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속 휴가철 신풍속도

떠나라! 조심해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여름 휴가 시즌이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해외여행 계획을 앞두고 들떠있겠지만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늘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 휴가 기간을 집에서 보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만 코로나19가 시작된 봄도 즐기지 못한 만큼 짧게나마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연령대에 따라 다르지만 캠핑부터 해외여행까지 여러 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여행 신풍속도다.

코로나19에 따른 여행 신풍속도의 중심에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이 자리잡고 있다. 스테이케이션은 집에서 머무르는 ‘집콕’과 같은 말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단순히 집에서 휴식을 하는 것과 달리 즐길 거리를 집으로 끌어들여 휴가 형태로 즐긴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진화된 집콕
먹거리 위주

스테이케이션과 집콕의 작은 차이 때문에 다를 게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테이케이션과 집콕은 분명 다르다. 형태만 놓고 본다면 작은 차이지만 소비 형태 범위까지 확대하면 차이는 커진다.

집콕의 경우 ‘먹거리’ 위주 소비 외엔 별다른 소비가 없다. 반면 스테이케이션을 위해선 먹거리는 물론 다양한 주변 도구, 소위 즐길 거리 구매도 늘어난다.

라면을 끓여먹어도 기존 냄비가 아닌 코펠을 활용하고, 집 앞 마당서 간이 수영장을 꾸미는 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특히 장소도 무조건 집이 아닌 캠핑과 펜션 등을 이용하는 형태도 넓은 범위서 스테이케이션에 해당한다.


잡코리아는 최근 직장인 1023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 계획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여름휴가를 갈 계획이 있다는 답은 9%에 그쳤다고 밝혔다.

‘올해는 따로 여름휴가를 가지 않겠다(22.9%)’ ‘겨울휴가 등 아예 휴가를 미루겠다(6.4%)’ ‘휴가를 내서 자녀 등 가족을 돌보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2.6%)’ 등 올해 여름휴가를 포기했다는 응답은 31.9%였다. ‘아직 미정, 상황을 지켜보고 판단’ 등의 대답은 59%를 기록했다. 

설문대로라면 10명 중 1명은 여름휴가를 떠나고, 3명은 휴가를 포기한 상태다. 6명의 경우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휴가에 대한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명 중 1명 떠나’ 스테이케이션 등장
자동차 숙소로 진화 중…‘차박’도 인기

코로나19의 위험도를 낮추는 형태의 휴가를 즐길 곳이 있다면 휴가를 떠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스테이케이션이 최근 여름휴가의 신풍속도 속 중심에 자리 잡게 된 이유다.

실제 캠핑 등을 통해 한 공간서 머무르며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스테이케이션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이 북적이는 호텔·리조트보다 한적하게 지낼 수 있는 펜션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티몬이 최근 올해 4∼5월 숙박 상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펜션·캠핑의 비중이 52%를 기록해 호텔·리조트의 48%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4월 펜션·캠핑 매출 비중은 작년 동기 대비 13% 늘었다. 코로나19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조용히 휴가를 보내려는 고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게 티몬의 설명이다.

▲ ⓒ고성준 기자

야놀자가 사용자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티몬의 매출 분석 결과와 비슷했다. 지난 3∼5월 펜션의 이용 건수가 작년 동기 대비 105% 증가했다.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를 설치한 야놀자 제휴점서 언택트 체크인을 한 고객은 지난 5월 기준 설치 제휴점 예약자의 절반을 넘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봄을 즐기지 못한 이들이 보복적 소비 형태로 관광지 위주가 아닌 도심과 떨어진 야외 펜션 및 캠핑에 나선 이들이 늘어다는 것이다. 레저업계는 이 같은 추세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캠핑이 일상에 파고든 건 이미 수년 전 일이지만 최근엔 즐기지 않던 이들까지 캠핑에 뛰어들고 있다.

일례로 지난 3∼5월 캠핑용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특히 6월 들어 캠핑용품 매출 상승세는 가파르다. 홈플러스의 경우 이달 1∼5일 캠핑 관련 제품 매출은 전년 대비 169% 증가했다.

관광보다 캠핑
아웃도어 판매

캠핑 관련 용품 판매가 증가하자 유통업계는 캠핑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는 물론 롯데·신세계백화점 등 백화점은 캠핑용품, 아웃도어 의류 등 할인 판매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주류업계는 쿨러백(Cooler Bag)과 무거운 짐을 운반할 수 있는 트레이 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캠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동차서 숙박을 해결하는 ‘차박’도 올해의 여행 트렌드로 부상 중이다. 차박은 2030 젊은층 사이서 특히 인기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엔 ‘#차박’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만 11만개가 넘는다.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를 보면 지난 3월서 5월까지 ‘차박’ 키워드 일일 검색 횟수는 지난해 대비 4.6배 증가했다. 

차박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인 ‘차박캠핑클럽’의 5월 신규 회원은 코로나 확산 전인 지난 2월(2600명)에 비해 6배 이상 증가(1만6600명)했다.

차박의 인기는 쇼핑 트렌드서도 실감할 수 있다. 위메프는 4월 한 달간 차박 캠핑 용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텐트를 치지 않고 차량 내에서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차박매트’ 판매는 7.4배까지 늘었다.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하기 위해 차박 전용 텐트를 찾는 소비자들도 증가해 ‘차박텐트’ 매출은 2.3배 증가했다. 차량 내에서 시가잭이나 USB 포트로 전기를 공급해 사용하는 ‘차량용 냉장고’는 약 두 배, 차량에 거치해 사용할 수 있는 ‘차량용 테이블’은 1.7배 판매가 늘었다. 

▲ 휴가철 여름 바닷가 풍경

한 항공권·호텔·렌트카 예약사이트가 올 5∼6월의 항공권·렌터카 검색량 추이를 분석한 결과, 올여름 제주도 지역의 항공권 검색 비중 및 렌터카의 검색량이 전년 대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사이트에 따르면, 한국인 여행객이 지난 5월 가장 많이 검색한 상위 10개 노선 중 5개 노선이 모두 ‘제주’행 항공편으로, 1위 서울∼제주도 노선 항공편 검색 비중은 전년대비 33.9%포인트 급증했다.


해수욕 신호등
홈캠핑도 유행

다음으로 부산∼제주(+6.4%포인트), 청주∼제주(+5.0%포인트), 대구∼제주(+4.0%포인트), 광주∼제주(+2.3%포인트) 노선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이 제주도행 특가 항공권 이벤트를 연달아 내놓은 것도 제주도의 인기가 전년보다 더 주목받게 된 요인으로 보인다.

제주 내 렌터카에 대한 관심도 눈에 띈다. 5월25일서 6월21일 사이 약 한 달간 사이트서 검색된 제주도 지역 내 렌터카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31% 늘었으며, 비슷한 기간(5월22일∼6월21일) 검색량은 전월 대비 18% 증가했다.

제주도 여행지의 수요 증가와 렌터카의 검색량 증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안전한 여행을 하고자 하는 여행객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로 밀집된 곳을 피하는 게 생활 지침이 되면서, 여행지서도 렌터카를 빌려 이동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국 해수욕장의 혼잡도를 신호등처럼 볼 수 있는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도 생긴다. 전라남도 지역 해수욕장에는 예약제가 시범 실시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18일 이 같은 내용의 ‘해수욕장 이용객 분산 대책’을 발표했다. 해양수산부는 신종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여름철 해수욕장 이용객을 분산하기 위한 조치다.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은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30분마다 혼잡도를 색깔로 표시하는 서비스다. 적정 인원 대비 혼잡도에 따라 100% 이하는 초록색, 100% 초과∼200% 이하는 노란색, 200% 초과는 빨간색을 나타낸다.

적정 인원은 백사장 내 2m 거리 유지를 기준으로 1인당 소요 면적(3.2㎡)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해수부는 신호등 서비스를 위해 통신업체인 KT가 보유한 빅데이터 정보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해수욕장 갈 땐 ‘신호등·예약제’ 기억 
코로나 후 첫 휴가철 방역 정책 분수령

해수욕장 혼잡도 신호등은 다음달 1일부터 해운대, 광안리, 다대포, 경포대, 대천 해수욕장 등 10개 대형 해수욕장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된다. 해수부는 다음 달 중순까지 시행 대상을 전국 50개 해수욕장으로 늘릴 계획이다.

‘호캉스족’에게 올여름은 다양한 패키지를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고를 수 있는 기회다. 서울 신라호텔은 야외 수영장 ‘어번 아일랜드’와 ‘루프탑가든’ 이용권, 2인 숙박과 조식 등을 묶은 ‘어반 루프탑 가든’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은 해운대 하늘과 바다를 야외서 조망할 수 있는 오션풀 루프탑 이용과 라이브 뮤직 파티 ‘선셋 파라다이스’ 티켓 등이 포함된 ‘얼리 서머’ 패키지를 마련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객실과 오아시스 야외 수영장, 풀사이드 바비큐 뷔페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아시스 풀사이드 바비큐 패키지’를 내놨다. 

▲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서 검체 체취하는 ⓒ문병희 기자

호텔 수영장 이용이 꺼려지는 이들을 위한 패키지도 다양하게 구성돼있다. 켄싱턴호텔 여의도는 7월31일까지 ‘한강 피크닉 패키지’를 선보인다. 디럭스 객실 1박, 조식 2인, 피크닉박스, 크루즈 이용권 2매, 뮤지컬 <김종욱 찾기> 초대권 2매로 구성한 상품이다.

홀리데이 인 인천송도가 마련한 ‘송도 겟어웨이 패키지’는 객실 1박과 조식 2인, 센트럴파크 패밀리보트 이용권 1매, 워터보틀 1개 등을 제공한다. 

이것저것 신경 쓰기 싫을 때는 ‘홈캠핑’으로 여행 기분을 내볼 수도 있다. 작은 텐트나 캠핑의자를 집 베란다나 옥상, 마당 등에 설치하고, DIY 에탄올 난로나 1인용 화로 등을 켜면 집에서도 ‘불멍’(불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아직 위험해
알고 즐겨야

코로나19 유행 후 처음 맞는 여름은 여러 모로 전과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전망이다. 감염경로를 모르는 ‘깜깜이 확진자’가 증가하는 상황서 이번 휴가철 인구 이동은 향후 방역 정책 수준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대영 경기연구원 전략정책부 연구위원은 “주요 관광지의 경우 입장객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온라인 사전 예약 시스템을 구축해 ‘2m 거리두기’가 가능한 수준서 하루 입장객 수를 관리하는 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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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