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렇게 떠나간 고 최숙현의 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13 11:23:56
  • 호수 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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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녀를 죽였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였던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드러난 소속팀 감독과 동료들의 가혹행위.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메시지가 그간의 고통을 방증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 최숙현 선수의 유족은 지난 1일, 팀 관계자들이 최 선수를 폭행하는 과정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이 녹취록서 팀 닥터 안주현씨는 “나한테 두 번 맞았지? 너는 매일 맞아야 돼” “그냥 안 했으면 욕먹어” 등의 말을 내뱉으며 20분 넘게 폭행을 이어갔다. 이어 최 선수의 선배로 추정되는 선수를 호명해 “너는 아무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뺨 때리기를 비롯해 신체를 폭행했다.

“너무 미안하다” 
안타까운 죽음 

김규봉 경북 경주시청트라이애슬론 팀감독 최 선수에게 폭행을 가하던 안씨에게 “선생님, 한 잔 하시고 하시죠. 콩비지찌개 제가 끓였습니다” 등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들은 술을 마시며 최 선수의 뺨을 20회 이상 때리고 가슴과 배를 발로 차며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밀쳤다.

녹취록에는 안씨가 “이빨 깨물어. 뒤로 돌아”라며 최 선수를 세운 뒤 폭행하는 소리도 담겨있다. 감독이 “죽을래? 푸닥거리 한 번 할까?”라는 말로 최 선수를 위협하자 최숙현 선수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음성도 담겨있었다.

유족은 전 소속팀 경주시청서 상습 폭행과 괴롭힘, 갑질 등을 당하며 선수 인생이 무너져 내렸다고 주장했다.


최 선수는 극단적 선택 전날 대한체육회 조사관과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선수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이 통화는 10여분간 이어졌다. 관련 기관 여섯 군데에 도움을 요청했던 최 선수는 이 통화서 가해자 측이 반박 증거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7일 YTN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인 지난달 25일, 오전 훈련을 마친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대한체육회는 녹음된 분량의 전부라며 2분36초만 제공했다.

최 선수는 해당 통화서 “(경주시청팀 관계자들이)저희한테도 항상 비행기값이라고 하고 돈을 걷어갔지, 훈련비로 쓸 거라는 말을 한 적도 없었어요. 알고 보니까 시청서 비행기값을 다 대줬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 출신 여성 조사관은 최 선수에게 “다른 선수들은 진술서를 저쪽서 다 받았더라고요, 반박할 증거가 있다면 그걸 보내줘요”라고 했다.

체중 감량 관련 폭언·폭행 일삼아
팀 닥터, 치료해준다며 상습 성추행

여성·청소년을 전문적으로 수사했던 경찰 출신 여성 조사관의 꼼꼼한 증거자료 요구에 최 선수는 목소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통화 초반 열심히 가해자의 잘못을 설명하던 최 선수는 통화가 길어지면서 낙담한 것으로 보인다.

최 선수는 “그런 게(반박 증거자료) 없어요, 지금 저희한테”라고 말했고, 조사관은 “기소라든지 불기소 의견 통지를 받은 거 있으면 그걸 보내주고”라고 재차 증거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최 선수는 “대구지검으로 넘어간다는 그 연락밖에 안 받았어요”라고 했다.

조사관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회에 걸쳐서 얼마를 입금한 것을 정리해서 주시고, 비행기값이라고 해서 보내준 부분에 대해서 추가 증거로 할 수 있는 자료 있으면 보내줘요”라며 앞으로 자주 통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고 최숙현 선수를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진 해당 감독과 선수 ⓒ문병희 기자

조사관은 “어렵게 선택을 해서 진정까지 했는데 이 부분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게끔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연락이 조금 어렵더라도 자주 연락을 하고 내가 전화하면 잘 받고 그러세요”라며 통화를 마쳤다. 조사관의 당부에 최씨는 “네”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최 선수는 체육회 측과 통화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지인과 가족에게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후 숙소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 선수는 지난 4월 경주시청 소속 선수 및 관계자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고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신고했다.

최 선수가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작성한 일기장과 운동 기록에는 폭언과 폭행에 대한 압박감이 담겨있었다. 최 선수는 ‘마음이 불안하다. 집중할 곳이 필요해 글 쓰는 걸 선택해봤다’ ‘힘들 때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며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유도 적었다.  

사망 전날
조사관과 통화

지난해 1월 최 선수가 남긴 글에선 우울한 기색이 없다. 당시는 최 선수가 스트레스로 약 1년간 운동을 쉰 후 실업팀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화려하게 트라이(트라이애슬론) 복귀해보는 거야! 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내 목표를 이룰 거야’ ‘숙현아 넌 할 수 있어 힘내자!’ 등이 그것이다. ‘1월의 마지막 날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최 선수는 같은 해 2월부터 스트레스가 심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살이 쪘다는 이유로 폭언을 들었다는 내용이 다수 적혀있다. 2월 초 최 선수는 ‘멘탈 솔직히 와장창… 다 모르겠다 나는 뭐지, 몇 백 그램 안 빠진 거로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오늘 억울 그 자체. 물먹고 700g 쪘다고 욕먹는 것도 지친다’ ‘체중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  ‘K에게 욕먹었지만 어쩌겠어’ 등의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3월 일기에도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운동하는데 사람을 버젓이 앞에 두고 욕을 하냐. 적당히 해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이 팀은 아니다’ 등이다.
 

▲ 추가 피해진술하는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 ⓒ문병희 기자

이 시기 녹음된 파일엔 감독과 안씨가 최 선수에게 “이를 꽉 깨물라” “벗어”라며 약 20분 동안 폭행·폭언하는 정황이 담겼다. 이후 최 선수는 ‘하루하루 눈물만 흘리는 중.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감독 선배들은 자기들 아픈 건 엄청 아픈 거고 나는 아파서도 안 되는 건지 서럽고 서러운 하루다.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추가 폭로
녹취록 공개

일기장엔 구체적인 가해 선수의 이름도 등장한다. 최 선수는 ‘A는 대놓고 욕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무시하지’라는 글을 남겼다. 최 선수와 같은 팀에 소속됐던 동료 선수는 “A 선수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실력이 뛰어나 감독·팀 닥터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선수”라며 “A 선수가 폭력적인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들다고도 토로했다. ‘아직도 너희를 보면 옛날의 일들이 다 생각난다. 잊히지 않는다. 잊고 싶다’는 내용이다. 같은 팀에 몸담았던 동료 선수는 “2016년 김 감독과 안씨가 최 선수 등에게 토할 때까지 빵을 억지로 먹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선수는 “팀 닥터는 최 선수가 없는 자리서 ‘내가 그 선수를 극한으로 몰고 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선수는 “선배 선수도 ‘너 뒤져라’ 등 발언을 자주 했다”며 “선배 선수가 나를 옥상으로 끌고 가 뛰어 내리라고 협박한 적도 있다. 나는 이들의 폭언과 폭행 때문에 팀을 옮긴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추가 피해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최 선수의 동료 B씨는 팀 닥터라 안씨가 폭언·폭행과 더불어 상습적인 성추행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B씨는 “팀 닥터는 치료 목적으로 마사지를 하는 와중에 허벅지 안쪽으로 과하게 손을 뻗어 만지거나, 2018년 홍콩 대회서 허리 부상을 입었는데, 치료를 해준다며 가슴을 만졌다”고 증언했다.

이어 “(운동선수로서 팀 닥터의 행동이)의아하긴 했지만 의견을 못 내는 상황이라 말하지 못했다”며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여러 가지 보복이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감독마저 해외전지훈련비 유용 의혹
6군데 도움 청했지만…증거 불충분


앞서 최 선수의 동료 선수들은 지난 6일 국회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감독과 팀 닥터인 안씨, 주장 선수에 의한 추가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팀 닥터인 안씨가 자신을 대학교수라고 속이고, 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기자회견에 증언자로 나섰던 최 선수의 동료 선수 B씨는 이날 이후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는 B씨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B씨는 라디오 인터뷰 끝에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B씨는 “기자회견 후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했음에도 힘든 부분은 있다”면서도 “그래도 숙현이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 것 같아서 후련한 마음도 있다”고 전했다.
 

▲ 고 최숙현 선수

그뿐만 아니라 김 감독의 전지훈련비 유용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8일 김 감독을 포함한 경주시청 소속 일부 실업팀 감독이 매년 해외 전지훈련비를 유용한 혐의를 잡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김 감독이 지난해 1월19일부터 3월4일까지 45일간 뉴질랜드 오클랜드서 진행된 ‘해외 전지훈련’ 직전 C 여행사에 훈련비 8200여만원을 보낸 뒤 일부를 역송금 받아 개인적으로 착복한 의혹이 제기돼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경북도체육회 관계자는 “이 같은 해외 전지훈련비 유용사례는 경주시체육회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사법당국의 철저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감독은 최 선수에게 해외 전지훈련에 앞서 본인의 왕복 비행기 항공료를 지원하라고 강요했으며, 최 선수가 이를 수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경주시체육회 한 간부는 “해외 전지훈련 역송금 사례는 지난해 문제가 됐었다”며 “당시 훈련비 유용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시했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국회서 열린 동료 선수들의 기자회견장서도 선수들은 “해외 전지훈련비 명목으로 개인당 100만원씩 갹출했다”고 폭로했다.

“방치도 
가해다”

한편 최 선수가 한때 소속돼있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내 괴롭힘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전·현직 선수 27명 가운데 15명을 상대로 피해 진술을 받은 데 이어 2명에 대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김 감독, 안씨로부터 폭행 등을 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감독이 대한철인3종협회서 영구제명돼 그동안 피해 진술을 하기 꺼리던 선수들에게 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포츠 가혹행위 흑역사

‘최숙현 사건’과 관련해 스포츠계 고질병인 폭력과 가혹행위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전부터 일어난 가혹행위에 대해 정리했다.

▲빙상 = 조재범 쇼트트랙 코치가 심석희 선수에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한 사실이 2019년 1월8일 심석희 측 법률 대리인을 통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심 선수는 2018년 12월17일 조 전 코치에 대한 성폭행 관련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그해 1월 조 코치는 훈련 중 심석희 선수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고 2011년부터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당했고, 그해 10월 1심 재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사건 이후 젊은빙상인연대는 다른 국가대표 빙상선수들도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유도 =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를 성폭행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유도 코치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지난해 7월18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유도코치 손모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신상 정보 공개,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할 이유가 없고, 증인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해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며 “성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어린 학생을 상대로 성범죄를 해 죄질이 나쁘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피의자가 동종 범죄 전과가 없고 강제 추행 사실은 인정하는 점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프리스타일 스키 =  지난 2018년에도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의 최재우 선수가 음주 및 폭행, 추행 등의 이유로 대한스키협회에서 영구제명됐다. 대한스키협회는 “3월12일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최재우와 김지헌의 영구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재우과 김지헌은 3월 초 일본 아키타현 다자와코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프리스타일 월드컵 모굴 경기에 출전했다.

이들은 대회 기간 술을 마셨고, 숙소에 들어와 함께 출전한 여자 선수들을 상대로 술을 같이 마실 것을 요구하는 과정서 폭행 물의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체에 따르면 최재우 선수는 여성 동료들의 몸 일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현장에 달려갔던 스태프는 “여성 선수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가 이들을 격리했다”고 밝혔다.

▲여자축구 = 여자실업축구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사령탑 시절 선수단 관계자를 성추행해 계약이 해지됐던 하금진 전 감독이 축구계서 퇴출당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가 하금진 전 감독에 대해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처분을 지난해 4월 내렸다.

이에 따라 하 전 감독은 감독을 비롯한 지도자를 맡지 못하는 축구계서 완전히 퇴출당한 것.

현행 축구협회 징계 규정은 성추행 지도자에 대해 ‘자격정지 3년 이상에서 제명’까지 하도록 돼있다.

하 감독은 2018년 9월 경주 한수원 사령탑 재임 시절 선수단 소속의 A씨를 성추행했고,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약 해지를 당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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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