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라이벌>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대표 vs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8.15 09: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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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 뒤치락' 1위 경쟁 최후 승자는?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영원한 1위는 없다. 1위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2위는 1위를 따라잡기 위해 저마다의 자리에서 사력을 다한다. 비즈니스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국내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시장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바로 1·2위를 다투는 미샤와 더페이스샵 얘기다. 그 덕(?)에 양사 대표 간의 너무도 다른 마케팅 전략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소리 없는 전쟁을 들여다봤다.

국내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시작은 에이블씨엔씨가 운영하는 미샤였다.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대표는 3300원짜리 초저가 가격경쟁력으로 미샤를 화장품 브랜드숍의 절대강자로 끌어올렸다. 제품 용기를 최소화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해 저가화장품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저가화장품을 고집하고 수시로 세일 행사를 벌이던 미샤는 2004년에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서며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에이블씨엔씨는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에 이은 3대 화장품 회사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미샤 2000년대 초반 돌풍

2000년대 초반 미샤의 독주체제는 2003년 12월 더페이스샵이 출범하면서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자연의 순수함과 깨끗한 이미지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더페이스샵은 천연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은 고가라는 선입견을 깬 첫 브랜드였다. 결국 더페이스샵은 2005년 미샤를 제치고 단숨에 1위 자리를 꿰찼다.

더페이스샵의 성장세를 지켜보던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경쟁사인 아모레퍼시픽과 대적하기 위해 2010년 1월 2889억원을 들여 더페이스샵을 인수했다. 안 그래도 강력한 더페이스샵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양사의 신경전은 회사 대표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서 대표는 올 초 LG생건의 횡포로 잡지사와 계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사 광고가 누락됐다는 글을 올렸다.


미샤에 따르면 LG생건 측에서 해당 잡지사에 "미샤 광고를 빼달라"고 요청했고 해당 잡지는 2월호에 미샤 광고를 싣지 않았다.

서 대표는 "없던 일로 할까 생각해 봤지만 자본의 힘을 동원해 협박을 일삼는 모습에 분노한다"며 "협박이나 일삼는 자들은 앞으로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저항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LG생건 관계자는 "미샤의 주장에 당황스럽다"며 "광고게제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해당 잡지에는 수입 고가화장품과 아모레퍼시픽 헤라, LG생건 오휘·후 등 백화점 판매 제품을 싣는 것이 '관례'인데 해당 잡지사가 이 '규칙'을 깨고 중저가화장품브랜드숍 광고를 실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서 대표 "이정도 회사규모에 추징금 20억은 양호한 편"
비교광고에 역풍 맞은 미샤 1·2분기 연속 1위 탈환 실패

보다 못한 서 대표는 칼을 빼 들었다. '비교광고'라는 공격적인 카드를 꺼내든 것.

지난해 미샤는 SK-Ⅱ, 에스티로더, 랑콤 등 고가의 수입 화장품과의 비교를 통한 마케팅에 나섰다. 2010년 1556억원이던 판관비는 지난해 2034억원 가량으로 급증했지만 미샤의 이 같은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첫 번째 공략 대상은 SK-Ⅱ의 '페이스 트리트먼트 에센스'였다. 미샤는 '페이스 트리트먼트 에센스 공병을 가져오면 자사 제품을 무료로 드립니다'는 파격적인 광고를 선보였고 '타임 레볼루션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출시했다. 처음에는 교환만 해가던 소비자들 사이에서 '의외로 괜찮다'는 의견이 퍼지자 이 제품은 출시 4개월 만에 50만개 이상 팔려나가는 '빅히트'를 쳤다. 또 에스티로더의 대표 상품인 '갈색병' 에센스를 표방한 '보라색병' 앰플은 2개월 만에 20만 개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결국 미샤는 더페이스샵을 제치고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만큼 단기적이었다. 미샤의 비교 마케팅은 역풍이 되어 돌아왔다. 에스티로더 갈색병을 모방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무(無)파라벤'이라고 홍보한 것이 독이었다. 최근 모 케이블TV에서 미샤의 보라색병에서 파라벤이 검출됐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샤 측은 "제품을 만들 때 파라벤 원료를 넣지 않았기 때문에 '無파라벤'이라고 표시한 것인데 화장품법이 개정되면서 다른 원료 내에 극소량 함유돼 있는 부분에는 '파라벤 무첨가'로 표기해야 해서 모두 변경했다"고 해명했다.

매사에 10번 잘해도 1번 못하면 원망을 듣기 마련이다. 결국 미샤는 올해 1분기 매출에서 더페이스샵에 1위 자리를 내줬고, 2분기 역시 1위 탈환에 실패했다. 미샤의 악재를 틈탄 차 부회장의 마케팅 전략도 성공적이었다. 더페이스샵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지난 3월 최고 30%의 할인행사를 시행했고 이후 몇 차례 세일을 진행하면서 매출 신장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샤는 추징금 폭탄도 맞았다. 지난달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샤는 매장권리금의 세금계산서 처리를 누락시키는 등 회계를 불투명하게 했다는 명목으로 올 초 국세청 조사를 받기 시작해 20억원대의 추징금을 부과 받았다. 작년 영업이익 338억원에 17%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다.

화장품업계 첫 과징금

더페이스샵도 역시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화장품브랜드가 세무조사로 추징을 당한 것은 미샤가 처음이기 때문에 미샤의 이미지에 먹구름이 끼었다.

이 소식이 급속도로 퍼지자 서 대표는 즉각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일로 미샤 성장세에 급제동이 걸릴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지난 3월부터 90일간 5년마다 받는 정기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해외부분과 매출채권 그리고 부가세 부분 등에 대해서 세무당국과 이견이 있었고 그 부분에 대해 20억원 정도의 세금이 부과된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회사규모로 볼 때 이 정도 부과금액은 회사의 회계가 얼마나 투명하게 되어왔는지를 이야기해주는 방증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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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