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기다리는 선수들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 JSA뉴스 jsanews@jsanews.co.kr
  • 등록 2020.07.20 10:19:17
  • 호수 1280호
  • 댓글 0개

BTS, 기생충, 싸이…스포츠도 한류

▲ 유은희 선수

 

[JSA뉴스] IOC는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과 관련해 주어진 1년의 기간 동안 참가 선수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주인공은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다. 도쿄올림픽 본선 진출로 올림픽 10회 연속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운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2004년의 영웅들이 걸었던 길에서 용기를 얻고 있다.

BTS는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그리고 K-Pop 제왕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30개국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정작 본국서 
인정 못 받아

이렇게 ‘문화 한류’는 글로벌 무대서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K-스포츠 한류’ 역시 스포츠계서 빛을 발하고 있다. EPL 토트넘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손흥민, 김연아의 뒤를 이어 피겨 스케이팅 정상을 노리는 유영, 메이저 리그서 활약하는 최지만, 추신수, 류현진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보다 먼저 세계 무대서 성공의 역사를 써온 원조 K-스포츠 한류가 있다. 바로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다.

여자 핸드볼은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서 한국이 최고의 성적을 거둔 종목이다. 그러나 1988 서울 올림픽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자 핸드볼은 정작 본국서 성적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다 한국 여자 핸드볼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을 통해서였다. 영화를 통해 한국 여자 핸드볼이 이뤄낸 수많은 영광의 순간 중 최소 한 장면만은 모두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이미 글로벌 무대서 관심 독차지
단체 구기 대한민국 최고의 성적

2004년 올림픽 레전드 오성옥이 이끄는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금메달전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덴마크와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노장들로 구성된 대표팀의 이 영웅적인 활약 이야기가 바로 <우생순>으로 흥행에도 성공한다.

이 영화는 한국서 디즈니의 <마법에 걸린 사랑(Enchanted)> 및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카터가 주연한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 ‘고질라가 블레어 위치를 만났다’는 카피를 내세운 <클로버필드> 등의 영화를 누르고 3주간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영화는 핸드볼이라는 스포츠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과 동시에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비판하는 메시지도 담아냈다. 특히 기혼의 중년 여성, ‘아줌마’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그랬다.

올림픽 무대서 세계 최고들과 경쟁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평가받던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도전 이야기는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고, 핸드볼이라는 종목도 한국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일부 해외 언론에선 이를 두고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제, 2021년에 열릴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여자 핸드볼의 신세대 스타들은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달성해냈다. 이것은 지금까지 다른 그 어떤 핸드볼 팀, 남녀를 통틀어도 이뤄내지 못했던 업적이다.


한국 대표팀의 스타 라이트백 유은희는 ‘올림픽 채널’과의 인터뷰서 “메달을 따내고 싶다. 런던이나 리우에서는 메달이 없었으니까”라고 각오를 밝혔다.

“또 메달을 
따고 싶다”

유은희가 핸드볼서 이루고 싶은 두 가지 꿈은 유럽 진출과 올림픽 메달이다. 그중 절반은 이미 현실이 됐다. 그는 현재 프랑스의 핸드볼 팀, 파리 92서 ‘더 퀸’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뛰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서는 2012 런던올림픽서 스페인과의 연장 승부 끝에 아깝게 동메달을 놓쳤던 대표팀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나머지 절반의 꿈을 도쿄서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한국의 유은희, 유럽서 돌풍을 일으키다’라는 제목의 기사서, 29세의 유은희는 국제핸드볼연맹(IHF)에 올림픽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다.

“중학생 때 2004 아테네 올림픽을 봤고, 한국 선수들과 대표팀이 뛰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선배들의 활약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한국은 2019 세계선수권에서 꿈과는 조금 먼 11위를 기록했지만, 유은희는 대회 우승국 네덜란드의 최다 득점자이자 대회 득점 1위 로이스 아빙의 71점 다음으로 많은 69득점을 올렸다.

유은희는 이 대회에 대해 “많은 선수들이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서 괜찮은 대회를 치렀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에는 계속해서 재능 있는 선수들이 합류하고 있다. 유은희는 이 중에서도 2018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MVP 송혜수와 24세의 강은희를 지켜봐야 할 선수로 지목했다.

송혜수는 주니어 U-20 대표팀서 활약하며 스타플레이어 엘레나 미하일리첸코가 이끄는 러시아 대표팀을 상대로 동메달 획득을 도왔던 선수다. 주니어 세계선수권 당시 강재원 감독은 핸드볼 월드 뉴스와의 인터뷰서 “현 세대는 대표팀 미래에 큰 기대를 걸게 해준다”고 밝히기도 했다.

네덜란드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던 2019 세계 선수권서 11위에 머물렀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여자 핸드볼이 국제무대서 밀려났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올림픽 무대서 언제나 최상의 경기를 보여준 팀이며,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은 아무나 그냥 이룰 수 있는 업적이 아니다. 1984 로스앤젤레스부터 2012 런던까지 모든 올림픽서,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항상 메달전까지 올라갔다.
 

▲ 2014 난징 하계 유스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 경기서 러시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대한민국 대표팀

그리고 금메달 두 개, 은메달 세 개, 동메달 한 개를 따냈고, 4위에는 네 번 올라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한국은 올림픽 양궁과 국기인 태권도서 세계 정상의 자리를 유지해오고 있지만, 여자 핸드볼 역시 세계 정상급 성적을 내왔고,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서 한국 대표팀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종목이다.

여자 핸드볼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이후 열린 11번의 올림픽 중 8번서 한국 여자 대표팀은 메달전까지 올라갔다. 1984 LA(은메달), 1988 서울(금메달), 1992 바르셀로나(금메달), 1996 애틀랜타(은메달), 2000 시드니(4위), 2004 아테네(은메달), 2008 베이징(동메달), 2012 런던(4위).

유은희는 올림픽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2012 런던올림픽 8강서 러시아를 꺾은 경기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2016 리우올림픽은 10위라는 실망스런 결과를 얻었지만,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도쿄서 다시 한 번 황금빛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국제무대서의 많은 성공들에도 불구하고 유은희는 핸드볼이 아직도 한국 내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한국의 핸드볼 리그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축구, 농구, 야구에는 못 미치는 인기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동료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 핸드볼의 인기를 어떻게 올릴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이렇다.


“한국에서는 핸드볼을 보통 9∼10살 때부터 시작한다. 더 어릴 때부터 공과 가까이한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어릴 때부터 핸드볼을 접하게 만들까?

어릴 때부터 
공과 가까이

“핸드볼만의 매력이 있다. 실제로 보면 그 속도와 투지를 느낄 수 있다. 경기장서 한 번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데도 꾸준히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실력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한국의 핸드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의 핸드볼 선수들과 감독들은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신장의 불리함을 속도와 기술, 속공, 중거리서의 정확한 슛 능력, 그리고 수비 조직력을 통해 극복해냈다.

키 162cm의 레프트백 송혜수의 바운스 슛 같은 획기적인 기술들도 ‘코리안 스타일’에 속한다. 바운스 슛은 터득하기 매우 힘든 기술 중 하나로, 정중앙으로 공격해 들어가서 수비가 두터운 센터 포지션서 공을 던지고, 공은 골키퍼 바로 앞에서 바운드되고, 스핀된다. 이를 통해 상대를 속이는 기술이다.
 

▲ ▲▲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스틸컷

2018년 슬로바키아서 열린 U-18 월드컵서 송혜수는 이 기술만으로 한 경기에 4골을 넣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에게 바운스 슛은 그저 여러 기술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그는 대회 당시 핸드볼 월드 뉴스와 인터뷰서 “우리 팀에서는 특별한 기술도 아니다. 나는 그냥 코리안 스타일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했다. 

“키가 크지 않기 때문에, 골을 넣을 다른 방법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코리안 스타일’ 플레이를 통해 지금까지 4명의 한국 선수들이 국제핸드볼연맹(IHF) 세계 핸드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여자부에선 김현미(1989)와 임오경(1996)이, 남자부에서는 강재원(1989)과 윤경신(2001)이 각각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10회 연속 본선 진출 달성
세계가 놀란 ‘아줌마 신화’

한국 핸드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올림픽 5회 출전에 빛나는 오성옥 선수다. 한국 여자 선수로서는 최초로 올림픽 5회 출전을 기록한 오성옥은 1992 바르셀로나 금메달, 1996 애틀랜타와 2004 아테네 은메달, 그리고 2008 베이징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선구자 격인 오성옥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오스트리아의 히포팀서 뛰며 유럽 진출도 이뤄냈다.

유은희는 거의 10년 만에 그 뒤를 이어 유럽에 진출한 선수로 2019-20 시즌에 프랑스 리그의 파리 92에 입단했다. 유은희는 서울 슈가글라이더스 소속으로 2018/19 핸드볼 코리아 리그 MVP를 차지한 뒤 프랑스로 향했지만, 새 구단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유럽의 경기는 한국과 비교해 더 거칠고 빠르다. 프랑스에서는 훈련도 실제 경기를 하는 것 같이 진행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리그 적응을 마친 유은희는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골을 많이 넣는 일이다. 인생의 골도 확실히 세워져 있다.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부상 없이 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올림픽에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파리 92와 챔피언스 리그에 도전하고 싶다.”

“선배들이 이룬
역사 이어간다”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년 연기된 현재, 유은희는 부산으로 돌아와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궁극의 무대서 선배들이 이뤄온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목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도쿄가 K-스포츠의 다음 장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여자 핸드볼의 새로운 세대들은 그들만의 유산을 남기려 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