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시대’ 한국타이어 후계전쟁 막전막후

아버지의 선택 ‘형보다 아우’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국테크놀로지그룹서 의미심장한 지분 승계가 이뤄졌다. 놀랍게도 회장이 가리킨 화살표는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다. 아버지의 선택이 차남을 향하면서 장남은 졸지에 최전선서 밀려날 처지에 내몰렸다. 훗날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불거져도 딱히 이상할 것 없는 모양새다.
 

한국타이어 기업집단은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의 차남인 조양래 회장이 지난 1986년 계열 분리하면서 그룹의 토대가 세워졌다. 지주회사는 지난해까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라는 사명을 썼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다. 기업집단의 정점에 위치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한국네트웍스, 한국카앤라이프 등의 계열사를 지배한다. 

회장님의
둘째 사랑

그룹은 지난해 초 조양래 회장이 경영 일선서 물러난 후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차남 조현범 사장이 한국타이어테크놀로지를 이끄는 형제 경영을 해왔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서 착실히 기반을 쌓아왔다. 

1970년 태어난 조 부회장은 국내서 중학교까지 졸업한 뒤 미국 힐스쿨 포츠타운고등학교와 시러큐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타이어서 글로벌 해외영업본부장, 마케팅본부장, 한국타이어 사장을 거쳐 총괄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72년생인 조 사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차장으로 입사해 2001년 광고홍보팀장을 거쳤고, 4년여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마케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 경영기획본부장, 경영운영본부장 등을 거쳤고, 한국테크놀로지그룹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을 역임했다.


2001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했다. 

조 회장이 후계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데다, 장남과 차남의 역할 분담이 균등하게 이뤄졌기에 지난달 초 까지만 해도 그룹의 차기 승계 구도는 명확하지 않았다. 대동소이했던 두 사람의 지주사 지분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부추겼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구조는 조양래 회장이 지분율 23.59%(2194만2693주)로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렸고,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이 각각 지분율 19.32%(1797만4870주), 19.31%(1795만9178주)로 2, 3대주주에 등재된 상태였다. 오너 일가 우호지분의 총합은 73.92%(6876만3857주).

조양래 회장, 보유 지분 조현범 사장에
장남 조현식 부회장 낙동강 오리알 신세

팽팽한 균형을 이뤘던 형제간 지분구조는 지난달 말 크게 요동쳤다. 조 회장이 사실상 차남의 손을 들어준 데 따른 변화였다.

지난달 26일 조 회장은 장 마감 후 보유 주식 전량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조 사장에게 넘겼다. 이 소식은 나흘 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대주주 지분 변동을 공시하면서 공개됐다.

현행 자본시장법 규정에 의하면 지분이 5% 이상인 대주주가 추가로 1% 이상 지분을 확보할 경우 체결일로부터 5일 이내에 관련 사항을 공시하도록 돼있지만, 대기업의 최대주주 변경 공시가 곧바로 이뤄지는 모습과는 분명 대조적이다. 


조 회장이 지분 전량을 넘긴 덕분에 조 사장은 단숨에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대주주에 올랐다. 42.9%에 달하는 조 사장의 보유 지분은 조 부회장 보유 지분(19.32%)을 두 배 이상 앞선 것이었다. 조 사장은 기존 보유 주식 등을 담보로 2200억원을 대출받아 매입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 왼쪽부터)조양래 회장, 조현식 부회장, 조현범 사장

조 회장이 차남에게 주식 전량을 넘긴 결정은 통상적인 재벌기업 승계 과정과 차별화된다. 오너 일가 구성원 간 지분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안정을 꾀한 뒤 승계 작업을 표면화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형제 경영 체제가 가동된 시기 즈음에 그룹의 실적 악화가 본격화됐다는 점은 조 회장이 결단을 내린 이유로 꼽힌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439억원으로 전년 대비 22.6% 감소했다. 매출 상승이 미미한 가운데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하면서 2018년 4.9%였던 영업이익률은 3.1%로 주저앉았다.

차남 장악
장남 반격?

부진한 흐름은 올해 1분기까지 이어졌다. 1분기 매출액은 1조4357억원, 영업이익은 10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5%, 24.6% 감소했다. 더욱이 최근 코로나19로 타이어 수요가 감소, 2분기 실적도 우울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미국 상무부가 한국, 대만, 태국, 베트남산 자동차 타이어를 대상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면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조 사장이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됐지만 당분간 회사 경영방침은 기존과 비슷하게 유지될 것으로 점쳐진다. 일단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형제경영 체제 고수를 천명한 상황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달 30일 “대주주 간 주식거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형제경영 체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또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인 조현범 사장의 지위에 당장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조 사장이 법적 문제로 오랫동안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성급한 결정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조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데 이어 지난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여파로 지난달 23일에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게다가 조 사장은 그룹의 변혁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에 따른 ‘공’ 만큼 ‘실’을 그룹에 떠안겼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사명 변경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한국타이어는 20년 만에 사명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 바꿨다. 같은 시기에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간판을 교체했다. 타이어 사업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이 과정을 조현범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태자는
토사구팽?

그러나 교체한 사명으로 인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생각지 못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IT사업과 자동차 전장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테크놀로지’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지난해 말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이다.


1심은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15일 한국테크놀로지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상대로 제기한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표시된 간판, 거래 서류, 선전광고물, 사업계획서, 명함, 책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또 한 번 간판을 바꿔달아야 한다.
 

▲ 한국타이어 사옥

더 큰 문제는 형제경영 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 사장이 조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은 영향으로 입지가 급격히 흔들리게 된 조 부회장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다.

애초부터 두 사람은 경영방침부터 명확한 견해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조 사장이 구속된 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홀로 이끈 조 부회장은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보단 내실 강화의 중요성을 피력해왔다. 이는 적극적인 M&A와 신사업 추진을 강조한 조 사장의 방침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과의 관계 개선 무드를 선두서 조율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조 부회장은 충분한 성과를 드러낸 상태였다.

사실상 경영권 승계 마무리
형제의 난? 살아있는 불씨

양사 간 갈등은 2015년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2015년 한국타이어 제품을 장착한 현대차 제네시스는 타이어 편마모에 따른 진동·소음 문제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리콜을 시행했다. 이후 양사의 사업상 관계는 틈새가 벌어졌고, 현대차의 신형 모델에는 한국타이어 제품이 쓰이지 않았다.


5년에 걸친 냉각 기류를 완화시키는 데 앞장선 게 조 부회장이다. 조 부회장은 지난 17일 현대차 사옥을 찾아 ‘현대차그룹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건립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충남 태안군에 건설하고 있는 첨단주행시험장 내에 현대차그룹 드라이빙센터를 조성하는 게 주된 골자였다.

물론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 분쟁이 불거지더라도 조 부회장이 원하는 바를 얻기란 쉽지 않다. 조 부회장의 지주사 지분 19.32%는 조 회장의 지분을 모두 넘겨받은 조 사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나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더라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10.82%(1006만8989주)를 가진 큰누나 조희원씨와 0.83%(76만9583주)를 갖고 있는 작은 누나 조희경씨가 힘을 보태도 우호 지분율은 30%를 겨우 넘긴다. 게다가 조희원씨는 “회사 경영에 관여할 생각이 없고, 특정 인물을 편들 생각은 더더욱 없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당하나
모아서 뒤집나

다만 국민연금의 의중에 따라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7.7%(720만1539주)를 보유한 4대주주다. 조 부회장이 누나들의 도움을 등에 업은 상태서 국민연금까지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면 조 사장과의 지분 격차는 4%대로 감소한다. 조 사장이 현재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나머지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다면 표 대결서 역전을 노려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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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