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섬유 오너 일가 경영권 다툼 그 후…

백기 드는 터줏대감…모종의 합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과거 형제의 경영권 다툼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신라그룹. 창업주 별세 이후 지분 상속 등이 진행되면서 별다른 분쟁은 없었다. 현재 그룹은 창업주의 동생 일가서 도맡고 있다. 눈길이 가는 건 창업주 일가를 중심으로 지분이 매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라그룹은 신라교역, 신라섬유, 신라에스지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중견그룹이다. 그룹 지주사 신라홀딩스를 정점으로 지배구조가 구축된 형태다. 창업주는 고 박성형 명예회장. 그는 지난 1953년 사업을 시작해 오늘날 신라그룹의 터를 닦았다. 특히 한국 섬유업계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53년 출범
중견그룹

현재 그룹은 창업주의 동생인 박준형 회장이 도맡고 있다. 다만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형제들은 과거 경영권을 놓고 충돌한 바 있다. 지난 2003년 두 형제는 신라교역 지분을 놓고 법적 분쟁을 겪었다. 당시 신라교역은 사실상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던 회사였다.

박성형 명예회장은 박준형 회장과 조카인 박성진씨를 상대로 예탁증권 공유지분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앞서 박성형 명예회장은 박준형 회장과 박성진씨에게 신라교역 주식을 넘겼는데, 본인의 동의 없이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었다.

박준형 회장과 박성진씨는 시간 외 대량매매를 통해 신라교역 주식을 각각 179만주, 81만주 매입했다. 박성형 명예회장은 동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박준형 회장은 상호 동의가 있었다며 맞붙었다. 또한 박성형 명예회장이 주식 매각을 통해 차익을 얻었다는 입장이었다.


형제의 갈등은 시장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당시 신라교역 주가는 가격제한폭까지 치솟는 등 롤러코스터를 탔다.

법원은 박성형 명예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박성형 명예회장이 처분이익을 얻었다는 박준형 회장 측의 주장이 충분히 소명되지 못했고, 주식거래는 박성형 명예회장 동의 없이 이뤄졌다고 봤다.

과거 친족 간 경영권 분쟁 발발
창업주 별세 이후 상속으로 매듭

법원의 판결로 박성형 명예회장은 신라교역 주식을 모두 돌려받았다. 박준형 회장은 보유 주식 수가 크게 줄었고, 박성진씨는 0주가 됐다.

박성형 명예회장은 지난 2014년 4월 타계했다. 한때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터라 업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룹 경영권을 두고 집안싸움이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있었다.

게다가 분쟁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곧 벌어졌다. 박준형 회장이 그해 5월 신라교역 개인지분을 전량 현물출자하면서 ‘신라홀딩스’를 설립했기 때문. 당시 회사는 지배구조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박성형 명예회장이 타계한 바로 다음 달 지주사 체제로 전환된 점은 쉽게 간과하기 어려웠다.

일각에선 박준형 회장이 핵심사 신라교역 지배를 선점하면서 경영권 분쟁에 대비했다는 관측을 내놨다. 반면 박성형 명예회장의 지분이 상속 절차를 밟고 있었던 상황인 만큼, 오너 일가서 따로 합의를 봤을 수 있다는 해석도 있었다.
 

▲ ⓒ문병희 기자

결과적으로 큰 다툼은 없었다. 그해 11월 박성형 명예회장의 지분은 그의 부인과 자녀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됐다. 부인은 70만9750주, 장남 박재흥 신라교역 대표이사와 세 딸 박숙희, 박상희, 박주희씨는 각각 47만3157주를 상속받았다. 지분이 없었던 박성형 명예회장의 손녀 박연진, 박수진씨도 각각 23만6584주를 받았다.

박성형 명예회장 부인이 이듬해 2015년 별세하면서 보유지분을 장남이 모두 넘겨받았다. 박재흥 대표는 지분이 2배가량 늘어나면서 신라교역 2대주주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 신라그룹은 박준형 회장 부자가 이끌고 있다. 박성진씨는 현재 신라그룹 부회장이다. 이들은 올해 취임사에 나란히 참석하며 사업 기조를 밝히기도 했다.

지분 상속
주식 처분

최근 박성형 명예회장 일가를 중심으로 지분 구도에 지각변동이 발생했다. 그룹 내에서 박성형 명예회장 일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신라교역’과 ‘신라섬유’로 압축된다. 두 회사서 지분 정리가 벌어진 것이다.

신라교역 지분 처분은 숙희씨와 주희씨, 그리고 수진씨와 연진씨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지난 2014년 상속 이후 특별히 지분을 늘리거나 줄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초부터 지분을 차츰차츰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숙희씨는 그해 2월 기존 지분(47만3167주)을 서서히 매도했다. 숙희씨는 그달에만 14차례에 걸쳐 2만1184주를 처분했다. 3월에는 1만5409주를, 4월에는 5만5631주를 팔았다.

숙희씨의 지분 매각은 계속됐다. 6월에는 1만4865주, 7월과 10월에는 각각 300주, 6500주를 매도했다. 숙희씨는 11월 1만3151주를 끝으로 지분 정리를 마쳤다. 숙희씨의 지분은 기존 47만주가량서 34만6127주로 줄었다.

주희씨도 지난해 초부터 지분을 매각했다. 다만 숙희씨에 비해 매각 지분은 많지 않다. 주희씨는 지난 1월 6차례에 걸쳐 4638주를 팔았다. 2월과 3월, 4월에도 각각 900주, 600주, 1만2560주를 매각했다. 한동안 매도 소식은 없었다. 이후 12월에 3000주를 매각하는 데 그쳤다. 모두 2만1698주로 잔여 지분은 45만1469주였다.
 

▲ 신라교역 ⓒ문병희 기자

창업주의 손녀인 수진씨와 연진씨는 더 많은 지분을 매도했다. 이들의 두 자릿수 주식 수는 한 자릿수로 줄었다.

우선 수진씨는 숙희씨 등의 사례와 달리 일찌감치 기존 지분(23만6584주)을 처분했다. 수진씨가 최초 지분을 매도한 시기는 지난 2015년이다. 당시 6만5000주를 팔았다.

2017년에는 3000주를 매각했고, 그 다음해인 2018년에는 6차례에 걸쳐 3만5557주를 매도했다. 지난해에는 1만3600주를 팔았다.


지분이 대량 매도된 시기는 올해다. 수진씨는 지난 2월 1만8500주를 팔았다. 3월에는 모두 5만8129주를 처분했다. 같은 달에 4571주를 잠시 매입하기도 했었다. 수진씨는 지난 4월 2400주를 정리하면서 보유 지분은 4만4969주로 크게 줄었다. 대략 20%만 남은 셈이다.

연진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진씨는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매달 9674주, 1만3025주, 2550주, 1만3300주를 매각했다. 2018년에는 3월부터 5월까지 매달 6650주, 7864주, 1만800주를 처분했다. 지난해에는 9월과 10월에 각각 2500주, 6만3355주를 매도했다.

지분 매각은 올해에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연진씨는 지난 2월 1만3699주, 3월에 5만53주를 팔았다. 3월에는 4045주를 잠시 매입하기도 했지만 4월에 1000주 처분을 마지막으로 매각을 잠시 멈춘 상태다. 정리한 지분은 모두 19만4470주로 보유 지분은 4만6159주로 줄었다.

최근 상희씨도 신라섬유 지분 매각에 나섰다. 상희씨는 지난 6월29일부터 모두 6차례에 걸쳐 39만5148주를 처분했다.

지난 5월13일 기준, 신라교역 주요 주주는 최대주주 신라홀딩스(40.18%)에 이어 박재흥 대표(10.03%), 신라문화장학재단(7.66%), 상희씨(2.96%), 주희씨(2.82%), 숙희씨(2.16%) 등이었다.

신라섬유에서는 더 많은 지분 변동이 발생했다. 앞서 신라교역에서는 지분을 어느 정도 남겨둔 상황이었지만, 신라섬유의 경우는 달랐다. 단 1주도 남기지 않은 채,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것이다. 지분 정리에 나선 이들은 신라교역서 지분을 매도한 바 있는 숙희씨와 주희씨, 그리고 수진시와 연진씨였다.

먼저 숙희씨는 최초 2만6020주를 갖고 있었다. 이후 부친의 타계로 23만532주를 상속받아 25만6552주를 확보하게 됐다.


숙희씨는 지난 2015년 3월 6만7809주를, 4월에는 5만8420주를 매각했다. 2016년에는 주식분할을 통해 52만1292주를 확보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2만1123주, 9월 10만3977주, 10월 5000주를 매각했다.

급격한 지분 감소는 2018년부터 시작됐다. 숙희씨는 그해 9월 7만4277주, 10월 17만5073주를 대거 매각했다. 지분 정리는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숙희씨는 그해 4월 6만9111주를 매각한 데 이어 6월 1000주, 7월 18만7054주를 추가 매도했다.

그 결과, 숙희씨에겐 단 1만5000주만이 남게 됐다. 숙희씨는 지난해 11월 잔여 지분을 모두 매도하면서 신라섬유 주주명단서 제외됐다.

주희씨 역시 숙희씨처럼 보유 지분에 상속지분을 더한 25만6552주를 소유하고 있었다. 주희씨는 2015년 3월 7만4500주를 매각했다. 그해 4월에도 5만1729주를 팔았다. 이듬해 4월 주희씨는 숙희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식분할을 통해 52만1292주를 확보했다.

대량 매도
도대체 왜?

한동안 주희씨의 지분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보유 주식 수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주희씨는 그해 2월 909주, 4월 12만2188주, 5월 1만3500주, 7월 13만7452주, 11월 3만8000주를 매도했다. 주희씨는 올해에도 지분을 계속 정리했다. 지난 1월 1만6000주, 2월 3만6000주 등이 매각됐다. 남은 지분은 28만7566주였다. 주희씨는 해당 지분을 지난 6월22일 한 번에 매각했다. 주희씨에게 남은 신라섬유 지분은 1주도 없는 상황이다.

연진씨는 11만5266주를 상속받은 뒤, 2016년 3월 7000주를 매각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주식분할을 통해 43만3064주를 추가로 확보했다. 이어 같은 달 1만1000주를 매각하기도 했다.
 

이후 지분 매각에 속도가 붙었다. 이듬해인 2017년 8월 21만6169주, 12월 3만15주가 처분됐다. 2018년 1월에도 2만3386주가 매도됐다.

연진씨는 지난해 10월 11만5975를 매각하면서 1782주를 매입했으며 11월에도 6만3500주를 매각하면서 9000주를 매입했다.

본격적인 지분 정리는 올해 이뤄졌다. 연진씨는 지난 1월 2만7300주를 매각했고, 2월 잔여 지분 6만4767주를 모두 처분했다.

수진씨 역시 연진씨와 마찬가지로 11만5266주를 상속받았다. 수진씨는 지난 2015년 6월 1만주를 매각했다. 그해 3월에는 5만3114주를 매도했다. 이듬해 4월에는 주식분할을 통해 20만8608주를 확보했다.

한동안 지분 변동이 없었던 수진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분 정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달 5만6010주, 11월 7만1000주를 매입하면서 동시에 1만주를 매입하기도 했다. 12월에는 3만3000주를 팔았다. 수진씨는 지난 1월과 2월에 걸쳐 모든 지분을 소각했다. 1월 9만8000주, 2월 1만2750주를 처리하면서 신라섬유 보유 지분은 ‘0’이 됐다.

동생 가족이 실질적 그룹 지배
다른 일가는 하나둘 지분 정리

박재흥 대표는 기존 5만470주서 신주인수권부사채와 상속 등을 통해 128만5180주까지 취득했다. 이후 창업주 명의 계좌서 차명주식이 발견되면서 상속인들 간 재산분할이 합의 과정을 거쳤다. 박재흥 대표의 보유 주식은 59만918주로 줄었다.

다만 모친의 별세 이후 증여를 통해 지분이 99만9180주까지 상승했다. 또 주식분할을 통해 499만5900주까지 지분을 끌어올렸다. 

현재 신라섬유 최대주주는 신라교역으로 2대 주주는 박재흥 대표다. 다만 주식 수 차이는 크지 않다. 신라교역은 신라섬유 지분 500만350주를 보유 중이다. 박재흥 대표와 4450주 차이다. 지분율 역시 20.6% 대 20.58%로 0.02%차다.

신라교역 최대주주가 신라홀딩스인 점을 미뤄봤을 때, 지배구조는 ‘신라홀딩스→신라교역→신라섬유’로 이어진다. 다만 신라섬유는 그룹의 별다른 관여를 받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머지 계열사들은 박준형 회장과 그의 아들인 박성진 부회장의 영향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준형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신라홀딩스는 주요 계열사 ‘신라에스지’ ‘비전힐스’ ‘신라엔지니어링’ 등의 최대주주다.

박성진 부회장은 특수강업체 ‘원일특강’의 최대주주다. 원일특강은 종속회사 신라몰드텍’ ‘원일스틸’ ‘해원단조’ 등을 거느리고 있다. 신라섬유의 박재흥 대표에게 원일특강 지분 3.88%가 있기도 하다.

박성진 부회장은 ‘광장오토모티브’라는 개인회사도 갖고 있다. 수입자동차를 판매하고 정비용역을 제공하는 업체다.

잔여 주식
1주도 없어

실적 면에서 그룹 핵심 계열사는 신라교역이다. 회사는 지난해 연결 기준 3696억원 매출액을 기록했다. 다만 직전년도 영업이익이 42억원 영업손실로 전환됐다. 순이익도 동기간에 비해 4분의 1 수준인 103억원이었다. 원일특강은 만만치 않은 실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 2558억원 매출과 92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순이익은 99억원으로 직전년도에 비해 증가했다.

반면 신라섬유 실적은 초라한 편이다. 신라섬유는 지난해 별도 기준 41억원 매출액을 냈다. 영업이익은 7억원, 순이익은 2억원이었다. 신라섬유 실적은 섬유 부문이 아닌 부동산 임대 사업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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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