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통상 1년 차 서른 과장님 파워

딸·사위는 들러리, 그래도 아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신성통상서 의미심장한 지분 변동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올 초부터 그룹 핵심 계열사가 신성통상 주식을 연이어 매입하더니, 최근에는 회장이 직접 나서 다량의 주식을 팔았다. 회장이 내놓은 주식이 향한 곳은 장남 소유의 회사. 약관의 나이에 이미 후계자로 인정받았던 입사 1년 차 황태자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1968년 니트 의류 전문 수출업체로 출발한 신성통상은 SPA ‘탑텐’, 남성복 ‘올젠’ ‘지오지아’ 등을 운영하는 패션기업이다. 1972년 600만달러(약 73억원)의 수출실적을 올리는 등 제법 굵직한 연혁을 자랑했던 신성통상은 1973년 대우그룹에 편입되면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우그룹 공중분해를 겪으며 법정관리 신세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꼭대기 오른
초년병 아들

대기업 계열사서 법정관리 회사로 위상이 추락한 신성통상을 눈여겨본 이는 엄태순 현 신성통상 회장이다. 1983년 가방 제조업체 가나안상사(현 가나안)를 설립한 염 회장은 ’아이찜‘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 가나안을 연 매출 1000억원대 회사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염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002년 신성통상을 인수하면서 패션업계에 파장을 불러왔다. 3년 넘게 법정관리 상태였던 신성통상이 새 출발을 알린 순간이었다. 당시 가나안컨소시엄은 신성통상을 품는 데 924억원을 쏟아부었다.

구원군을 등에 업은 신성통상은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올젠, 지오지아의 꾸준한 매출을 토대로 2012년 탑텐의 시장 안착을 이끌어냈다. 덕분에 2002년 6월 말 기준 3000억원을 밑돌던 신성통상의 매출은 지난해 6월 말 연결 기준 1조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계열 회사들의 매출 총합은 1조5000억원대에 육박한다.


당해 역시 무난한 성적표가 예상된다. 매년 6월 말이 결산일인 신성통상은 3분기 말(2020년 3월31일)까지 연결 기준 누적 매출 7845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7292억원) 대비 7.6%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가 터진 3분기에도 전년 동기(2128억원)와 별반 차이 없는 2123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최상단 선점한 회장님의 장남
아버지 증여 덕분에 탄탄대로

수익성 역시 매우 안정적이다. 3분기까지 집계된 연결 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327억원으로, 전년 동기(287억원) 대비 14.2%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3분기에 영업손실 67억5400만원을 기록한 가운데 거둔 성과다. 전년 동기에는 영업이익 67억6500만원을 달성한 바 있다.

성장을 거듭한 신성통상은 모기업 격인 가나안을 외형적으로 멀찌감치 따돌린 상태다. 지난해 8월 말 연결 기준 가나안의 매출은 3188억원으로 신성통상(2019년 6월 말 연결 기준)의 1/3 수준에 머물러 있다. 총자산 역시 신성통상(6896억원)의 37.8% 수준인 2603억원에 그친다. 신성통상의 올해 3월 말 기준 총자산(8114억원)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 신성통상 본사

그렇다고 해서 그룹 내 가나안의 위상이 신성통상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나안은 예나 지금이나 신성통상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로서 중요도가 남다르다. 향후 승계 과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룹 내에서 핵심 회사로 분류되는 곳은 신성통상(상장), 가나안(비상장), 에이션패션(비상장)이다. 에이션패션은 캐주얼 브랜드 ‘폴햄’을 전개하는 신성통상의 관계사다. 이들은 지배구조 상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오래전 끝맺음
싱거웠던 승계


올해 3월 말 기준 신성통상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28.6%(4113만4460주)를 나타낸 가나안이고, 염 회장(21.6%, 3103만9280주)과 에이션패션(17.6%, 2537만6900주)이 뒤를 잇는다. 특수관계인 지분율 총합은 67.8%(9755만640주)에 달한다.

가나안 지분구조의 꼭대기에는 염 회장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염상원씨가 서 있다. 상원씨는 지난해 8월 말 기준 가나안 지분 82.4%(47만8100주)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염 회장의 지분율은 10.0%(5만8000주)에 그친다. 나머지 7.6%(4만3900주)는 에이션패션의 몫이다.

이 같은 구조는 염 회장이 가나안 지분을 상원씨에게 증여한 데 따른 결과였다. 2008년까지만 해도 상원씨가 지닌 가나안 지분은 전무했다. 가나안 주주구성에 상원씨 이름이 등재된 건 2009년부터다. 당시 가나안은 주식 수를 38만주서 58만주로 늘렸는데, 이 과정서 염 회장은 상원씨에게 지분 대부분을 증여했다. 70%를 웃돌던 염 회장의 지분율은 증여 이후 10%로 변동이 생겼다.
 

▲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

에이션패션이 가나안·신성통상과 상호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지만, 큰 맥락서 보면 가나안이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달리 말하면 상원씨를 중심으로 승계가 완성됐음을 뜻한다.

최근 신성통상에 대한 염 회장의 보유 주식이 감소하면서 상원씨를 중심에 둔 승계구도는 한층 명확해졌다. 지난달 12일 염 회장은 신성통상 200만주를 장외 매매로 가나안에 넘겼다. 이로써 가나안이 보유한 신성통상 지분율은 기존 28.6%서 30.0%로 증가했고, 자연스럽게 상원씨의 신성통상 지배력도 높아졌다.

밀어주고
받아먹고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곳이 가나안이라면, 에이션패션은 오너 일가의 신성통상 지배력을 간접 지원한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에이션패션의 최대주주는 지분 41.2%(32만9500주)를 보유한 염 회장이다. 가나안(36.0%, 28만8000주)은 2대주주, 신성통상(22.7%, 18만1500주)은 3대주주에 등재돼있다.

99.9%의 지분이 3곳에 몰린 구조이며, 신성통상과는 지분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눈여겨볼 점은 에이션패션이 올 초부터 신성통상 지분을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에이션패션의 지분 매입은 케이디파트너스가 보유한 신성통상 지분 800만주를 흡수했던 2015년 이래 5년 만이다.

에이션패션은 장내 매수를 통해 지난 2월20∼25일 사이에 240만주를 매입했다. 이후 2월27일부터 3월23일까지 100만주를 더 사들이며 신성통상 지분율을 기존 15.3%서 17.6%로 끌어올렸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으로 회사 주가가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진 게 저가 매수의 기회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신성통상에 대한 에이션패션의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염 회장과 가나안의 실질 소유주인 상원씨의 지배력은 간접적으로 높아진다. 올해 나타난 특수관계인의 신성통상 보유 지분 변동에는 염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병아리 털도 못 벗었는데…
곳곳에 포진한 오너 친인척


오너 일가는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토대로 향후에도 오너 경영체제를 이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이미 염 회장을 필두로 한 오너 일가는 계열사 곳곳서 영향력을 표출하고 있다. 염 회장의 동생인 염권준 부회장을 비롯해 염 회장 슬하의 1남2녀와 사위까지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염 부회장은 형을 도와 가방·신발 등을 제조하는 씨앤티스를 이끌던 인물이다. 씨앤티스는 1999년 아이찜으로 설립된 뒤 2001년 씨앤티스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씨앤티스 대표이사이자 신성통상 임원을 역임했던 염 부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직접 챙겼던 인물이다.
 

▲ 지오지아 매장 내부

염 회장의 두 딸과 사위들 역시 회사에 소속돼있다. 장녀 혜영씨는 물류 관련 부서 부장급 직책을 맡고 있다.

첫째 사위인 박희찬씨는 2011년 신성통상 입사 후 마케팅팀, 경영기획실을 거쳐, 탑텐 사업부문장을 지냈다. 현재는 에이션패션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린 상태고, 에이션패션이 전개하는 폴햄의 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차녀 혜근씨는 탑텐 상품기획부 차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둘째 사위는 지난해 11월 수출사업부 구매본부이사로 입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뒷배로
주요 직책 장악


경영 참여 시기를 놓고 관심을 모았던 그룹 후계자 상원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까지 대학생 신분이던 상원씨는 올해 1월부터 경영지원본부 과장으로 회사에 출근 중이다. 상원씨가 올해로 30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무살이 채 되지 않은 시점서 그룹 후계자로 인정받은 셈이다. 최근 특수관계인 지분 변동 역시 상원씨의 등장에 맞춰 지배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