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지우기’ 위기의 당권파 해법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03 09:57:52
  • 호수 12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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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돼도 상왕정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들어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향한 비판은 벼른 칼처럼 날카롭다. 현재 민주당 내부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만큼 친노(친 노무현) 좌장이자 군기반장인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은 철옹성처럼 굳건해 보였다. 이 대표와 한 배를 탄 당권파 역시 덩달아 위기다. <일요시사>는 기로에 서 있는 당권파의 독자생존 전략을 취재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180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데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만 ‘버럭’하는 것은 배우기가 그렇다.”(민주당 노웅래 최고위원 후보) “굉장히 무섭다.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기가 힘들고 말씀드리고 나서도 한참 혼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이원욱 후보) “이미 그분이 다 해본 길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상력이나 도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강하다.”(김종민 후보) “잘난 척까지는 아니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조금 자제하면 좋을 것 같다.”(신동근 후보)

참았던 불만
봇물 터지듯

다선 국회의원이 초선 의원을 지적하는 듯 보이는 발언이지만, 실상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평가하는 발언이다.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낸 이들 4명은 모두 이달 말에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의원들이다.

이 대표의 임기는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오는 29일에 열린다. 이 대표의 임기는 전당대회까지다. 충분히 리더십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 시기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이 대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대표는 친노의 좌장이자, 민주당의 군기반장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설 총리를 역임했으며, 노무현재단의 4대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서 엄수됐을 당시 추도사를 읽은 사람이 바로 이 대표다. 친노·친문(친 문재인)이 주류를 차지하는 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이 대표는 군기반장으로 통한다. 이 같은 이미지엔 그의 까칠한 성격도 일조한다. 참여정부 실세 총리이던 시절 그는 ‘버럭 총리’로 불렸다. 국회 대정부질의서 야당 의원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2월 대정부질의서 ‘차떼기당 발언’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홍준표 의원과 설전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 (사진 왼쪽부터)김종민·노웅래·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초선 의원이던 시절 평민당에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당화를 지적하며 탈당한 사건은 그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을 잘 대변하는 사건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강한 여당’이 이 대표가 내세운 청사진이었고, 여기에 많은 민주당 당원들이 표를 던졌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청와대·정부에 강한 목소리를 내며 향후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당이 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취임 첫 고위당정청회의서 이 대표는 “민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쓴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군기반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미리 경고를 날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고위원 후보들 “대표 무섭다”
‘부초서천’ 논란에 민주당 흔들

군기반장의 면모는 민주당 내부를 단속하는 과정서도 드러났다. ‘함구령’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민주당 인사들과 관련한 논란이 터질 때마다 입단속에 나섰다. 

후원금 유용 의혹 등을 받은 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자 “일희일비하듯 사건이 나올 때마다 대응하지 말라”며 의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와 관련해서도 “논란으로 확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금 전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본회의 표결 당시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 윤리심판원서 징계 결정을 받았다.


잇단 함구령에 민주당 내부서도 불만이 표출됐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서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가 헌법적 판단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공개 회의서 발언하겠다”며 소신을 드러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 외에는 이렇다할 공개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림이 없었다. 

금 전 의원 징계 논란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진 시기는 지난 6월이다.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서 이 대표의 리더십에는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복수의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강한 어조로 그간의 이 대표의 발언 등을 지적하고 나섰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해찬 리스크’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를 방문했던 지난달 10일, 박 전 시장의 ‘미투 의혹’을 묻는 질문에 욕설을 한 일이 결정적이었다.
 

▲ 최고위원회의서 발언하는 박주민 최고위원 ⓒ문병희 기자

이 대표는 박 전 시장의 빈소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서 얘기라고 하나.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말한 뒤, 기자를 노려보며 “XX자식 같으니”라고 쏘아붙였다.

당시의 대응 논란은 일마만파로 퍼졌다. 한국기자협회는 이 대표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해당 언론사 측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버럭총리
군기반장

이 대표가 당시 빈소서 보여준 격앙된 반응은 이후 민주당 의원들의 ‘2차 가해’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대표가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사과하기 전, 그가 박 전 시장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하는 모습은 민주당 내부 의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사자 명예훼손에도 해당할 수 있는 얘기”라고 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민주당 윤준병 의원 역시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 고인의 명예가 더는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 논란을 불렀다.

이후 이 대표를 비롯해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던 의원들이 사과했지만,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로부터 2주 뒤 ‘천박한 서울’ 논란이 터졌다. 이 대표는 지난달 24일 세종시청 여민실서 열린 ‘세종시의 미래,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시대’ 토론회서 “서울 한강 배를 타고 지나가면 저기는 무슨 아파트, 한 평에 얼마 그걸 쭉 설명해야 한다”며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가지고 단가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로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민주당 부산시당서 개최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서 부산을 ‘초라하다’고 말한 이후 두 번째 지역 비하 발언이다. 야권에서는 ‘부초서천’(부산은 초라하고 서울은 천박하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이 대표와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천박한 서울 발언 논란에 이어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이 대표는 다른 지도부와 엇박자를 냈다. 이 대표는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도를 세종으로 한다’는 규정을 세우면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다는 입장이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지난달 24일 세종시청서 열린 토크콘서트서 이 대표는 “개헌할 때 대한민국 수도를 세종시에 둔다는 문구를 넣으면 위헌 결정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해 여권 내 기류는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한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방향이다. 김 원내대표는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이하 추진단) 첫 회의서 “대선까지 시간 끌지 않고 그 전에 여야가 합의할 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추진단 단장인 민주당 우원식 의원 역시 여야 합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해찬 리스크
“총기 잃었나”

민주당 단독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을 때의 정치적 역풍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헌 논의 등으로 소비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서다.

만약 속도가 나지 않을 경우 마지막 카드로 개헌을 꺼내든다는 것이 민주당 내부의 중론이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개헌과 추진단서 주장하는 특별법 제정 사이에는 갭이 크다. 민주당 지도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총기를 잃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민주당 내부서 들려온다. 일각에선 퇴임을 앞두고 긴장이 풀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레임덕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문제는 이 대표의 발언이 민주당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조사하고, 30일에 발표한 7월4주차 주중 잠정집계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서울 지역서 3.9% 포인트, 충청권서 4.9% 포인트 하락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서울 지역서 4.8% 포인트, 대전·세종·충청 지역서 4.5% 포인트가 하락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이 대표의 천박한 서울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9주 연속 하락세를 멈추고 지난주보다 1.2% 포인트 오른 45.6%를 기록했음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해찬 책임론’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는 않다. 최고위원 후보들이 이 대표의 발언에 일침을 가했지만, 사퇴 등으로 번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어차피 교체될 지도부라는 이유에서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은 천박한 서울 논란과 관련해 “모든 것은 뒷전이고 그런 이야기(집값)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천박한 상황을 말한 것”이라며 “한 달 정도 있으면 은퇴를 하시는 분이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셔도 좋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친문 당권파의 수장이다. 김태년 원내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 김성환 당 대표 비서실장이 이 대표와 가까운 친문 당권파로 통한다. 당내 이해찬계로 분류돼 속칭 ‘이해찬 당권파’로도 불린다. 

“어차피 나갈 것” 쉬쉬
친문 건재하다지만…

이들은 이 대표 퇴임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이낙연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박주민 최고위원이 차기 당권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 중 박 최고위원이 친문 당권파로 분류된다. 

박 최고위원은 이번 당 대표 선거의 주요 변수다.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이 의원과 김 전 의원의 양강 구도가 전망됐었다. 박 최고위원은 후보 등록 마지막 날 갑작스레 출마를 선언했다. 

앞서 박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이 때문에 그의 막판 출사표가 뜻밖이라는 반응이 민주당 안팎서 들려온다. ‘체급 올리기’ ‘플랜B’ 등 박 최고위원의 출마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진다. 

체급 올리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박 최고위원이 결국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해 당 대표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해석한다. 이낙연·김부겸과의 대결로 체급을 올린 뒤 내년 4월에 열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플랜B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약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여성을 낙점했을 때를 대비해 박 최고위원이 당 대표로 방향을 틀었다고 본다. 불확실한 서울시장에 도전하기보다 조금 더 명확한 당 대표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이 당 대표로 당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높은 인지도와 호감으로 많은 친문 표심을 가져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정치적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박 최고위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서 친문 당권파들이 그에게 마냥 힘을 실어주기는 힘들다.

퇴임 이후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해석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앞서 이 대표 상왕설이 정치권서 불거진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변수 등장
선택 기로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교류 및 상호협력관계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민간단체다.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다. 이 대표와 가까운 친문 당권파들은 당의 요직(김 원내대표, 윤 사무총장, 김 비서실장)에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대표가 퇴임 후 ‘상왕정치’를 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첫 당 대표 후보 토론회 승패는?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이낙연·김부겸·박주민 후보가 맞붙었다. 지난달 29일 첫 TV 토론회서 후보들은 행정수도와 대표 임기 문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김 후보는 이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입장이 몇 번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호남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이 후보는 “행정수도 건설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는 비수도권 지방과의 불균형이 생기는 경우에 대해 보완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당 대표 임기 문제를 놓고도 공방을 벌였다.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임기 7개월 만인 내년 3월에 사임해야 한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예정돼있는 와중에 지도부 공백이 불가피하다.

이 후보는 “책임 있게 처신하겠다”며 에둘러 입장을 내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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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