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세기의 입방정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6.29 13:50:48
  • 호수 1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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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잡으려다 한반도 잡겠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책 한 권의 파장이 크다. 최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폭로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접근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회고록을 통한 폭로는 외교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그가 발간한 회고록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을 두고 사방이 시끌시끌하다.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 등을 낱낱이 공개한 존 볼턴의 회고록 파장과 관련해 백악관은 “기밀정보들이 맞다”며 법적 대응을 벼르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공개 반발하는 등 회고록 내용이 향후 한미, 북미 관계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23억 가치?
회고록 파문

지난해 11월 AP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갈등을 겪다 경질된 존 볼턴이 저서 출간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 계약에 관해 알고 있는 정통한 출판업계 관계자 3명은 볼턴이 지난 몇 주 동안의 협상 끝에 출판사 ‘사이먼 앤드 슈스터’와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출판 관계자 2명은 “그 계약은 약 200만달러(약 23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사이먼 앤드 슈스터는 지난해 백악관 안팎 인물의 충격적인 인터뷰 내용을 담은 책 <화염과 분노>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 등을 펴낸 미국의 유명 출판사다. 이번 계약은 저자를 대신해 출판 계약과 발행, 판매 협상을 맡는 문예 저작물 대행사 재블린이 대리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재블린은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스캔들’ 의혹 수사를 이끌다 해임된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 공보참모를 지낸 클리프 심스의 책 출간을 대리했다.

당초 회고록은 지난 3월 출간 예정이었다. 회고록 내용이 언론에 소개되면서부터 민주당은 볼턴을 탄핵 심판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NYT(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회고록 원고에는 지난해 8월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에게 ‘우크라이나 수사당국이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수사에 협력할 때까지 원조를 계속 보류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반면 공화당 측에서는 회고록과 관련해 출판을 앞두고 책을 팔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NYT의 보도에 대해 거짓이라며 “나는 바이든 부자를 우크라이나 원조와 연계하라고 존 볼턴에게 결코 말하지 않았으며, 볼턴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단지 책을 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볼턴은 왜 그가 오래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서 경질됐을 때 이 몰상식한 일(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지칭)에 관해 불평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한 뒤 “당시 그(볼턴)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 관한 언론 기사 등을 통해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8월 내게 직접 ‘우크라이나 정부가 바이든 부자의 비리 혐의를 조사하겠다고 동의할 때까지 군사지원금 지급을 보류하겠다’고 말했다”고 폭로한 것은 거짓말이란 점을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저서 출간 계약
원고 검토…두차례 출판 연기

NYT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금 3억9100만달러(약 4567억원)와 우크라이나 검찰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 조사를 직접 연계시켰다”는 의혹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를 조사하지 않으면 미국의 군사원조는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한테 사실상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백악관은 회고록이 세상에 나오는 걸 막기 위해 출판에 제동을 걸었다. 책은 탄핵심리를 요동치게 할 최대할 최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원천봉쇄하기로 한 것.

백악관 국가안보 회의는 볼턴의 신간 원고에 대한 예비 검토 결과 이 회고록에 상당한 양의 기밀 정보가 포함된 만큼 현재 상태 그대로는 출판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렸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AFP통신은 이 같은 검토 작업은 책을 펴내는 모든 백악관 출신 인사들에게 적용되는 검열 절차라고 전했다.

볼턴은 지난 2월11일 노스캐롤라이나 더럼 소재 듀크대학교서 개최한 ‘2020년 안보 도전’ 강연서 “회고록에 더 많은 폭로를 담았다. 예정 날짜대로 출간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까지 관심은)우크라이나(스캔들)와 탄핵심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그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책에 담긴 내용들에 비춰볼 때 아이스크림 위에 뿌린 설탕가루 정도”라고 비유했다.
 

▲ 악수 나누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그는 “이것은 역사를 기록하려는 노력이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며 “백악관 검열 결과가 어떨지는 두고 보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궁극적으로 이 책이 출판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트윗 공격’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볼턴은 “그는 트위터를 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이 얼마나 공평한가?”라고 반문했다. 볼턴은 이날 강연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미 상원이 트럼프 대통령 탄핵심판서 무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지 않았다.

책 팔려고 
허위사실?

대신 트럼프 미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대해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실패하게 돼있는 정책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봉사를 했다”며 “(결국)북한에 2년이라는 시간만 더 벌어줬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회고록은 5월로 연기됐다. 하지만 5월에도 백악관이 원고를 검토하면서 한차례 또 연기됐다. 지난 20일(현지시각) AP통신에 따르면 미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로이스 램버스 판사는 이날 볼턴이 회고록 출간을 계속 진행해도 된다고 결정했다. 램버스 판사는 출간 강행이 심각한 국가안보상의 우려를 제기한다고 지적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램버스 판사는 출간 예정일이었던 지난 23일을 앞두고 미 전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회고록 수십만부가 퍼졌고 언론사에도 다수 입수돼 피해는 이미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기밀 누설로 인한 회고록 수익 환수와 형사처벌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회고록에 기밀이 다수 포함돼있다며 지난 16일, 출간을 연기해달라는 민사소송을 냈다. 이날 법원의 결정은 금지명령에 대한 것이라 민사소송은 그대로 남아 있다.

17일에는 WP와 NYT 등 미 주요 언론에 회고록 주요 내용이 일제히 보도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같은 날 회고록 공개 중지에 대한 긴급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회고록 출간 금지명령을 둘러싼 법정 공방 1라운드에서는 볼턴이 승리한 셈이다.

볼턴의 법정 다툼은 트럼프 대통령의 충복으로 꼽히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볼턴은 출간 지연을 노리는 듯한 백악관과의 장기간 협의 끝에 기밀을 다 덜어냈다고 주장했다. 

예정대로 지난 23일 출간한 회고록은 현재 아마존 등 미국 서점서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는 등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책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의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회고록 내용을 두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회고록이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도 기밀 유출 등을 지적하며 400여 곳에 대한 수정과 삭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볼턴은 대부분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 21일(현지시각) AP통신 등에 따르면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PDF파일이 최근 인터넷에 공개됐다. 구글 등에서 책 제목만 검색해도 바로 파일이 나오는 탓에 회고록 출판사인 ‘사이먼 앤 슈스터’는 이를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로 보고 해적판 유포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서도 회고록 PDF파일을 다운받을 있는 것이 공유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 관련해 번역본이 캡쳐화면으로 떠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게시되기도 했다. 회고록 내용 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비핵화 정책 방향을 두고 ‘조현병 환자 같다’고 표현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발끈
내용 보니…

업계에 따르면 회고록에는 지난해 2월말 베트남 하노이서 열린 제2차 미북정상회담과 관련 된 내용도 서술돼있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 당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언급하며 미국에 경제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이른바 ‘주고받기’를 요구한 셈.

한국과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주고받기는 불가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해체라는 카드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볼턴은 평가했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볼턴은 문 대통령이 북한의 입장을 나름 지지하면서도 회고록서 중국의 ‘수평적이고 동시적인’ 접근방식이 북한이 요구하는 ‘주고받기’ 식 협상 전략과 같은 소리로 들린다며, 두 개의 서로 다른 상황을 동시에 지지하는 듯 한 인상을 주는 문 대통령을 ‘조현병 환자 같은’이라는 수식어로 표현한 것.
 

▲ 존 볼턴 미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회고록을 살펴보면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회담과 한미회담, 한일 간 반도체 수출규제 갈등 등 중요 사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반면 한국을 상대로 수용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트럼프는 북한에 이어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 외교 현안인 대이란 문제에 아베를 끌어들였다.

아베를 상대로 “미·이란 관계 개선의 중재자 역할을 해달라”고 절박하게 요청한 사실이 회고록서 확인됐다. 트럼프 시대서 아베의 글로벌 외교력을 확장시켜준 것.

결과적으로 아베에 내밀한 도움을 요청한 트럼프는 일본의 도발로 반도체 핵심소재 분쟁이 불거지자 “한일 간 분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며 우리 정부의 중재 요청을 무시했다. 이처럼 한미일 동맹의 삼각축서 미국이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지에 대해 존 볼턴의 회고록은 “한국보다 일본에 더 우선순위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그의 회고록 내용에 대해 청와대는 일단 왜곡과 허위, 과장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 한일 간 다시 중대한 이익 충돌이 발생했을 때 미국의 중재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한국 외교가 어떤 노력과 전략을 구사할지에 대해 볼턴의 회고록은 역설적으로 그 필요성과 사안의 중대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

400곳 수정 요청했지만 거절
문 대통령 ‘조현병 환자’ 비유

무엇보다 향후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서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훼방을 놓고 한미 간 내밀한 정보들을 캐내는지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볼턴의 회고록은 입증하고 있다. 힘과 정보의 대결인 외교전서 일본의 대미 전략은 혀를 내두를 만큼 헌신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회고록은 보여준다.

2년 전인 2018년 4월11일. 미국 워싱턴 DC 인근 댈러스 국제공항에 청와대 고위 인사가 도착했다. 같은 달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현안을 공유하기 위해 방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었다. 도착 다음날 정 실장과 만난 볼턴은 뜻밖의 요구를 내놓는다. 27일 남북 회담 때 대화 테이블에 ‘비핵화’를 올려놓지 말라는 것이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역사적 회동을 하는 한국을 상대로 가장 중요한 의제인 비핵화 문제를 다루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회담을 하지 말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물론 4월27일 정상회담 뒤 양국 정상은 공동선언문서 한반도의 영구적 비핵화를 천명해 볼턴의 주장이 무색하게 됐다.

결과를 떠나서 볼턴은 정 실장에게 대체 왜 이런 무리한 요구를 했을까. 그의 회고록을 보면 한마디로 한국은 미국이 지향하는 북한 비핵화 개념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치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은 회고록서 볼턴이 당시 상황을 메모한 내용이다.
 

‘미국이 말하는 북한의 비핵화 개념에 대한 한국의 이해수준은 미국의 근본적 국익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4·27 판문점 회담은 실체가 없는 위험한 연극일 뿐이다. 나는 정의용에게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서 비핵화를 논의하는 걸 피하라고 요구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평양이 가장 선호하는 외교전략인 한국과 일본, 미국 간 관계를 틀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말했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주 정교한 조정을 해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볼턴 회고록서 발견되는 놀라운 사실은 당시 한미 정상 간 판문점 회담에 개입하고 정보를 캐내려는 일본의 노력이 집요했다는 사실이다. 볼턴은 이날 정 실장을 만난 수 시간 뒤 야치 쇼타로 당시 일본 국가안보국장을 만나 정 실장이 전한 남북회담 내용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전했다. 

“한국보다
일본 우선”

극렬 매파인 볼턴은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일본 정부와 동일하다는 점을 수시로 언급하며, 당시 야치 쇼타로에게 전한 메시지가 아베에게 그대로 전달됐다고 말하고 있다. 며칠 뒤 미·일 정상회담서 아베가 트럼프에게 자신의 메시지와 동일한 내용으로 북한 비핵화 해법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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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