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유튜버 활개에 선 긋는 통합당 속사정

사공이 많다 버려야 산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우파 유튜버들의 지나친 공세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들의 비상식적인 행보는 국민 보편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 전까지는 이들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 국회 본청 앞 점령한 보수단체

광화문역서 열리는 태극기 집회가 한창일 때다. 집회 참석자로 추정되는 노년층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 우파 유튜브 채널을 보고 있다. 실제로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핵심 지지층인 50대 이상이 전 연령층서 유튜브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지난해 8월 한 달간 국내 사용자의 유튜브 앱 사용 시간을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이 총 122억분으로 가장 길게 집계됐다.

강경파 집결
든든한 아군

수많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음에도, 이들은 우파 유튜버들이 ‘진실’을 알려준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에는 통합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 통합당은 우파 유튜버 채널을 주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며 지지자들과 소통하는 창구로 이용해왔다. 선거철에는 통합당 후보들이 우파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국회서 우파 유튜버들은 통합당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자처했다. 통합당 역시 이에 보답하려는 듯 당 차원서 힘을 실어줬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우파 유튜버들을 국회에 초청해 토크콘서트를 열어 이들을 격려했다. 당시 나 전 원내대표는 참석한 유튜버들을 향해 “항상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국민을 깨워줘 감사하다. 국민 모두 광장에 나오는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황교안 전 대표는 이들과 각별한 관계를 이어나갔다. 대표적 우파 유튜브 채널인 '고성국TV'의 고씨를 조언자로 두는가 하면, 이들에게 입법보조원 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우파 유튜버들이 21대 총선의 통합당 비례대표 공천에 도전하는 사례도 있었다. 최근 막말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가로세로연구소’ 김세의 전 MBC 기자가 대표적이다. 김 씨는 MBC 퇴사 이후 강용석 변호사와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구독자 125만명을 보유한 ‘신의 한수’ 우동균씨, 11만 구독자를 보유한 ‘호밀밭의 우원재’ 우원재 대표 등이 정치권에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21대 국회 개원부터 통합당은 이들과 선을 긋는 모양새다. 통합당 참패에는 우파 유튜버들의 ‘강경보수’ 노선이 한 몫 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당 회의서 우파 유튜버는 한번도 언급된 바가 없을 정도로, 아예 대응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말로 선을 긋다 보면 더 엮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언급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진 의원들은 전면서 우파 유튜버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총선 전후 뒷배 역할
듬직했던 우군들 몰락

홍준표 의원은 “유튜브가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방송되고 운영되어야 하는데 거짓·낚시성·선정성 기사로 조회 수나 채워 코인팔이로 전락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김무성 의원도 거들었다. 김 의원은 “처음엔 소박하게 시작했던 우파 유튜버들은 점차 호랑이 등을 타게 된다. 유지비를 벌기 위해 클릭 수를 올려야 했고, 극우 성향에 있는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과격하고, 과장되고, 왜곡된, 근거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게 됐다”고 반발했다.


지난 5월에는 “유명한 (보수)유튜버들은 전부 썩은 놈들”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우파 유튜버들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유튜브 플랫폼이 부상하자 발 빠르게 이를 선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서 기성미디어를 인정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유튜브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당시 정규재 전 <한국경제> 논설위원실장이 운영하는 ‘펜앤드마이크 정규재TV’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직전 그를 단독 인터뷰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또 신혜식의 ‘신의한수’는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현재 125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정치 유튜브 채널 중 독보적 1위다.

이 밖에도 보수 진영의 대표 주자들이 이끄는 여러 유튜브 채널들이 구독자 수 상위권을 차지하며 양적으로 진보진영 채널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기준 ▲신의한수(125만명) ▲펜앤드마이크(63.6만명) ▲가로세로연구소(61.8만명) ▲고성국TV(53만명) 등이 시사 유튜브 채널 중 상위권에 올라있는 상태다.

일각에선 유튜브로 인한 정치적 편향성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유튜브는 컨텐츠를 본 사람들에게 다시 비슷한 컨텐츠가 추천되는 인공지능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운영된다. 극우적 컨텐츠를 보는 사람이 계속해서 비슷한 영상을 추천 받게 되는 구조다.

잦은 논란
중도층 이탈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다른 정보는 무시하는 이른바 ‘확증편향’에 빠져 합리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이들의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발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그중 ‘가짜뉴스’ 논란이 가장 대표적이다. ‘지만원TV’는 허위로 판명 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최근까지 주장하고 있다. 법원이 지씨에게 수차례 유죄판결을 내려도 속수무책이다. 지씨는 5·18 역사을 왜곡한 동영상을 총 29건을 올렸다.

그의 영상에는 “청주 유골 430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북한이 큰 사고를 기획해 만든 게 세월호 사고”라거나 “5·18은 가짜고 북한군에 부화뇌동하다가 북한군에 총을 맞아 죽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영상에 대해 시정요구(접속 차단)를 결정한 상태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한 유튜버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달 17일 우종창 전 <월간조선> 기자는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우 전 기자는 유튜브 채널 '우종창의 거짓과 진실' 채널을 운영하며 13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18년 유튜브를 통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인근서 김세윤 부장판사를 만나 부적절한 식사를 했다며 ‘재판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김 판사는 당시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의 주심판사였다.

하지만 이는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 우 전 기자는 관련 제보를 받은 후 최소한의 사실 확인 과정도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 아니다. 세월호 리본을 뒤집어 촛불을 가운데 두면 북한 노동당 깃발 문양과 똑같다는 황당한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역시 유튜브 발이다. ‘시대지성 에스’ 채널서 2년 전에 올린 ‘노란 리본 음모론 사탄의 상징? 인신공양설? 노동당기설?’이라는 영상은 아직도 내려가지 않고 조회 수 10만을 기록한 상태다.

우파 코인
돈 때문에?

우파 유튜버들이 확대·재생산하는 혐오적 표현도 비상식적이다. ‘GZSS’ 채널을 운영했던 안정권씨는 소녀상 앞에서 색깔론, 소수자 비하 등 막말을 쏟아내 유튜브서 영구 폐쇄 조치됐다. 하지만 박 전 시장 이후 다시 다른 채널을 통해 활동을 재개한 상태다.

그는 박 시장 실종 당일인 지난 9일 잔치국수를 먹으며 “죽어도 잔치, 살아도 잔치”라고 모욕했고, “단순히 성추행했는데 박원순이가 죽어? 이걸 믿으라고?”라며 또 다른 음모론을 제기했다.

박 전 시장의 사망 이후 가로세로연구소의 비상식적 태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방송에 출연한 4명은 지난 10일 ‘현장출동, 박원순 사망 장소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라이브 방송서 고인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 산행했다. 산을 오르며 박 전 시장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해보겠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방송을 진행하면서 고인의 사망 당시 정황에 대한 여러 음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관련해 농담을 주고 받거나 웃는 모습을 보였다. “숙정문을 거꾸로 읽으면, 문정숙(문재인+김정숙)이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숙정문은 숙청문이라고도 하는데, 사람들을 숙청했다는 얘기도 있다” “박원순의 오늘이 문재인의 내일” “산세가 험하다. 개도 올라가기 어렵겠다” 등 방송 내내 쉴 새 없이 조롱을 쏟아냈다.


이들이 자극적인 컨텐츠를 마구 생산하는 건 무엇보다 돈 때문이다. 유튜브의 ‘슈퍼챗’ 수익구조로 후원금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슈퍼챗은 유튜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할 때 실시간 채팅창을 통해 시청자들이 채팅창에 일정 금액을 후원하는 것이다.

다루는 콘텐츠가 자극적일수록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후원금은 한 번에 최소 900원서 최대 50만원까지. 횟수는 무제한이다.

정치 유튜버가 돈 되는 장사임을 알고 유튜브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돈에 혈안 자극적 콘텐츠
“확증 편향 부추겨” 지적

한 유튜버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감성을 자극하면 돈이 쏟아진다” “정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시청자들이 돈을 주는 방향으로 말한다. 한마디로 다들 코인에 미쳐 있다”고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보수·진보 유튜버 중 더 돈을 잘 벌 수 있는 쪽을 묻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정치적 영향력이 아닌, 극성 지지자들의 지갑서 나오는 후원금일 뿐이다.
 

▲ 유튜브 - 노란 딱지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가로세로연구소만 해도 음모론, 조롱으로 큰 후원금을 벌어들였다. 박 전 시장과 관련한 방송으로 일주일 사이 벌어들인 슈퍼챗 수입만 1800만원이 넘는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가로세로연구소는 지난 24일 기준으로 8억6000만원을 벌어들였다. 전 세계 슈퍼챗 수익 1위다. 이외에도 ‘팬엔드마이드’ ‘신의한수’ 등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이 전체 수익의 10위권 안에 들었다.

통합당은 최근 당 차원의 유튜브 채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당은 19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공식 유튜브 채널인 ‘오른소리’를 운영 중이다. 오른소리는 비상대책위원회의, 의원총회 등 당의 의정활동 모습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당내 초선 의원들의 역할이 돋보인다. 통합당 허은아, 전주혜, 지성호 의원은 유튜브 ‘국회대학교’ 채널을 꾸려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 이들은 통통 튀는 콘셉트로 전반적인 국회 활동을 보여줄 계획이다. 유명세로 국회 개원부터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의원들도 있다.

강남구갑에 당선된 탈북자 출신 태구민 의원은 현재 유튜브서 ‘태영호tv’ 채널을 운영하며 약 2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MBC 아나운서 출신으로 송파을에 깃발을 꽂은 배현진 의원은 4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가 후보 시절 업로드했던 ‘배현진 자유한국당 서울 송파을 후보가 악플을 읽어봤다’ 영상은 조회 수 20만회을 기록하기도 했다.

함께했지만…
“갈 길 간다”

보수층 상당수가 여전히 우파 유튜버들의 영향권 안에 있지만, 통합당은 앞으로 이들과 점점 더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우파 유튜버들로 결집력을 키울 순 있지만, 당에 절실한 외연 확장을 위해서는 이들을 버려야 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통합당은 이번 21대 총선 패배로 ‘합리적’ 보수의 중요성을 몸소 깨달은 상태다. 우파 유튜버들은 자연스레 정치권과 단절되고, 국민적인 지탄을 받는 문제아들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sangm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우파 유튜버’ 고소·고발전

우파 유튜버들의 횡포에 참다 못한 시민들의 고발이 계속되고 있다. 신승목 적폐청산 국민참여연대 대표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 14일 고발했다.

가로세로연구소 운영진이 고인을 모욕하는 듯한 언행을 보이고 와룡공원을 둘러보면서 웃음을 터트리며 고인이 된 박 전 시장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어 반아베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는 지난 16일 유튜브 ‘우파삼촌TV’ 운영진을 살인미수 혐의로, 유튜브 ‘상상은 자유TV’ 운영진을 성추행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소했다. 이들 모두 우파 유튜버들이다.

우파삼촌TV 유튜버 A씨가 지난달 14일, 자신의 승합차를 몰고 소녀상 지킴이들을 향해 급돌진했다. 공동행동은 피해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당시 차량 앞에 있던 지킴이는 다행히 현장에서 피해 부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이들은 상상은 자유TV 유튜버 B씨가 여성 지킴이들의 신체일부를 클로즈업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옛날 전쟁에서 잡혀 갔을 때 오줌 참는 것도 배웠다. 그것도 따라 배운 것 같다” “노린내가 난다” 등의 발언을 실시간 방송으로 내보낸 혐의로 고소했다.

공동행동은 “이들은 고상방가는 물론이고 지킴이들의 신체와 휴대전화를 불법촬영했으며 피해자할머니의 명패를 짓밟는 등 온갖 망동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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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