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결국 돌아온 ‘기라드’ 기성용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27 11:21:10
  • 호수 1281호
  • 댓글 0개

한물갔다고?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기라드’(기성용+제라드) 기성용이 돌아왔다. K리그 복귀를 신고한 기성용이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하고 있다. 월드컵 3회, 올림픽 2회, A매치 110경기 출전 등 굵직굵직한 이력이 있는 그다. 축구대표팀 캡틴을 지낸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이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FC서울 입단 기자회견 갖는 기성용

FC서울을 대표하는 축구스타 기성용이 국내 리그로 복귀했다. 기성용은 FC서울과 3년6개월 동안 계약해 2023년까지 뛰게 됐다. 기타 계약 조건은 상호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K리그에 정통한 관계자는 “K리그 연봉킹 전북현대 김진수(14억3500만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울 최고 연봉자 고요한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이다. 양측은 바이아웃(약 7억원)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친정팀으로
캡틴의 귀환

기성용은 지난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K리그에 다시 서려고 그동안 많이 노력했는데, 드디어 오게 돼 행복하다”며 “팬들에게 좋은 축구, 만족하실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2월 스페인으로 떠나며 구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향후 K리그 복귀를 다시 고려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이날 입단식과 기자회견에선 그 일을 훌훌 털어버린 모습이었다.

검은 수트 차림으로 들어와 엄태진 사장으로부터 받은 유니폼 상의로 갈아입고, 머플러도 목에 걸어 본 그는 내내 고무된 표정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기성용은 “여러 모로 과정 등에서 아쉬운 게 있긴 했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FC와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기성용은 “겨울엔 구단에 섭섭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의견 차이가 컸다”며 “다들 아실 테니 그때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때문에 스페인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고, 떠난 뒤에도 K리그 복귀에 대한 생각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2차 협상서 서로 이해를 넓히게 됐다”고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를 전했다.

올해 초 기성용은 FC서울로 복귀를 타진했다. 하지만 이적료 및 위약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사건을 요약하면 뉴캐슬서 입지가 좁아진 기성용은 아시아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중국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K리그로 선회했다.

기성용이 한국행을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FC서울과 전북현대는 이내 계산기를 두드렸다. 애초에 기성용은 FC서울서 셀틱으로 이적할 당시 계약서에 ‘국내 복귀 시 우선협상을 해야 한다’ ‘국내 타 구단 입단 시 26억원의 위약금’ 조건을 걸었다.

조건에 따라 FC서울과 협상한 기성용이었지만, 이적료를 두고는 조율이 되지 않았다. FC서울 측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며 기성용을 힘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FC서울의 협상은 결렬됐고 전북현대도 기성용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위약금 26억원이 부담스러워 관심을 접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기성용은 결국 K리그 행이 무산됐다. 

11년 만에 국내 K리그 복귀
FC서울과 이적료 갈등 봉합

이때 당시 구자철은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아쉬움을 전했다. 구자철과 기성용은 축구 실력이 떨어지기 전에 국내 축구팬들을 위해 K리그 복귀를 하자는 의견도 나눴다고 한다. 기성용이 얼마나 K리그에 대한 애정이 큰 것을 알기에 구자철이 안타까움을 전한 것. 


이 같은 FC서울의 프런트 행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스타성 있는 선수를 헐값에 데려오려고 했던 점, 위약금을 받기 위해 대승적인 차원서 절감해주지 않은 점 등은 축구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친정팀에 실망한 기성용은 다시 해외로 방향을 틀었고 올해 2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나선 스페인 생활은 코로나19 여파로 리그가 중된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6월부터 시즌이 재개됐지만 훈련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해 리그서 4경기 연속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마요르카 측과 기성용 측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며 귀국을 선택했다.
 

▲ 미드필더 기성용

기성용이 스페인서 자리 잡지 못할 때 또 한 명의 ‘용’이 K리그를 누비고 있었다. 독일 프로축구 구단 보훔서 생활을 마무리한 이청용이 K리그로 돌아와 경기장을 누비며 울산 현대호랑이 축구단 상승세에 큰 역할을 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과시하며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이청용의 활약을 지켜본 K리그 팬들은 기성용의 국내 복귀 무산을 보면서 더욱 더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국내로 돌아온 기성용이 국내 경기장서 누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다린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축구 팬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서 동메달을 딴 기성용이 K리그서 맹활약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기성용은 어릴 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기성용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5년간 호주 존 폴 칼리지에 유학을 다녀왔다. 아버지인 기영옥씨는 “축구만 아는 선수가 되지 말라는 뜻에서 어린 나이에 유학을 보냈다. 성용이는 영어로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완벽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생활
6개월 종지부

이후 2006년 18살이란 나이에 U-20 대표팀에 선발돼 2007년 20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대표팀의 중앙수비수들이 줄 부상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성용을 중앙수비수로 기용하며 4백 수비를 3백으로 바꿔 전술을 기성용에 맞춰 대회에 임했다.

같은 해 기성용의 소속팀이었던 FC서울에서는 세올 귀네슈라는 외국인 감독이 기성용을 신뢰한 덕분에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졌다. 18세였던 기성용은 K리그 20경기에 출장하며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켰다.  

2008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4월2일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서 선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8월 대구 FC와의 경기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성공시켰다.

절친한 팀 동료 이청용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자리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서 있었던 시즌 베스트 11 투표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자타공인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또 최연소 베스트 11이 됐다는 사실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 전까지 최연소 베스트 11은 1998년의 고종수(당시 20살)였으나 기성용이 19살의 나이로 경신했다.

승승장구하던 FC서울은 2009년 두 마리의 용을 잃게 된다. 기성용은 셀틱으로, 이청용은 볼튼 원더러스로 보내면서 전력에 누수가 생겼다. 셀틱으로 이적한 첫 해 폴커크와의 경기로 SPL 데뷔전을 하며, 본인의 장기인 정확한 패스 보급과 프리킥을 자랑했다. 데뷔전서 최우수 선수에 뽑히며 성공적으로 보내는 듯했으나 부상 여파로 점점 출전 수가 줄어들었다. 

출전 경기 수가 줄어든 바람에 기성용은 팀을 떠나려고 했지만 구단서 붙잡았다. 결국 다음 시즌도 셀틱서 보내야 했다. 세인트 마렌과의 경기 3-0 상황서 교체된 기성용은 들어간 지 10분 만에 중거리 골을 넣었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이 됐다.

이후 셀틱의 미드필더들이 부상을 잇달아 당하자 기성용의 출장 기회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성용의 문제로 지적되던 수비 가담도 월등히 좋아지고, 차두리로 셀틱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도 찾게 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성용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감독이었던 홍명보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의 부름을 받고 박주영, 구자철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구자철과 함께 중원을 장악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자 잉글랜드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리그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국제대회서 경쟁력을 선보인 기성용은 EPL로 도전장을 내밀며 스완지시티로 이적한다. 


2005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박지성 이후, 이영표(전 토트넘), 설기현(전 레딩),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김두현(전 웨스트브로미치), 조원희(전 위건), 이청용(전 볼턴), 지동원(전 선덜랜드), 박주영(전 아스널)에 이어 열 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기성용은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유럽서
‘펄펄∼’

기성용은 스완지시티서 중원의 한 축을 담당하며 대다수의 경기를 선발 출전했다. 이적 이후 시즌 초반에는 EPL 선수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축구팬을 잠 못 들게 했다. 

기성용의 플레이 스타일은 장단점이 뚜렷했다. 예리하게 상대방 진영 빈 공간에 깊숙하게 찔러넣는 패스를 자주 구사했다. 당시 스완지에는 발이 빠른 측면 공격수가 많았기에 기성용의 패스는 절묘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활동량이 많지 않아 수비형 미드필드로서는 좀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라운드의 전방위를 뛰어다니던 박지성과 비교했을 때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장점이 뚜렷했기에 선발로 나서는 경기가 많았다. 결국 38경기에 출전해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쳤다.

국가대표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기성용은 2014 브라질 월드컵, 2015 아시안컵, 2018 러시아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무대 대회서 두각을 보였다. 지난해 치렀던 아시안컵 조별서 경기를 뛰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대표팀 명단서 빠지기도 했다.
 

▲ 기성용 선수 ⓒFC 서울

지난해 1월30일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기성용 선수는 공식적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했다.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대표팀 복귀에 대해 묻자 기성용은 “대표팀 자리는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은 곳”이라며 “어린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고 소속팀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밝혔다.

기성용이 맹활약하게 된 데엔 부친의 영향도 있었다. 부친은 광주 토박이로 광주공업고, 금호고, 전남대를 졸업했으며 실업팀 국민은행 축구단서 짧게 선수생활을 하고 1982년 은퇴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금호고, 광양제철고,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금호고 감독 시절 고종수와 윤정환을 국가대표로 길러낸 명장이며, 아들 기성용도 국가대표로 성장시킨 지도자다.

2010년 광주FC 창단 작업부터 공을 들인 기씨는 2015년에는 단장으로 임명돼 무보수로 일해왔다. 단장직을 맡으면서 금호고 등 유소년 선수 육성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 발탁
스코틀랜드·잉글랜드 등지서 활약

광주FC팀의 1부 리그 승격과 전용구장 건설이라는 업적을 남겼지만, 지난해 12월 건강상의 문제로 단장직을 사임하고 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성용의 절친은 구자철과 이청용으로 유명하다. 이청용 1988년생 7월생, 기성용 1989년 1월생, 구자철 1989년 2월생 등 비슷한 또래이면서 젊은 나이에 해외 팀으로 이적해 서로에게 의지가 됐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 사이로 똘똘 뭉쳐 K리그 부흥과 유소년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기도 한다.

세 선수들이 각기 다른 성격이 급속도로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의 FC서울 복귀 소식이 전해지자 이례적으로 타팀 소속인 이청용은 구단 영상을 통해 “굉장히 기다려진다. 같은 팀은 아니지만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즐거울 것 같다. 수준 높은 선수들이 있으면 경기 질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팀과 팀의 대결이지만 서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고 소속팀에 승리를 위해 각자 열심히 한다면 팬들도 즐겁게 경기를 보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반겼다. 

기성용은 축구 실력뿐 아니라 배우 한혜진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한혜진과 처음 연을 쌓았다. 이후 친해진 두 사람은 연애상담을 하며 친해지며 누나동생으로 편하게 지내다가 2013년 1월부터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해 3월 한혜진의 이니셜이 새겨진 기성용의 축구화가 대표팀 연습 중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되며 열애설이 불거졌다. 말하자면 기성용 본인이 직접 팬들에게 한혜진과의 관계를 내보인 셈이다.

이후 한 매체서 이 둘의 데이트 하는 모습의 파파라치 사진까지 공개되자 기성용은 트위터를 통해, 한혜진의 소속사도 열애를 인정했다. 기성용은 한혜진과 지난 2013년 7월에 결혼했고, 2015년 9월 딸 시온양을 품에 안았다.

지난 2016년, 잘 알려지지 않은 축구팬을 열광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부친에 따르면 당시 중국프로축구 상하이 상강서 기성용에게 연봉 220억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세금을 포함하면 실제 연봉은 무려 400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중국 러브콜
220억 거절

토트넘 감독 출신이자 무리뉴의 눈이라고 알려진 빌라스 보아스가 기성용에게 두 차례나 연락했지만 기성용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놀랍게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주장이 한 수 아래인 중국 프로리그서 뛰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철없던 기성용 SNS ‘말말말’

지난 2007년 올림픽 축구대표팀일 때 우즈벡과의 경기력에 대한 지적이 있자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는 글을 게재해 네티즌들의 거센 악플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사건 직후 논란이 일자, 얼마 뒤 문제의 발언을 삭제했지만 이미 기자들에 의해 기사화되어 보도됐고, 9시 스포츠 뉴스에도 기사화가 됐다.

2014년 런던올림픽 이후 부산의 안익수 감독이 박종우에게 “국가대표도 예외는 없다. 정신무장이 안 돼 있다면 누구든 2군으로 내려갈 수 있다” “투지 있는 플레이가 장점이었는데 요즘 기성용처럼 볼을 차려 한다” “투지 있는 터프한 플레이가 종우의 장점인데 그런 것이 사라졌다. 열흘도 넘게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해 기성용은 “나처럼 볼 차면 2군 가니?” 하고 대응한 것.

국내 축구팬들은 기성용의 말 한마디에 또 비판을 하며 관전모드로 돌입했지만 사건은 일단락이 됐다.

2013년 최강희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막바지 3경기를 앞두고 기성용을 소집하지 않았다.

기성용은 자신의 SNS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그리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최강희 감독을 저격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비판을 했지만, 기성용은 교회 목사님의 말씀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최강희 감독 시절 홍명보 감독을 떠오르게 하는 알파벳 M, B가 그려진 모자를 게시하거나 비공개 SNS에 최강희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글이 공개돼,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