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앉은 본죽의 무리한 사업 내막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13 11:49:05
  • 호수 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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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 외도에 발목 잡혀 ‘허우적’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죽 프랜차이즈 ‘본죽’의 다양한 사업은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군들이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면서 빚에 의존하게 됐다. 재무상태에 비상이 걸린 본죽은 탈출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김철호 본아이에프 대표의 시작은 미비했다. 전문점 창업을 구상한 것은 1999년 친구와 함께 창업 컨설팅사를 운영하면서부터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던 중 죽 전문점을 떠올렸다. 3년 동안 철저한 준비 끝에 부인과 함께 2002년 9월 대학로에 ‘본죽’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25평 규모의 첫 직영점을 열었다.

25평 규모
첫 직영점

이후 본죽은 승승장구했다. 본죽은 창립 이후 10년간 전국에 1272개의 가맹점을 오픈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06년 7월 제2 브랜드인 ‘본비빔밥’을 출시했고 2008년에는 국수 브랜드인 ‘본국수대청’을 추가 출시했으며 2012년 ‘본도시락’ 가맹사업에 나서며 죽에만 그치지 않고 사업군을 확장했다.

하지만 본죽의 외형성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분위기가 바뀌었다. 본사와 가맹점주들 간의 충돌이 일어났고 김철호 부부는 ‘상표권 부당이득 배임’ 혐의 등 악재가 겹쳤다. 

본아이에프가 빚더미에 오르며 재정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졌다. 과도한 부채로 인해 회사 사정이 악화됐다. 2018년 연결기준 본아이에프의 총자산(총자본+총부채)은 1050억7100만원으로, 전년(599억4800만원) 대비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7년 277억6000만원에서 2018년 706억6800만원으로 급증한 총부채가 총자산의 증가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2019년에도 부채가 860억7400만원으로 약 150억원이 늘었지만, 같은 해 총자본은 344억3800만원서 319억9000만원으로 약 25억원이 줄어들었다.

총부채의 비약적인 증가는 본아이에프의 부채비율을 급등하게 했다. 2017년 86.3%였던 부채비율(총부채/총자본)은 이듬해 205.4%로 뛰어올랐으며, 지난해 269.1%로 치솟으며 재무건전성이 더욱 악화됐다.

시장에선 부채비율 200% 이하를 적정 수준으로 인식한다. 급증한 부채비율에는 차입금 증가가 일조했다. 

본아이에프는 2017년까지 무차입금을 경영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2018년 말 기준 총 차입금 410억원을 실행했다. 특히 장기차입금은 시설자금 명목으로 산업은행으로부터 400억원을 빌렸다. 이는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사옥을 441억원에 매입했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 부채비율 치솟아
신사옥 매입 위해 400억 차입

이와 관련해 본아이에프 관계자는 ”최근 2년간 부채비율이 높아진 이유는, 가맹정 사장님들을 위한 교육장과 강의장 확보, 새로운 메뉴 개발 등 환경 인프라 구성을 위해 사옥을 매입했다. 이를 위해 차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듬해에도 515억원으로 차입금 규모가 커졌다. 2018년부터 차입금이 생기면서 본아이에프의 차입금의존도는 39%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도 차입금 의존도는 43.6%로 높아졌다. 시장에선 차입금 의존도를 30%이하를 적정수준으로 인식하는 것을 보면, 전체 자본서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아이에프 측은 ”차입금 의존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차입금의 성격과 차입금을 통한 자산의 형태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차입금은 장기차입금으로 조달돼 유동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차입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가맹점 매출 증대를 위한 전략을 개편해 실행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서 자체 모바일 배달 앱인 ‘본오더’를 활용해 전 매장 배달 서비스를 도임함으로써 언택트 소비 트렌드에 맞춰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단기차입금도 2018년 10억원서 이듬해 70억원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말 기준 본아이에프가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금액 가운데 최고는 3.39%(11억7000만원, 우리은행)이었고 차입금 규모가 가장 컸던 우리은행 대출은 2.97%(33억3000만원)였다. 본아이에프는 차입금에 대한 이자 비용으로 2018년과 지난해 각각 4억2800만원, 13억9000만원을 투입했고, 올해 역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매출↑
영업익↓ 

재정뿐 아니라 실적면서도 급감을 나타내며 지난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2017년도와 2018년 매출은 각각 2245억8300만원, 2538억5200만원을, 이듬해에는 2798억3000만원으로 집계되며 오름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9억8300만원, 71억800만원으로 감소세를 보이더니, 2019년 영업손실 11억8800만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2017년과 2018년 당기순이익도 56억5200만원, 22억2600만원으로 줄어들더니 2019년 영업손실 24억1200만원으로 집계됐다. 본아이에프의 실적 감소는 대형 모델을 기용하면서 광고선전비가 급증한 것이 영업이익 부문서 악영향을 미친 탓이다. 2018년 광고선전비는 56억4700만이었고 2019년 95억7400만원을 기록하며 69.5%증가했다.

본아이에프 관계자는 ”2019년 주 52시간 시행, 외식시장 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적인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이겨내고 매출 활성화를 위해 상반기에 공유, 유인나 등 빅모델을 섭외해 가장 공격적인 매체 광고를 집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매체 광고로 인해 브랜드 인지도는 일정 부분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지만, 여러 요인으로 매출 견인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본아이에프는 산하에 2014년 인수한 본푸드서비스를 100% 자회사로, 순수본과 본에프디 등을 특수관계 기업으로 두고 있다. 급식 및 외식사업을 운영하는 본푸드서비스, 유통 및 물류를 담당하는 본에프디, 가정간편식과 유동식을 생산하는 순수본까지 4개 법인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2017년 순수본이, 2018년에는 본에프디가 설립됐다. 

사업 초기인 걸 감안해도 순수본은 수익성 개선에 더딘 모양새다. 2018년과 2019년 매출이 각각 6억6300만원, 38억500만원을 기록했다. 같은기간 영업손실액이 늘어났다. 2018년 67억8300만원이었던 자본은 2019년 36억3300만원을 기록했다. 약 31억원이 결손금으로 쌓이면서 부분자본잠식에 접어들었다.

사업 초기
자금 확보

본아이에프 측은 ”2019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됐다. 현재까지는 안정화 단계가 아니었으며, 2020년부터는 유동식 사업 고도화와 유통 및 온라인세일즈 판매채널 확대로 연간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고 새로운 수익 창출 법인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수본의 총 자산은 135억1300만원으로, 전년(134억99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부채총액이 98억8100만원으로 전년(67억1500만원) 대비 47.1% 늘었으며 자본도 36억300만원으로, 전년(67억8300만원)보다 45.9% 줄어들었다. 이 영향으로 2018년 99%였던 부채비율은 2019년 272%로 치솟았다. 2018년 12억5000만원이었던 단기차입금은 지난해 43억5000만원으로 2.5배 늘었으며, 총차입금도 62억5000만원서 88억5000만원으로 1.4배 증가했다. 


본아이에프 관계자는 ”차입금이 늘어난 이유는 사업 초창기로 매출이 발생하는 속도보다 생산라인 운영 및 고정비 성격의 비용이 증가했고, 이로 인해 사업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늘어난 것이다. 신규 사업의 경우, 대부분 초기 3년간은 투자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보유하는 지급능력이나 신용능력을 판단하기 위한 지표로 사용되는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 역시 적정치를 하회한다. 2018년 16.9%였던 순수본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20.3%로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적정 수준(200% 이상)을 한참 밑돈다. 

이에 대해 본아이에프 측은 ”지난해 부득이하게 운영 자금에 대한 단기 부채가 증가하면서 유동 비율이 낮아지게 됐다. 2020년도에는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순수본뿐 아니라 본푸드서비스도 본아이에프 연결기준 재무제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8년 매출이 전년(674억원9800만원) 대비 571억1600만원으로 15.4% 감소했다. 같은해 영업이익도 전년(5억1700만원) 대비 1억2600만원으로 급감했으며, 순이익도 2억3600만원서 1억3800만원으로 떨어졌다.

순수본·본에프디 등 신규사업 
모델 마케팅… 수익 연결 안돼

매출이 줄어든 이유로는 사업 구조를 상품 매출보다 급식과 외식에 집중하면서 매출 분야를 본푸드서비스서 본아이에프로 이관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본아이에프 측은 “2018년에는 사업 이관으로 인해 매출이 감소됐으나, 2019년도에는 급식 매출 및 외식 매출이 1년 만에 회복됐다”고 밝혔다.

2019년 영업이익 부분서 3억500만원을 기록하며 전년(1억2600만원) 대비 142% 오른 것으로 보이나 당기순이익이 1억700만원으로 전년(1억3700만원)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다. 2018년 84%였던 부채비율이 이듬해 102.8%로 뛰어올랐다.
 

부채비율이 오른 원인으로 자본은 90억800만원서 91억1500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부채가 75억6600만원서 93억6800만원으로 올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3년간(2018~2020년) 본푸드서비스가 운영하는 본우리반상 점포수는 11점, 12점, 11점으로 유지만 한 상태였고 본건강한상은 8점, 9점, 10점이다.

2018년 유동비율은 전년(121.66%) 대비 73.6%를 기록하며 급격하게 떨어졌다. 유동자산이 89억300만원서 55억7900만원으로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적정치를 하회했다.

이에 대해 본아이에프 측은 “(유동자산이)소폭 감소한 것은 사업 이관에 따라 매출채권 등의 유동자산에 일부 기인한 것으로 2018년도 73.6%, 2019년 80.2%의 유동비율은 업종 대비로도 그다지 낮은 수준이 아니다. 2018년 대비 2019년 기준의 신용평가서 BBB0로 한 단계 신용이 상승했고 무차입경영을 실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 본에프디를 설립했다. 식자재 공급과 물류는 본에프디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본에프디 사업은 용인 센터를 중심으로 충남 논산, 경남 창녕 등 전국 3곳의 거점 센터로부터 이뤄진다. 

“투자했으니 
나아질 것”

2018년 1006억4000만원이었던 본에프디의 매출은 2019년 1552억6300만원을 기록하며 매출실적서 호조를 보였다. 영업이익도 각각 3944만6700만원, 14억4800만원이 집계됐고, 당기순이익도 3376만2300만원, 13억52000만원으로 나타나며 수익성이 개선됐다. 하지만 하나은행으로부터 운전자금 명목으로 차입금 20억원을 빌렸다. 연이자율 3%로 이자비용 3000만원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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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