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렇게 떠나간 고 최숙현의 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7.13 11:23:56
  • 호수 12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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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녀를 죽였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였던 최숙현 선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드러난 소속팀 감독과 동료들의 가혹행위.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메시지가 그간의 고통을 방증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고 최숙현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 최숙현 선수의 유족은 지난 1일, 팀 관계자들이 최 선수를 폭행하는 과정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당시 녹음된 것으로 보이는 이 녹취록서 팀 닥터 안주현씨는 “나한테 두 번 맞았지? 너는 매일 맞아야 돼” “그냥 안 했으면 욕먹어” 등의 말을 내뱉으며 20분 넘게 폭행을 이어갔다. 이어 최 선수의 선배로 추정되는 선수를 호명해 “너는 아무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뺨 때리기를 비롯해 신체를 폭행했다.

“너무 미안하다” 
안타까운 죽음 

김규봉 경북 경주시청트라이애슬론 팀감독 최 선수에게 폭행을 가하던 안씨에게 “선생님, 한 잔 하시고 하시죠. 콩비지찌개 제가 끓였습니다” 등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들은 술을 마시며 최 선수의 뺨을 20회 이상 때리고 가슴과 배를 발로 차며 머리를 벽에 부딪치게 밀쳤다.

녹취록에는 안씨가 “이빨 깨물어. 뒤로 돌아”라며 최 선수를 세운 뒤 폭행하는 소리도 담겨있다. 감독이 “죽을래? 푸닥거리 한 번 할까?”라는 말로 최 선수를 위협하자 최숙현 선수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음성도 담겨있었다.

유족은 전 소속팀 경주시청서 상습 폭행과 괴롭힘, 갑질 등을 당하며 선수 인생이 무너져 내렸다고 주장했다.


최 선수는 극단적 선택 전날 대한체육회 조사관과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선수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이 통화는 10여분간 이어졌다. 관련 기관 여섯 군데에 도움을 요청했던 최 선수는 이 통화서 가해자 측이 반박 증거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난 7일 YTN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날인 지난달 25일, 오전 훈련을 마친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과 나눈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대한체육회는 녹음된 분량의 전부라며 2분36초만 제공했다.

최 선수는 해당 통화서 “(경주시청팀 관계자들이)저희한테도 항상 비행기값이라고 하고 돈을 걷어갔지, 훈련비로 쓸 거라는 말을 한 적도 없었어요. 알고 보니까 시청서 비행기값을 다 대줬었다”고 말했다. 이후 경찰 출신 여성 조사관은 최 선수에게 “다른 선수들은 진술서를 저쪽서 다 받았더라고요, 반박할 증거가 있다면 그걸 보내줘요”라고 했다.

체중 감량 관련 폭언·폭행 일삼아
팀 닥터, 치료해준다며 상습 성추행

여성·청소년을 전문적으로 수사했던 경찰 출신 여성 조사관의 꼼꼼한 증거자료 요구에 최 선수는 목소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통화 초반 열심히 가해자의 잘못을 설명하던 최 선수는 통화가 길어지면서 낙담한 것으로 보인다.

최 선수는 “그런 게(반박 증거자료) 없어요, 지금 저희한테”라고 말했고, 조사관은 “기소라든지 불기소 의견 통지를 받은 거 있으면 그걸 보내주고”라고 재차 증거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최 선수는 “대구지검으로 넘어간다는 그 연락밖에 안 받았어요”라고 했다.

조사관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회에 걸쳐서 얼마를 입금한 것을 정리해서 주시고, 비행기값이라고 해서 보내준 부분에 대해서 추가 증거로 할 수 있는 자료 있으면 보내줘요”라며 앞으로 자주 통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고 최숙현 선수를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진 해당 감독과 선수 ⓒ문병희 기자

조사관은 “어렵게 선택을 해서 진정까지 했는데 이 부분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게끔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연락이 조금 어렵더라도 자주 연락을 하고 내가 전화하면 잘 받고 그러세요”라며 통화를 마쳤다. 조사관의 당부에 최씨는 “네”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최 선수는 체육회 측과 통화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지인과 가족에게 “그 사람들의 죄를 밝혀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후 숙소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최 선수는 지난 4월 경주시청 소속 선수 및 관계자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고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신고했다.

최 선수가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작성한 일기장과 운동 기록에는 폭언과 폭행에 대한 압박감이 담겨있었다. 최 선수는 ‘마음이 불안하다. 집중할 곳이 필요해 글 쓰는 걸 선택해봤다’ ‘힘들 때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한다’며 상세한 기록을 남긴 이유도 적었다.  

사망 전날
조사관과 통화

지난해 1월 최 선수가 남긴 글에선 우울한 기색이 없다. 당시는 최 선수가 스트레스로 약 1년간 운동을 쉰 후 실업팀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화려하게 트라이(트라이애슬론) 복귀해보는 거야! 남들 말 신경 쓰지 말고!’ ‘나는 내 목표를 이룰 거야’ ‘숙현아 넌 할 수 있어 힘내자!’ 등이 그것이다. ‘1월의 마지막 날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최 선수는 같은 해 2월부터 스트레스가 심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살이 쪘다는 이유로 폭언을 들었다는 내용이 다수 적혀있다. 2월 초 최 선수는 ‘멘탈 솔직히 와장창… 다 모르겠다 나는 뭐지, 몇 백 그램 안 빠진 거로 이렇게까지 욕먹을 일인가’라는 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오늘 억울 그 자체. 물먹고 700g 쪘다고 욕먹는 것도 지친다’ ‘체중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  ‘K에게 욕먹었지만 어쩌겠어’ 등의 내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3월 일기에도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운동하는데 사람을 버젓이 앞에 두고 욕을 하냐. 적당히 해 진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이 팀은 아니다’ 등이다.
 

▲ 추가 피해진술하는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 ⓒ문병희 기자

이 시기 녹음된 파일엔 감독과 안씨가 최 선수에게 “이를 꽉 깨물라” “벗어”라며 약 20분 동안 폭행·폭언하는 정황이 담겼다. 이후 최 선수는 ‘하루하루 눈물만 흘리는 중.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감독 선배들은 자기들 아픈 건 엄청 아픈 거고 나는 아파서도 안 되는 건지 서럽고 서러운 하루다. 다 엎어버리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추가 폭로
녹취록 공개

일기장엔 구체적인 가해 선수의 이름도 등장한다. 최 선수는 ‘A는 대놓고 욕하는 건 기본이고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무시하지’라는 글을 남겼다. 최 선수와 같은 팀에 소속됐던 동료 선수는 “A 선수는 국가대표 출신으로 실력이 뛰어나 감독·팀 닥터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선수”라며 “A 선수가 폭력적인 분위기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최 선수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들다고도 토로했다. ‘아직도 너희를 보면 옛날의 일들이 다 생각난다. 잊히지 않는다. 잊고 싶다’는 내용이다. 같은 팀에 몸담았던 동료 선수는 “2016년 김 감독과 안씨가 최 선수 등에게 토할 때까지 빵을 억지로 먹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선수는 “팀 닥터는 최 선수가 없는 자리서 ‘내가 그 선수를 극한으로 몰고 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선수는 “선배 선수도 ‘너 뒤져라’ 등 발언을 자주 했다”며 “선배 선수가 나를 옥상으로 끌고 가 뛰어 내리라고 협박한 적도 있다. 나는 이들의 폭언과 폭행 때문에 팀을 옮긴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추가 피해에 대한 폭로가 이어졌다. 최 선수의 동료 B씨는 팀 닥터라 안씨가 폭언·폭행과 더불어 상습적인 성추행을 해왔다고 증언했다.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B씨는 “팀 닥터는 치료 목적으로 마사지를 하는 와중에 허벅지 안쪽으로 과하게 손을 뻗어 만지거나, 2018년 홍콩 대회서 허리 부상을 입었는데, 치료를 해준다며 가슴을 만졌다”고 증언했다.

이어 “(운동선수로서 팀 닥터의 행동이)의아하긴 했지만 의견을 못 내는 상황이라 말하지 못했다”며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하면)여러 가지 보복이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감독마저 해외전지훈련비 유용 의혹
6군데 도움 청했지만…증거 불충분


앞서 최 선수의 동료 선수들은 지난 6일 국회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감독과 팀 닥터인 안씨, 주장 선수에 의한 추가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통해 “팀 닥터인 안씨가 자신을 대학교수라고 속이고, 치료를 이유로 가슴과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기자회견에 증언자로 나섰던 최 선수의 동료 선수 B씨는 이날 이후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 이후 언론 접촉을 피해왔다는 B씨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B씨는 라디오 인터뷰 끝에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B씨는 “기자회견 후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했음에도 힘든 부분은 있다”면서도 “그래도 숙현이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 것 같아서 후련한 마음도 있다”고 전했다.
 

▲ 고 최숙현 선수

그뿐만 아니라 김 감독의 전지훈련비 유용 의혹도 불거져 나왔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8일 김 감독을 포함한 경주시청 소속 일부 실업팀 감독이 매년 해외 전지훈련비를 유용한 혐의를 잡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김 감독이 지난해 1월19일부터 3월4일까지 45일간 뉴질랜드 오클랜드서 진행된 ‘해외 전지훈련’ 직전 C 여행사에 훈련비 8200여만원을 보낸 뒤 일부를 역송금 받아 개인적으로 착복한 의혹이 제기돼 수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경북도체육회 관계자는 “이 같은 해외 전지훈련비 유용사례는 경주시체육회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사법당국의 철저한 진상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감독은 최 선수에게 해외 전지훈련에 앞서 본인의 왕복 비행기 항공료를 지원하라고 강요했으며, 최 선수가 이를 수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경주시체육회 한 간부는 “해외 전지훈련 역송금 사례는 지난해 문제가 됐었다”며 “당시 훈련비 유용이 재발하지 않도록 지시했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국회서 열린 동료 선수들의 기자회견장서도 선수들은 “해외 전지훈련비 명목으로 개인당 100만원씩 갹출했다”고 폭로했다.

“방치도 
가해다”

한편 최 선수가 한때 소속돼있던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내 괴롭힘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전·현직 선수 27명 가운데 15명을 상대로 피해 진술을 받은 데 이어 2명에 대해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김 감독, 안씨로부터 폭행 등을 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김 감독이 대한철인3종협회서 영구제명돼 그동안 피해 진술을 하기 꺼리던 선수들에게 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스포츠 가혹행위 흑역사

‘최숙현 사건’과 관련해 스포츠계 고질병인 폭력과 가혹행위가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전부터 일어난 가혹행위에 대해 정리했다.

▲빙상 = 조재범 쇼트트랙 코치가 심석희 선수에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한 사실이 2019년 1월8일 심석희 측 법률 대리인을 통해 알려져 충격을 안겼다.

심 선수는 2018년 12월17일 조 전 코치에 대한 성폭행 관련 고소장을 경찰에 제출했다.

그해 1월 조 코치는 훈련 중 심석희 선수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려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고 2011년부터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당했고, 그해 10월 1심 재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사건 이후 젊은빙상인연대는 다른 국가대표 빙상선수들도 성폭행과 성추행, 성희롱에 시달렸다고 밝혔다. 

▲유도 =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를 성폭행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유도 코치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는 지난해 7월18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 유도코치 손모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5년간 신상 정보 공개,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허위 진술할 이유가 없고, 증인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해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며 “성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어린 학생을 상대로 성범죄를 해 죄질이 나쁘고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피의자가 동종 범죄 전과가 없고 강제 추행 사실은 인정하는 점을 고려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프리스타일 스키 =  지난 2018년에도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의 최재우 선수가 음주 및 폭행, 추행 등의 이유로 대한스키협회에서 영구제명됐다. 대한스키협회는 “3월12일 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최재우와 김지헌의 영구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재우과 김지헌은 3월 초 일본 아키타현 다자와코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프리스타일 월드컵 모굴 경기에 출전했다.

이들은 대회 기간 술을 마셨고, 숙소에 들어와 함께 출전한 여자 선수들을 상대로 술을 같이 마실 것을 요구하는 과정서 폭행 물의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체에 따르면 최재우 선수는 여성 동료들의 몸 일부를 만지는 등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현장에 달려갔던 스태프는 “여성 선수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가 이들을 격리했다”고 밝혔다.

▲여자축구 = 여자실업축구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사령탑 시절 선수단 관계자를 성추행해 계약이 해지됐던 하금진 전 감독이 축구계서 퇴출당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가 하금진 전 감독에 대해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처분을 지난해 4월 내렸다.

이에 따라 하 전 감독은 감독을 비롯한 지도자를 맡지 못하는 축구계서 완전히 퇴출당한 것.

현행 축구협회 징계 규정은 성추행 지도자에 대해 ‘자격정지 3년 이상에서 제명’까지 하도록 돼있다.

하 감독은 2018년 9월 경주 한수원 사령탑 재임 시절 선수단 소속의 A씨를 성추행했고,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계약 해지를 당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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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