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결국 돌아온 ‘기라드’ 기성용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27 11:21:10
  • 호수 12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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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갔다고? 이대로 끝낼 순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기라드’(기성용+제라드) 기성용이 돌아왔다. K리그 복귀를 신고한 기성용이 축구팬들을 흥분하게 하고 있다. 월드컵 3회, 올림픽 2회, A매치 110경기 출전 등 굵직굵직한 이력이 있는 그다. 축구대표팀 캡틴을 지낸 베테랑 미드필더 기성용이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FC서울 입단 기자회견 갖는 기성용

FC서울을 대표하는 축구스타 기성용이 국내 리그로 복귀했다. 기성용은 FC서울과 3년6개월 동안 계약해 2023년까지 뛰게 됐다. 기타 계약 조건은 상호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K리그에 정통한 관계자는 “K리그 연봉킹 전북현대 김진수(14억3500만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서울 최고 연봉자 고요한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이다. 양측은 바이아웃(약 7억원)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친정팀으로
캡틴의 귀환

기성용은 지난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K리그에 다시 서려고 그동안 많이 노력했는데, 드디어 오게 돼 행복하다”며 “팬들에게 좋은 축구, 만족하실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 2월 스페인으로 떠나며 구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향후 K리그 복귀를 다시 고려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이날 입단식과 기자회견에선 그 일을 훌훌 털어버린 모습이었다.

검은 수트 차림으로 들어와 엄태진 사장으로부터 받은 유니폼 상의로 갈아입고, 머플러도 목에 걸어 본 그는 내내 고무된 표정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기성용은 “여러 모로 과정 등에서 아쉬운 게 있긴 했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서울FC와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기성용은 “겨울엔 구단에 섭섭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의견 차이가 컸다”며 “다들 아실 테니 그때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때문에 스페인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가족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고, 떠난 뒤에도 K리그 복귀에 대한 생각을 늘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2차 협상서 서로 이해를 넓히게 됐다”고 마음을 돌리게 된 계기를 전했다.

올해 초 기성용은 FC서울로 복귀를 타진했다. 하지만 이적료 및 위약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산된 바 있다. 사건을 요약하면 뉴캐슬서 입지가 좁아진 기성용은 아시아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중국 쪽으로 가닥이 잡혔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K리그로 선회했다.

기성용이 한국행을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FC서울과 전북현대는 이내 계산기를 두드렸다. 애초에 기성용은 FC서울서 셀틱으로 이적할 당시 계약서에 ‘국내 복귀 시 우선협상을 해야 한다’ ‘국내 타 구단 입단 시 26억원의 위약금’ 조건을 걸었다.

조건에 따라 FC서울과 협상한 기성용이었지만, 이적료를 두고는 조율이 되지 않았다. FC서울 측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며 기성용을 힘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FC서울의 협상은 결렬됐고 전북현대도 기성용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위약금 26억원이 부담스러워 관심을 접었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기성용은 결국 K리그 행이 무산됐다. 

11년 만에 국내 K리그 복귀
FC서울과 이적료 갈등 봉합

이때 당시 구자철은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아쉬움을 전했다. 구자철과 기성용은 축구 실력이 떨어지기 전에 국내 축구팬들을 위해 K리그 복귀를 하자는 의견도 나눴다고 한다. 기성용이 얼마나 K리그에 대한 애정이 큰 것을 알기에 구자철이 안타까움을 전한 것. 

이 같은 FC서울의 프런트 행동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스타성 있는 선수를 헐값에 데려오려고 했던 점, 위약금을 받기 위해 대승적인 차원서 절감해주지 않은 점 등은 축구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결국 친정팀에 실망한 기성용은 다시 해외로 방향을 틀었고 올해 2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마요르카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나선 스페인 생활은 코로나19 여파로 리그가 중된되면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6월부터 시즌이 재개됐지만 훈련 도중 발목 부상을 당해 리그서 4경기 연속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결국 마요르카 측과 기성용 측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며 귀국을 선택했다.
 

▲ 미드필더 기성용

기성용이 스페인서 자리 잡지 못할 때 또 한 명의 ‘용’이 K리그를 누비고 있었다. 독일 프로축구 구단 보훔서 생활을 마무리한 이청용이 K리그로 돌아와 경기장을 누비며 울산 현대호랑이 축구단 상승세에 큰 역할을 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함을 과시하며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이청용의 활약을 지켜본 K리그 팬들은 기성용의 국내 복귀 무산을 보면서 더욱 더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마침내 국내로 돌아온 기성용이 국내 경기장서 누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다린 것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축구 팬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까지 세 차례 월드컵에 출전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서 동메달을 딴 기성용이 K리그서 맹활약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기성용은 어릴 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기성용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5년간 호주 존 폴 칼리지에 유학을 다녀왔다. 아버지인 기영옥씨는 “축구만 아는 선수가 되지 말라는 뜻에서 어린 나이에 유학을 보냈다. 성용이는 영어로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것도 완벽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생활
6개월 종지부

이후 2006년 18살이란 나이에 U-20 대표팀에 선발돼 2007년 20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했다. 당시 대표팀의 중앙수비수들이 줄 부상을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성용을 중앙수비수로 기용하며 4백 수비를 3백으로 바꿔 전술을 기성용에 맞춰 대회에 임했다.

같은 해 기성용의 소속팀이었던 FC서울에서는 세올 귀네슈라는 외국인 감독이 기성용을 신뢰한 덕분에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졌다. 18세였던 기성용은 K리그 20경기에 출장하며 꾸준히 실력을 향상시켰다.  

2008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4월2일 수원과의 컵대회 경기서 선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8월 대구 FC와의 경기서 프로 데뷔 후 첫 골을 성공시켰다.

절친한 팀 동료 이청용과 함께 비슷한 시기에 자리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2008 시즌이 끝난 후 열린 시상식서 있었던 시즌 베스트 11 투표서 가장 많은 표를 얻으며 자타공인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또 최연소 베스트 11이 됐다는 사실로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 전까지 최연소 베스트 11은 1998년의 고종수(당시 20살)였으나 기성용이 19살의 나이로 경신했다.

승승장구하던 FC서울은 2009년 두 마리의 용을 잃게 된다. 기성용은 셀틱으로, 이청용은 볼튼 원더러스로 보내면서 전력에 누수가 생겼다. 셀틱으로 이적한 첫 해 폴커크와의 경기로 SPL 데뷔전을 하며, 본인의 장기인 정확한 패스 보급과 프리킥을 자랑했다. 데뷔전서 최우수 선수에 뽑히며 성공적으로 보내는 듯했으나 부상 여파로 점점 출전 수가 줄어들었다. 

출전 경기 수가 줄어든 바람에 기성용은 팀을 떠나려고 했지만 구단서 붙잡았다. 결국 다음 시즌도 셀틱서 보내야 했다. 세인트 마렌과의 경기 3-0 상황서 교체된 기성용은 들어간 지 10분 만에 중거리 골을 넣었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이 됐다.

이후 셀틱의 미드필더들이 부상을 잇달아 당하자 기성용의 출장 기회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성용의 문제로 지적되던 수비 가담도 월등히 좋아지고, 차두리로 셀틱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도 찾게 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성용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감독이었던 홍명보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의 부름을 받고 박주영, 구자철과 함께 동메달을 획득했다. 구자철과 함께 중원을 장악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자 잉글랜드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코틀랜드 리그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국제대회서 경쟁력을 선보인 기성용은 EPL로 도전장을 내밀며 스완지시티로 이적한다. 

2005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박지성 이후, 이영표(전 토트넘), 설기현(전 레딩), 이동국(전 미들즈브러), 김두현(전 웨스트브로미치), 조원희(전 위건), 이청용(전 볼턴), 지동원(전 선덜랜드), 박주영(전 아스널)에 이어 열 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기성용은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유럽서
‘펄펄∼’

기성용은 스완지시티서 중원의 한 축을 담당하며 대다수의 경기를 선발 출전했다. 이적 이후 시즌 초반에는 EPL 선수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축구팬을 잠 못 들게 했다. 

기성용의 플레이 스타일은 장단점이 뚜렷했다. 예리하게 상대방 진영 빈 공간에 깊숙하게 찔러넣는 패스를 자주 구사했다. 당시 스완지에는 발이 빠른 측면 공격수가 많았기에 기성용의 패스는 절묘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고 활동량이 많지 않아 수비형 미드필드로서는 좀 아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라운드의 전방위를 뛰어다니던 박지성과 비교했을 때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장점이 뚜렷했기에 선발로 나서는 경기가 많았다. 결국 38경기에 출전해 3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쳤다.

국가대표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기성용은 2014 브라질 월드컵, 2015 아시안컵, 2018 러시아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무대 대회서 두각을 보였다. 지난해 치렀던 아시안컵 조별서 경기를 뛰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대표팀 명단서 빠지기도 했다.
 

▲ 기성용 선수 ⓒFC 서울

지난해 1월30일 아시안컵을 마지막으로 기성용 선수는 공식적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했다.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서 대표팀 복귀에 대해 묻자 기성용은 “대표팀 자리는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은 곳”이라며 “어린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고 소속팀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첫 번째 목표”라고 밝혔다.

기성용이 맹활약하게 된 데엔 부친의 영향도 있었다. 부친은 광주 토박이로 광주공업고, 금호고, 전남대를 졸업했으며 실업팀 국민은행 축구단서 짧게 선수생활을 하고 1982년 은퇴했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해 금호고, 광양제철고,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금호고 감독 시절 고종수와 윤정환을 국가대표로 길러낸 명장이며, 아들 기성용도 국가대표로 성장시킨 지도자다.

2010년 광주FC 창단 작업부터 공을 들인 기씨는 2015년에는 단장으로 임명돼 무보수로 일해왔다. 단장직을 맡으면서 금호고 등 유소년 선수 육성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연령별 대표팀 발탁
스코틀랜드·잉글랜드 등지서 활약

광주FC팀의 1부 리그 승격과 전용구장 건설이라는 업적을 남겼지만, 지난해 12월 건강상의 문제로 단장직을 사임하고 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성용의 절친은 구자철과 이청용으로 유명하다. 이청용 1988년생 7월생, 기성용 1989년 1월생, 구자철 1989년 2월생 등 비슷한 또래이면서 젊은 나이에 해외 팀으로 이적해 서로에게 의지가 됐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 사이로 똘똘 뭉쳐 K리그 부흥과 유소년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기도 한다.

세 선수들이 각기 다른 성격이 급속도로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기성용의 FC서울 복귀 소식이 전해지자 이례적으로 타팀 소속인 이청용은 구단 영상을 통해 “굉장히 기다려진다. 같은 팀은 아니지만 상대 팀으로 만나게 된다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즐거울 것 같다. 수준 높은 선수들이 있으면 경기 질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팀과 팀의 대결이지만 서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고 소속팀에 승리를 위해 각자 열심히 한다면 팬들도 즐겁게 경기를 보실 것이라 기대한다”고 반겼다. 

기성용은 축구 실력뿐 아니라 배우 한혜진과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하면서 한혜진과 처음 연을 쌓았다. 이후 친해진 두 사람은 연애상담을 하며 친해지며 누나동생으로 편하게 지내다가 2013년 1월부터 연인으로 발전했다. 

같은 해 3월 한혜진의 이니셜이 새겨진 기성용의 축구화가 대표팀 연습 중 취재진의 카메라에 포착되며 열애설이 불거졌다. 말하자면 기성용 본인이 직접 팬들에게 한혜진과의 관계를 내보인 셈이다.

이후 한 매체서 이 둘의 데이트 하는 모습의 파파라치 사진까지 공개되자 기성용은 트위터를 통해, 한혜진의 소속사도 열애를 인정했다. 기성용은 한혜진과 지난 2013년 7월에 결혼했고, 2015년 9월 딸 시온양을 품에 안았다.

지난 2016년, 잘 알려지지 않은 축구팬을 열광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의 부친에 따르면 당시 중국프로축구 상하이 상강서 기성용에게 연봉 220억원을 제시했다고 한다. 세금을 포함하면 실제 연봉은 무려 400억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중국 러브콜
220억 거절

토트넘 감독 출신이자 무리뉴의 눈이라고 알려진 빌라스 보아스가 기성용에게 두 차례나 연락했지만 기성용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놀랍게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주장이 한 수 아래인 중국 프로리그서 뛰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철없던 기성용 SNS ‘말말말’

지난 2007년 올림픽 축구대표팀일 때 우즈벡과의 경기력에 대한 지적이 있자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지”라는 글을 게재해 네티즌들의 거센 악플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사건 직후 논란이 일자, 얼마 뒤 문제의 발언을 삭제했지만 이미 기자들에 의해 기사화되어 보도됐고, 9시 스포츠 뉴스에도 기사화가 됐다.

2014년 런던올림픽 이후 부산의 안익수 감독이 박종우에게 “국가대표도 예외는 없다. 정신무장이 안 돼 있다면 누구든 2군으로 내려갈 수 있다” “투지 있는 플레이가 장점이었는데 요즘 기성용처럼 볼을 차려 한다” “투지 있는 터프한 플레이가 종우의 장점인데 그런 것이 사라졌다. 열흘도 넘게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해 기성용은 “나처럼 볼 차면 2군 가니?” 하고 대응한 것.

국내 축구팬들은 기성용의 말 한마디에 또 비판을 하며 관전모드로 돌입했지만 사건은 일단락이 됐다.

2013년 최강희 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막바지 3경기를 앞두고 기성용을 소집하지 않았다.

기성용은 자신의 SNS에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 그리고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적으로 만드는 건 리더의 자격이 없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최강희 감독을 저격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비판을 했지만, 기성용은 교회 목사님의 말씀이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최강희 감독 시절 홍명보 감독을 떠오르게 하는 알파벳 M, B가 그려진 모자를 게시하거나 비공개 SNS에 최강희 감독을 조롱하는 듯한 글이 공개돼,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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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