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 새 황제의 임무

아버지 흔적부터 말끔히 지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DB그룹이 오너경영 체제로의 회귀를 알렸다. 전문경영인 아래서 실무를 익힌 젊은 황제는 옛 영광을 재현해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됐다. 다만 후계자가 짊어진 짐은 그리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미래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건 물론이고, 자질에 대한 물음표도 떨쳐내야 한다. 회사를 위해서라도 아버지와 철저한 선긋기가 요구된다.
 

▲ 김남호 DB그룹 신임 사장

DB그룹(옛 동부그룹)은 1969년 1월 설립된 미륭건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창업주인 김준기 전 회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자본금 2500만원으로 회사를 차렸고, 미륭건설은 1970년대 중동 건설 시장 진출을 계기로 급격히 사세를 키웠다. 

중동서 벌어들인 외화를 밑천으로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를 꾀했다. 동부그룹이 한때 금융·철강·반도체·농업 등을 영위하는 6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서열 10위권 대기업집단으로 발돋움하게 된 배경이다.

다사다난 
수난사

하지만 동부그룹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급격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1조3000억원을 들였던 동부제철 전기로 사업은 처참한 실패로 결론났고, 주력 계열사들은 연이어 엄청난 부채의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2014년 12월31일 모태기업인 동부건설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순차적으로 동부제철, 동부건설, 동부익스프레스 등 비금융 계열사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룹의 공중분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럼에도 동부그룹은 무너지지 않았다. 수년간 구조조정 홍역을 치루면서 외형은 위축됐지만, 금융계열사 주축으로 수익성 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급한 불을 끈 뒤에는 사명 변경을 통한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동부그룹은 지난 2017년 11월 이미지 쇄신작업의 일환으로 사명을 DB그룹으로 변경했다. DB는 동부(DongBu)의 영문 머리글자이며 ‘드림 빅’(Dream Big) 의미를 담았다.
 

▲ DB그룹 CI 선포식 ⓒDB그룹

그룹 계열사들 역시 DB로 새 단장했다. DB Inc로 변경된 ㈜동부를 필두로 ▲DB손해보험(동부화재) ▲DB생명(동부생명) ▲DB금융투자(동부증권) ▲DB저축은행(동부저축은행) ▲DB하이텍(동부하이텍) ▲DB메탈(동부메탈) ▲DB라이텍(동부라이텍)이 간판을 바꿔 달았다.

오너경영 체제로 회귀
옛 영광 재현에 집중

새 출발한 DB그룹의 수장은 이근영 동부화재 고문이 맡았다. 경영권이 곧바로 오너 일가에 넘어가는 것보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지낸 이 회장은 2008년 동부메탈과 동부생명 사외이사를 맡으며 동부그룹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 회장 체제서 DB그룹은 꾸준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산규모와 매출액은 각각 66조원, 21조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그룹 전체 매출의 90%를 담당하는 금융 부문이 건실한 수익을 낸 덕분이었다.

금융부문은 코로나19 사태에도 1분기 매출액 5조8000억원, 순이익 1600억원을 달성하는 등 전년보다 개선된 실적을 거뒀다.


제조부문 역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미운오리새끼’ DB하이텍이 실적 개선을 이뤄내면서 금융과 제조를 양대 축으로 하는 사업 모델이 탄력을 받고 있다. DB하이텍은 올해 1분기 매출 2258억원, 영업이익 64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1%, 189%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29%에 달한다.

이 회장 체제서 내실 다지기에 성공한 DB그룹은 최근 2세 경영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또 한 번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상태다.

내실 다지고
후계자 앞으로

DB그룹은 지난 1일 이 회장이 물러나고, 김남호 DB금융연구소 부사장을 신임 그룹 회장에 선임했다고 밝혔다. 김 신임 회장은 내년 초 정기주총을 거쳐 그룹 제조서비스부문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DB Inc의 이사회 의장도 겸임할 예정이다.

1975년생인 김 신임 회장은 김 전 회장의 장남이다. 2002년부터 3년간 외국계 경영컨설팅회사인 AT커니서 근무했고, 2007년 미국 시애틀 소재의 워싱턴대 대학원서 경영학 석사 취득, UC버클리서 금융 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DB그룹에 입사해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등 주요 계열사서 생산·영업·공정관리·인사 등 각 분야 실무경험을 쌓았다.
 

▲ DB그룹 사옥

김 신임 회장의 등장은 전임자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인사로 읽힌다. 이 전 회장은 고령으로 체력적 부담이 커지면서 여러 차례 자리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고, 지난달 말 그룹 경영협의회서 퇴임 의사를 공식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자리서 오너 2세인 김 신임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달라고 피력하기도 했다.

김 신임 회장은 DB손해보험과 DB Inc의 지분 9.01%와 16.83%를 각각 보유한 최대주주기도 하다. DB손해보험은 DB생명·DB금융투자·DB캐피탈을, DB Inc는 DB하이텍과 DB메탈을 지배하고 있다. 김 신임 회장은 2000년대 초부터 그룹 지배구조상 정점에 있는 계열사들의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왔다.

김 신임 회장의 취임은 DB그룹은 창업 이래 50년 가까이 그룹을 이끌어 온 창업주 김 전 회장의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재계에서는 김 신임 회장 체제로의 전환은 3년 전부터 예견돼온 수순이었다고 보고 있다.

명확한 입지
큰 그림 장점

실제로 김 신임 회장은 김 전 회장 퇴임 후 이 전 회장을 보좌하며 그룹 경영을 이끌기 위한 준비과정을 밟아왔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은 암투병 중으로 경영복귀가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신임 회장은 국내외 투자금융전문가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10년대 중반 그룹 구조조정 과정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팜한농, 동부대우전자 등을 매각하는 작업에 깊이 관여해 금융·IT 중심으로 그룹을 재정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DB메탈의 워크아웃 졸업을 위해 유상증자를 이끄는 등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는 평가도 받는다.

DB금융부문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DB금융연구소에서는 금융 계열사들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세웠다. DB금융부문이 안정성, 수익성, 성장성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다만 일각에선 김 신임 회장이 금융부문뿐 아니라 제조부문까지 책임지는 과정서 경험 부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DB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금융부문 의존도가 한층 높아진 상태다. 제조부문이 총 매출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남짓에 불과하고, 김 신임 회장 역시 금융부문에 주로 역량을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제조부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 있다.

김 신임 회장 입장서 다행인 건 DB그룹이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제조부문에 대한 투자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DB하이텍은 DB그룹의 제조부문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전력이다.

부친과 선긋기 우선
경험 부족 당면과제

DB하이텍은 국내 유일의 순수 파운드리 업체로 1997년 옛 동부그룹이 동부전자를 설립한 후 2000년 국내 최초로 파운드리 사업에 나섰다. 2013년 위기에 봉착한 DB그룹이 계열사 매각과 워크아웃 등에 돌입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게 DB하이텍이었다. 

일단 DB하이텍은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시장에서는 DB하이텍의 올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각각 9230억원, 2511억원으로 보고 있다. 영업이익률 예상치만 27.2%에 달한다.

오너 일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워야 할 과제도 놓여 있다. 필요에 따라 아버지와의 철저한 선긋기가 요구된다. 가사도우미와 비서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김 전 회장은 지난 4월, 1심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별장의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고 비서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총수의 상식 밖 행동으로 인해 순식간에 그룹 이미지는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심지어 브랜드 사용료 문제에 따른 사명 변경을 김 전 회장과의 거리 두기 차원으로 몰아가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동부’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 경우 그룹은 남이 돼버린 동부건설에 브랜드 사용료를 내야 했는데, 이 금액은 연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질병 치료 명목으로 미국으로 떠났다가 출국 이후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곧장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 촌극을 벌였다. 이 탓에 약 2년 동안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넘어야 할 산
무거워진 어깨

도피행각을 벌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출국한 지 약 2년2개월 만이었다. 그를 향한 시선은 이미 존경받는 창업주서 파렴치한 기업인으로 뒤바뀐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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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