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 새 황제의 임무

아버지 흔적부터 말끔히 지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DB그룹이 오너경영 체제로의 회귀를 알렸다. 전문경영인 아래서 실무를 익힌 젊은 황제는 옛 영광을 재현해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됐다. 다만 후계자가 짊어진 짐은 그리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미래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건 물론이고, 자질에 대한 물음표도 떨쳐내야 한다. 회사를 위해서라도 아버지와 철저한 선긋기가 요구된다.
 

▲ 김남호 DB그룹 신임 사장

DB그룹(옛 동부그룹)은 1969년 1월 설립된 미륭건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창업주인 김준기 전 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자본금 2500만원으로 회사를 차렸고, 미륭건설은 1970년대 중동 건설 시장 진출을 계기로 급격히 사세를 키웠다. 

중동서 벌어들인 외화를 밑천으로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를 꾀했다. 동부그룹이 한때 금융·철강·반도체·농업 등을 영위하는 6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10위권 대기업집단으로 발돋움하게 된 배경이다.

다사다난 
수난사

하지만 동부그룹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급격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1조3000억원을 들였던 동부제철 전기로 사업은 처참한 실패로 결론났고, 주력 계열사들은 연이어 엄청난 부채의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2014년 12월31일 모태기업인 동부건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동부제철, 동부건설, 동부익스프레스 등 비금융 계열사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룹의 공중분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동부그룹은 무너지지 않았다. 수년간 구조조정 홍역을 치루면서 외형은 위축됐지만, 금융계열사 주축으로 수익성 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급한 불을 끈 뒤에는 사명 변경을 통한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동부그룹은 지난 2017년 11월 이미지 쇄신작업의 일환으로 사명을 DB그룹으로 변경했다. DB는 동부(DongBu)의 영문 머리글자이며 ‘드림 빅’(Dream Big) 의미를 담았다.
 

▲ DB그룹 CI 선포식 ⓒDB그룹

그룹 계열사들 역시 DB로 새 단장했다. DB Inc로 변경된 ㈜동부를 필두로 ▲DB손해보험(동부화재) ▲DB생명(동부생명) ▲DB금융투자(동부증권) ▲DB저축은행(동부저축은행) ▲DB하이텍(동부하이텍) ▲DB메탈(동부메탈) ▲DB라이텍(동부라이텍)이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오너경영 체제로 회귀
옛 영광 재현에 집중

새 출발한 DB그룹의 수장은 이근영 동부화재 고문이 맡았다. 경영권이 곧바로 오너 일가에 넘어가는 것보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이 회장은 2008년 동부메탈과 동부생명 사외이사를 맡으며 동부그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 회장 체제서 DB그룹은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규모와 매출액은 각각 66조원, 21조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그룹 전체 매출의 90%를 담당하는 금융 부문이 건실한 수익을 낸 덕분이었다.

금융부문은 코로나19 사태에도 1분기 매출액 5조8000억원, 순이익 1600억원을 달성하는 등 전년보다 개선된 실적을 거뒀다.


제조부문 역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미운오리새끼’ DB하이텍이 실적 개선을 이뤄내면서 금융과 제조를 양대 축으로 하는 사업 모델이 탄력을 받고 있다. DB하이텍은 올해 1분기 매출 2258억원, 영업이익 64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1%, 189%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29%에 달한다.

이 회장 체제서 내실 다지기에 성공한 DB그룹은 최근 2세 경영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또 한 번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상태다.

내실 다지고
후계자 앞으로

DB그룹은 지난 1일 이 회장이 물러나고, 김남호 DB금융연구소 부사장을 신임 그룹 회장에 선임했다고 밝혔다. 김 신임 회장은 내년 초 정기주총을 거쳐 그룹 제조서비스부문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DB Inc의 이사회 의장도 겸임할 예정이다.

1975년생인 김 신임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장남이다. 2002년부터 3년간 외국계 경영컨설팅회사인 AT커니서 근무했고, 2007년 미국 시애틀 소재의 워싱턴대 대학원서 경영학 석사 취득, UC버클리서 금융 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DB그룹에 입사해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서 생산·영업·공정관리·인사 등 각 분야 실무경험을 쌓았다.
 

▲ DB그룹 사옥

김 신임 회장의 등장은 전임자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인사로 읽힌다. 이 전 회장은 고령으로 체력적 부담이 커지면서 여러 차례 자리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고, 지난달 말 그룹 경영협의회서 퇴임 의사를 공식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자리서 오너 2세인 김 신임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달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김 신임 회장은 DB손해보험과 DB Inc의 지분 9.01%와 16.83%를 각각 보유한 최대주주기도 하다. DB손해보험은 DB생명·DB금융투자·DB캐피탈을, DB Inc는 DB하이텍과 DB메탈을 지배하고 있다. 김 신임 회장은 2000년대 초부터 그룹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는 계열사들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왔다.

김 신임 회장의 취임은 DB그룹은 창업 이래 50년 가까이 그룹을 이끌어 온 창업주 김 전 회장의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계에서는 김 신임 회장 체제로의 전환은 3년 전부터 예견돼온 수순이었다고 보고 있다.

명확한 입지
큰 그림 장점

실제로 김 신임 회장은 김 전 회장 퇴임 후 이 전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경영을 이끌기 위한 준비과정을 밟아왔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은 암투병 중으로 경영복귀가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신임 회장은 국내외 투자금융전문가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10년대 중반 그룹 구조조정 과정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등을 매각하는 작업에 깊이 관여해 금융·IT 중심으로 그룹을 재정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DB메탈의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유상증자를 이끄는 등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DB금융부문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DB금융연구소에서는 금융 계열사들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세웠다. DB금융부문이 안정성, 수익성, 성장성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일각에선 김 신임 회장이 금융부문뿐 아니라 제조부문까지 책임지는 과정서 경험 부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DB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금융부문 의존도가 한층 높아진 상태다. 제조부문이 총 매출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고, 김 신임 회장 역시 금융부문에 주로 역량을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제조부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다.

김 신임 회장 입장서 다행인 건 DB그룹이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제조부문에 대한 투자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DB하이텍은 DB그룹의 제조부문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전력이다.

부친과 선긋기 우선
경험 부족 당면과제

DB하이텍은 국내 유일의 순수 파운드리 업체로 1997년 옛 동부그룹이 동부전자를 설립한 후 2000년 국내 최초로 파운드리 사업에 나섰다. 2013년 위기에 봉착한 DB그룹이 계열사 매각과 워크아웃 등에 돌입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게 DB하이텍이었다. 

일단 DB하이텍은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DB하이텍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각각 9230억원, 2511억원으로 보고 있다. 영업이익률 예상치만 27.2%에 달한다.

오너 일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워야 할 과제도 놓여 있다. 필요에 따라 아버지와의 철저한 선긋기가 요구된다. 가사도우미와 비서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김 전 회장은 지난 4월, 1심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별장의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총수의 상식 밖 행동으로 인해 순식간에 그룹 이미지는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심지어 브랜드 사용료 문제에 따른 사명 변경을 김 전 회장과의 거리 두기 차원으로 몰아가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동부’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 경우 그룹은 남이 돼버린 동부건설에 브랜드 사용료를 내야 했는데, 이 금액은 연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질병 치료 명목으로 미국으로 떠났다가 출국 이후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곧장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촌극을 벌였다. 이 탓에 약 2년 동안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넘어야 할 산
무거워진 어깨

도피행각을 벌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출국한 지 약 2년2개월 만이었다. 그를 향한 시선은 이미 존경받는 창업주서 파렴치한 기업인으로 뒤바뀐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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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