로 증여한 것에 이은 세 번째 기부다. 이번 기부로 KAIST 개교 이래 최고액인 766억원으로, 이 회장은 기부 여왕이 됐다. 

교육재단 설립
연구기금 사용

이 회장은 KAIST 대전 본원 학술문화관서 열린 기부 약정식서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 수익금은 KAIST 싱귤래러티 교수 지원을 통한 노벨상 연구 기금으로 사용된다. 

싱귤래러티 제도는 과학 지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교수, 인류 난제를 해결하고 독창적인 과학 지식과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교수를 선발해 지원한 제도다. 

싱귤래러티 교수로 선정되면 10년간 임용기간 동안 연구비를 지원 받고 논문·특허 중심의 연차 실적 평가가 유예된다. 임용 기간 종료 시 연구 진행 과정 및 특이점 기술 역량 확보 등 평가에 따라 지원 기간을 추가로 10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본 이 회장의 생각이 ‘통 큰 기부’로 이어진 것.

이 회장은 “나는 과학을 모르지만, 과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 기술 인재를 키워주시기 바란다.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KASIST 역대 최고액 766억 쾌척
2012년, 2016년 이어 올해 세 번째

이 회장이 KAIST와 처음 인연은 맺은 건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속할 사람이 없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재산을 기부할 곳을 찾았다. 2012년까지 서울대 법대 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아 장학사업을 진행했지만, 모교인 법대는 학업은 잘해도 사회에 공헌하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다른 곳을 찾다가 우연한 기회에 서남표 KAIST 총장이 출연한 TV 인터뷰를 접했다. 

서 총장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국민이 호응해달라”는 이야기에 감명받은 이 회장은 과학기술만이 우리나라가 살 길이라고 생각한 것. 좋은 연구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국가 발전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 이수영 회장 ⓒKAIST

노벨상은 세계가 인정하는 권위적인 상이자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분야다. 이 회장은 국내 과학기술의 위상을 높이려면 노벨상 수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추가 기부 계획에 대해 이 회장은 “KAIST를 계속 지켜보려 한다. 연구를 잘하지만 경영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재단이 금액을 관리해 KAIST가 이익잉여금을 쓰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았던 이 회장은 재산이 의미 있게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며, 신성철 KAIST 총장의 뜻에 공감해 임기 동안 KAIST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KAIST에는 대한민국 1호 한의학 박사인 고 류근철 박사(578억원),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515억 원), 김병호 전 서전농업 회장(350억원), 고 김영한 여사(340억원) 등의 기부자들이 고액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 

사시 낙방
신문사로

해방 이전인 1936년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 회장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했다. 아들보다 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그는 당대 최고 명문이었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로 진학한다. 하지만 1년간 열심히 공부해 도전한 사법고시에 낙방한 뒤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다.

겨우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른 그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어느 날, 학원 게시판서 공고문 하나를 본 뒤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 공고문은 <서울신문>서 신입 기자를 뽑는다는 안내문이었다.

1963년 <서울신문> 10기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 그녀였지만 ‘따돌림’ 등으로 4개월 만에 사직서를 쓰게 된다. 이에 대해 자서전서 ‘서울대 법대 출신의 자그마한 여기자가 하나 들어와서 고개 빳빳이 들고 편집국을 다니는 내 모습이 곱게 보였을 리 없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한국경제신문>을 거쳐 1969년 <한국일보> 자매지였던 <서울경제신문>에 뿌리를 내렸다. 1980년 전두환정부가 <서울경제신문>을 강제 폐간할 때까지 몸담아 총 17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이 회장은 스스로 “나는 아직도 <서울경제신문>을 친정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시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기자 시절 그는 10원 정도 하는 안양 땅 5000평을 매입해, 돼지 2마리와 암컷 한우 3마리로 목장을 시작했다. 농장이 커지자 낮에는 신문사서 일하고 밤에는 경기도 안양의 목장서 돼지와 소를 키웠다. 목장과 서울을 오가느라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차 안에서 잠깐씩만 눈을 붙이면서 생활을 이어갔다.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본격적으로 농장 일과 사업을 벌였다. 선친이 딸의 결혼 비용 등으로 남긴 50만원짜리 적금 통장 2개가 사업 초기자본금이었다. 돼지 2마리로 시작한 목장은 돼지 100마리, 소 10마리로 규모가 커졌고 전국에 소개될 만큼 주목받기 시작했다.

돼지 출하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했을 때는 국군장병 위문품으로 돌려 이익을 남겼고, 우유가 남아도는 ‘우유파동’ 때는 농림부에 초등학생 우유 무료 제공을 건의해 판로를 뚫었다.

지난 2018년
자서전 출간


목축으로 시작한 이 회장은 모래채취 사업으로 본격적인 부를 일궜다. 1988년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며 광원산업을 세우고, 여의도백화점 일부 매입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덕분에 미국의 연방정부가 세 들어 있는 빌딩의 건물주가 됐다.

이 회장은 “성조기가 펄럭이는 건물의 주인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게 바로 KAIST에 유언으로 증여하며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건물이다.

이 회장은 80년 넘게 독신으로 살다가 2018년 서울대 법대 동창이자 첫사랑이었던 김창홍 변호사와 결혼했다. 남편은 대구지검 지청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력가의 기부에는 으레 가족들의 반대가 따를 수 있지만 이 회장은 “남편이 오히려 ‘이왕 마음먹은 거 빨리 하라’며 기부를 독려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2018년 11월 자서전 <왜 KAIST에 기부했습니까?>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이 회장의 일대기를 담은 책으로 KAIST발전재단이 출판하고 이 회장이 직접 썼다. 이 회장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기자 시절, 만난 사람들, 기업가, 기부자 등 6부로 구성된 책이다. 
 

▲ 왜 KAIST에 기부했습니까?

1936년생인 이 회장이 늦게나마 펜을 들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기록한 이유는, 자신이 가장 많이 들었던 세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첫째, 당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법조인의 길을 걷지 않고 기자의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둘째, 여성의 몸으로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돈을 모을 수 있었는가? 셋째, 왜 기부를 결심하게 됐고 그것도 KAIST에 기부했는가? 이 회장은 자신의 삶을 하나씩 되돌아보며 이 질문의 답을 찾는다.


서울대 법대 졸업 후 신문기자 생활
땅 사놓은 게 잘 풀려 사업가로 변신

책에는 재계 인사들 관련 일화와 취재 뒷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는, 소장하고 있던 골동품을 취재하기 위해 어렵게 만난 이야기가 담겼다. 또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한 이병철 회장 인터뷰는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 10주년 기념 전시로 이어졌다. 당시 ‘한국미술 5000년전’에 이 회장은 삼성서 소장하고 있던 국보급 보물을 대거 공개해 전시를 빛냈다.

과자로 시작해 시멘트 회사까지 인수하면서 국내 10대 기업으로 회사를 키운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는 한때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평소 그가 ‘근면과 성실의 결정체’임을 알고 있었기에, 잠적한 그를 설득했다. 마침내 새벽 5시에 만나겠다는 전화를 받고 나간 자리서 “내게 시간을 달라고 전해달라”며 “채권자들이 어떤 피해도 보지 않게 하겠다”는 이 창업주의 말을 기사로 전했다.

그는 모든 것이 정리된 후 “이수영 기자가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기부 행위를 두고 안종수 단국대학교 보건학 박사는 <뉴스토마토> 칼럼서 “비과학자 출신이 노벨 과학상에 대한 염원을 담아 큰 액수로 기부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 회장이 이런 행위는 두 가지 측면서 정말 의미가 크다. 하나는 우리 사회 부자들의 기부문화를 성찰하게끔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 입국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과학 중요성
일깨워준 행위”

이어 “우리나라가 미국, 유럽 선진국들에 견줘 크게 모자라는 것이 바로 갑부들의 기부문화와 노벨 과학상 수상이다. 서민들이야 기부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재산이 없어서라는 이유를 댈 수 있지만, 수백억원 이상의 자산가들도 수두룩한데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회 기부보다는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데 골몰하고 있다. 기부하더라도 대부분 장학재단 등으로만 내놓지 과학기술 입국 목적으로 내놓은 경우는 희귀하다. 이 회장의 기부가 정말 뜻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기부왕’ 고 송금조 이사장

이수영 회장 말고도 노벨상 수상을 위해 재산을 아끼지 않았던 또 한 명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고 송금조 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이다. 평생 모은 돈을 지역 교육 문화 발전에 바친 송 이사장이 7월21일 오후 6시14분에 별세했다. 향년 98세. 

송 이사장은 지난 2004년 전 재산인 1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며 순수 공익재단인 경암교육문화재단을 세웠다. 그전에는 2003년에는 부산대학교의 양산캠퍼스 설립에 305억원을 기부 약정하고, 195억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개인 기부금 사상 최고액이었다.

1923년 경남 동래군 철마면 송정리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송 이사장은 늘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가난 탓에 17세가 돼서야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해 친구의 집에 놀러가 몰래 교복을 입어봤다는 일화도 있다. 교육열이 울혈처럼 맺혔다.

군 복무 시절, 돈이 없어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설렁탕 한 그릇 못 사드린 게 한이 돼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소소한 점원부터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이후 1974년 금형 사출공장인 ‘태양사’를 설립해 유럽 전역과 미국에 식기 세트를 수출했다. 봉제공장 ‘태양산업’, 플라스틱 사출공장 ‘태양화성’ 등도 성공시켰다.

1987년에는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고 1986년에는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악착같이 수천억원대의 재산가가 됐지만, 근검절약 정신은 몸에 배어 있었다. 부인이 세수한 물을 대야에 뒀다가 화장실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아끼고 아꼈다.

그렇게 모은 돈은 오직 지역사회 교육에 썼다. 1985년 학교법인 태양학원을 설립했고, 이듬해 경혜여고를 설립해 중등교육 육성에 매진했다.

2000년 봉황장을, 2002년 국민교육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전 재산을 환원할 당시 송 이사장은 “뭐가 아까우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구>


<기사 속 기사> 대한민국 기부왕은?

100세를 눈앞에 둔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은 한국의 기부왕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서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할 수 없어도 돈을 사용하는 데 천사처럼 하겠다”는 자신의 기부 철학을 알렸다. 

그는 1959년 삼영화학공업 주식회사를 세운 뒤 2000년 1조원의 사재를 털어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세계 100대 자선재단 순위서 90위에 속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이다.

가구업체 한샘의 창업주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은 2015년 자신이 보유한 한샘 주식 절반인 260만주(당시 종가 기준 약 4400억원)를 한샘드뷰재단에 내놓기로 약속했다. 조 명예회장은 2015년 60만주, 2017년 100만주를 기부했으며 나머지 주식의 재단 증여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도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의 통일나눔펀드에 개인자산 전액인 약 200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더불어 이 명예회장은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현장 폭발사고(20억원), 2017년 경북 포항 지진 (10억원), 2020년 코로나19(20억)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일에 꾸준한 기부를 이어왔다.

예술계 스타들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원로배우 신영균씨는 2010년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원 규모의 사유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쾌척했다. 모교인 서울대에도 시가 100억원 상당의 대지를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서 “나중에 내 관 속에는 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주면 된다”며 앞으로 남은 재산도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신씨는 서울대 출신의 잘나가는 치과의사이자 사업가, 배우, 국회의원 등으로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린 인물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극단서 활동하다 어머니의 반대로 1995년 서울대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1960∼1978년 영화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이후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배우 장나라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9년 130억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한 바 있다. 대부분의 광고 수익을 기부하는 그는 “사람들에게 장미를 나눠주니 내 손에 장미향이 남았다”는 가훈을 가슴에 담아 선행을 실천한 것.

기부천사로 알려진 가수 션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아내 정혜영과 각종 재단에 개인으로 기부한 금액은 55억원이 넘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서 “한 단체서만 아이 400명 정도 후원을 한다. 총 1000명 정도 후원을 한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겼다.

또 가수 하춘화도 45년간 200억원이 넘는 기부를 했으며, 가수 조용필도 매년 수억원씩 기부하며 2013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영웅 48인’에 이름을 올렸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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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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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