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마스터’ 연상호의 아포칼립스

좀비로 만든 ‘절망의 세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연상호 감독은 국내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힌다. 주로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러운 배경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둡고 음울하다. 그 안에서 인간의 양면성과 계급으로 인한 부조리, 인간의 본능적인 악 등 인간 본질을 파고든다. 단편 애니메이션인 <지옥:두 개의 삶>부터 웹툰 <지옥>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크고 작은 아포칼립스로 연결된다. 
 

▲ ▲ 연상호 감독 ⓒNEW

연상호 영화감독의 이력은 독특하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연출해 이름값을 높인 뒤 국내서 최초나 다름 없는 좀비 장르 영화 <부산행>으로 입봉했다. 실사영화 데뷔작을 통해 무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 ‘데뷔작 1000만 관객’은 국내서 <변호인> 양우석 감독과 함께 단 둘뿐이다. 그러다 오컬트 스릴러 장르인 tvN <방법>을 집필했고, 오랜 벗인 최규석 작가와 연재 중인 웹툰 <지옥>은 평점 9.74의 호평를 받고 있다. 

그리고 <부산행>의 바통을 이어받은 영화 <반도>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매체를 막론하고 언제나 새롭고 기막힌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 연상호 감독.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문명의 멸망’을 일컫는 아포칼립스다.

죽음 앞 군중

연 감독의 작품은 시작부터 괴기스러웠다. 살아온 삶에 등급이 매겨지고 이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세계. 하수구서 쥐를 잡아먹는 한 남자로 문을 여는 애니메이션 <지옥: 헬>이 연 감독의 출발점이다.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앞에 천사가 나타나 죽음을 맞이하고 지옥에 갈 것을 예고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어 part2에 해당하는 <지옥: 두 개의 삶>도 같은 세계관이 이어진다. 천사로부터 “5일 뒤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을 예고 받은 재영이 지옥으로 가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천국과 지옥을 선고받은 두 남녀의 모순된 삶을 통해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복잡한 심경을 풀어낸다. 두 사람 모두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허우적댄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려다 더욱 절망적인 결과를 받게 된다. 
 

▲ ▲▲ ⓒ네이버

두 영화를 통해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심경 변화를 돋보기처럼 보여주려 했다는 연 감독이 구현한 세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릇된 선택을 하거나, 인간에 대한 조금의 연민도 없이 이기심에 사로잡혀 사는 인물도 있다.

이 세계관을 장편으로 이어나가고자 했던 연 감독의 의지는 무려 10여년이 지나 웹툰으로 완성된다. 오랜 친구인 웹툰 <송곳>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연 감독이 이야기를 쓴 <지옥>이 포털사이트 네이버서 연재 중이다. <지옥>은 앞선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따왔다.

웹툰에선 천사 대신 정체불명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나타나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을 알려준다. 죽음까지의 기간은 짧으면 30초, 길면 20년이다. 예고한 시간이 되면 또 다른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2부 16화까지 연재된 <지옥>은 이 재난과 같은 죽음이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공포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과정을 그린다.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 사회는 급속도로 혼란에 사로잡힌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고하라’며 비난을 일삼거나, 이 죽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새로운 이득을 취하기도 하며, 죄인을 먼저 가혹하게 처벌하면서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예측을 벗어나는 상황서 인간의 악이 그려진다. <지옥> 시리즈는 인간의 그 추악함을 노골적으로 직면시킨다. 
 

▲ ⓒ&lt;돼지의왕&gt; &lt;사이비&gt; &lt;창&gt; 포스터

계급사회 폭력

연상호 감독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돼지의 왕>과 종교를 다룬 <사이비>, 군대에서의 <창>, 용산 철거 사태를 모티브로 한 <염력>으로 구조화된 폭력을 다룬다. 그는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계급의 차이서 벌어지는 폭력을 매우 디테일하게 구현한다. 

계급이 규정지어진 학교서, 권력을 가진 돼지들 사이서 왕이 된 폭력적인 철이의 이야기를 담은 <돼지의 왕>은 인간의 양면성을 다룬다. 오랜만에 만난 종석(양익준 분)과 경민(오정세 분)의 대화 사이서 과거 같은 반 친구였던 철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면서, 나약한 인간의 잔인함이 그려진다. 

<사이비>는 선한 얼굴을 띠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과 악한 얼굴로 진실을 말하는 자의 대립을 통해 인간의 모순을 설파한다. 평소 해악을 저질러온 민철은 마을 사람들을 현혹해 돈을 뜯어내는 종교인들의 부조리를 말하지만, 그를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악한 자의 진실과 선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거짓의 대립을 통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꼬집는다.

군대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리얼리즘에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창>은 상병이 막내인 한 부대에 고문관 신병이 들어오면서 군생활이 꼬여버리는 병장 철민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적인 시스템을 안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폭력적인 시스템 안에서 ‘남 탓’만을 하는 약자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한눈에 비춘다. 

죽음, 계급…인간의 추악함이란∼
내면세계 드러낸 예리한 통찰력

내쫓으려는 자와 쫓겨나지 않으려는 자들의 싸움을 판타지로 그려낸 <염력>은 경제적 차이서 오는 폭력을 그린다. 가진 자들의 금권 폭력과 이에 맥없이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2019년 이슈였던 ‘용산 철거 사건’과 맥을 같이 한다. 비록 영화는 ‘용산 철거 사태’에 대한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계급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앞선 작품과 통하는 대목은 있다.
 

▲ ▲ 방법 ⓒtvN

혐오의 사회

연 감독의 가장 독특한 이력 중 하나가 드라마 집필이다. 국내에서는 영화 연출과 드라마를 집필한 유명인은 장항준 감독 뿐이었다. 연 감독이 두 번째인 것. 드라마 집필 첫 도전서 오컬트 장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내 드라마계서 매우 의미있는 작품을 내놨다. 

12부작 tvN <방법>은 요즘 우리 주변서 볼 수 있는 각종 혐오를 확대한 작품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SNS에 올리면, IT기업이 저주를 내려준다는 발상서 출발한다. 

사회부 기자 진희(엄지원 분)와 선한 마음을 가진 방법술사 소진(정지소 분)이 사회의 숨은 거대악 종현(성동일 분)과의 대립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혐오를 다룬다. 

포털사이트 연예면 댓글란이 없어질 정도로, 온라인상을 비롯해 혐오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구현한다. 인간 내면의 악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연 감독은 오컬트 장르의 <방법>을 통해 기존과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NEW

K-좀비의 매력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실사 영화 <부산행>,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반도>는 ‘연니버스’라고도 불린다. 늙고 병든 한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좀비가 급격히 확산된 서울역 인근을 다룬 <서울역>과 부산으로 가는 KTX에 탄 좀비로 인해 혼란에 빠지는 <부산행>, 이후 4년 뒤의 한국을 그리는 <반도>가, 연니버스의 줄기다. 

<서울역>은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의 잔인함을 다뤘다. 죽은 사람 앞에서 “내 돈은 갚고 죽어”라고 흐느껴대는 ‘석규’(류승룡 분)를 보고 있자면, 차라리 좀비가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의 더러운 내면을 강렬하게 담아낸다. 

정치색으로 나뉜 이데올로기 세대와 경제 호황을 누린 성장 중심의 세대를 몰락시키고,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는 <부산행> 역시 인간의 악을 다룬다. 

특히 15번 칸 대립 신을 통해 ‘용석’(김의성 분)이 평범한 이들의 침묵으로 권력을 갖게 된 뒤, 힘들게 다른 칸에서 넘어온 ‘석우’(공유 분)를 내쫓는 장면은 ‘악의 일상성’의 민낯을 드러낸다. “악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파생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 감독의 의도가 뚜렷하게 보인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반도>는 올해 최대 기대작이다. “안정된 서사 속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연 감독의 발언으로 봐서, 어쩌면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이 분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제나 인간 본성을 보기 쉽게 구현한 그이기에, <반도>를 향한 기다림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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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