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균 자살 통해 본 ‘무명 배우의 설움’

“우리도 햇빛 볼 날 있겠죠”

무명의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또 한 명의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무명 배우 김석균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지난 17일 오후, 자택에서 목을 맸다. 지난해에는 트렌스젠더 연예인 장채원, 모델 출신 방송인 김지후, 재연배우 여재구, 댄스그룹 엠스트리트의 멤버 이서현 등이 죽은 후에야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최근엔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 충격 속에 오랜 무명 생활을 견디지 못한 신인들의 자살도 이어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왜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고 김석균이 남긴 유서에는 무명 배우로서의 서러움과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30세의 미혼인 김석균은 배우로선 적지 않은 26세에 데뷔해 드라마와 영화 엑스트라를 전전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왔으며 <코리안 랩소디>, <러브 이즈> 등 주로 중단편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실제 김석균은 지난 2007년 모 영화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주연을 맡게 돼 두 달 동안을 죽도록 연습한 적도 있는데 영화 크랭크인 3일 전에 영화제작이 없던 일도 됐던 적도 있었다”며 배우로서의 고된 삶을 토로하기도 했다.
무명 연기자에게 당장 절실한 건 꾸준한 일거리. 최근 톱스타들의 개런티가 천정부지로 치솟다보니 제작진이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자잘한 캐릭터들은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아 조-단역들의 출연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실정이다.

톱스타 드라마의 경우 주연 남녀 배우들의 부모가 다 나오는 경우가 드문 건 중견 탤런트의 출연료라도 아껴보려는 제작진의 고충의 결과라는 분석. 한동안 영화 제작 편수가 많아 그나마 숨통이 트였는데 최근엔 영화 업계가 무너지면서 이쪽 일거리도 대폭 줄었다.
출연을 한다고 해도 무명 연기자의 출연료는 너무 적다. 톱스타들의 개런티는 급여 개념이 아닌 자유 계약 개념으로 상한선이 사라져 통상 회당 1000만원에서 5000만원의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대박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뜬 이른바 연기파 중견들의 경우도 통상 회당 200만~300만원 정도의 자유계약을 한다.
반면 일반 연기자들의 출연료는 예전처럼 등급제 출연료 개념으로 지급되고 있다. 단역 배우는 회당 5만원선. 조역 배우는 단계별로 총 18등급으로 나눠 20만원부터 150만원까지 회당 출연료를 차등 지급 받는다. 물론 세금은 공제해야 한다.
보통 단역의 경우 오전 6시~저녁 6시까지 12시간 근무 시 기본급이 4만원에 채 미치지 못한다. 밤 10시까지 일하면 1만5000원이 추가되고 밤 12시까지는 2만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물론 집중적으로 일하기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은 단역배우들의 특성상 노동 강도가 높다고는 말할 수 없는 편. 하지만 지방 야외촬영이 많고 한겨울 추위, 밤샘 촬영 등 온갖 악조건들이 도사리고 있다.
건축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한 달 전부터 단역 일을 시작했다는 K씨는 “단역 일이 막노동에 비해 비교적 덜 힘들고 여유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임금이 예전 일의 절반도 되지 않아 담배 한 갑을 구입하기도 부담스러운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K씨는 이어 “주연 배우들은 추운 겨울 야외 촬영 시 따뜻한 음식을 배달해 먹기도 한다. 그럴 수 없는 처지에서 옆에서 그저 바라만 보는 일은 정말 고역이다”라고 털어놨다.

톱스타 드라마 회당 5000만원 받을 때 달랑 일당 5만원
출연 기회 잡는 게 중요… 제작사가 주는 금액대로 받아

문제는 낮은 등급에 속해 있으면서 출연 작품 수도 많지 않은 무명 조-단역 배우들이다. 대부분이 연기 이외의 다른 일거리를 병행하며 불안하게 살고 있다.
일반 직장인들이 누리는 최소한의 비빌 언덕인 4대 보험 가입 등도 당연히 해당사항이 없다. 극빈자 수준으로 사는 연기자들도 적지 않으며 한번은 뜰 것이라고 믿으며 결혼도 못한 채 늙어 가는 노총각 연기자들이 허다하다.
단역배우로 출연하고 있는 A씨는 “우리의 생활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며 “단역배우들은 보통 월 150만원 이하를 버는데 100만원도 못 버는 배우들이 허다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 정도 돈을 벌려면 꾸준하게 섭외가 들어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우리는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도 안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주위 시선도 단역배우인 우리들을 한 단계 낮은 배우로 치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은 이들을 더욱 좌절케 하는 요인. 연기자의 경우 같은 일에 종사하면서도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에 따라 수입의 수준이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과거엔 인기 스타라고 해도 등급제 출연료의 기준에 따라 출연료를 받았고 대신 CF에서 돈을 벌었는데 요즘 톱스타들은 출연료와 CF 양쪽에서 떼돈을 버니 수입의 격차는 끝간 데 없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A씨는 “단역배우들은 연간 1000만원을 못 버는데 한 작품에 몇 억원씩 버는 주연 배우를 보면 커다란 박탈감에 우울증에 시달린다”며 “자살충동까지 느낄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일반인들이 무심코 한 행동도 이들에게는 종종 비수로 꽂힌다.
A씨는 “스타들을 보면 달려가 아우성을 치면서 조-단역 배우들을 볼 때는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듯한 싸늘한 시선을 보낼 때 정말 속상하다”고 무명의 설움을 토했다.
영화라고 조-단역들의 사정이 좋은 건 아니다. 특히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주인공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조-단역의 비중이 적어 출연자 수가 몇 명밖에 안돼 방송보다 더욱 열악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편당 계약을 하는 조연들은 출연 분량에 따라 개런티가 결정되지만 보통 무명 또는 신인 연기자의 경우 300만~800만원 선이다. 이들은 5~10개 신 내외로 출연하고 대사 몇 마디가 주어진다.
촬영기간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이 소요되고, 지방 촬영의 경우 자비로 촬영장을 찾아간다. 게다가 조연급 출연자는 100% 제작 PD, 감독 등의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배우가 쏟아 붓는 비용과 노력이 만만치 않다.

한 영화 캐스팅 디렉터는 “무명, 신인급 조연들은 당장 출연의 기회를 잡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 제작사가 주는 금액대로 받는다”고 털어놨다.
단역들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영화에 필요한 단역의 수가 워낙 적어 방송처럼 단역공급회사를 통해 대규모로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캐스팅 디렉터나 제작 PD가 개인적으로 촬영 며칠 전에 직접 만나 캐스팅을 결정한다. 또한 단역임에도 감독의 오디션을 거쳐야 하는 경우도 많다. 영화에선 단역이라도 표정, 연기력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절차를 거쳐 발탁된 단역들이 받는 금액은 보통 10만~15만원 정도. 물론 단순 군중 신을 위해 동원되는 단역들은 훨씬 적은 금액을 받는다. 영화에선 방송 단역처럼 시간 단위로 정확히 책정된 금액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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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