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시대’ 한국타이어 후계전쟁 막전막후

아버지의 선택 ‘형보다 아우’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한국테크놀로지그룹서 의미심장한 지분 승계가 이뤄졌다. 놀랍게도 회장이 가리킨 화살표는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다. 아버지의 선택이 차남을 향하면서 장남은 졸지에 최전선서 밀려날 처지에 내몰렸다. 훗날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불거져도 딱히 이상할 것 없는 모양새다.
 

한국타이어 기업집단은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의 차남인 조양래 회장이 지난 1986년 계열 분리하면서 그룹의 토대가 세워졌다. 지주회사는 지난해까지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라는 사명을 썼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다. 기업집단의 정점에 위치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옛 한국타이어), 한국아트라스비엑스, 한국네트웍스, 한국카앤라이프 등의 계열사를 지배한다. 

회장님의
둘째 사랑

그룹은 지난해 초 조양래 회장이 경영 일선서 물러난 후 장남 조현식 부회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차남 조현범 사장이 한국타이어테크놀로지를 이끄는 형제 경영을 해왔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서 착실히 기반을 쌓아왔다. 

1970년 태어난 조 부회장은 국내서 중학교까지 졸업한 뒤 미국 힐스쿨 포츠타운고등학교와 시러큐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타이어서 글로벌 해외영업본부장, 마케팅본부장, 한국타이어 사장을 거쳐 총괄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72년생인 조 사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차장으로 입사해 2001년 광고홍보팀장을 거쳤고, 4년여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후 마케팅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 경영기획본부장, 경영운영본부장 등을 거쳤고, 한국테크놀로지그룹 COO(최고운영책임자)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을 역임했다.


2001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셋째 딸 수연씨와 결혼했다. 

조 회장이 후계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데다, 장남과 차남의 역할 분담이 균등하게 이뤄졌기에 지난달 초 까지만 해도 그룹의 차기 승계 구도는 명확하지 않았다. 대동소이했던 두 사람의 지주사 지분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부추겼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구조는 조양래 회장이 지분율 23.59%(2194만2693주)로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렸고, 조 부회장과 조 사장이 각각 지분율 19.32%(1797만4870주), 19.31%(1795만9178주)로 2, 3대주주에 등재된 상태였다. 오너 일가 우호지분의 총합은 73.92%(6876만3857주).

조양래 회장, 보유 지분 조현범 사장에
장남 조현식 부회장 낙동강 오리알 신세

팽팽한 균형을 이뤘던 형제간 지분구조는 지난달 말 크게 요동쳤다. 조 회장이 사실상 차남의 손을 들어준 데 따른 변화였다.

지난달 26일 조 회장은 장 마감 후 보유 주식 전량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형태로 조 사장에게 넘겼다. 이 소식은 나흘 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대주주 지분 변동을 공시하면서 공개됐다.

현행 자본시장법 규정에 의하면 지분이 5% 이상인 대주주가 추가로 1% 이상 지분을 확보할 경우 체결일로부터 5일 이내에 관련 사항을 공시하도록 돼있지만, 대기업의 최대주주 변경 공시가 곧바로 이뤄지는 모습과는 분명 대조적이다. 


조 회장이 지분 전량을 넘긴 덕분에 조 사장은 단숨에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최대주주에 올랐다. 42.9%에 달하는 조 사장의 보유 지분은 조 부회장 보유 지분(19.32%)을 두 배 이상 앞선 것이었다. 조 사장은 기존 보유 주식 등을 담보로 2200억원을 대출받아 매입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 왼쪽부터)조양래 회장, 조현식 부회장, 조현범 사장

조 회장이 차남에게 주식 전량을 넘긴 결정은 통상적인 재벌기업 승계 과정과 차별화된다. 오너 일가 구성원 간 지분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안정을 꾀한 뒤 승계 작업을 표면화하는 게 일반적인 흐름이다.

형제 경영 체제가 가동된 시기 즈음에 그룹의 실적 악화가 본격화됐다는 점은 조 회장이 결단을 내린 이유로 꼽힌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439억원으로 전년 대비 22.6% 감소했다. 매출 상승이 미미한 가운데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하면서 2018년 4.9%였던 영업이익률은 3.1%로 주저앉았다.

차남 장악
장남 반격?

부진한 흐름은 올해 1분기까지 이어졌다. 1분기 매출액은 1조4357억원, 영업이익은 10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2.5%, 24.6% 감소했다. 더욱이 최근 코로나19로 타이어 수요가 감소, 2분기 실적도 우울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미국 상무부가 한국, 대만, 태국, 베트남산 자동차 타이어를 대상으로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면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조 사장이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됐지만 당분간 회사 경영방침은 기존과 비슷하게 유지될 것으로 점쳐진다. 일단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형제경영 체제 고수를 천명한 상황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달 30일 “대주주 간 주식거래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형제경영 체제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또 조양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인 조현범 사장의 지위에 당장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조 사장이 법적 문제로 오랫동안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성급한 결정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조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데 이어 지난 4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여파로 지난달 23일에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에서 사임했다. 

게다가 조 사장은 그룹의 변혁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그에 따른 ‘공’ 만큼 ‘실’을 그룹에 떠안겼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사명 변경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3월 한국타이어는 20년 만에 사명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 바꿨다. 같은 시기에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으로 간판을 교체했다. 타이어 사업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움직임이었다. 이 과정을 조현범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태자는
토사구팽?

그러나 교체한 사명으로 인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생각지 못한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IT사업과 자동차 전장 사업을 영위하는 ‘한국테크놀로지’가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지난해 말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이다.


1심은 한국테크놀로지의 손을 들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15일 한국테크놀로지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상대로 제기한 상호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표시된 간판, 거래 서류, 선전광고물, 사업계획서, 명함, 책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최악의 경우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또 한 번 간판을 바꿔달아야 한다.
 

▲ 한국타이어 사옥

더 큰 문제는 형제경영 체제가 유지되더라도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 사장이 조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은 영향으로 입지가 급격히 흔들리게 된 조 부회장이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다.

애초부터 두 사람은 경영방침부터 명확한 견해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조 사장이 구속된 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을 홀로 이끈 조 부회장은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기보단 내실 강화의 중요성을 피력해왔다. 이는 적극적인 M&A와 신사업 추진을 강조한 조 사장의 방침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차그룹과의 관계 개선 무드를 선두서 조율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조 부회장은 충분한 성과를 드러낸 상태였다.

사실상 경영권 승계 마무리
형제의 난? 살아있는 불씨

양사 간 갈등은 2015년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2015년 한국타이어 제품을 장착한 현대차 제네시스는 타이어 편마모에 따른 진동·소음 문제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리콜을 시행했다. 이후 양사의 사업상 관계는 틈새가 벌어졌고, 현대차의 신형 모델에는 한국타이어 제품이 쓰이지 않았다.


5년에 걸친 냉각 기류를 완화시키는 데 앞장선 게 조 부회장이다. 조 부회장은 지난 17일 현대차 사옥을 찾아 ‘현대차그룹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건립을 위한 협약을 맺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가 충남 태안군에 건설하고 있는 첨단주행시험장 내에 현대차그룹 드라이빙센터를 조성하는 게 주된 골자였다.

물론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 분쟁이 불거지더라도 조 부회장이 원하는 바를 얻기란 쉽지 않다. 조 부회장의 지주사 지분 19.32%는 조 회장의 지분을 모두 넘겨받은 조 사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나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더라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10.82%(1006만8989주)를 가진 큰누나 조희원씨와 0.83%(76만9583주)를 갖고 있는 작은 누나 조희경씨가 힘을 보태도 우호 지분율은 30%를 겨우 넘긴다. 게다가 조희원씨는 “회사 경영에 관여할 생각이 없고, 특정 인물을 편들 생각은 더더욱 없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당하나
모아서 뒤집나

다만 국민연금의 의중에 따라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7.7%(720만1539주)를 보유한 4대주주다. 조 부회장이 누나들의 도움을 등에 업은 상태서 국민연금까지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면 조 사장과의 지분 격차는 4%대로 감소한다. 조 사장이 현재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나머지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다면 표 대결서 역전을 노려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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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