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결국 돌아온 ‘기라드’ 기성용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27 11:21:10
  • 호수 12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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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갔다고?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기라드’(기성용+제라드) 기성용이 돌아왔다. K리그 복귀를 신고한 기성용이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하고 있다. 월드컵 3회, 올림픽 2회, A매치 110경기 출전 등 굵직굵직한 이력이 있는 그다. 축구대표팀 캡틴을 지낸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이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FC서울 입단 기자회견 갖는 기성용

FC서울을 대표하는 축구스타 기성용이 국내 리그로 복귀했다. 기성용은 FC서울과 3년6개월 동안 계약해 2023년까지 뛰게 됐다. 기타 계약 조건은 상호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K리그에 정통한 관계자는 “K리그 연봉킹 전북현대 김진수(14억3500만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울 최고 연봉자 고요한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이다. 양측은 바이아웃(약 7억원)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친정팀으로
캡틴의 귀환

기성용은 지난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K리그에 다시 서려고 그동안 많이 노력했는데, 드디어 오게 돼 행복하다”며 “팬들에게 좋은 축구, 만족하실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2월 스페인으로 떠나며 구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향후 K리그 복귀를 다시 고려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이날 입단식과 기자회견에선 그 일을 훌훌 털어버린 모습이었다.

검은 수트 차림으로 들어와 엄태진 사장으로부터 받은 유니폼 상의로 갈아입고, 머플러도 목에 걸어 본 그는 내내 고무된 표정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기성용은 “여러 모로 과정 등에서 아쉬운 게 있긴 했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FC와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기성용은 “겨울엔 구단에 섭섭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의견 차이가 컸다”며 “다들 아실 테니 그때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때문에 스페인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고, 떠난 뒤에도 K리그 복귀에 대한 생각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2차 협상서 서로 이해를 넓히게 됐다”고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를 전했다.

올해 초 기성용은 FC서울로 복귀를 타진했다. 하지만 이적료 및 위약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사건을 요약하면 뉴캐슬서 입지가 좁아진 기성용은 아시아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중국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K리그로 선회했다.

기성용이 한국행을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FC서울과 전북현대는 이내 계산기를 두드렸다. 애초에 기성용은 FC서울서 셀틱으로 이적할 당시 계약서에 ‘국내 복귀 시 우선협상을 해야 한다’ ‘국내 타 구단 입단 시 26억원의 위약금’ 조건을 걸었다.

조건에 따라 FC서울과 협상한 기성용이었지만, 이적료를 두고는 조율이 되지 않았다. FC서울 측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며 기성용을 힘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FC서울의 협상은 결렬됐고 전북현대도 기성용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위약금 26억원이 부담스러워 관심을 접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기성용은 결국 K리그 행이 무산됐다. 

11년 만에 국내 K리그 복귀
FC서울과 이적료 갈등 봉합

이때 당시 구자철은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아쉬움을 전했다. 구자철과 기성용은 축구 실력이 떨어지기 전에 국내 축구팬들을 위해 K리그 복귀를 하자는 의견도 나눴다고 한다. 기성용이 얼마나 K리그에 대한 애정이 큰 것을 알기에 구자철이 안타까움을 전한 것. 


이 같은 FC서울의 프런트 행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스타성 있는 선수를 헐값에 데려오려고 했던 점, 위약금을 받기 위해 대승적인 차원서 절감해주지 않은 점 등은 축구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친정팀에 실망한 기성용은 다시 해외로 방향을 틀었고 올해 2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나선 스페인 생활은 코로나19 여파로 리그가 중된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6월부터 시즌이 재개됐지만 훈련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해 리그서 4경기 연속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마요르카 측과 기성용 측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며 귀국을 선택했다.
 

▲ 미드필더 기성용

기성용이 스페인서 자리 잡지 못할 때 또 한 명의 ‘용’이 K리그를 누비고 있었다. 독일 프로축구 구단 보훔서 생활을 마무리한 이청용이 K리그로 돌아와 경기장을 누비며 울산 현대호랑이 축구단 상승세에 큰 역할을 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과시하며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이청용의 활약을 지켜본 K리그 팬들은 기성용의 국내 복귀 무산을 보면서 더욱 더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국내로 돌아온 기성용이 국내 경기장서 누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다린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축구 팬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서 동메달을 딴 기성용이 K리그서 맹활약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기성용은 어릴 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기성용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5년간 호주 존 폴 칼리지에 유학을 다녀왔다. 아버지인 기영옥씨는 “축구만 아는 선수가 되지 말라는 뜻에서 어린 나이에 유학을 보냈다. 성용이는 영어로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완벽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생활
6개월 종지부

이후 2006년 18살이란 나이에 U-20 대표팀에 선발돼 2007년 20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대표팀의 중앙수비수들이 줄 부상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성용을 중앙수비수로 기용하며 4백 수비를 3백으로 바꿔 전술을 기성용에 맞춰 대회에 임했다.

같은 해 기성용의 소속팀이었던 FC서울에서는 세올 귀네슈라는 외국인 감독이 기성용을 신뢰한 덕분에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졌다. 18세였던 기성용은 K리그 20경기에 출장하며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켰다.  

2008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4월2일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서 선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8월 대구 FC와의 경기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성공시켰다.

절친한 팀 동료 이청용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자리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서 있었던 시즌 베스트 11 투표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자타공인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또 최연소 베스트 11이 됐다는 사실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 전까지 최연소 베스트 11은 1998년의 고종수(당시 20살)였으나 기성용이 19살의 나이로 경신했다.

승승장구하던 FC서울은 2009년 두 마리의 용을 잃게 된다. 기성용은 셀틱으로, 이청용은 볼튼 원더러스로 보내면서 전력에 누수가 생겼다. 셀틱으로 이적한 첫 해 폴커크와의 경기로 SPL 데뷔전을 하며, 본인의 장기인 정확한 패스 보급과 프리킥을 자랑했다. 데뷔전서 최우수 선수에 뽑히며 성공적으로 보내는 듯했으나 부상 여파로 점점 출전 수가 줄어들었다. 

출전 경기 수가 줄어든 바람에 기성용은 팀을 떠나려고 했지만 구단서 붙잡았다. 결국 다음 시즌도 셀틱서 보내야 했다. 세인트 마렌과의 경기 3-0 상황서 교체된 기성용은 들어간 지 10분 만에 중거리 골을 넣었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이 됐다.

이후 셀틱의 미드필더들이 부상을 잇달아 당하자 기성용의 출장 기회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성용의 문제로 지적되던 수비 가담도 월등히 좋아지고, 차두리로 셀틱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도 찾게 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성용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감독이었던 홍명보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의 부름을 받고 박주영, 구자철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구자철과 함께 중원을 장악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자 잉글랜드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리그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국제대회서 경쟁력을 선보인 기성용은 EPL로 도전장을 내밀며 스완지시티로 이적한다. 


2005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박지성 이후, 이영표(전 토트넘), 설기현(전 레딩),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김두현(전 웨스트브로미치), 조원희(전 위건), 이청용(전 볼턴), 지동원(전 선덜랜드), 박주영(전 아스널)에 이어 열 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기성용은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유럽서
‘펄펄∼’

기성용은 스완지시티서 중원의 한 축을 담당하며 대다수의 경기를 선발 출전했다. 이적 이후 시즌 초반에는 EPL 선수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축구팬을 잠 못 들게 했다. 

기성용의 플레이 스타일은 장단점이 뚜렷했다. 예리하게 상대방 진영 빈 공간에 깊숙하게 찔러넣는 패스를 자주 구사했다. 당시 스완지에는 발이 빠른 측면 공격수가 많았기에 기성용의 패스는 절묘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활동량이 많지 않아 수비형 미드필드로서는 좀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라운드의 전방위를 뛰어다니던 박지성과 비교했을 때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장점이 뚜렷했기에 선발로 나서는 경기가 많았다. 결국 38경기에 출전해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쳤다.

국가대표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기성용은 2014 브라질 월드컵, 2015 아시안컵, 2018 러시아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무대 대회서 두각을 보였다. 지난해 치렀던 아시안컵 조별서 경기를 뛰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대표팀 명단서 빠지기도 했다.
 

▲ 기성용 선수 ⓒFC 서울

지난해 1월30일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기성용 선수는 공식적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했다.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대표팀 복귀에 대해 묻자 기성용은 “대표팀 자리는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은 곳”이라며 “어린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고 소속팀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밝혔다.

기성용이 맹활약하게 된 데엔 부친의 영향도 있었다. 부친은 광주 토박이로 광주공업고, 금호고, 전남대를 졸업했으며 실업팀 국민은행 축구단서 짧게 선수생활을 하고 1982년 은퇴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금호고, 광양제철고,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금호고 감독 시절 고종수와 윤정환을 국가대표로 길러낸 명장이며, 아들 기성용도 국가대표로 성장시킨 지도자다.

2010년 광주FC 창단 작업부터 공을 들인 기씨는 2015년에는 단장으로 임명돼 무보수로 일해왔다. 단장직을 맡으면서 금호고 등 유소년 선수 육성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 발탁
스코틀랜드·잉글랜드 등지서 활약

광주FC팀의 1부 리그 승격과 전용구장 건설이라는 업적을 남겼지만, 지난해 12월 건강상의 문제로 단장직을 사임하고 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성용의 절친은 구자철과 이청용으로 유명하다. 이청용 1988년생 7월생, 기성용 1989년 1월생, 구자철 1989년 2월생 등 비슷한 또래이면서 젊은 나이에 해외 팀으로 이적해 서로에게 의지가 됐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 사이로 똘똘 뭉쳐 K리그 부흥과 유소년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기도 한다.

세 선수들이 각기 다른 성격이 급속도로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의 FC서울 복귀 소식이 전해지자 이례적으로 타팀 소속인 이청용은 구단 영상을 통해 “굉장히 기다려진다. 같은 팀은 아니지만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즐거울 것 같다. 수준 높은 선수들이 있으면 경기 질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팀과 팀의 대결이지만 서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고 소속팀에 승리를 위해 각자 열심히 한다면 팬들도 즐겁게 경기를 보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반겼다. 

기성용은 축구 실력뿐 아니라 배우 한혜진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한혜진과 처음 연을 쌓았다. 이후 친해진 두 사람은 연애상담을 하며 친해지며 누나동생으로 편하게 지내다가 2013년 1월부터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해 3월 한혜진의 이니셜이 새겨진 기성용의 축구화가 대표팀 연습 중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되며 열애설이 불거졌다. 말하자면 기성용 본인이 직접 팬들에게 한혜진과의 관계를 내보인 셈이다.

이후 한 매체서 이 둘의 데이트 하는 모습의 파파라치 사진까지 공개되자 기성용은 트위터를 통해, 한혜진의 소속사도 열애를 인정했다. 기성용은 한혜진과 지난 2013년 7월에 결혼했고, 2015년 9월 딸 시온양을 품에 안았다.

지난 2016년, 잘 알려지지 않은 축구팬을 열광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부친에 따르면 당시 중국프로축구 상하이 상강서 기성용에게 연봉 220억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세금을 포함하면 실제 연봉은 무려 400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중국 러브콜
220억 거절

토트넘 감독 출신이자 무리뉴의 눈이라고 알려진 빌라스 보아스가 기성용에게 두 차례나 연락했지만 기성용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놀랍게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주장이 한 수 아래인 중국 프로리그서 뛰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철없던 기성용 SNS ‘말말말’

지난 2007년 올림픽 축구대표팀일 때 우즈벡과의 경기력에 대한 지적이 있자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는 글을 게재해 네티즌들의 거센 악플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사건 직후 논란이 일자, 얼마 뒤 문제의 발언을 삭제했지만 이미 기자들에 의해 기사화되어 보도됐고, 9시 스포츠 뉴스에도 기사화가 됐다.

2014년 런던올림픽 이후 부산의 안익수 감독이 박종우에게 “국가대표도 예외는 없다. 정신무장이 안 돼 있다면 누구든 2군으로 내려갈 수 있다” “투지 있는 플레이가 장점이었는데 요즘 기성용처럼 볼을 차려 한다” “투지 있는 터프한 플레이가 종우의 장점인데 그런 것이 사라졌다. 열흘도 넘게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해 기성용은 “나처럼 볼 차면 2군 가니?” 하고 대응한 것.

국내 축구팬들은 기성용의 말 한마디에 또 비판을 하며 관전모드로 돌입했지만 사건은 일단락이 됐다.

2013년 최강희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막바지 3경기를 앞두고 기성용을 소집하지 않았다.

기성용은 자신의 SNS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그리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최강희 감독을 저격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비판을 했지만, 기성용은 교회 목사님의 말씀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최강희 감독 시절 홍명보 감독을 떠오르게 하는 알파벳 M, B가 그려진 모자를 게시하거나 비공개 SNS에 최강희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글이 공개돼,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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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