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LG 인력 빼가기 두 얼굴

우린 되고 너흰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건설자재 업체인 LG하우시스가, 경쟁사가 애써 키워놓은 인테리어 전문 인력을 대거 빼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관계사인 LG화학이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이기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LG하우시스 측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직원 빼가기 의혹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 LG화학 폴란드 배터리 공장 ⓒLG화학

LG하우시스가 경쟁사의 핵심 인력을 대거 영입한 것과 관련해 빈축을 사고 있다. 관계사인 LG화학이 인력 유출 등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고소한 이후라, 업계의 이목이 크게 집중되고 있다.

LG하우시스와 한샘은 41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 선점을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불꽃 경쟁을 펼치고 있다. 거주 트렌드 변화에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기존 주택의 인테리어 수요가 늘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고, 여기에 가구·건자재 기업들의 시장 확장 정책이 맞물리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수십조원 전쟁
핵심인력 영입

LG하우시스는 올해 가전과 인테리어 제품을 원스톱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 채널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LG전자 베스트샵에 LG지인(Z:IN) 인테리어 매장을 열었고, 지난달에는 이마트-일렉트로마트,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 등 유통 업체의 대형 가전 전문마트에도 입점했다.

홈 리모델링 공사 때 인테리어와 가전제품을 동시에 구매하는 수요층을 공략하고, 판매·상담 매장의 이종결합으로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LG하우시스는 수도권과 광역시 베스트샵 20여곳에서 LG지인 인테리어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연말까지 전국 80여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LG하우시스는 홈쇼핑 방송을 통한 창호 판매 등 인테리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1분기 매출액은 723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0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90% 늘었다.

매출의 70% 가량이 건축자재 부문서 발생했고, 실적을 깎아먹는 자동차소재 부문 매각이 실현되면 2분기 실적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한샘은 ‘리하우스’ 브랜드로 업계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리하우스는 공간 패키지 상품 기획부터, 상담, 설계, 실측, 견적, 시공, AS까지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한샘만의 특장점이 돋보이는 브랜드다.

LG하우시스 경쟁사 직원 영입 빈축
2012년에도 논란 “상도의 아니다”

고객은 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디자이너(RD)’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상현실(VR) 서비스를 통해 PC나 모바일 기기서 3D로 구현된 현관, 거실, 침실, 주방 등의 리모델링 공사 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한샘은 RD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6월 현재 전국 510개 리하우스 대리점서 2000여명이 활약하고 있고, 2500명까지 늘리기 위해 상시 채용·교육을 진행한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한샘은 올해 1분기와 2분기 판매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86%, 201% 각각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한샘은 리하우스 부문을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3년 내에 월 1만 세트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LG화학 본사

한샘 관계자는 “지금의 경기침체 상황은 중장기적 시각으로 볼 때 리모델링·인테리어 시장서 독보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확장하고, 시장 주도적 사업자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LG하우시스는 최근 한샘의 시공관리 직원 10여명을 한꺼번에 대거 영입했다. 사실상 경쟁업체 인력을 빼간 것이다. 이 과정서 헤드헌터가 역할을 했지만, 한샘 내부에선 “상도의가 아니다”라며 발끈하고 있다.

1위 되려고?
손쉬운 방법

홈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은 토털 홈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 디자이너(RD)를 집중 양성해왔다. 현업 종사자는 전문성을 강화하고 신입 RD 등도 확충해왔다. RD는 한샘 리하우스 대리점에 소속돼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필요한 고객 상담과 디자인 설계, 시공감리 등 인테리어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홈 인테리어 전문가다.

여기에 자극받은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 경쟁력을 한번에 올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대거 영입해갔다는 분석이다.

창호, 바닥재, 인조대리석 등 건축자재와 산업용 필름이 주력인 LG하우시스는 ‘LG지인’ 브랜드를 중심으로 LG전자와 협업하는 등 인테리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샘과의 인테리어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샘이 RD를 직접 육성하는 등 2등과의 ‘초격차’ 전략을 내세우자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의 대거 영입으로 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사업서 1위인 한샘의 기존 사업을 손쉽게 따라가려고 한 것 같다”며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하면 시공협력 업체들도 한꺼번에 데려오는 효과가 있어, 땅 짚고 영업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고성준 기자

이에 대해 LG하우시스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샘 내부의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겨 LG하우시스로 대거 이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샘은 정통적으로 영업력을 중시해 높은 인센티브를 줘왔고 영업능력이 검증된 경력직을 선호해왔는데 올해는 신입 공채를 늘리면서 공채와 경력직간 연봉과 업무분장 등에 대한 불만이 생겨 이직 인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샘의 성과지표에 따른 보상 체계 개편으로 상위 등급 연봉 상한폭이 하향 조정되면서, 연차가 높은 인력들이 대거 LG하우시스로 이직하는 촉매가 됐다는 게 LG하우시스 측 설명이다.

아전인수
아이러니

하지만 한샘의 연봉이나 처우 등은 경쟁사와 비교우위에 있어 자발적인 인력 이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실제 1000여명에 달하는 한샘 RD는 판매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감안하면, 연봉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LG하우시스가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한 것에 그치지 않고 구매 담당이나 개발자 등에 대한 영입에도 나설 전망인 만큼 한샘과의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도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너무 많이 빼가는 바람에 한샘이 LG하우시스에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정도로 갈등이 표출됐다.

관계사인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서, LG그룹 자체의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말 영업비밀 침해 및 인력 빼가기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지난해 5월 LG가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1년여 만에 검찰에도 사실 규명을 요구한 셈이다.

관련 업계에선 “미국 소송서 양사 합의 가능성이 낮아져 국내로도 전선을 넓히는 것 아니냐”라고 봤다.

LG화학, SK이노 소송 상황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먹칠

LG화학은 2017년 자사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국내서 “영업비밀이 유출됐다”며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왔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미국 ITC에도 같은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오는 10월 최종 결과를 앞두고 있다.


LG화학은 “정확한 사실 관계 규명을 위해 경찰에 이어 검찰에 고소장을 낸 것”이라며 “검찰에 의견서를 접수하는 절차가 현실적으로 없어 고소 형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LG화학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을 압박하기 위한 고소라는 분석이다.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영업 비밀이 유출됐다”며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LG화학은 지난해 1월 대법원서 최종 승소했다. 이어 지난해 4월 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 강계웅 LG하우시즈 대표이사 ⓒLG하우시즈

이와 관련해 미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변론 등 절차 없이 최종 결정을 낸다는 ‘조기 패소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린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정황 등을 이유로 예비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양측의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해왔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측은 공개채용을 통해 인재들을 영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월 국내 법원에 “LG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와 달리 LG하우시스는 한샘 내부서 보상 체계 개편 등으로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겼고, 이에 따라 해당 인력들이 LG하우시스로 이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샘의 연봉 등을 감안하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이번 LG하우시스의 인재영입이 기업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엇갈린 주장
갈등 대폭발

이와 관련해 LG하우시스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홈페이지를 통해 채용 공고를 내고 인테리어 관련 경력사원 채용을 진행했고, 당시 공개 채용 과정에는 한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의 경력자들이 지원했으며 서류전형-면접-인적성검사 등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합격자 중에는 한샘을 포함해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서 근무 경험이 있는 지원자들이 포함돼있었고, 공개적인 채용 절차를 거쳐 지원자의 업무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해 채용했을 뿐 의도적으로 특정 회사의 직원을 빼내오기는 결단코 아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관계사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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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