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VS 동교동계 대리전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29 11:55:29
  • 호수 1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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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질긴 악연’ 다시 세게 붙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의 난’이 점입가경이다. 사건은 법적분쟁으로 번진 데 이어 ‘계파 대리전’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친노 대 동교동계의 대결이다. 이들의 악연은 18년 전 대북송금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요시사>는 현재진행형인 두 계파의 질긴 악연을 추적했다. 
 

▲ 재산 상속 관련 기자회견 갖는 조순열 변호사 ⓒ문병희 기자

DJ의 2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3남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홍걸 의원이 DJ와 이희호 여사 부부가 남긴 유산을 두고 법적분쟁을 벌이고 있다. 유산의 규모는 약 40억원, DJ의 서울 동교동 사저의 감정가액은 32억5000만원으로 추산되며, 여기에 노벨평화상 상금 8억원에 대한 분쟁도 진행 중이다.

법적분쟁
점입가경

사건은 지난해 6월 이 여사가 작고한 이후 시작됐다. 김 의원은 사저 명의를 자신의 명의로 변경하고, 이 여사가 은행에 예치했던 노벨평화상 상금을 찾아갔다. 

이처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 의원이 민법상 유일한 법정상속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먼저 사망한 경우, 친모의 아들이 상속인으로 인정된다. DJ는 이전 부인과의 사이서 1남 김홍일 전 의원과 2남 김 이사장을, 이전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이 여사와 재혼해 3남 김 의원을 낳았다. 

김 이사장은 이 여사가 생전에 작성한 유언장대로 김 의원이 따르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 여사가 40억원 상당의 유산(사저·상금)을 대통령 기념사업에 쓰고, 이 과정서 나오는 금전적 이득은 세 형제가 나누라고 유언했다는 것. 


이에 김 이사장이 속한 김대중기념사업회는 김 의원이 사저를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부동산 처분 금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 법원은 지난 1월 인용 결정을 내렸다. 김 의원은 이에 반발해 ‘가처분 이의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김 이사장은 노벨평화상 상금에 대해서도 재단에 귀속시키라는 요구를 김 의원에게 하고 있다.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지난 10일, 이 여사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두 사람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 의원은 최근 이 여사의 유언장을 공개하며 김 이사장의 요구가 터무니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 측이 밝힌 바에 따르면, 유언장에는 ▲노벨평화상 상금을 DJ기념사업을 위해 사용할 것 ▲사저를 DJ기념관으로 사용하고, 그 소유권을 김 의원에게 귀속시키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단, 사저를 매각한다면, 대금의 3분의 1을 김 이사장이 이사로 있는 김대중기념사업회를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대금을 3형제가 3분의 1씩 나누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연일 진실공방 ‘40억 누구에게?’
‘홍업-동교동’ ‘홍걸-친노’ 구도

김 의원의 법률대리인인 조순열 변호사는 지난 23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의원은 이희호 여사의 친자로서, 이 여사가 남긴 모든 재산을 상속 받을 유일한 합법적 상속인 지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언장은 서거 3년 전 작성됐으나, 후속 절차를 밟지 않아 법적으로 무효가 됐다”면서도 “법적 효력을 떠나 여사님의 유지가 담겼다고 판단해 김 의원은 그 유지를 받들 것”이라고 전했다. 

김 이사장은 김 의원이 공개한 유언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했다. 그는 지난 24일 입장문을 통해 “김 의원 측은 기자회견서 그동안 자신이 주장했던 이 여사 유언장 관련 내용이 거짓임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쏘아붙였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고 이희호 여사

김 이사장은 6가지 이유를 들어 기자회견의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여사가 ‘사저를 소유권 상속인인 김 의원에게 귀속하도록 했다’는 문구는 유언장 내용에 없는 것으로 조작됐다는 것 ▲김 이사장이 사저 재산을 탐낸다는 김 의원의 주장은 거짓이라는 것 ▲유언장을 공증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3형제가 유언장 내용에 따르겠다는 합의서에 인감도장을 찍었다는 것 ▲노벨평화상 상금은 상속세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총선 전 김 의원은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두 번이나 찾아가 이 여사의 유언장대로 집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법원에 제출한 가처분 이의신청서에는 권 이사장이 고령이라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해 김 의원 자신이 경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 ▲김 의원이 ‘김대중·이희호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유언을 이행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자신이 거짓말한 일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들의 난은 주변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김 의원은 지난 23일 인터뷰서 “내 형님(김 이사장)을 누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았다면, 저러지 않을 것이다. 계속 옆에서 이간질하고 분란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의혹을 제시했다. 

유언장 공개
과연 진실은?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아들의 난이 친노-동교동계 사이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김 의원의 친노, 김 이사장의 동교동계가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시선이다. 

김 의원은 김대중·이희호 기념관 설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회에는 한완상 전 부총리, 함세웅 신부, 허성관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유시춘 EBS 이사장의 합류가 확정됐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합류에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부총리는 DJ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DJ정부서 부총리를 지낸 그는 이후 노무현 대통령후보 사회담당 고문으로 활동했다. 진보진영 재야 원로인 함 신부는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동지’로 불린다. 허 이사장은 참여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위원과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누나인 유시춘 이사장도 친노로 분류된다. 

김 의원은 지난 23일 인터뷰서 “아버지(DJ)와 노 전 대통령과 모두 인연이 있는 원로 10명 정도를 자문위원으로 모시려고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김 이사장 측은 결이 다소 다르다. 동교동계가 주축이다. 김 이사장의 김대중기념사업회는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인 윤철상·전갑길 전 의원 등도 동교동계다.
 

▲ 권노갑 대표

김 의원은 권노갑 이사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김 의원 측 조 변호사는 23일 기자회견서 “권 이사장은 지난 총선을 앞둔 4월1일 내용증명을 보내와 4월6일까지 상속 재산을 이전시키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기자회견과 소송에 돌입해 국민들에게 알리겠다고 했다”며 “당시 비례대표로 출마한 김 의원에게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선거에 타격을 주겠다는 명백한 위협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이사장은 김 의원이 DJ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제쳐두고 자기 마음대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맞선다. 

친노와 동교동계는 질긴 악연을 자랑한다. 시간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DJ의 직계 정치세력인 동교동계는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전신)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인제 최고위원을 지원했다. 


또 동교동계인 한화갑 대표는 직접 경선에 출마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과 대선후보를 놓고 한판 대결을 펼쳤지만, 결과는 노사모의 지원을 받은 노 전 대통령의 승리로 돌아갔다. 갈등의 불씨가 켜진 것이다. 

2002년
시작돼…

당권은 동교동계가 쥐고 있었다. 친노는 민주당 내 비주류였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새천년민주당이 참패, 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동교동계는 ‘대선 후보 교체론’을 꺼내들어 두 계파의 사이는 더욱 틀어졌다. 동교동계는 이후 대선서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등 앙금을 보였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두 계파의 갈등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친노는 신당창당 수준의 과감한 정치 개혁을 주장했다. 당내 주류였던 동교동계는 이에 크게 반발했다. 

이후 불법 대북송금 사건이 특검으로 넘어가면서 두 계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해당 사건은 DJ정부 때인 2002년 국정감사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에 의해 처음 불거졌다.

한나라당은 즉각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도 계속됐다. 민주당은 2003년 3월 한나라당이 발의한 특검법안을 수정한다는 전제로 수용하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만약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자체적으로 수정안을 발의하겠다고 했지만,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민주당은 일단 특검법 공포를 거부해주면 여야 협의를 거쳐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한나라당은 일단 수용해 공포하면 다시 법률을 개정해 조사 범위의 한계를 두도록 하겠다는 주장”이라며 “결국 제한적으로 특검을 하자는 데 양당 지도부의 의견이 일치해 공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이희호 여사 1주기 참석한 김홍걸·김홍업씨

이에 동교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계파 수장인 DJ는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DJ 측근들은 DJ가 병원에 입원한 이유에 대해 ‘화병’ 때문이라고 전했다. 권 이사장 등 동교동계 핵심 인사들은 수사 과정서 구속됐다. 대북송금 특검 사태는 동교동계가 본격적으로 반노무현계(이하 반노)로 분류되기 시작한 계기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붙어
열린우리당 사태 때도…

‘열린우리당 사태’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2003년 11월 친노는 민주당을 구태의연한 정치세력으로 몰면서 한나라당 개혁파들을 끌어 모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동교동계 중심인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연합해 노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 그러나 탄핵은 이뤄지지 않았고, 탄핵 역풍으로 인해 민주당과 동교동계는 17대 총선서 참패했다. 

앙금은 계속됐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3월 동교동계는 국민의당에 대거 합류했다. 앞서 2016년 1월 동교동계는 민주당을 대거 탈당, 친노와의 불편한 동거를 청산했다. 

열린우리당 사태는 친노가 동교동계와 결별한 것이라면, 동교동계의 국민의당 합류는 동교동계가 먼저 친노를 떠났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호남 세력이 민주당을 떠나는 결과를 불러왔고, 친노가 주류가 된 민주당은 20대 총선서 호남 참패를 맞았다. 동교동계의 정치적 뿌리는 호남이다.

권 이사장은 당시 민주당을 탈당하는 과정서 “더 이상 (민주당에)희망이 없다는 확신과 양심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라며 문재인 당시 대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권 이사장이 당내 분란 해결을 위해 문 대표의 2선 후퇴를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문 대표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논평을 통해 “탈당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며 “60년 정통 야당을 지키고 바로 세우기 위해 좀 더 애를 써주실 수는 없었는지 실로 아쉽고 안타깝다”고 섭섭함을 표현했다.

지난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동교동계는 다시 민주당 복당를 선언했지만, 민주당은 이를 불허했다. 동교동계가 복당하려는 이유는 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으로 읽힌다. 

풀리지 않는
갈등의 연속

이 위원장은 정치부 기자 시절 동교동계를 출입하며 DJ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국회의원이 된 그는 열린우리당 사태 때도 동교동계가 주축인 민주당에 남았다. 이 위원장이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이유다. 동교동계는 여전히 이 위원장을 돕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DJ 아들의 난에 이은 친노-동교동계 사이의 또 다른 대리전이 될 공산이 크다. 이 위원장은 현재 당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친노가 뿌리인 친문서 당권 후보를 낸다면, 두 계파는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친노 대 동교동계의 대결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제의 2003년’ 이전 동교동계는?

동교동계는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계파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망명과 가택연금 등을 당하던 시절, 동교동계는 군사정권의 회유와 억압에도 동교동을 떠나지 않고 DJ 곁을 지켰다.

또 동교동계는 군사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1984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상도동계와 손을 잡고 민주화추진협의회라는 단체를 결성,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동교동계가 겪은 정치적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DJ가 1992년 대선에서 낙선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민주당에 합류했다. 이후 1995년 7월 DJ가 정계복귀를 선언, 동교동계는 민주당을 탈당해 DJ가 만든 새정치국민회에 합류했다.

동교동계의 전성기는 짧았다. 1997년 대선에서 DJ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동교동계는 당정을 아우르는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곧 좌장인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당시 소장파 의원들의 정풍운동으로 정계 일선서 물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DJ의 퇴임으로 동교동계의 세는 급속도로 약화됐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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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