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연상호 감독 “서사적 개연성보다 이미지적 상징성에 치중”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올해 최대 기대작은 단연 <반도>였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약 200억원이 투입됐으며, 강동원과 이정현, 이레, 김민재, 구교환 등이 출연하는 영화니, 기대를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지난 15일 개봉하며 베일을 벗었다. 완성도 높은 한국형 좀비 영화 <부산행>을 탄생시킨 연상호 감독은 이번에는 장르적 성격보다 오락적 성격을 짙게 부여했다. 현재 평단과 관객 사이서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다. 연 감독을 직접 만나 제작 의도를 들어봤다. 
 

▲ 연상호 감독 ⓒNEW

 

연상호 감독은 국내 최고 이야기꾼으로 꼽힌다. 사회 내에 만연한 구조화된 폭력을 밀도 있게 그려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창> 시리즈나,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을 표현한 웹툰 <지옥> 시리즈, 혐오로 점철된 사회의 단면을 끄집어낸 드라마 <방법>, 용산참사를 전면으로 짚은 영화 <염력>,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의 악을 그린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영화 <부산행>까지, 그가 쌓아 올린 업적은 눈부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리고 <반도>를 꺼내 들었다. 좀비가 발발한 후 약 4년이 지난 뒤의 대한민국이 배경이다. 할리우드 영화 <나는 전설이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와 같은 결을 지닌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다. 좀비 영화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서 연 감독은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애초에 좀비물로 갈 것인지, 다른 포인트로 갈 것인지는 처음부터 기획됐던 부분이다. 변종 좀비가 아닌 이상, <부산행>을 따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경을 아포칼립스로 했고, 액션을 강화하려 했다. <반도>는 좀비가 변화하는 <레지던트 이블> 류가 아닌 <랜드 오브 데드>에 가까운 영화다.”

<부산행>이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서 사람들과 좀비가 맞물리는 충격적인 상황을 그려냈다면, <반도>는 망가진 폐허서 달려가는 카체이싱이 가장 핵심이 되는 영화다. 무려 23분이나 할애한 카체이싱은 엄청난 속도감으로 흥미를 이끈다. 


“처음에는 확실한 액션 콘셉트가 카체이싱이었다. 어린아이가 덤프트럭을 모는 이미지를 그렸다. 명확한 스토리라인에 이런 카체이싱이 얹어진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측면서 군인 집단이 타락한 광기를 보이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체험형 액션 영화의 느낌이 강하다. 그런 면이 극장과 더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연 감독이 호평을 받은 애니메이션 작품 대부분은 마이너한 성격이 짙다. 학교 폭력, 종교집단, 군대, 용산, 무당 등 누구에게나 관심 있는 소재가 아닌, 독특한 영역에 있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그리고 촘촘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재능이 널리 인정받아 여기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반도>는 연상호라는 이름에 얹어져 있는 기대치와는 전혀 다른 오락물이 나온다. 

“제 전작에 대한 기대감이 크신 분들은 웹툰 <지옥>을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들 각자마다 기대한다. 다 충족시키고 싶긴 하나,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작품은 플랫폼이랑 맞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극장용 작품은 모든 사람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나들이성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대중성을 의식한 것이 엿보인다. 보편적인 가상의 관객들을 설정하고, 이들이 볼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그의 발언의 요지다. 그래서 신나는 카체이싱과 함께 가슴을 울리는 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일각에선 전형적인 한국 영화라고 푸념을 하기도 한다. <부산행>도 부성애라는 보편적인 감성에 기댔듯, <반도> 역시 모성애와 인류애에 기댄 측면이 있다.

“영화를 많이 접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코드, 영화를 잘 안 본 사람은 잘 모르는 코드를 넣는 건 불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대중 예술은 누가 봐도 비슷한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이미지 ‘덤프트럭 모는 어린아이’
“군인들 광기 현대사회 사람들과 닮아”


멸망한 한국을 그리다 보니 완전히 타락한 인간 군상이 나온다. 군인 집단이었고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해 결국은 완전히 이성이 끊긴 집단이다. 이들은 새로운 사람들을 좀비 사이에 풀어놓고 약 3분 동안 도망치게 하는 등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인다. 

“631부대는 삶의 목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자극적인 쾌락만 좇는 존재다. 좀비들이 출몰하는 상황서도 항상 출동한다. 목숨을 건 스릴을 게임처럼 즐긴다. 후반부에 주인공 집단을 황 중사가 쫓는데, 뭔지도 모르고 그냥 쫓는다. 본질은 그저 향락이다.”

“아마 황 중사에게 있어서 그날이 최근 몇 년간 가장 즐거운 날이지 않았을까 싶다. 먹이를 던져주면 침 흘리면서 달려가는 사냥개로 표현하고 싶었다. 광적인 자극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일부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과도 닮았다고 봤다. 일종의 우화로 그리고 싶었다.”

연상호 감독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의 악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이다. 이기심으로부터 출발한 분노와 욕심을 자연스럽고 그럴 듯하게 표현해낸다. <부산행>의 용석(김의성 분)이 그랬고, 웹툰 <지옥>의 화살촉 집단과 수많은 군상, <사이비>의 교회 장로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반도>에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군인 집단의 군상들이 악의 표본으로 나온다. 
 

▲ 최근 &lt;반도&gt; 내놓은 연상호 감독 ⓒNEW

“악을 표현할 때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이 주요 도구가 된다. 내 안에도 나쁜 마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이 살다보면 많은 일들을 겪고, 부딪히고 하는데, 그때 많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사람들의 악한 모습을 포착하는데 관심이 있기도 하다. 정확히 의식적이지 않을 때도 있는데, 내 안에 혹은 내 주변으로부터 보고 느낀 무의식이 적절히 표현되는 것 같다.”

일각에선 <반도>가 서사적으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낙 다양한 작품서 뛰어난 핍진성을 보여준 그이기에 이러한 지적자체가 놀랄 만한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해외에선 <반도>를 두고 호평이 많다. 이 차이에 대해 연 감독만의 생각이 뚜렷했다.

“국내서 평론하시는 분들은 서사적인 개연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여긴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에서는 이미지적 상징성을 좀 더 짙게 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후반부 구세주로 등장하는 존재가 말레이시아인인 점이나, 이야기가 여성 주도적인 측면처럼 기존 레퍼런스를 따르지 않은 표현들이 있다. 이걸 감독이 구구절절 말하는 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알아주면 고마운 것이고, 안 알아줘도 괜찮다. 다만 이번에는 서사적인 개연성보다는 이미지적 상징성에 더 치중했다.”

연 감독은 다른 감독들과 달리 다양한 플랫폼서 활약 중이다. 이른바 ‘플랫폼 트랜스’를 실현 중이다. 애니메이션과 영화, 웹툰, 드라마에 더불어 넷플릭스 연출도 준비 중이다. 그가 집필한 드라마 <방법>은 영화로도 개봉할 준비를 하고 있고, 웹툰 <지옥>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나온다. 플랫폼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선택하고, 확장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플랫폼 트랜스

“내가 다양한 플랫폼으로 한다는 것이 알려지니까, 모든 플랫폼이 나를 만나러 와서 뭔가 제시를 한다. 내가 가진 아이템 중엔 마이너한 것도 있고, 블록버스터도 있다. 어울리는 것들끼리 진행한다. 플랫폼마다 진행되는 성격도 다르고, 보는 사람들도 다르다. 아직 다 성공한 건 아니어서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규석과 함께 하는 웹툰이 나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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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