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플랜 입체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7.06 10:04:04
  • 호수 1278호
  • 댓글 0개

출마는 기정사실! 그런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잠룡에게 ‘대권 의지’란 대권이라는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비록 복수의 여론조사서 박 시장의 선호도 순위가 낮게 나오지만, 3선 서울시장으로서의 그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일요시사>는 박 시장의 대권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다각도로 추적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

“정권교체, 국민이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바꿉니다. 우리는 오늘, 함께 출마합니다. 국민과 문재인이 함께 갑니다.”(문재인 대통령, 2017년 3월24일) “국민들이 꿈으로만 가졌던 행복한 삶을 실제로 이룰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박근혜 전 대통령, 2012년 7월10일) “저는 한나라당의 후보로 반드시 정권을 교체하고야 말 것입니다.”(이명박 전 대통령, 2007년 5월10일)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노무현 전 대통령, 2002년 2월24일)

꿈틀대는
잠룡들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대선 출마 선언문의 일부 내용이다. 모두 대권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 박 전 대통령은 행복한 삶, 이 전 대통령은 경제부흥, 노 전 대통령은 기득권 타파를 내세워 본인이 바로 차기 대권의 적임자라고 호소했다.

잠룡에게 대권 의지는 대권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20대 대선을 20개월여 앞둔 현 시점서도 이는 유효하다. 

복수의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지난 1월 “책임질 일은 결코 회피하지 못하는 길을 걸어왔다”며 차기 대권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보수 야권의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는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달 25일 “쓰러져 있는 보수의 영역을 넓히고 국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일어서는 데(제가) 적격자라는 생각을 감히 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지난달 9일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미래혁신포럼 특강에서는 “인생 중 가장 치열한 2년을 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며 대권을 염두에 둔 발언을 내놨다.

대권 의지가 잠룡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지난달 22일부터 26일까지 실시하고, 지난달 30일 발표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10.1%로 전체 3위를 기록했다. 그보다 앞선 대권주자는 민주당 소속 이낙연 의원(30.8%)과 이재명 경기도지사(15.6%)뿐이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리얼미터는 “윤 총장이 모름·무응답 등 유보층과 홍준표·황교안·오세훈·안철수 등 범보수·야권주자의 선호층을 흡수했다”며 “이낙연·이재명과 함께 3강 구도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윤 총장의 선호도가 지금의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이 ‘윤석열 때리기’를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유권자들에게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반사효과’와 정권의 공격을 받는 상대적 약자를 지지하려는 ‘언더독 효과’가 시너지를 내 지금의 높은 선호도로 이어진 것.

역대 대통령 출마선언문 보니…
참모들 대권 여부 물었다는데…

윤 총장 본인의 대권 의지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윤 총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범보수 지지층서 반문재인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반문(반 문재인)의 대표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이는 본인이 강한 대권 의지를 지녀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윤 총장이 대권 의지를 드러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간 정계진출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앞서 윤 총장은 인사청문회 위원들로부터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만난 일에 대한 질문을 받자 “과거 양 원장으로부터 총선 출마를 권유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초 <세계일보>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서 2위에 오르자, 윤 총장은 “여론조사 후보에서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킹메이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윤 총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본인이 생각이 있으면 나오겠지”라고 말했다. 잠룡에게 대권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여권을 대표하는 잠룡 중 한명이다. 지난 2018년 6월 박 시장은 민선 최초 ‘3선 서울시장’에 성공했다. 그런 박 시장이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서 제외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박 시장의 차기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 대화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사진 오른쪽)과 박원순 서울시장

그렇다면 박 시장의 대권 의지는 얼마나 될까.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의지는 그 어느 잠룡과 비교해도 확고하다. 

정치권에선 박 시장의 참모들이 지난달 초 박 시장에게 대권 도전 여부를 물었고, 이에 박 시장은 “그걸 굳이 내입으로 얘기해야 하느냐”라고 답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박 시장에게 그런(대권 도전) 것을 물어보면 준비는 한다고 말씀하신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박 시장에게 대권 도전 여부를 물어본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목마른 쪽
우물 판다

<조선일보>는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의 중도 사퇴 시점을 고려한 ‘대선 출마 관련 시장직 사퇴 시한 검토’라는 문건을 작성했다고 지난달 13일 보도했다. 해당 문건에는 서울시가 박 시장의 사퇴 시점을 세 가지로 가정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9일 열린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 90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박 시장이 대선에 출마하려면 내년 12월9일까지 사퇴해야 한다. 문건에는 사퇴 가능 시점 중 하나로 해당 날짜가 포함됐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선일보>를 통해 “박 시장이 대선후보 잠룡이라고 언론에 나와서, 저희 입장에서는 그렇게 될 경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 보려고 검토를 했던 것”이라며 “시장이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시장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박 시장은 서울시장을 3선이나 했기 때문에 이제 선출직은 대권만 남았다”며 “은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대권 도전은 기정사실”이라고 전망했다.


대권의 초석은 다져졌다. 21대 총선을 통해 박원순계는 세력을 확장했다. 기존 박원순계 의원들은 생환에 성공했다. 남인순·박홍근·기동민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박 시장과 가까운 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21대 총선 당시 서울 송파병 지역서 당선됐다. 남 의원은 지난 6·13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캠프의 실무 총책임자인 상임선대본부장을 맡아 헌정 사상 최초의 3선 서울시장 달성에 일조했다.

서울 중랑을이 지역구인 박홍근 의원도 박 시장의 측근으로 꼽힌다. 지난 2011년 박원순 캠프서 서울 중랑 지역 선거책임을 맡아 당선에 기여한 바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2014년에는 박 시장의 두 번째 선거 때도 캠프에 합류해 그의 당선에 공헌했다.

서울 성북을 지역구의 기동민 의원 역시 생환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2011년 박 시장 1기 정무수석비서관·정무부시장으로 발탁되며 박 시장과 인연을 맺었다. 기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 당시 출마를 선언하며 “박 시장과 함께하며 새로운 소통과 협치의 시대를 열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시민들의 소소한 삶의 변화에 주목하는 새로운 10년의 기초를 박 시장과 함께 만들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새 피 수혈’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경기 안양 동안갑서 당선된 변호사 출신 민주당 민병덕 의원은 파란의 주인공이다. 민주당 경선 당시 두 명(이석현·권미혁)의 현역 의원을 꺾었다. 특히 6선의 이석현 전 의원을 꺾은 대목은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빨라진
대선시계


민 의원은 ‘박원순의 변호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지난 2015년 박 시장 아들의 병역 의혹을 제기한 네티즌 16명을 고발했으며, 2017년에는 이명박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이른바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 사건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고소하기도 했다.

경기 하남서 당선된 최종윤 의원은 서울시 정무수석비서관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박 시장 부인인 강난희 여사가 그의 북콘서트에 참석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전남 목포서 당선된 김원이 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바 있다. 박 시장은 김 의원의 정무부시장 퇴임식에 참석해 “김원이 (전) 부시장이 그리워질 것 같다”며 “다음에 서울시로 올 때는 서울시가 국정감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달라”고 그의 출마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전북 정읍·고창서 당선된 윤준병 의원은 민주당으로부터 단수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서울시 행정부시장 출신인 윤 의원 역시 북콘서트를 열었을 당시 박 시장의 축전을 받았다.
 

▲ 시도지사 간담회 갖는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박 시장은 축전을 통해 “(윤 전 부시장은)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향인 정읍·고창이 이 분을 통해 많은 발전을 거뒀으면 하는 의미서 정치인이 될 것을 적극 추천했다”며 그를 지지했다.

서울 강북갑의 천준호 의원은 지난 2011년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 캠프 시민유세단장을 시작으로, 박 시장 기획보좌관, 비서실장을 역임하며 박 시장을 지근거리서 보좌했다. 이 때문에 그는 박 시장의 ‘정치적 아들’로 불린다.

경기 김포을의 박상혁 의원은 법조인 출신으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법률고문을 거쳐 서울시 공익변호사단, 서울시 정무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민주당 내 박원순계는 10명 내외로 추정된다. 지난 20대 국회 당시 3∼4명서 두 배 이상 규모가 늘었다. 그동안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 시장의 향후 대권행보에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내년 12월9일 분수령
이재명과
아이템 대전

문제는 낮은 지지율이다. 지난 2017년 1월2일 박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에 성사된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결심이 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박 시장은 “온 국민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시점서 평생을 혁신과 공공의 삶을 살아온 저는 시대적 요구에 따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돌연 불출마로 입장을 바꿨다. 그는 2017년 1월26일 국회 기자회견장서 “저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며 “그동안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불출마 사유를 밝혔다.

박 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데는 ‘낮은 지지율’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대한 대처를 놓고 박근혜정부와 각을 세웠던 시점 이후 박 시장의 지지율은 줄곧 하향세를 보였다. 

낮은 지지율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여론조사서 박 시장의 지지율은 2% 초중반에 머물고 있다. 대권을 위해서는 박 시장 스스로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어내야 한다. 
 

▲ 청와대 ⓒ문병희 기자

해답은 아이템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박 시장은 본인의 아이템이 없다. 제로페이로 승부수를 던졌지만,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며 “남은 기간 동안 아이템을 찾아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대권이 달렸다”고 분석했다.

박 시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아이템 대전’을 펼치고 있다. 박 시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을,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을 고용보험에 가입시켜 코로나19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박 시장의 주장이라면, 이 지사는 노동하지 않는 국민도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아이템 대전은 ‘배달앱’으로 확전됐다. 시작은 이 지사가 빨랐다. 경기도는 이 지사의 주도로 배달앱 독과점 폐해 방지, 소비자·소상공인·플랫폼 노동자 상생 등을 위한 공공배달앱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재명부터
찍고 간다

이에 맞서 박 시장은 제로페이와 민간 중소업체들의 배달앱을 결합한 ‘제로배달 유니온’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이번 대책은 새로운 배달앱을 만들거나 공공 재원으로 수수료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간 타 지자체가 추진해온 공공배달앱과는 차별화된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와 경기도를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두 잠룡 지자체장의 아이템 대전은 대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울시 추경 330억원 왜?

서울시가 330억원가량의 예산을 편성했다.

외국인에게도 코로나19 관련 재난긴급생활비를 지급하기 위함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 재난지원금 정책서 외국인을 배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며 정책 개선을 권고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수용했다.

같은 권고를 받은 경기도는 아직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