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결국 돌아온 ‘기라드’ 기성용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27 11:21:10
  • 호수 12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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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갔다고?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기라드’(기성용+제라드) 기성용이 돌아왔다. K리그 복귀를 신고한 기성용이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하고 있다. 월드컵 3회, 올림픽 2회, A매치 110경기 출전 등 굵직굵직한 이력이 있는 그다. 축구대표팀 캡틴을 지낸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이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FC서울 입단 기자회견 갖는 기성용

FC서울을 대표하는 축구스타 기성용이 국내 리그로 복귀했다. 기성용은 FC서울과 3년6개월 동안 계약해 2023년까지 뛰게 됐다. 기타 계약 조건은 상호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K리그에 정통한 관계자는 “K리그 연봉킹 전북현대 김진수(14억3500만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울 최고 연봉자 고요한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이다. 양측은 바이아웃(약 7억원)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친정팀으로
캡틴의 귀환

기성용은 지난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K리그에 다시 서려고 그동안 많이 노력했는데, 드디어 오게 돼 행복하다”며 “팬들에게 좋은 축구, 만족하실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2월 스페인으로 떠나며 구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향후 K리그 복귀를 다시 고려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이날 입단식과 기자회견에선 그 일을 훌훌 털어버린 모습이었다.

검은 수트 차림으로 들어와 엄태진 사장으로부터 받은 유니폼 상의로 갈아입고, 머플러도 목에 걸어 본 그는 내내 고무된 표정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기성용은 “여러 모로 과정 등에서 아쉬운 게 있긴 했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FC와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기성용은 “겨울엔 구단에 섭섭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의견 차이가 컸다”며 “다들 아실 테니 그때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때문에 스페인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고, 떠난 뒤에도 K리그 복귀에 대한 생각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2차 협상서 서로 이해를 넓히게 됐다”고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를 전했다.

올해 초 기성용은 FC서울로 복귀를 타진했다. 하지만 이적료 및 위약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사건을 요약하면 뉴캐슬서 입지가 좁아진 기성용은 아시아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중국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K리그로 선회했다.

기성용이 한국행을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FC서울과 전북현대는 이내 계산기를 두드렸다. 애초에 기성용은 FC서울서 셀틱으로 이적할 당시 계약서에 ‘국내 복귀 시 우선협상을 해야 한다’ ‘국내 타 구단 입단 시 26억원의 위약금’ 조건을 걸었다.

조건에 따라 FC서울과 협상한 기성용이었지만, 이적료를 두고는 조율이 되지 않았다. FC서울 측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며 기성용을 힘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FC서울의 협상은 결렬됐고 전북현대도 기성용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위약금 26억원이 부담스러워 관심을 접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기성용은 결국 K리그 행이 무산됐다. 

11년 만에 국내 K리그 복귀
FC서울과 이적료 갈등 봉합

이때 당시 구자철은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아쉬움을 전했다. 구자철과 기성용은 축구 실력이 떨어지기 전에 국내 축구팬들을 위해 K리그 복귀를 하자는 의견도 나눴다고 한다. 기성용이 얼마나 K리그에 대한 애정이 큰 것을 알기에 구자철이 안타까움을 전한 것. 


이 같은 FC서울의 프런트 행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스타성 있는 선수를 헐값에 데려오려고 했던 점, 위약금을 받기 위해 대승적인 차원서 절감해주지 않은 점 등은 축구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친정팀에 실망한 기성용은 다시 해외로 방향을 틀었고 올해 2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나선 스페인 생활은 코로나19 여파로 리그가 중된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6월부터 시즌이 재개됐지만 훈련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해 리그서 4경기 연속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마요르카 측과 기성용 측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며 귀국을 선택했다.
 

▲ 미드필더 기성용

기성용이 스페인서 자리 잡지 못할 때 또 한 명의 ‘용’이 K리그를 누비고 있었다. 독일 프로축구 구단 보훔서 생활을 마무리한 이청용이 K리그로 돌아와 경기장을 누비며 울산 현대호랑이 축구단 상승세에 큰 역할을 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과시하며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이청용의 활약을 지켜본 K리그 팬들은 기성용의 국내 복귀 무산을 보면서 더욱 더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국내로 돌아온 기성용이 국내 경기장서 누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다린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축구 팬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서 동메달을 딴 기성용이 K리그서 맹활약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기성용은 어릴 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기성용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5년간 호주 존 폴 칼리지에 유학을 다녀왔다. 아버지인 기영옥씨는 “축구만 아는 선수가 되지 말라는 뜻에서 어린 나이에 유학을 보냈다. 성용이는 영어로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완벽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생활
6개월 종지부

이후 2006년 18살이란 나이에 U-20 대표팀에 선발돼 2007년 20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대표팀의 중앙수비수들이 줄 부상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성용을 중앙수비수로 기용하며 4백 수비를 3백으로 바꿔 전술을 기성용에 맞춰 대회에 임했다.

같은 해 기성용의 소속팀이었던 FC서울에서는 세올 귀네슈라는 외국인 감독이 기성용을 신뢰한 덕분에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졌다. 18세였던 기성용은 K리그 20경기에 출장하며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켰다.  

2008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4월2일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서 선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8월 대구 FC와의 경기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성공시켰다.

절친한 팀 동료 이청용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자리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서 있었던 시즌 베스트 11 투표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자타공인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또 최연소 베스트 11이 됐다는 사실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 전까지 최연소 베스트 11은 1998년의 고종수(당시 20살)였으나 기성용이 19살의 나이로 경신했다.

승승장구하던 FC서울은 2009년 두 마리의 용을 잃게 된다. 기성용은 셀틱으로, 이청용은 볼튼 원더러스로 보내면서 전력에 누수가 생겼다. 셀틱으로 이적한 첫 해 폴커크와의 경기로 SPL 데뷔전을 하며, 본인의 장기인 정확한 패스 보급과 프리킥을 자랑했다. 데뷔전서 최우수 선수에 뽑히며 성공적으로 보내는 듯했으나 부상 여파로 점점 출전 수가 줄어들었다. 

출전 경기 수가 줄어든 바람에 기성용은 팀을 떠나려고 했지만 구단서 붙잡았다. 결국 다음 시즌도 셀틱서 보내야 했다. 세인트 마렌과의 경기 3-0 상황서 교체된 기성용은 들어간 지 10분 만에 중거리 골을 넣었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이 됐다.

이후 셀틱의 미드필더들이 부상을 잇달아 당하자 기성용의 출장 기회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성용의 문제로 지적되던 수비 가담도 월등히 좋아지고, 차두리로 셀틱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도 찾게 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성용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감독이었던 홍명보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의 부름을 받고 박주영, 구자철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구자철과 함께 중원을 장악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자 잉글랜드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리그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국제대회서 경쟁력을 선보인 기성용은 EPL로 도전장을 내밀며 스완지시티로 이적한다. 


2005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박지성 이후, 이영표(전 토트넘), 설기현(전 레딩),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김두현(전 웨스트브로미치), 조원희(전 위건), 이청용(전 볼턴), 지동원(전 선덜랜드), 박주영(전 아스널)에 이어 열 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기성용은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유럽서
‘펄펄∼’

기성용은 스완지시티서 중원의 한 축을 담당하며 대다수의 경기를 선발 출전했다. 이적 이후 시즌 초반에는 EPL 선수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축구팬을 잠 못 들게 했다. 

기성용의 플레이 스타일은 장단점이 뚜렷했다. 예리하게 상대방 진영 빈 공간에 깊숙하게 찔러넣는 패스를 자주 구사했다. 당시 스완지에는 발이 빠른 측면 공격수가 많았기에 기성용의 패스는 절묘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활동량이 많지 않아 수비형 미드필드로서는 좀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라운드의 전방위를 뛰어다니던 박지성과 비교했을 때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장점이 뚜렷했기에 선발로 나서는 경기가 많았다. 결국 38경기에 출전해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쳤다.

국가대표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기성용은 2014 브라질 월드컵, 2015 아시안컵, 2018 러시아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무대 대회서 두각을 보였다. 지난해 치렀던 아시안컵 조별서 경기를 뛰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대표팀 명단서 빠지기도 했다.
 

▲ 기성용 선수 ⓒFC 서울

지난해 1월30일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기성용 선수는 공식적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했다.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대표팀 복귀에 대해 묻자 기성용은 “대표팀 자리는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은 곳”이라며 “어린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고 소속팀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밝혔다.

기성용이 맹활약하게 된 데엔 부친의 영향도 있었다. 부친은 광주 토박이로 광주공업고, 금호고, 전남대를 졸업했으며 실업팀 국민은행 축구단서 짧게 선수생활을 하고 1982년 은퇴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금호고, 광양제철고,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금호고 감독 시절 고종수와 윤정환을 국가대표로 길러낸 명장이며, 아들 기성용도 국가대표로 성장시킨 지도자다.

2010년 광주FC 창단 작업부터 공을 들인 기씨는 2015년에는 단장으로 임명돼 무보수로 일해왔다. 단장직을 맡으면서 금호고 등 유소년 선수 육성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 발탁
스코틀랜드·잉글랜드 등지서 활약

광주FC팀의 1부 리그 승격과 전용구장 건설이라는 업적을 남겼지만, 지난해 12월 건강상의 문제로 단장직을 사임하고 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성용의 절친은 구자철과 이청용으로 유명하다. 이청용 1988년생 7월생, 기성용 1989년 1월생, 구자철 1989년 2월생 등 비슷한 또래이면서 젊은 나이에 해외 팀으로 이적해 서로에게 의지가 됐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 사이로 똘똘 뭉쳐 K리그 부흥과 유소년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기도 한다.

세 선수들이 각기 다른 성격이 급속도로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의 FC서울 복귀 소식이 전해지자 이례적으로 타팀 소속인 이청용은 구단 영상을 통해 “굉장히 기다려진다. 같은 팀은 아니지만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즐거울 것 같다. 수준 높은 선수들이 있으면 경기 질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팀과 팀의 대결이지만 서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고 소속팀에 승리를 위해 각자 열심히 한다면 팬들도 즐겁게 경기를 보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반겼다. 

기성용은 축구 실력뿐 아니라 배우 한혜진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한혜진과 처음 연을 쌓았다. 이후 친해진 두 사람은 연애상담을 하며 친해지며 누나동생으로 편하게 지내다가 2013년 1월부터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해 3월 한혜진의 이니셜이 새겨진 기성용의 축구화가 대표팀 연습 중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되며 열애설이 불거졌다. 말하자면 기성용 본인이 직접 팬들에게 한혜진과의 관계를 내보인 셈이다.

이후 한 매체서 이 둘의 데이트 하는 모습의 파파라치 사진까지 공개되자 기성용은 트위터를 통해, 한혜진의 소속사도 열애를 인정했다. 기성용은 한혜진과 지난 2013년 7월에 결혼했고, 2015년 9월 딸 시온양을 품에 안았다.

지난 2016년, 잘 알려지지 않은 축구팬을 열광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부친에 따르면 당시 중국프로축구 상하이 상강서 기성용에게 연봉 220억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세금을 포함하면 실제 연봉은 무려 400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중국 러브콜
220억 거절

토트넘 감독 출신이자 무리뉴의 눈이라고 알려진 빌라스 보아스가 기성용에게 두 차례나 연락했지만 기성용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놀랍게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주장이 한 수 아래인 중국 프로리그서 뛰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철없던 기성용 SNS ‘말말말’

지난 2007년 올림픽 축구대표팀일 때 우즈벡과의 경기력에 대한 지적이 있자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는 글을 게재해 네티즌들의 거센 악플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사건 직후 논란이 일자, 얼마 뒤 문제의 발언을 삭제했지만 이미 기자들에 의해 기사화되어 보도됐고, 9시 스포츠 뉴스에도 기사화가 됐다.

2014년 런던올림픽 이후 부산의 안익수 감독이 박종우에게 “국가대표도 예외는 없다. 정신무장이 안 돼 있다면 누구든 2군으로 내려갈 수 있다” “투지 있는 플레이가 장점이었는데 요즘 기성용처럼 볼을 차려 한다” “투지 있는 터프한 플레이가 종우의 장점인데 그런 것이 사라졌다. 열흘도 넘게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해 기성용은 “나처럼 볼 차면 2군 가니?” 하고 대응한 것.

국내 축구팬들은 기성용의 말 한마디에 또 비판을 하며 관전모드로 돌입했지만 사건은 일단락이 됐다.

2013년 최강희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막바지 3경기를 앞두고 기성용을 소집하지 않았다.

기성용은 자신의 SNS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그리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최강희 감독을 저격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비판을 했지만, 기성용은 교회 목사님의 말씀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최강희 감독 시절 홍명보 감독을 떠오르게 하는 알파벳 M, B가 그려진 모자를 게시하거나 비공개 SNS에 최강희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글이 공개돼,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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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