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청와대가 김창룡 부산지방경찰청장을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함에 따라 그의 이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만큼 현 정부의 국정 이해도가 높은 것이 이번 내정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평이 나온다.
 

▲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오는 23일 임기가 끝나는 민갑룡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김창룡 부산지방경찰청장이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검경 수사권조정,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 개혁’을 완성해야 할 중책을 맡게 된다.

청장 내정
파격 발탁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을 통해 “김 내정자는 치안 업무 전반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현장 업무뿐 아니라 탁월한 정책기획 능력과 추진력으로 조직 내부로부터 신망받고 있다”며 “수사 구조 개혁 및 자치경찰제 도입 등 경찰개혁을 차질 없이 추진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지방경찰청장이 경찰청장으로 내정되는 것은 박근혜정부였던 2013년 이성한 전 경찰청장 이후 7년 만이다. 지난 두 번의 경찰청장 모두 경찰청 차장이 내정된 것과 비교하면 ‘파격 발탁’으로 볼 수 있다. 

통상 경찰청 차장이나 서울경찰청장이 청장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찰청 본청과 지방청, 해외 주재관, 청와대까지 두루 거친 경력 등이 김 내정자 발탁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 내정자 지명에는 영남 출신이라는 지역적 안배가 일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경남 합천군 출생인 만큼 ‘호남 편중인사’라는 비판서 벗어나 있다.

김 청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부산 가야고와 경찰대 법학과(4기)를 졸업했다. 경찰청 본청서 생활안전국장, 정보국 정보1과장을 역임했으며 경남지방경찰청장, 서울 은평경찰서장 등도 맡아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미국 워싱턴DC 주재관, 브라질 상파울루 총영사관 영사를 경험하는 등 해외 경험도 풍부한 편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한 장점과 외국 근무를 토대로 외국 우수사례를 접목해 치안정책 수준도 올릴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대통령과 인연
국정운영 이해도 높아…PK 지역 안배도 고려

김 청장은 문재인정부 이후 초고속 승진을 이어왔다. 워싱턴 주재관(경무관)으로 근무하던 2017년 12월,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치안감)으로 승진했다. 경찰 내부에선 외국서 근무하는 고위급 간부를 진급시키는 것을 매우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김 청장은 2018년 12월 경남지방경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7개월 만인 지난해 7월 부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으로 승진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재직하던 당시 함께 청와대서 근무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국정기조를 잘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 정부에 치우친 수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 청장은 전날 경찰청장 임명 제청 동의 안건을 심의한 경찰위원회 임시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경력이 경찰청장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인사 대상자가 인사권자의 인사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김 내정자는 일찌감치 이용표 서울경찰청장(56·경찰대 3기), 장하연 경찰청 차장(54·5기)과 함께 신임 경찰청장 하마평에 올랐다.
 

경찰 안팎에선 “이 청장과 장 차장의 ‘2파전’으로 좁혀지는 듯하다”는 말이 오간 만큼 청와대가 김 내정자를 낙점한 게 뜻밖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한 경찰 간부는 “최근 분위기를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청와대의 선택을 받은 만큼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게 강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등 경찰 개혁을 완성할 적임자란 평이 나오는 동시에 야당서 경찰의 중립성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경찰 개혁… 
과제 산더미

경찰대 4기인 민갑룡 현 청장에 이어 또 한 번 ‘기수 역전’ 인사란 점도 경찰 조직에는 변수다.

경찰 내부엔 여전히 경찰대 1∼3기들이 주요 보직에 포진해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대 4기가 연달아 낙점됐으니 윗기수 일부는 용퇴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창룡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는 12만명이 넘는 경찰 조직을 이끌면서 경찰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특히 국가 경찰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분산하는 ‘경찰 힘빼기’를 완수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됐다.

지난달 26일 경찰과 정치권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집권 후반기 주력하는 권력기관 개혁 중 경찰 개혁의 핵심은 검·경 수사권 조정 후속작업과 자치경찰제 도입, 국가수사본부 신설 등이다.

민갑룡 현 경찰청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개혁을 위한 주춧돌을 쌓았다면 김창룡 내정자는 경찰 개혁 완성을 위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와 기와도 올려야 한다.

경찰은 현재 수사권 조정 후속작업으로 하위법령 정비 등 수사 체계 및 절차 개편을 추진 중이다. 경찰과 검찰을 수직적 관계서 상호협력 관계로 재설정하고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 및 경찰 1차 수사종결권 부여의 내용 등이 담긴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은 이미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대한 후속작업으로 경찰은 책임수사 강조, 수사역량 균질화, 전문성 강화 등의 방향이 반영된 4개 분야 80여개 과제를 다루고 있다.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분산·통제하기 위한 작업도 김 내정자가 임기 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도 21대 국회에서는 자치경찰제 도입 방안이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국회서 여야 의원들과 관련 법 개정안을 논의해야 한다. 특히 법 통과 후에는 제도 안착까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자치경찰제 도입은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권을 통제하는 핵심 방안으로 꼽힌다.

김 내정자도 자치경찰제 도입 및 안착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김 내정자는 지난해 7월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업무를 시작할 당시 취임 일성으로 “수사구조 개혁과 자치경찰제 도입 등을 위해 국민들의 믿음과 지지를 얻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국가수사본부 신설과 정보경찰 통제, 경찰대 개혁 등도 김 내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다. 국가수사본부의 경우 경찰청장으로부터 독립된 개방직 국가수사본부장을 두고, 본부장이 수사부서 소속 경찰을 지휘·감독하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 제고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한편에선 이 같은 취지와 달리 경찰 권한의 비대화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향후 추진 과정서 난항이 예상된다.


경찰 권력을 나눠주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서도 혼선과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 김 내정자는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경찰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여러 기관과의 매끄러운 업무 공조도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자치경찰제는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분리한 후 국가경찰 인력과 업무를 광역자치단체에 생기는 자치경찰에 넘기는 게 핵심이다. 자치경찰은 생활 안전 등 주민과 밀착된 민생 치안활동에 집중하고 국가경찰은 정보·보안·외사·경비, 수사, 전국 규모의 민생치안을 담당하게 된다. 

경찰은 전체 인력 12만명 중 4만명이 자치경찰로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수사본부가 신설되면 수사경찰 2만명이 빠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찰 인력의 절반이 줄어드는 상황서 경찰 조직의 안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청문회 준비
증명 해내야

이에 김 내정자는 전날 열린 경찰위원회에 참석한 뒤 “국민 안전과 공정한 법 집행, 경찰개혁에 대한 국민 여러분들의 기대와 요구를 잘 알고 있다”며 “차분하게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선 경찰관들의 애로사항을 상부에 전달할 통로라고 환영을 받은 직장협의회(직협) 제도도 안착시켜야 한다. 김 내정자는 노사협의회인 직협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부산경찰청장 취임 초부터 직협을 적극 지원한다는 자세를 보였다. 현재 부산경찰청 직협 출범이 임박했으며 부산경찰청 소속 일선 경찰서에서는 직협이 일부 설립됐다.

지난해 9월엔 부산경찰청 직원협의회(현장활력회의) 발대식에 참석해 “관행으로 정착됐던 수직적·계급적 문화를 수평적·민주적 문화로 전환해야만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며 “관리자들과 직원이 함께 소통하며 민주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자”고 말한 바 있다.

김 청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응하기 위한 절차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29일, 김학관 경찰대 교수부장(경무관)을 팀장으로 총 14명의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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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등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경찰청장 내정자가 발표되면 내정자는 10명 안팎의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팀을 꾸린다. 김 내정자가 부산지방경찰청장 역임 중 내정된 만큼 준비팀은 부산지방경찰청에 꾸려진다. 

준비팀을 누가 이끌어나갈지도 주목된다. 보통 준비팀은 경무관 직급서 맡는데, 차기 경찰청장이 가장 신임하는 인물 중 하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향후 치안감 승진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현 민갑룡 청장이 내정된 이후 준비팀을 맡았던 송민헌 당시 정보심의관은 이후 치안감으로 승진해 본청 요직인 기획조정관을 거쳐 현재 대구지방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

열린 사고 부드러운 리더십…조직 장악력은?
검경 수사권 조정, 경찰개혁 등 막중한 임무

이번 준비팀에는 류미진 경찰청 여성대상범죄수사과장 총경, 남제현 수사구조개혁팀 총경, 김원태 정보4과장 총경, 박순석 경찰개혁 테스크포스(TF) 경정, 박진우 직장협의회 TF 경정, 손광혁 국회계장 경정, 이용욱 범죄예방기획계장 경정, 주승은 법무계장 경정, 김완기 홍보협력계장 경정, 박경서 감찰조사계장 경정(이상 경찰청 소속), 소동현 서울 방배경찰서 여청과장 경정, 김나영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과 경감이 포함됐다.

준비팀은 각종 정책과 비전을 마련하는 파트와 개인신상 문제를 담당하는 기능으로 나뉘어 청문회를 준비하게 된다. 현재로선 김 내정자의 개인적 흠결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도 4억4000여만원으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아파트 한 채를 부인과 공동명의로 보유하고 있어 현 정부 고위직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다주택 논란서도 자유롭다.

다만 정책적으로는 검증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현재 경찰의 최대 과제는 검경 수사권조정, 자치경찰제 등 ‘경찰 개혁’의 완성인데, 김 내정자의 경우 수사·기획 부서 경험이 적다는 점이다. 관련 기능 경력이 없더라도 경찰개혁을 추진할 ‘적임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 김창룡 경찰청장 내정자 ⓒ청와대

김 내정자와 문재인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이 주목받으며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우려도 나오는 만큼 이를 불식시킬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상 실패
시간 지연

인사청문회법상 국회는 정부로부터 요청서를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청문회가 종료되면 3일 이내에 심사경과보고서 또는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국회의장에 제출해야 하며 이후 대통령에게 경과보고서가 송부된다. 정부는 이번 주 안으로 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을 국회로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청장 인사청문회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맡는다. 다만 이날 여야가 국회 원 구성 협상에 실패하면서 인사청문회 일정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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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