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마스터’ 연상호의 아포칼립스

좀비로 만든 ‘절망의 세계’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연상호 감독은 국내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힌다. 주로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러운 배경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어둡고 음울하다. 그 안에서 인간의 양면성과 계급으로 인한 부조리, 인간의 본능적인 악 등 인간 본질을 파고든다. 단편 애니메이션인 <지옥:두 개의 삶>부터 웹툰 <지옥>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크고 작은 아포칼립스로 연결된다. 
 

▲ ▲ 연상호 감독 ⓒNEW

연상호 영화감독의 이력은 독특하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등을 연출해 이름값을 높인 뒤 국내서 최초나 다름 없는 좀비 장르 영화 <부산행>으로 입봉했다. 실사영화 데뷔작을 통해 무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것. ‘데뷔작 1000만 관객’은 국내서 <변호인> 양우석 감독과 함께 단 둘뿐이다. 그러다 오컬트 스릴러 장르인 tvN <방법>을 집필했고, 오랜 벗인 최규석 작가와 연재 중인 웹툰 <지옥>은 평점 9.74의 호평를 받고 있다. 

그리고 <부산행>의 바통을 이어받은 영화 <반도>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매체를 막론하고 언제나 새롭고 기막힌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 연상호 감독.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문명의 멸망’을 일컫는 아포칼립스다.

죽음 앞 군중

연 감독의 작품은 시작부터 괴기스러웠다. 살아온 삶에 등급이 매겨지고 이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세계. 하수구서 쥐를 잡아먹는 한 남자로 문을 여는 애니메이션 <지옥: 헬>이 연 감독의 출발점이다.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 앞에 천사가 나타나 죽음을 맞이하고 지옥에 갈 것을 예고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어 part2에 해당하는 <지옥: 두 개의 삶>도 같은 세계관이 이어진다. 천사로부터 “5일 뒤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을 예고 받은 재영이 지옥으로 가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천국과 지옥을 선고받은 두 남녀의 모순된 삶을 통해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복잡한 심경을 풀어낸다. 두 사람 모두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허우적댄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려다 더욱 절망적인 결과를 받게 된다. 
 

▲ ▲▲ ⓒ네이버

두 영화를 통해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심경 변화를 돋보기처럼 보여주려 했다는 연 감독이 구현한 세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릇된 선택을 하거나, 인간에 대한 조금의 연민도 없이 이기심에 사로잡혀 사는 인물도 있다.

이 세계관을 장편으로 이어나가고자 했던 연 감독의 의지는 무려 10여년이 지나 웹툰으로 완성된다. 오랜 친구인 웹툰 <송곳>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연 감독이 이야기를 쓴 <지옥>이 포털사이트 네이버서 연재 중이다. <지옥>은 앞선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따왔다.

웹툰에선 천사 대신 정체불명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나타나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을 알려준다. 죽음까지의 기간은 짧으면 30초, 길면 20년이다. 예고한 시간이 되면 또 다른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2부 16화까지 연재된 <지옥>은 이 재난과 같은 죽음이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공포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과정을 그린다.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 사회는 급속도로 혼란에 사로잡힌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죄를 고하라’며 비난을 일삼거나, 이 죽음을 이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면서 새로운 이득을 취하기도 하며, 죄인을 먼저 가혹하게 처벌하면서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예측을 벗어나는 상황서 인간의 악이 그려진다. <지옥> 시리즈는 인간의 그 추악함을 노골적으로 직면시킨다. 
 

▲ ⓒ&lt;돼지의왕&gt; &lt;사이비&gt; &lt;창&gt; 포스터

계급사회 폭력

연상호 감독은 학교를 배경으로 한 <돼지의 왕>과 종교를 다룬 <사이비>, 군대에서의 <창>, 용산 철거 사태를 모티브로 한 <염력>으로 구조화된 폭력을 다룬다. 그는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계급의 차이서 벌어지는 폭력을 매우 디테일하게 구현한다. 

계급이 규정지어진 학교서, 권력을 가진 돼지들 사이서 왕이 된 폭력적인 철이의 이야기를 담은 <돼지의 왕>은 인간의 양면성을 다룬다. 오랜만에 만난 종석(양익준 분)과 경민(오정세 분)의 대화 사이서 과거 같은 반 친구였던 철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면서, 나약한 인간의 잔인함이 그려진다. 

<사이비>는 선한 얼굴을 띠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과 악한 얼굴로 진실을 말하는 자의 대립을 통해 인간의 모순을 설파한다. 평소 해악을 저질러온 민철은 마을 사람들을 현혹해 돈을 뜯어내는 종교인들의 부조리를 말하지만, 그를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악한 자의 진실과 선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저지르는 거짓의 대립을 통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꼬집는다.

군대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리얼리즘에 입이 떡 벌어질 만한 <창>은 상병이 막내인 한 부대에 고문관 신병이 들어오면서 군생활이 꼬여버리는 병장 철민의 이야기를 통해, 폭력적인 시스템을 안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폭력적인 시스템 안에서 ‘남 탓’만을 하는 약자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한눈에 비춘다. 

죽음, 계급…인간의 추악함이란∼
내면세계 드러낸 예리한 통찰력

내쫓으려는 자와 쫓겨나지 않으려는 자들의 싸움을 판타지로 그려낸 <염력>은 경제적 차이서 오는 폭력을 그린다. 가진 자들의 금권 폭력과 이에 맥없이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2019년 이슈였던 ‘용산 철거 사건’과 맥을 같이 한다. 비록 영화는 ‘용산 철거 사태’에 대한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계급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앞선 작품과 통하는 대목은 있다.
 

▲ ▲ 방법 ⓒtvN

혐오의 사회

연 감독의 가장 독특한 이력 중 하나가 드라마 집필이다. 국내에서는 영화 연출과 드라마를 집필한 유명인은 장항준 감독 뿐이었다. 연 감독이 두 번째인 것. 드라마 집필 첫 도전서 오컬트 장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내 드라마계서 매우 의미있는 작품을 내놨다. 

12부작 tvN <방법>은 요즘 우리 주변서 볼 수 있는 각종 혐오를 확대한 작품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SNS에 올리면, IT기업이 저주를 내려준다는 발상서 출발한다. 

사회부 기자 진희(엄지원 분)와 선한 마음을 가진 방법술사 소진(정지소 분)이 사회의 숨은 거대악 종현(성동일 분)과의 대립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혐오를 다룬다. 

포털사이트 연예면 댓글란이 없어질 정도로, 온라인상을 비롯해 혐오로 점철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구현한다. 인간 내면의 악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연 감독은 오컬트 장르의 <방법>을 통해 기존과 다른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NEW

K-좀비의 매력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실사 영화 <부산행>,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반도>는 ‘연니버스’라고도 불린다. 늙고 병든 한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좀비가 급격히 확산된 서울역 인근을 다룬 <서울역>과 부산으로 가는 KTX에 탄 좀비로 인해 혼란에 빠지는 <부산행>, 이후 4년 뒤의 한국을 그리는 <반도>가, 연니버스의 줄기다. 

<서울역>은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의 잔인함을 다뤘다. 죽은 사람 앞에서 “내 돈은 갚고 죽어”라고 흐느껴대는 ‘석규’(류승룡 분)를 보고 있자면, 차라리 좀비가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의 더러운 내면을 강렬하게 담아낸다. 

정치색으로 나뉜 이데올로기 세대와 경제 호황을 누린 성장 중심의 세대를 몰락시키고,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는 <부산행> 역시 인간의 악을 다룬다. 

특히 15번 칸 대립 신을 통해 ‘용석’(김의성 분)이 평범한 이들의 침묵으로 권력을 갖게 된 뒤, 힘들게 다른 칸에서 넘어온 ‘석우’(공유 분)를 내쫓는 장면은 ‘악의 일상성’의 민낯을 드러낸다. “악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파생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 감독의 의도가 뚜렷하게 보인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반도>는 올해 최대 기대작이다. “안정된 서사 속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연 감독의 발언으로 봐서, 어쩌면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이 분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제나 인간 본성을 보기 쉽게 구현한 그이기에, <반도>를 향한 기다림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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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